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는 보험과 닮았다
도자기는 보험과 닮았다
|
9월 중순 서울 인사동의 고미술품 전문 갤러리 통인가게.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고가구와 도자기 사이로 은회색 머리칼의 키 큰 외국인 신사가 눈에 띄었다.
통인가게의 이계선 관장은 이 특별한 외국인 손님을 위해 직접 작품 설명에 나섰다. 이 관장은 전시된 도자기 중 가장 작은 항아리를 가리켰다. 그리고 외국인 손님에게 물었다.
“어디에 사용했던 물건인 것 같아요?”
바로 대답이 나왔다.
“명기란 도자기로 죽은 사람이 생전에 사용했던 물건보다 작게 만들어 관 속에 함께 묻어줬지요.”
유창한 한국말에, 게다가 정확한 답변까지 이 관장은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그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외국인 손님과 함께 도자기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이 외국인 손님이 바로 스튜어트 솔로몬 메트라이프생명 사장이다. 솔로몬 사장과 초면이라는 이 관장은 “소문으로 우리 도자기에 관심이 많다고 듣긴 했는데 실제로 얘기를 나눠보니 전문가 수준”이라고 말했다.
솔로몬 사장은 1996년에 설립된 도자기 동호회 문월회(問月會)의 창립멤버다. 동호회 이름은 중국 당대의 시인 이태백이 지은 시 ‘파주문월(把酒問月겮珦騈?잡고 달에 묻다)’에서 따왔다. 문월회엔 의사, 사업가, 대학교수 등 20여 명이 있다. 회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고려 시대 청자에서 조선 시대 분청사기 등에 이르는 도자기의 발달사나 시대별 특징을 연구한다.
책만 보며 공부하는 게 아니다. 두 달에 한 번 꼴로 현장답사를 다녀온다. 올해로 13년째 활동을 하다 보니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 경기도 이천, 전남 강진, 계룡산에 있는 옛 가마터 유적지에는 여러 차례 다녀왔다. 도자기를 공부하면서 솔로몬 사장은 자연스럽게 한국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4년 전엔 회원들과 중국 랴오닝(遼寧)성의 수도 선양(瀋陽)을 찾아갔다. 과거 선양은 고구려의 중심 지역이었다. 선양 곳곳엔 고구려의 영화를 볼 수 있는 유적이 많다. “책에서 보던 유적을 직접 볼 수 있어 좋았지만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안타까웠다”고 들려줬다. 최근엔 도자기 경매에도 여러 번 다녀왔다.
서울옥션 같은 유명 경매장이 아니라 지방에서 소규모로 열리는 경매 행사였다. 지난 8월엔 경기도 청평에서 경매가 있었다. “마치 시골 골동품 시장에 온 듯했어요. 거기엔 도자기는 물론 고가구, 갓, 노리개, 장신구 등 옛날 물건이 즐비합니다. 간혹 수대째 가보로 내려온 진품 도자기가 나오는 경우도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그는 도자기 중에서 조선 시대 청화백자를 좋아한다. “청화백자의 우윳빛 광택은 현대 기술로도 재현해내지 못합니다. 또 그림 역시 꽃이든, 용이든 상관없이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아요. 도자기의 자연적인 단순함이 매력인 거죠.”
청화백자 등 15점 소장
한국 도자기의 매력은 일본이나 중국 도자기와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외국의 도자기는 지나치게 화려하다. 처음 보면 아름답지만 금방 질리게 마련이다. 솔로몬 사장은 “이에 비해 한국 도자기는 겉모습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속에서부터 차근차근 차오르는 숨겨진 멋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청화백자, 백자달항아리, 백자, 매병 등 도자기 15점을 소장하고 있다. 비싸게 구입한 도자기는 없다고 한다. 소장하고 있는 백자달항아리는 지난해 이천 도자기 축제에서 사왔다. 대신 솔로몬 사장은 진품 도자기를 보기 위해 주말이면 박물관을 찾는다. 자주 들르는 곳은 국립중앙박물관과 호림미술관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방대한 양의 도자기들이 시대별로 전시돼 있어 도자기의 역사를 읽을 수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 리움미술관, 간송미술관과 더불어 3대 사립미술관으로 꼽히는 호림미술관은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시간을 두고 찬찬히 도자기를 구경할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좋은 도자기를 구별하는 방법은 뭘까. 그는 “많이 보고 많이 만져보면 저절로 안목이 생긴다”고 말했다. 도자기를 처음 구입하는 사람이라면 희소성을 따져보는 게 안전하다고 덧붙였다. 도자기는 골동품이므로 오래될수록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또 원래의 형태나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면 값어치가 나간다.
한국 도자기를 처음 본 것은 71년 뉴욕 시러큐스대 생리학과를 졸업하고 국제평화봉사단으로 한국에 처음 왔을 때다. 우연히 인사동을 거닐다 골동품점에 진열된 은은한 순백색의 백자를 본 순간 마음이 평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이후 솔로몬 사장과 한국과의 인연은 계속됐다.
그는 74년 미국 기계부품회사 바이어로 부산 사상공업단지에서 일했다. 79년부턴 외환은행 뉴욕지점에서 근무했으며 그곳에서 15년 넘게 일했다. 그러다 95년에 메트라이프생명 한국법인에서 임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에 지원했고 다시 한국에 왔다. 솔로몬 사장이 외환은행 근무 시절 본부 상사는 홍세표 전 외환은행장이었다.
홍 전 행장은 “당시 솔로몬 사장은 한국 정서나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며 “이런 애착과 경험이 바탕이 돼 한국에서 경영을 잘 하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솔로몬 사장이 취임한 이후 메트라이프생명은 7년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그는 고객이 안전하게 미래를 계획할 수 있도록 전문 설계사 육성에 주력하는 한편 전문 영업조직을 새롭게 구축했다.
이런 노력으로 2006년 계약고객이 100만 명을 돌파했다. 지난해엔 120만 명으로 증가했다. 매출도 꾸준히 늘었다. 솔로몬 사장이 취임한 2001년 약 3000억 원에서 지난해엔 2조4908억 원으로 8배로 성장했다. 솔로몬 사장은 도자기와 보험이 닮았다고 말한다. “도자기는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잖아요.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그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보험 역시 한 번 가입하면 장기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으니 든든하죠.”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변우석 업은 배스킨라빈스, X-마스 '케이크 전쟁' 승기 잡을까
2임지연, 씨스루에 두 팔 벌리며…"후회 없이 보여드릴 것"
3신한은행, 재외국민 위한 ‘신한인증서 발급 시범서비스’ 개시
4'금리 인하'에 소식에 은행 찾았지만...대출은 '첩첩산중'
5정병윤 리츠협회장 “국내 리츠 경쟁력 높이기 위한 과제 해결 필요”
6SK증권, 조직개편·임원인사 단행…대표 직속 IB 총괄 신설
7MBK·영풍 시세조종 의혹 재점화…임시주총 변수 되나
8현대차그룹, 英 ‘탑기어 어워즈’ 4년 연속 수상
9롯데, 임원인사서 CEO 21명 교체..."계열사 혁신 가속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