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 무너진다” 미리 경고한 ‘닥터 둠’
“미국 경제 무너진다” 미리 경고한 ‘닥터 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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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나선형 하강곡선을 그리고 해고자가 늘어난다. 취업을 목전에 둔 MBA 2년 차들에게도 고난의 시절이다. 12월 초 뉴욕대 2층 강의실에 모여 누리엘 루비니 교수의 글로벌 경제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겐 특히 더 고역일지도 모른다. 루비니는 그날의 경제뉴스를 보여주는 영사기 스크린을 클릭하는 것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최근 실업자 추정치를 가리키면서 “끔찍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자료를 보여주며 “이건 최악”이라고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검정 양복 차림에 검은 머리가 헝클어진 루비니는 그 후 90분 동안 강의실 앞으로 나가 돋보기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자신이 구상한 글로벌 금융체제 재건을 위한 15항의 계획을 토론했다.
MBA 학생들은 열심히 경청했고 간혹 그의 주장에 이견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의 입에서는 학생들을 위로하는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놀랄 일도 아니다. 루비니의 별명이 ‘닥터 둠(파멸)’인 데엔 다 이유 가 있다. 미국인들이 콘도를 사고팔고 빚잔치를 벌이느라 여념이 없던 시절에 미국 경제의 붕괴에 대한 예언을 내놓기 시작했던 루비니는 금융위기의 현인(賢人)이 됐다.
일찍이 2006년 중반부터 그는 자신의 블로그와 연설을 통해 꺼져가는 주택거품이 전례 없이 심각한 경기침체를 부채질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대출채무불이행이 금융기관들의 도산을 불러오고 유가급등에 집값 폭락이 겹치면서 빚더미에 오른 소비자들의 소비 감소를 불러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시절 대다수 경제학자는 ‘연착륙’을 주장했고, 주택가격 하락을 예언한 전문가들마저도 그것이 금융시스템에 미칠 엄청난 영향은 미처 내다보지 못했다. 오늘날 루비니는 그들의 낙관론을 비웃는다. “내 의견은 너무나 명백한 것이었는데 어떻게 다른 주장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루비니는 터키에 사는 이란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은 대부분 이탈리아에서 보냈다. 1983년 미국으로 유학 와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눌러앉았다. 1990년대엔 예일대와 뉴욕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정책에도 잠깐씩 손을 댔다. 여름이 오면 국제통화기금(IMF)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세계은행(IBRD) 등에서 일했다.
클린턴 시절엔 백악관과 재무부에서 2년 동안 로런스 서머스, 티머시 가이스너와 함께 일하기도 했다. 그 시절 멕시코와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기타 개도국 경제의 금융붕괴를 면밀히 연구하고 결국 그 분야에서 권위 있는 책을 공저로 남겼다. 1990년대 후반부터 올리기 시작한 블로그의 글은 경제 전문가들이 꼭 읽어야 할 글로 자리 잡았다.
복잡한 수리모델을 이용해 예측하는 경제학자들과 달리 루비니는 기상학자에 가깝다. 자료를 뒤지고 패턴을 읽고 과거 사태와의 유사점을 찾는다. 루비니는 2004년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누적되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에 경각심을 품었다. 미국 경제가 덩치는 커도 붕괴 직전의 신흥시장을 닮아가기 시작했다고 그는 적었다.
2006년엔 지나치게 부풀려진 주택시장이 미국 경기침체의 촉매가 된다는 쪽으로 그의 비관론이 옮겨갔다. 그 시기에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한 회의에 참석했다가 어느 날 하루 시간을 내서 사막으로 차를 몰고 달리면서 텅 빈 신축 주택들이 끝없이 이어진 모습을 보았다고 그는 돌이켰다. “유령도시였다.
이것이 곧 터질 주택거품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당시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그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IMF에서 벌어진 2006년의 한 토론에서 경제주기연구소(ECRI)의 아니르반 바네르지는 루비니가 “자신의 비관적 견해에 맞는 과거 사례만 골라 유추하는 주관적 예측”을 한다고 비웃었다.
루비니가 내놓은 시나리오가 대부분 옳았다는 것이 밝혀진 지금도 다른 관찰자들은 맞지 않은 점들을 지목한다. “심각한 금융붕괴의 가능성을 사람들에게 경고한 공로는 인정해 마땅하다”고 브루킹스 연구소의 연구원 마틴 베일리가 말했다. “그러나 위기의 전개 과정이 정확히 그가 말한 대로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루비니는 현재의 어려운 경제사정이 그리 유쾌하진 않다고 말했다. 그래도 자신이 틀렸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굳이 돌아다니면서 자랑하지 않더라도 솔직한 견해만 내놓으면 내가 옳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런 점에선 기분이 좋다”고 그가 말했다. 그런 예지력에도 불구하고 그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피해를 보았다.
시장이 침체하는 동안에 주가지수 연동형 펀드에 넣어둔 돈을 한 푼도 빼내지 못해 그의 금융자산 가치가 폭락한 것이다. 그는 조만간 회복되리란 기대도 하지 않는다. 경제상황은 혹독하게 4~5%가량 위축되면서 이번 침체는 2009년 말까지 지속되고, 실업률은 2010년 약 9%로 정점을 찍게 되리라고 그는 생각한다.
주가는 더 떨어져 다우존스 지수가 7000 언저리에서 바닥을 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오바마 정부가 대규모 부양책을 언급해 기운을 북돋게 한다며 서머스와 가이스너에 대해서도 공격적인 경기침체 투사가 될 것이라며 신뢰를 나타냈다. 항상 비관적이란 비판을 듣긴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라고 그가 반박했다.
“결국 이번 위기를 벗어나면 내가 가장 먼저 회복을 선언할 것이다. 그러면 내 별명이 닥터 붐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유감스럽게도 그 별명이 바뀌기 위해선 꽤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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