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도르 벗어 던진 이슬람 미술
라민 하에리자데의 포토 몽타주 ‘알라의 남자들(Men of Allah)’에서는 턱수염이 덥수룩한 인물들이 입을 삐쭉 내밀고 팔다리를 축 늘어뜨린 채로 서로에게 몸을 기댄 모습이 복잡한 페르시아 문양과 뒤섞여 있다. 성별이 모호한 반나체의 군상이 등장하는 이 감각적인 시리즈는 이란 사회에서 성의 역할에 대한 과감한 비판이다.
소위 ‘벽장 속의 여왕들(closet queens: 은밀히 동성애를 즐기는 남자들이라는 뜻)’을 묘사한 작품이다. 런던에서는 그들의 흐느적거리는 털투성이 팔다리가 지나치게 외설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시민적 자유가 거의 없고 동성애를 강하게 배척하는 이란 사회에서 이들의 모습을 화려한 이미지로 표현한 것은 기존 질서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다.
런던의 사치 갤러리(런던 현대미술관의 이름)에서 열리는 ‘베일 벗은 중동의 새로운 미술(Unveiled: New Art From the Middle East) 전’의 전시작 중엔 하에리자데의 작품과 견줄 만한 도발적인 작품이 즐비하다. 레바논과 시리아, 이라크, 이란, 그리고 팔레스타인 출신의 신예 미술가 21명의 작품이 선보인 이 전시회는 테헤란 등 이슬람 국가의 수도뿐 아니라 서방에서 활동 중인 중동 출신 젊은 작가들의 숨겨진 예술 세계를 선사한다.
다년간 이들의 작품을 수집해 온 사치 갤러리의 개발 담당자 레베카 윌슨은 “이들의 작품은 현재 전 세계에서 제작되는 작품 중 가장 흥미로운 부류로 꼽힌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 지역의 현대미술 시장은 아직 “극히 초기 단계”에 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현대미술의 상업적 측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두바이 같은 문화의 중심지들이 전시회를 유치하기 시작하면서 시장의 기반이 확대되고 있다.
이 전시회는 ‘현대 미술의 가장 과감한 선동자’라는 찰스 사치(사치 갤러리의 설립자이자 대표)의 평판을 새삼 확인시켰다. 그의 이전 컬렉션들은 트레이시 에민 등 전위적인 작가들의 자기관찰적이고 자유분방한 작품을 선보였던 반면 이번 전시회는 정치적인 색채를 짙게 풍긴다.
이슬람 문화와 직업, 전쟁, 여성 등의 주제를 신선하고 과감하게 그린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프랑스계 알제리인 카데르 아티아의 설치미술 ‘유령(Ghost)’에서는 은박지를 구겨 만든 여성 참배자들의 형상이 줄지어 놓여 있다. 건드리면 부서질 듯한 이 인물상들은 가까이서 보면 속이 텅 비어 있다.
이슬람 사원에서 여성의 지위를 비판한 것이다. 이들 미술가 중 몇몇은 전시회가 시작되자마자 곧바로 화젯거리가 됐다. 그럴 만도 하다. 할림 알-카림의 작품은 작가가 사담 후세인 정권 당시 이라크의 사막에서 3년 동안 숨어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그는 돌멩이 더미로 덮어놓은 땅속의 구멍에서 생활했다.
베두인족 여성 한 명이 그에게 음식과 물을 가져다주었다. 일그러진 여성의 얼굴을 그린 세 쪽짜리 흑백 그림들은 그 시절의 고통스런 기억을 바탕으로 했다. 또 그림 속 인물들의 모습을 실크 등의 재료를 이용해 희미하게 보이도록 한 것은 작가가 후세인 시절 정치범으로 몰려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에 갇힌 친지들을 방문했을 때 유리벽을 통해 본 그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알-카림은 1991년 이라크를 떠났지만 고국에 돌아가겠다는 희망을 포기한 적이 없다. “언젠가는 바그다드로 돌아가 작품활동을 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란에도 의외로 재능 있는 미술가가 많다. 남녀 미술가들이 작품을 통해 이란 사회의 여성에 대한 처우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샤디 가디리안은 차도르를 착용한 인물들의 얼굴을 고무장갑, 거름망, 고기를 자르는 손도끼 등으로 가린 사진 작품들을 제작했다. 여성을 가재도구나 다름없이 여기는 이란 사회의 분위기에 대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섬뜩한 풍자다(이란 당국이 해외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 이렇게 인물의 얼굴이 가려진 작품의 출품은 허용했지만, 여성의 머리카락을 너무 많이 드러낸 작품들의 출품을 허용하지 않은 사실이 그런 분위기를 잘 반영한다).
현재 암스테르담에 거주하는 이란인 미술가 탈라 마다니(28)는 진분홍색 물감을 사용해 테헤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우화적으로 표현했다. 선보다 색채를 강조해 빠른 필치로 그린 이 그림들에서는 깊은 통찰력이 엿보인다. 이발소 풍경과 공중 목욕탕의 남자들, 발기불능의 자살폭탄 테러범들의 모습을 그린 그녀의 작품들은 이란 사회를 풍자적으로 비판한다.
시린 파킴은 멜론처럼 동그란 유방을 지니고 몸에 맞지 않는 싸구려 속옷을 걸친 조각 작품들을 제작했다. 전시회 카탈로그의 설명에 따르면 약 10만 명에 달하는 테헤란의 매춘부를 묘사한 작품들이다. 이 미술가들은 중동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게 아니라 단지 물음을 던지고, 현상을 탐구하고, 비판할 뿐이다.
마르완 레크마오위가 고무로 만든 베이루트의 청사진 지도는 전쟁으로 얼룩진 이 도시를 신선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지도 위의 거리와 지역들은 마치 전기 모형자동차 경주로처럼 구획이 정확히 그어져 있다. 레크마오위는 자신이 전에 살다가 2006년 제2차 레바논 전쟁 당시 버리고 떠난 아파트 단지의 모형도 제작했다.
팔레스타인 미술가 와파 후라니는 “우린 정치인이 아니라 예술가다. 우리에게 해결책을 기대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마분지를 사용해 2067년 요르단강 서안의 모습을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이 둘러쳐진 반(反)이상향으로 묘사했다. “예술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예술은 나의 혁명이다”고 그가 말했다.
전시작 중에는 폭력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지만 매우 아름다운 작품도 끼어 있다. 이라크 화가 아메드 알소우다니의 추상화 ‘우리는 무관심 속에서 죽어간다(We Die Out of Hand: 2007)’는 미군의 포로 학대 파문으로 잘 알려진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의 살벌한 풍경을 미학적 구도로 묘사했다. 두건을 쓴 사람들과 그들을 뒤쫓는 사람들이 가시철사로 아무렇게나 뒤엉켜 있다.
이 그림은 스페인 내전의 참상을 고발한 피카소의 유명한 회화 작품 ‘게르니카’를 연상케 한다.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이 2003년 유엔에서 이라크전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연설을 할 당시 유엔 건물 안에 걸려 있던 ‘게르니카’의 복제품을 장막으로 가려 놓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알소우다니의 작품도 피카소의 ‘게르니카’처럼 전쟁의 산물이며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희생을 상기시켜는 작품이다.
하지만 많은 반(反)파시즘 현대주의자나 이 전시회에 출품한 대다수 미술가와 마찬가지로 알소우다니도 고국을 등져야 했다. 사치 등 수집가들이 중동의 신세대 현대 미술가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고는 있지만 이란 같은 국가들이 자국의 예술가들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날이 올지는 아직 미지수다. 마찬가지로 서방 국가들이 자국 사회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중동의 독재자들이 거부한 예술가들을 받아들일지도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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