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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빈곤’시대가 온다

‘심리적 빈곤’시대가 온다

미국인들은 발전 중독자들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나아야 하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기회’와 ‘전진’에 더 집착한다. 이제 그들은 이런 폭넓은 기대를 무너뜨리는 새 시대의 문턱을 딛고 서 있는지도 모른다.

현재의 금융위기, 그리고 은행 구제로부터 미친 듯 널뛰는 주가에 이르기까지 그 매서운 후폭풍 때문만은 아니다. 이번 위기는 고령화 사회, 폭주하는 건강보험 지출, 지구 온난화 등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일련의 다른 도전들과 동시에 닥쳐왔다. 미국의 신임 대통령은 수십 년 만에 가장 감당키 어려운 경제 환경을 맞닥뜨리게 된다.

로널드 레이건과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 이후보다는 분명 더 어렵고,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25% 실업 이후의 어느 때와 비교해도 힘든 시점인 듯하다. 미국 경제가 비관적인 예측을 극복한 적이 많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야망이 넘치고 검증된 혁신 능력을 가진 미국 문화는 성장을 선호한다.

이는 분명히 강한 변수들이다. 그러나 경제발전이 주기적으로 주춤했던 것도 사실이다. 대공황은 10년간 지속됐다. 1930년대의 실업률은 평균 18%에 달했다. 70년대의 끈질긴 인플레는 생활 수준과 주가를 포로로 잡았다(82년 주가가 65년 수준을 넘지 못했다). 79년엔 인플레율이 13%에 달해 “그만큼 미국인들의 마음을 짓누를 만한 이슈는 달리 없었다”고 정치평론가 시어도어 H 화이트가 훗날 평했다.

미국인들이 고도의 경제성장을 누릴 권리를 하늘에서 내려 준 것은 아닌 셈이다. 미국 경제는 요즘 과거의 행태를 바탕으로 미래를 점치기 어려운 역사적 갈림길에 서 있는 걸까. 그것이 바로 차기 대통령 앞에 놓인 핵심적인 의문이다. 2년 전만 해도 거의 상상할 수 없었던 최근의 사건들에도 가슴이 떨리지 않았다면 정말 강심장을 가진 사람이다.

대형 주택담보대출업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정부가 국유화했다. 재무부는 미국의 주요 은행 다수에 구제금융을 지원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신용시장 안정을 위해 1조 달러를 쏟아 붓고 있다. 얼마 전 4.4%까지 내려갔던 미국의 실업률이 지금은 6.1%이며 8%를 향해 상승 중이라고 한다.

차기 대통령의 중차대한 과제는 경제의 활력을 해치지 않고 안정시키는 것이다. 반가운 소식은 현재의 침체가 심화된다고 해도(실업률이 8%에 달하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셋째로 극심한 경기 침체가 된다) 심각성이나 고통 측면에서 대공황 수준에는 근접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미국인들이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

FRB와 재무부는 금융체제를 지탱하려 안간힘을 다했다. 미국 은행의 5분의 2가 도산하도록 방치했던 30년대의 상황과 정반대다. 의회는 이미 3000억 달러, 어쩌면 그 이상의 2차 ‘경기부양’ 종합대책을 검토 중이다. 일부 민간 경제전문가는 5000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쁜 소식은 이로 인해 고용 사정은 호전되겠지만 경기 회복이 만족스럽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미국의 신경제 시대는 “심리적 빈곤(affluent deprivation)”의 상태로 빠져들지 모른다. 이 생소한 용어가 가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미국은 여전히 부유한 사회로 남을 것이다. 오히려 ‘심리적 빈곤’은 심리 상태를 가리킨다.

소득은 제자리걸음을 하는데 세금, 에너지 비용, 의료비 지출이 많아져 사람들이 가난해졌다고 느낀다는 말이다. 그런 지출은 모두 혜택을 수반하지만 하루하루의 소비 지출이나 일상적인 여가활동의 비용을 보태주는 건 아니다. 머지않아 민간과 공공의 요구 간에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퇴직급여, 국방비, 도로와 교량의 보수 등 정부가 돈을 써야 할 곳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실용주의적이기 때문에 물질을 쉽게 포기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정말 고급 그릴이나 평면 TV가 필요할까. 미국인들 사이에 낭비와 과소비가 있는 건 부인할 수 없지만 이런 주장은 심리적 요소를 간과한다.

‘사치품’은 금방 ‘필수품’이 된다. 휴대전화가 최근의 대표적인 사례다. ‘전진’은 사람들의 낙관주의에 불을 지피고 낙천적인 사회는 “다양성을 더 받아들이고 사회적 이동성이 커지며 공정함에 대한 의식이 높아진다”고 하버드대의 경제학자 벤저민 프리드먼이 최근 저술에서 주장했다.

경제성장은 미국의 국가적 자긍심을 일으켜 세웠다. 반대로 성장이 둔화하면 불만과 다툼이 많아진다는 얘기다. 안타깝게도 성장의 둔화는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미국인들은 현재의 위기가 한 경제시대의 끝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대략 4반세기 동안 미국 경제는 인플레 하락이 퍼뜨린 부수 효과의 혜택을 누렸다.

미국인들은 낮은 금리에 돈을 잔뜩 빌려 개인 재산을 불렸다. 지금은 그런 즐거움이 도를 지나쳐 후유증을 겪는 시점에 이르렀다. 현재의 경제난을 초래한 원인을 분석할 때 지속적인 번영과 그것이 초래한 관용적 태도와 관행에 더 큰 원인이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대체로 간과됐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미국 경제를 주도한 흐름은 두 자릿수 인플레의 등락이었다.

인플레는 60년 1% 정도에서 시작해 상승세를 타면서 경제의 안정을 저해했다. 69~81년 경기 침체가 네 차례 있었다. 82년 말에는 실업률이 10.8%까지 치솟았다. 마지막의 그 극심한 경기 침체는 폴 볼커 FRB 전 의장 연출, 레이건 대통령 후원으로 이뤄졌으며 최악의 인플레 심리를 깨끗이 걷어냈다.

두 자릿수였던 인플레율은 84년에 이르러 4%를 밑돌았으며 2001년에는 1%로 떨어졌다. 이 같은 인플레 하락(디스인플레이션)이 경제를 지탱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주가는 큰 폭의 회복세를 나타냈다. 낮은 인플레로 금리가 내려가자 투자자들은 채권을 팔고 주식으로 갈아탔다.

82년 내내 1000선을 밑돌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89년에는 2500선을 오르내리더니 99년엔 1만500포인트에 육박했다. 소비가 호황을 낳았다. 부유해졌다고 느낀 미국인들이 마구 돈을 빌려 썼다. 개인 저축률은 82년 11%에서 2005년에는 제로 가까이로 떨어졌다. 단 두 차례 경미한 경기 후퇴가 있었다(90~91년과 2001년).

그러나 이 같은 번영이 나쁜 습관을 낳았다는 것이 이제 명백해졌다. 현재의 위기에 대해 흔히 모호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를 탓하지만 실상 디스인플레이션으로 확산된 낙관주의에 그 뿌리가 있었다. 지금은 그 왜곡된 결과가 확연해졌다.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자 많은 미국인은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고 확신했다.

일단 그런 사고가 뿌리내리자 느슨한 투자 기준(첨단기술 기업들의 경우)과 대출 관행(주택의 경우)이 만연했다. ‘거품’이 뒤따랐다. 사람들은 기술주에 과도하게 투자하고 거액의 대출을 받아 오른 가격에 집을 사거나 부동산 가격 거품을 바탕으로 현금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런 빚잔치는 무한정 지속되지 않았다.

부채 증가가 점차 소득 증가 속도보다 빨라졌기 때문이다. 2006년 가계부채가 개인소득의 134%에 달했다. 조만간 소비자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형편이었다. 지금이 그때인 듯하다. 자동차 판매와 소매 매출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경기 침체는 언젠가 끝나겠지만 경제가 회복된다고 해서 과거의 성장률로 돌아간다는 보장은 없다. 지평선 저편에 더 큰 위협이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고령화 사회다.

산술적으로 경제성장은 노동자의 근로 시간과 그들의 생산성 증가, 이른바 효율성을 나타낸다. 1960~2005년 미국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4%였다. 여기에는 노동력 증가(1.5%)와 생산성 증가(1.9%)가 거의 균등하게 반영됐다.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함에 따라 노동력 증가는 둔화될 것이다.

2020년대 중반에 이르면 경제성장률이 2.1% 정도에 이르며 그중 노동력 증가는 0.4%에 불과하고 생산성 증가가 1.7%를 차지할 것이라고 사회보장청은 내다본다. 생산성은 결정 변수가 많기 때문에(기술, 경영, 근로자의 숙련도) 그 추정치조차 낙관적일 수 있다. 70년대처럼 생산성 증가세가 멈추면 사람들의 소득은 늘지 않는 반면 지출이 많아지면서 미국 경제는 사실상 정체될 것이다.

신임 대통령이 직면한 딜레마는 현재의 요구와 미래의 요구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는 것이다. 당면한 과제는 경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 수요와 지출을 되살림으로써 실업자들을 흡수하고 가동이 중단됐던 기업들의 생산을 늘리는 일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과제는 다르다. 국가의 지출을 필요로 하는 온갖 상충되는 요구들 간에 교통정리를 하고 경제의 능력을 키워 그런 요구들을 충족시키는 결과물을 내놓는 일이다.

경제가 침체에 가까워질수록 미국인들 사이에서 분배를 둘러싼 갈등이 더 심화될 것이다. 부유층과 빈곤층뿐 아니라 청년층과 고령층, 이민자와 원주민들 사이에서도 그런 마찰이 생기게 된다. 그 앞길에 ‘심리적 빈곤’이 자리 잡고 있다. 고리타분하지만 적절한표현을 빌리자면 사람들이 파이를 키워 더 큰 조각을 나눠 갖기보다 정해진 파이의 조각을 차지하려 서로 다투게 될 것이다.

승자는 만족하겠지만 패자는 부당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렇게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어제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되기도 한다. 승패가 더 확실하게 갈리는 속성을 가진 정치에서는 그런 성향이 더 강하게 나타날지도 모른다. 이런 전망은 단순히 가설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인들이 앞으로 지출해야 할 돈이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보다 훨씬 더 많아질 것이다.

정부부터 따져보자. 능력보다 더 많은 약속을 했다는 점에서 과욕을 부렸다. 그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은퇴연금 비용이다. 잘 알다시피 고령자 대상의 세 가지 정책, 사회보장·메디케어(고령자 건강보험)·메디케이드(영세민 고령자 대상 요양 보험)가 연방예산을 독점하다시피 한다.

이들 프로그램은 3조 달러의 예산 중 현재 5분의 2 이상을 차지하며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함에 따라 2030년에는 두 배 가까이로 불어날 수 있다(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측정할 때). 무엇이 까다로운 문제인지는 뻔하다. 은퇴자 대상의 지출을 위해 어느 정도까지 세금을 올리거나 다른 지출 항목을 얼마나 줄일 것인가.

건강보험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한다. 고령자를 위한 연방지출 예상 증가분의 4분의 3가량이 메디케이드·메디케어와 관련돼 있다. 미국 사회는 건강보험 지출을 억제하는 방법을 터득하지 못했다. 대다수 미국인은 필요한 의료보장을 모두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출 억제(공공보험과 민간보험 모두)도 효과가 없었다

미국인들이 거기에 따를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지출은 60년 GDP의 5%에서 지금은 16%로 늘었으며 2015년에는 20%에 달할지 모른다. 회사가 건강보험료를 내준다 해도 그만큼 임금을 깎기 때문에 직원이 손에 쥐는 급여가 줄어들게 된다. 건강보험 지출은 온 국민이 부담하는 세금의 상승 요인이며 다른 정책예산에 대해서는 삭감 요인으로 작용한다.

끝으로 에너지 문제가 있다. 최근 가격이 떨어지긴 했지만 배럴당 유가 65달러 선은 2003년의 평균 29달러를 여전히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지구온난화 억제 노력도 가격 상승 요인이다. 많은 미국인은 고통 없이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들에 줄이라고 명령하면 되는 줄 알지만 큰 착각이다.

대부분의 지구온난화 억제 정책들은 탄소세나 ‘총량거래제(cap and trade)’를 통해 “탄소에 값을 매기려” 한다(이산화탄소가 주된 온난화 유발 가스다). 총량거래제는 기업들이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 총량을 제한하고 그 이상이 필요하면 다른 기업들로부터 배출권을 구입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탄소 기반 연료의 가격이 상승해 사람들은 도리 없이 사용을 줄이거나 태양광 등 더 값비싼 비탄소계 에너지의 가격 경쟁력을 키우려 할 것이다. 사실, 버락 오바마나 존 매케인 모두 이런 문제를 솔직하게 다루지 않았다. 물론 공약은 내놓았지만 대부분 표를 얻으려는 것이었지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을 분명하게 알릴 목적은 아니었다.

둘 다 총량거래제를 지지하지만 예컨대 이런 계획들이 성공하려면 에너지 가격을 더 높여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지적하지 않았다. 두 후보가 내놓은 건강보험 개혁안은 비용을 억제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보험 적용 대상을 확대하겠다고 약속해 지출을 늘릴 가능성이 더 커 보였다. 그리고 두 후보는 뻔한 얘기지만 감세와 지출 정책을 지지해 이미 비대해진 예산적자를 키울 듯하다.

양 진영 모두 “손 안 대고 코 풀려는” 측면이 있었다. 심하게 기력이 떨어진 경제에는 적자 확대가 올바른 처방일지도 모른다. 마중물을 먼저 한 바가지 부어야 물이 쏟아져 나오는 고전적인 ‘펌프 프라이밍(pump priming, 공공투자에 의한 경기부양책)’ 방식 말이다. 2008년 4550억 달러(GDP의 3.2%)였던 적자가 2009회계연도에는 1조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적자 효과는 일시적인데도 미국 정부의 반영구적인 특징이 되고 말았다.

61년 이래 예산흑자는 다섯 차례에 불과했다. 적자는 국민이 정부로부터 원하는 것과 납세를 통해 지불하려는 비용 간의 불일치를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일 뿐이다. 필경 현실성 있는 어떤 경제성장률도 공적·사적 지출에 대한 모든 미국인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것들보다 더 나쁜 결과도 있다.

앞으로 예상되는 사회보장과 메디케어 지출을 줄이지 못한다면 전례 없는 세금 부담에 직면하게 된다. 그에 따라 근로와 위험 부담에 대한 보상이 줄어 경제성장이 한층 위축될지도 모른다. 미국 의회예산국의 추산에 따르면 기존 보험급여를 충당하려면 2030년까지 세금을 50% 인상해야 한다(요즘 물가로 연간 1조 달러 이상). 다른 대안들도 바람직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다른 정책 예산의 대폭적인 삭감이나 대규모 적자는 언젠가는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미국은 이런 정책들이 변화된 사회환경을 반영하도록 현대화하지 못했다. 연금 수급 연령을 점차 높여야 한다. 사람들의 수명이 길어졌으며(사회보장법이 통과된 35년에는 기대수명이 62세였지만 지금은 78세) 더 고령까지 일할 수 있다.

대다수 직업이 공장과 농장에서 사무실로 이동하면서 육체노동이 많이 줄었다. 많은 은퇴자는 적당한 저축을 보유해 사회보장과 메디케어에 덜 의존해도 된다. 돈 많은 은퇴자에게는 연금급여를 축소할 수 있다. 현 제도는 역(逆) 로빈후드 효과를 낳았다. 허덕이는 청년들의 소득을 느긋한 고령자들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지구온난화에 대해서도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요즘 기술(바뀔 수 있지만)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이것이 엄연하고도 어쩌면 비극적인 현실이다. 세계 에너지의 5분의 4가 석유(35%), 석탄(25%), 천연가스(20%) 등 화석연료에서 나온다. 2030년에는 세계 에너지 소비가 2005년 수준 대비 55% 증가할지 모른다고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했다.

중국·인도와 기타 빈국들이 소비 증가분의 4분의 3을 차지할 것이다. 이런 나라들은 에너지 사용을 억제하려고 빈곤을 해소하는 경제성장을 희생하지는 않을 게 뻔하다. 인도만 해도 4억 명가량이 지금도 전기 없이 지낸다. 많은 돈을 들여 미국의 배기가스를 줄이려는 정책도 헛발질일지 모른다. 미국 경제에는 부담을 주면서도 지구온난화는 거의 억제하지 못할 가능성 때문이다.


단순히 청정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큰돈을 들이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연구와 개발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 지구온난화 억제의 최대 희망은 온실가스를 제거하고 부국과 빈국의 경제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적당한 비용에 생산하는 신기술에 있다. 탄소를 ‘걸러내 저장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전지로 움직이는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석유 수입 감축 등 다른 근거에서 온실가스를 약간이라도 줄일 수 있는 정책을 채택할 수도 있다. 예컨대 유류세를 올리면 소비자들이 연비가 더 좋은 자동차를 구입할 것이다. 미국 의회가 새로 통과시킨 규정에 따르면 신차는 2020년까지 현재 갤런당 40㎞인 연비를 평균 56㎞로 높여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되든 미국 경제발전의 미래는 실물경제 못지않게 심리가 좌우할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이 상당 부분 경제발전에 뿌리를 두기 때문에 그것을 눈에 확 띄도록 이루지 못하면 미국인들의 자신감이 크게 약화될 것이다. 전에도 앞날이 깜깜해 보일 때가 있었지만 미국인들이 저력(보편화된 근로 윤리와 강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통념을 뛰어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또 다른 대공황이 오거나 잘돼야 경제가 아주 약간 성장할 것이라는 우려가 널리 퍼져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큰 호황이 찾아와 교외 주택지가 대거 생기고 자동차·전자제품·TV 등의 소비재가 마구 쏟아져 나왔다. 어쩌면 오늘날의 근심도 똑같이 기우로 끝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임 대통령(버락 오바마든 존 매케인이든)이 중대한 갈림길에서 국정의 방향타를 잡게 됐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단지 금융위기가 그렇게 생소하고 위협적으로 여겨져서만은 아니다. 이번 위기는 미국에 국한하지 않고 전 세계를 위협한다. 그것을 다스리려면 경제 독트린만큼이나 경제 외교도 필요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난 4반세기 동안 디스인플레이션과 그에 따르는 개인 재산과 차입 증가에 힘입어 경제의 성장동력 역할을 했던 대변수들도 분명 추진력을 잃었다.

미국 경제가 앞으로 더 빨리 성장하려면 새로운 성장동력을 키워야 한다. 이번 금융위기는 이미 대규모의 정부 개입을 유발했으며 그 범위와 심각성을 감안할 때 거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너무 많은 개입 또는 잘못된 개입이 성장·투자·위험 감수 의욕을 해칠 위험성도 있다.

사람들은 희생양을 찾기에 혈안이 될 것이고 만만한 표적이 널려 있다. 그러나 새로운 규제와 세금 형태의 대응과 응징이 너무 억압적이면 성장 잠재력을 저해할 수도 있다. 좋든 싫든 신임 대통령은 이번 폭풍의 눈에 앉게 된다. 미국의 경제를 성장시키려면 과거와 미래 간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로버트 J 새뮤얼슨의 ‘大인플레와 그 여파, 미국 경제성장의 과거와 미래(The Great Inflation and Its Aftermath: The Past and Future of American Affluence)’에서 발췌. ⓒ 2008 by Robert J. Samuelson. 랜덤하우스퍼블리싱 그룹 출판사인 랜덤 하우스 발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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