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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이탈리아 독일 눈여겨봐라

프랑스·이탈리아 독일 눈여겨봐라

중국 주식, 주택, 원유, 옥수수의 공통점을 꼽는다면? 바로 ‘투자 열풍’의 주인공들이다. 얼마 전까지 한껏 치솟은 몸값을 뽐냈던 주역들이지만 요즘엔 황혼길에 접어들었다. 물론 일찌감치 주연배우를 알아본 투자자들은 한몫 단단히 챙겼다. 그러나 ‘낙관 → 흥분 → 거품 → 공포’로 이어진 각본은 이번에도 유효했다.

뒤늦게 ‘대박 드라마’에 뛰어든 지각생들의 입에선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한국만 해도 코스피 지수가 1400선에서 춤을 춘다. ‘주가 3000 시대가 온다’던 믿음은 세계경제의 침체 파고와 한국의 9월 경제위기설에 파묻혀 버렸다. 기다려도 회복되지 않는 펀드를 환매하려는 투자자도 늘고 있다.

하지만 투자의 세계에서 곡 소리는 새로운 희망을 찾는 신호음이기도 하다. 얼마 전 타계한 존 템플턴 경은 “강세장은 비관론에서 잉태되고, 낙관론을 업고 성장하다, 열광에 빠져 종말을 맞는다”는 혜안으로 남다른 투자실력을 발휘했다. 그처럼 요즘 시장 한편에선 새 항로를 찾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블룸버그는 얼마 전 ‘FIG’란 개념을 소개했다. 프랑스·이탈리아·독일의 영어 머리글자다. 블룸버그의 매튜 린 칼럼니스트는 3개국이 1000년 동안 부자나라 소리를 들었는데도 투자자들로부터 푸대접을 받는다고 했다. FIG에 눈길이 가는 것은 중국과 인도 덕분이다.

자고 나면 두터워지는 신흥시장의 중산층이 유려하면서도 역사가 깃든 FIG의 고급품 시장에서 주된 고객이 되고, 증시와 경제의 불쏘시개가 된다는 얘기다. 알고 보면 이미 한국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다.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의 강방천 회장이 그랬다. 외환위기 직후 1억원을 153억원으로 불린 그는 7월 초 고급자동차·요트·보석·예술품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를 내놓았다.

지구촌 증시가 독감을 앓을 때였지만 그는 새 안목을 제시했다. 중국·인도·러시아·중동 같은 신흥국에서 30억 명의 ‘부자 군단’이 잉태된다는 점에 눈을 떠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을 제 집 드나들 듯 오가며 연구한 뒤 내린 결론이다. 그는 “특정한 시장이나 상품이 뜬다고 유행처럼 번지는 ‘가격지향적 펀드’는 오래 못 간다”고 자신한다.


‘탐욕과 공포지수’ 및 코스피지수 흐름 (단위: 포인트)
의미 있고 가치 있는 투자 대상을 찾으면 주가하락의 공포나 거품 시나리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거품을 싫어하는 부자들도 점점 세(勢)를 불린다.

대표적인 게 ‘지속성 펀드(Sustainable Fund)’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헤지펀드와 사모펀드 같은 신대륙에 맨 처음 발을 들여놓은 부호들이 최근엔 지속성 펀드로 옮겨가고 있다고 전했다.

대체에너지를 개발하거나 시장·사회에 기여하는 주식에 투자한다. ‘단기 대박’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유행투자는 사절한다는 소리다. 펀드로 들어오는 돈은 지난해 550조원에서 향후 5년간 1620조원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수익률도 제법이다. 미국 사회책임경영연구소(CSRI) 조사에 따르면 지속성 펀드는 20년간 연 12%의 성적을 냈다. 일반 주식형 펀드(10%)보다 더 낫다. 사실 새로운 길을 찾으려면 ‘현재 좌표’부터 정확히 읽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 증시에서도 바닥을 확인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공포의 투자학’을 연구한 우리투자증권 투자정보팀의 이윤학 연구위원(경영학 박사)은 “지난주에 코스피가 ‘공포 구간’에 진입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2년 전 ‘공포와 탐욕 지수’를 개발했다. 경기·기업이익·자금흐름·시장지표 4개 부문에 대해 기업실사지수·이익추정치 변화·펀드자금·주식거래량 같은 11개 항목을 분석해 투심(投心)이 어떤 단계에 왔는지 짚어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지수의 각 항목들이 일제히 내려가면서 최악의 국면에 다가섰다는 것이다. 회복 시기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바닥 → 반등’의 가능성이 커졌다는 데서 위안을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여의도의 애널리스트들이 그간 주장했던 바닥은 번번이 허물어지며 ‘바닥 아래 지하실’이라는 자조를 낳았다. 물론 ‘공포와 탐욕 지수’는 심리에 기반한 분석이어서 일반적인 바닥 측정법과는 다르다.

악재의 위력도 여전하다. 집값 하락과 신용위기로 시름하는 미국은 ‘일자리 문제’가 갈수록 악화하면서 침체가 피부로 다가왔으며, 한국은 불안한 경제정책과 위기설이 뒤엉켜 있다. 투심이 금세 회복하지 못하고 바닥권에 오래 머물 수도 있다는 소리다.

월가에서 쓰는 말에 ‘죽은 고양이의 반등(Dead cat bounce)’이라는 게 있다.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면 죽은 고양이라도 다시 튀어 오른다는 걸 주가에 비유했다. 주가가 급락하면 기술적으로라도 반짝 오른다는 뜻이다. 지난주 초 한때 1400선이 꺼졌던 코스피 지수는 주말로 가면서 회복세를 보였다가 다시 멈칫했다. 이번 주는 미국 정부의 모기지업체 구제 소식에 급반등으로 출발했다.

갖가지 불씨가 여전한 가운데 죽은 고양이의 반등이 나타날지, 진정한 바닥이 다져질지 속단하긴 어렵다. 이걸 맞히는 건 신의 영역이다. 다만 바닥의 징후들이 많아진 것은 분명하다.

[필자는 ‘중앙SUNDAY’에서 국제경제 기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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