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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벌리힐스엔 대저택 재고 넘쳐

베벌리힐스엔 대저택 재고 넘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비켜나 있는 듯했던 미국 고급 주택 시장에도 찬 서리가 내리고 있다. 집값이 뚝 떨어졌음에도 거래가 되지 않고 있다. 고급 주택 가격은 지난해 최고가에 비해 20%가량 떨어졌다. 부자들도 지갑을 닫고 있는 것이다.

가격이 뚝 떨어진 미국 조지아 주의 한 저택. 미국에선 고급 맨션들의 가격이 하락 중이다.

말리부에서 맨해튼에 이르기까지 미국 고급 부동산 시장이 주춤거리고 있다. 500만 달러 이상의 고급 주택 매수자들의 상당수가 거래를 보류하거나 아예 발을 빼고 있다. 증시 폭락과 더불어 세계 경제에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은 일단 가격 흐름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마이애미에 위치한 아바타 부동산 서비스의 새디 델가도 대표는 “오늘 500만 달러 하던 매물이 내일 400만 달러로 내려갈까봐 선뜻 결정을 못 내린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2~3주 만에 팔리던 매물이 이젠 수개월이 지나야 거래가 성사된다. 가격이 계속 하락하는데도 그렇다. 미국의 고급 주택 가격은 지난해 최고가 대비 20%가량 떨어졌다.

몇몇 전문가는 앞으로도 10~15% 추가 하락한 뒤 2010년에 바닥을 찍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국 전체 주택 시장의 경우 조만간 안정되리란 예상이 일반적이지만 비싼 부동산은 회복세가 더딜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고급 주택 매물은 지난해 하반기까지 오름세를 유지하며 거래가 활발했으나 지금은 매기가 뚝 끊겼다.

이제는 누구도 경기침체의 영향을 피해갈 수 없다. 유명한 자선사업가이자 미국 사교계의 여왕이었던 고(故) 브룩 애스터의 대저택도 예외가 아니다. 뉴욕 파크 애비뉴에 위치한 방이 14개나 되는 복층 아파트는 올여름만 해도 4600만 달러를 호가했지만 지금은 3400만 달러로 추락했다. 요즘 억만장자의 눈에는 아담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 집은 다른 매력이 풍부하다.

여섯 개의 테라스에 다섯 개의 벽난로, 빨갛게 옻칠한 고풍스러운 서재, 무엇보다 파크 애비뉴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최고급 건물 16층에 위치해 입지 조건이 최상이다. 주택 관련 주 하락에 베팅해 수십억 달러를 번 헤지펀드 매니저 존 폴슨도 자신의 별장 가격을 내렸다. 지난 4월에는 1950만 달러였던 사우샘프턴 고급 주택가의 방 7개짜리 별장을 1390만 달러란 ‘헐값’에 내놓은 것이다.

고급 부동산이 밀집한 뉴욕은 폭풍전야다. 아직까지는 마이애미, 남부 캘리포니아, 라스베이거스의 타격이 더 크지만 “향후 몇 달간 맨해튼과 주변 교외 지역의 부동산 경기가 훨씬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신용평가기관 ‘무디스Economy. com’의 부동산 경제 디렉터 실리아 첸이 말했다.

뉴욕은 월스트리트를 비롯한 많은 금융계 종사자들의 보금자리다. Economy. com은 2010년 2분기께면 이들 중 7만여 명이 감원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자리를 보전하더라도 보너스가 50% 이상 삭감될 전망이다. 이런 여파로 맨해튼 지역의 고급 주택 가격은 향후 12~15개월간 20~25%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부동산 컨설팅 기업 매케이브 리서치&컨설팅의 잭 매케이브 CEO가 말했다.

그렇다면 고급 부동산에 관심 있는 잠재 구매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사야 할까? 아니면 내년에 값이 더 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조금만 기다리면 알짜 매물을 훨씬 더 싼값에 매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매케이브는 귀띔했다. 하지만 위험 부담은 있다. 반면 “부동산 거래는 주식과 다르다”고 뉴욕 부동산업체 코코랜의 리튼 캔들러 대표는 말했다. 코코랜은 애스터 저택의 매매를 맡고 있다. 그는 “시장이 호전된 뒤에는 원하는 매물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부호들도 뒷수습하기 바쁜 나날

그러나 세계 경제가 아직 안갯속을 헤매고 다우지수가 지난해 고점 대비 47% 하락한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리 갑부들이라도 쉽게 지갑을 열지 않을 듯하다. 고급 부동산 시장의 정체 요인은 일반 부동산과는 다르다.

우선 거래가 주로 현찰로 이뤄지기 때문에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와 직접 연관은 적다. 그보다 증시 폭락과 경기 침체, 금융업계의 대량 감원 사태로 잠재 고객층의 자금 유동성과 자신감이 크게 줄어든 게 큰 원인이다.

또 주요 고객인 해외 갑부들의 발길이 줄어든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남미, 유럽, 러시아의 부호들이 달러 약세 바람을 타고 미국 부동산에 눈독을 들였다.

“해외 고객들은 최고급 부동산 시장의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다”고 댈러스의 리서치기업 럭셔리홈마케팅연구소의 창립자 로리 무어무어가 말했다. 그는 “미국 내 수요가 위축됐을 때에도 해외 바이어들은 꾸준히 몰려들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7월 무려 9500만 달러에 도널드 트럼프의 팜비치 저택을 매입해 미국 부동산 사상 최대 규모의 거래를 한 사람도 러시아의 비료 재벌 드미트리 리볼로브예프였다.

하지만 달러 강세와 세계를 뒤덮은 경제 위기 때문에 미국 부동산 시장의 장벽이 높아졌다. “해외 부호들도 자국 내 증시 폭락과 부동산 거품 붕괴를 수습하기에 바쁘다”고 잭 매케이브는 말했다. 매물로 내놓은 집값이 떨어지면서 매수자들이 목표했던 ‘갈아타기’를 할 수 없게 된 것도 고급 부동산 시장 침체에 한몫했다.

“한 부부 고객은 원래 600만 달러 이상의 매물을 요구했지만 이제는 말을 바꿔 400만 달러 수준을 원한다”고 덴버의 프레스티지부동산그룹의 재키 가르시아 중개사가 말했다. 그는 “플로리다에 있는 그들의 집을 팔려고 내놨지만 보러 오는 사람도 없다”고 덧붙였다. 결국 공급 재고량이 최근 유례가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베벌리힐스의 부동산 중개인 개리 골드는 “일례로 3년 전 LA는 500만 달러 이상의 부동산의 경우 항시 3개월 분량의 재고 물량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1분기에는 그게 8개월로 늘어났고 지금은 1년치 재고량이 대기 중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자연히 신규 건설도 줄었다. “주문 물량이 50% 감소했다”고 코네티컷주의 고급 주택 건설업체 SWS빌더스의 간부 진 살바토레가 말했다.

대신 주택 개조 공사에 주력하는데 공사 성격이 종전과 다르다. 살바토레는 “예전에는 와인창고, 서재, 수영장들을 만드는 공사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에너지 효율을 높여 몇 년 후의 매도가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고 밝혔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2~3년 전만 해도 매도자 중심이었던 부동산 시장이 매수자 중심으로 철저히 바뀌었다는 점이다.

부동산중개인들은 매수자들에게 집 주인의 매도 희망 가격에서 최대 30%까지 가격을 낮춰 제시하라고 부추긴다. 일부 중개인은 선물까지 한 아름 안긴다. “6500만 달러와 3800만 달러짜리 매물을 구입하는 고객에게 17만5000달러 상당의 벤틀리 차량을 증정할 계획”이라고 샌프란시스코의 중개업자 올리비아 추 데커가 말했다.

저택의 주인들은 애가 탄다. Ziprealty. com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벨에어 홈비 힐스의 고급 주택 매물의 45%가 가격을 내렸다(지난 5월에는 36%였다). 라스베이거스와 뉴욕 웨스트체스터 카운티도 30%에 가까운 고가 매물들이 집값을 하향 조정했다. 이들의 대부분은 전통적인 부촌 중심지를 살짝 비켜선 주변 지역이다.

“베벌리힐스나 선센 스트립의 환상적인 경관을 자랑하는 초호화 저택의 경우 별다른 가격 변화가 없다”고 게리 골드는 말했다. 그는 “하지만 니컬러스 캐년 같은 주변 지역의 경우 예전 같으면 1000만 달러는 나갔을 매물이 600만 달러에 거래되고 있다”고 전했다. 앞으로도 몇 달간 이런 하락세는 이어질 듯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경제가 호전되면 그동안 억눌려 있던 고급 주택 수요가 다시 급증할 것이다. 단지 지금은 시간이 좀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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