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숨어 있는 ‘기름 승냥이’ 포획하라

숨어 있는 ‘기름 승냥이’ 포획하라

송유관 기름 절도사건(도유)이 급증하고 있다. 기름 ‘승냥이’가 기승을 부리는 것이다. 문제는 도유로 인해 기름만 손실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토양·수질 등 환경오염도 우려된다. 송유관을 관리·운영하는 대한송유관공사가 도유 예방활동에 전력을 기울이는 까닭이다.

대한송유관공사 중앙 통제실.

"기름 도둑을 잡아라!” 대한송유관공사에 비상이 걸렸다. 송유관에 구멍을 뚫어 기름을 훔치는 이른바 ‘도유(盜油) 사건’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5년 1건에 불과했던 송유관 도유 사건은 지난해 31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검거된 도유범 수도 2006년 18명에서 2008년 41명으로 127% 증가했다.

수법 역시 지능화하고 있다. 도강·장거리 호스 설치는 낡은 방법. 지하터널을 뚫어 기름을 훔치는 신형 수법까지 등장한 지 오래다. 문제는 송유관 도유의 위험성이 크다는 점이다. 안전 지식도 없이 송유관을 뚫었다간 대형 화재로 이어질 수 있다. 송유관 속에 가득한 유(油)증기는 정전기 또는 불꽃에 의해 쉽게 점화된다.



도유로 한몫 챙기려는 한탕주의 만연


실제로 2009년 1월 도유범 2명이 송유관을 뚫다가 화재가 발생해 한 명이 숨지고 다른 한 명이 크게 다치는 사고가 있었다. 나이지리아에선 2006년 도유에서 기인한 화재 때문에 500명이 사망하는 대참사도 발생했다. 도유로 인해 토양·수질 등 환경이 오염될 가능성도 작지 않다.

송유관 구멍에서 새어 나온 기름이 지하수로 유입됐을 때를 가정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대한송유관공사 최광식 사장은 “도유는 1차 피해뿐 아니라 환경오염 등 2차 피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며 “2006년 시설물 복구와 토양 정화에 72억원이 소요됐을 정도”라고 한탄했다.

이런 이유로 대한송유관공사는 최근 도유 예방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최 사장은 도유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할 목적으로 2007년부터 전국 송유관로 1208㎞ 중 감시가 필요한 803㎞를 도보 순찰하고 있다. 지난 2년간 656㎞를 전 직원과 함께 걸었다. 도유 의심지를 샅샅이 수색해 찾아내겠다는 게 최 사장의 포부다.

본사와 6개 지사에 ‘PLP(Pipe Line Patrol)운영팀’을 신설하고, 관로순찰을 전담하는 별도 회사를 설립하는 등 순찰 조직도 강화했다. PLP운영팀은 2인1조로 전 송유관로를 1일 2회 순찰한다. 도유 사건이 주로 발생하는 오후 8시~새벽 4시엔 3명의 순찰인력이 투입된다. 순찰인력 40명을 중심으로 2007년 설립된 관로순찰회사(2개)는 송유관로 취약구간 200여 개소를 주야간 도보 답사한다. 송유관로의 이상 여부를 정밀 확인하고, 도유 의심시설을 조기 발굴하는 게 이 회사의 설립 목적이다.



점조직 기름도둑 더욱 지능화 추세

이뿐 아니라 과학적 도유 감시시스템도 대폭 정비했다. 지난해 말 LDS(Leak Detection System)를 독자 개발해 설치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LDS는 도유 여부를 송유관의 압력치(기름이 유출되면 송유관 압력 하락)를 이용해 잡아내는 장비다. 하지만 기존 LDS(미국 SSI사)는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시간당 100KL에 이르는 대량 누유는 감지 가능했지만 소량이 샜을 땐 측정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대한송유관공사는 1년여의 연구개발 끝에 시간당 8KL의 누유도 잡아낼 수 있는 한국형 LDS를 개발했다. 이 장비는 현재 특허출원 중이다. 유광동 운영안전환경본부 전무는 “한국형 LDS를 개발함에 따라 우리는 세계 최고의 탐색장비를 갖췄다”며 “이 장비가 독자 기술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유지보수 비용도 대폭 줄일 수 있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조직·시스템 정비만으로 도유를 뿌리 뽑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고 도유 탐색 시스템이라는 한국형 LDS도 시간당 8KL 미만의 누유는 측정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전 지역에 순찰인력을 깔 수도 없다. 전체 송유관로(1208㎞)에 ㎞당 1명만 배치해도 1208명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한송유관공사의 순찰활동이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순찰인력이 도유가 의심되는 시설물을 발견해도 수색작업을 할 수 없다. 사법권이 없기 때문에 외곽 탐색만 가능하다. 도유시설이 불을 보듯 뻔해도 주변만 맴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 사장은 “도유범은 대포폰·대포차량·차명계좌를 사용하고, 역할을 분담해 점조직으로 활동할 정도로 지능화하고 있다”며 “하지만 사법권이 없는 우리 공사는 의심되는 시설물·건축물을 확인 수색할 수 없어 도유 예방활동에 애로가 많다”고 말했다.

그가 대한송유공사와 연계활동이 가능한 별도의 경찰 도유 관련 조직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최 사장은 또 “도유는 국가적 경제 손실뿐 아니라 토양·수질 오염을 야기할 수 있는 커다란 범죄행위”라며 “이를 완전히 근절하기 위해선 범사회적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름 승냥이를 포획하는데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국가적 관심과 지원이라는 얘기다.

“현장을 봐야 전략이 나온다”

최광식 대한송유관공사 사장은 ‘현장경영’을 중시한다. “현장을 봐야 전략이 나온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2007년 취임 후 송유관로를 직접 도보 순찰하는 이유다.

최 사장은 “도유는 국가 경제뿐 아니라 수질·토양 등 환경에도 악영향을 끼치지만 대한송유관공사 혼자 힘으로 근절하기 어렵다”며 “국가적 지원체계 마련과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송유관 도유 사건이 늘고 있습니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유가 급등, 민생 악화, 실업률 증가 등 이유는 많습니다. 기름이라도 훔쳐 돈을 벌자는 생계형 한탕주의가 만연하는 것이죠.”



>> 도유는 환경오염 등 2차 피해도 유발한다고 하던데요.
“송유관 도유의 문제는 기름 손실과 안전사고입니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토양과 수질이 오염될 우려가 크다는 점이죠. 도유로 인해 토양·하천·지하수 등이 오염되면 국민 실생활에 지장을 줄 뿐 아니라 이를 복구하는 데 상당한 금액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 최근 도유를 근절하기 위해 현장 순찰활동을 강화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07년부터 전국 송유관로 가운데 위험한 구간인 803㎞를 직접 도보 순찰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600㎞를 넘게 순찰했습니다. 이는 두 가지 효과가 있습니다. 도보 순찰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고, 도유범들에게 ‘우리가 수색하고 있다’는 무언의 경고를 할 수 있습니다.”



>> 송유관은 고속도로·국도 등 도유범이 접근하기 쉬운 곳에 설치돼 있습니다. 순찰도 중요하지만 과학적 감시시스템을 갖춰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본사 중앙통제실에 설치된 SCADA(Supervisory Control And Data Acquisition) 시스템은 만약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자동으로 송유관의 작동을 정지시킵니다. 기름이 샜을 때 떨어지는 송유관의 압력치를 측정해 도유 여부를 체크하는 LDS(Leak Detection System)도 구축돼 있죠. 지난해 말엔 한국형 LDS도 개발했습니다. 대량 누유만 측정할 수 있는 기존 LDS의 단점을 보완한 우리만의 LDS입니다. 이에 따라 우리 공사는 최고의 탐색능력을 갖췄습니다.”



>> 또 하나의 문제는 도유범을 어렵게 검거해도 또다시 도유범으로 전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입니다. 약한 처벌 규정 때문으로 보이는데요.
맞습니다. 최근 도유범에 대한 처벌조항을 1년 이상 10년 이하에서 3년 이상 10년 이하, 1억5000만원으로 강화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미흡한 게 사실이죠. 검거된 도유범의 처벌 형량이 경미해 대부분의 도유범이 불구속으로 처리되거나, 구속된 도유범도 단기 복역 후 출소합니다. 도유범이 또다시 도유범으로 전락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죠. 처벌규정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 마지막으로 당부할 게 있다면?
“도유는 국가경제뿐 아니라 환경오염도 유발합니다. 문제는 대한송유관공사 혼자 힘으로 도유를 막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지역 주민의 협조는 물론 국가적 지원도 절실합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 여야, 내달 10일 김건희 여사 특검법 재의결하기로

2강남 월세가 94만원인데...서울 최고가는 '이곳' 입이 쩍

3지난해 이자도 못내는 '한계기업' 상장사 467곳, 이유 살펴보니

4미국투자이민 도심 공공 프로젝트가 가장 안전...국민이주(주), 27~28일 설명회

5토요타코리아, 역동적 스타일로 재탄생 ‘2025년형 캠리’ 출시

6“다들 해외여행 간다더니만”…카드 해외사용액 역대 최대 기록

7"네트워크도 AI로 전환한다"...KT, AI 오퍼레이터 도입

8컴투스홀딩스 신작 ‘가이더스 제로’, 스팀 얼리 액세스 돌입

9'식물성 대체식품' 이노하스, 배우 정일우와 'Merry Giftmas' 바자회 연다

실시간 뉴스

1 여야, 내달 10일 김건희 여사 특검법 재의결하기로

2강남 월세가 94만원인데...서울 최고가는 '이곳' 입이 쩍

3지난해 이자도 못내는 '한계기업' 상장사 467곳, 이유 살펴보니

4미국투자이민 도심 공공 프로젝트가 가장 안전...국민이주(주), 27~28일 설명회

5토요타코리아, 역동적 스타일로 재탄생 ‘2025년형 캠리’ 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