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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환호케 한 내부로부터의 개혁

시민 환호케 한 내부로부터의 개혁


오사카 시민들이 즐겨 찾는 도심의 도톰보리강.

여러분은 파산 회사의 종업원입니다.”2008년 2월. 890만 명이 사는 일본 제2의 지자체인 오사카(大阪)부(府)의 새 지사가 된 하시모토 도루(橋下徹·39)가 취임사 모두에 한 발언이다.

행사장에 모인 직원들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탤런트 변호사’가 지사로 온다더니 무슨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을까 방심했다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오사카부의 빚은 약 5조 엔. 도쿄(약 17조 엔), 홋카이도(5조2000억 엔)에 이어 세 번째다.

원리금 상환에만 하루 8억 엔(약 106억원)씩 지출해야 한다. 그러니 이대로 가다간 ‘재정재건단체’로 지정될 판이었다. ‘재정재건’이란 민간에서 흔히 말하는 ‘파산’을 뜻한다.

그래도 역대 지사들은 “열심히 일해서 위기를 극복하자”는 식이었다. 빚을 갚으려고 또 빚을 냈다. 그리고 중앙정부와 어떻게든 보조를 맞추며 연명하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하시모토(취임 시는 38세)는 달랐다.

그는 취임사에서 이렇게 외쳤다. “공무원들이여, 나와 함께 죽겠다는 각오로 일하고 마지막에 죽어 달라.” 대대적인 행정수술이 즉각 시작됐다. 지사를 포함한 모든 오사카부 공무원과 지방의회 의원들의 경조사비와 접대비를 없앴다.

2008년도 예산부터 일반 직원의 기본급을 평균 7.2% 삭감했다. 직원들의 퇴직금도 5% 잘랐다. 퇴직금까지 삭감하기는 전국 지자체 중 최초였다. 이 같은 재정개혁 프로그램을 일본의 근대화를 일궈 낸 ‘메이지 유신’에 빗대 ‘오사카 유신’이라 이름 붙였다. 이뿐만 아니다.

오사카부의 모든 사업을 전면 재고하고 부 소유 시설들을 민영화하기로 했다. 하루 30분 보장되던 공무원들의 휴식시간도 없앴다. 1년 동안에만 인건비 380억 엔, 그리고 사업비로 440억 엔을 삭감하겠다는 구상이었다. 또 오사카부 보유시설을 매각해 세수 435억 엔을 확보해 결국 1100억 엔가량 재정수지를 개선하겠다는 목표였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이 같은 극단적 조치는 반발을 초래했다. 당장 오사카부 산하의 43개 기초자치단체가 발끈했다. 자신들의 지역 사업이 없어지거나 줄어들고 교부금 삭감에다 월급까지 깎이니 가만 있을 리 만무했다.

취임 후 얼마 안 돼 오사카부의 기초자치단체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격한 지사 비난이 이어지자 하시모토 지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말, 정말로 오사카를 바꾸고 싶다”며 눈물로 호소했다. 이 장면은 전국의 TV를 통해 방영됐다. 그리고 그 눈물로 하시모토 지사의 ‘진정성’을 부각하는 데 성공했다.

직원들의 임금을 낮출 때는 철야를 하며 직접 직원 노조와 협상을 벌였다. 젊은 공무원들과의 간담회 때 연장근무수당을 줄이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한 여직원이 일어나 “당신은 지금 우리가 얼마나 야근에 시달리는지 알기나 하느냐. 말은 그럴싸하지만 당신은 오사카 주민과 우리 공무원들을 이간질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다음날 하시모토 지사에게는 격려의 e-메일이, 여직원에게는 1000통이 넘는 항의 e-메일이 쏟아졌다. 지난 1년 동안 오사카부의 홈페이지에 오는 e-메일을 보면 2만229통 중 94%가 “개혁을 향한 지사의 열정에 감격했다”는 반응이었다. 지금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은 무려 80%가 넘는다.

이 같은 지지율은 일본 지방자치 역사에 거의 유례가 없다. 또 하나, 하시모토는 자신이 추진하는 재정개혁을 아주 간략하게, 일반 시민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데도 성공했다. 이런 식이다.

“오사카부의 재정은 여러분이 수퍼마켓에 가서 물건을 사는 일과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7명의 아이와 같이 찌개 거리를 사러 갔다고 칩시다. 계산대에서 정산하니 총 4000엔(약 5만6000원)이 나왔는데, 지갑을 보니 3000엔밖에 없습니다. 쇼핑카트를 보니 아이들이 집어넣은 과자 등 (찌개에는) 불필요한 품목이 가득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무엇을 빼자는 말이 아니라 일단 카트 속에 있는 전부를 비우고 ‘0’으로 만들자. 그리고 정말 찌개에 필요한 품목만 우선순위를 두고 고르다가 3000엔이 된 시점에서 그만두자. 이게 바로 예산편성의 기초입니다.”

변호사 출신인 그의 재력에 비하면 4000엔, 3000엔 같은 숫자를 예산에 연관시키기는 적합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실제 “맥도널드에 아이들을 다 데려가면 4000엔이 넘기 때문에 외식은 거의 안 한다”고 말할 정도로 수치에 밝다. 아이가 7명이나 되기 때문에 특정 1명을 편들면 결국 부메랑 효과로 돌아와, 당초 생각했던 금액의 몇 배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언제나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려 한다고 말한다.

대중적 인기가 뒷받침된다고는 하지만 그의 정책이 호응을 얻는 이유는 ‘내부로부터의 개혁’을 선행했기 때문이다. 기초자치단체에 고통분담을 요구하기 전에 그는 먼저 자신이 근무하는 오사카 청사를 다른 곳으로 옮기겠다고 했다. 노후화로 원래 현 청사 건물을 내진 보강해 다시 지을 계획이었으나 오사카시의 제3섹터 소유의 ‘오사카 월드트레이드센터 빌딩’으로 이전하겠다고 했다.

부 의회에서도 거세게 반발했지만 그는 “청사가 땅값 비싼 도심에 있기보다 후미진 바닷가의 미개발지로 옮겨야 직원들의 의식 변화를 촉진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내부 개혁을 다진 하시모토 지사의 공격 대상은 ‘가스미가세키(일본의 관청 밀집지)’로 향한다. 이른바 ‘타도 가스미가세키’다.

어찌 보면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아군(오사카)의 결집력을 높이는 노림수일지도 모른다. 먼저 그는 지방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부담하는 국가 직할사업의 부담금 지불을 거부하고 나섰다. 3월 26일 지방분권의 바람직한 방향을 논의하는 간담회에서는 “중앙정부는 바가지 요금을 뒤집어씌우는 술집과 같다”고 정부에 직격탄을 퍼부었다.

‘사기집단’ ‘바보’와 같은 용어도 마구 튀어나왔다. 국가가 직접 관할하는 도로, 하천정비 등 직할사업에 지방의 지자체가 돈을 일정 비율(3분의 1)부담하게 돼 있다면 “도둑놈이 하는 짓”이라고 맹비난했다. 법적으로는 지불이 의무화돼 있지만 “못 내겠다”는 말이다.

사업내용의 상세한 설명, 필요성을 설득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지방에 ‘청구서’를 돌리는 이제까지의 악순환을 끊겠다는 각오다. 국가사업은 어디까지나 국가재원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중앙부처의 낙하산 단체에 지방 지자체가 인건비를 일부 부담하는 현 제도에도 반기를 들었다.

59개 단체에 주던 당초 편성액에서 7900만 엔을 삭감했다. 지자체 수장의 예산편성권을 방패로 중앙정부에서 멀어지는 분권 추진이다. 현재 1조1000억 엔의 부채를 떠안아 계속 ‘블랙홀’처럼 적자가 늘어나는 ‘간사이(關西)국제공항회사’를 두고는 “침몰하는 회사에 세금을 퍼붓지 못하겠다”며 올해 편성예정이던 7억 엔의 예산을 포기했다.

중앙정부가 간사이 공항의 적자를 어떻게 해소하고 어떤 방향으로 끌고 나갈지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지 않는 한 예산편성을 못하겠다는 설명이다. 그의 중점 관심사 중 하나는 ‘교육’이다. 오사카 교육위원회가 관할 내 학생들의 전국학력테스트 결과를 공개하지 않자 “‘똥’ 같은 교육위원회”라고 욕설을 퍼붓는가 하면 “(관할 내)사립학교 보조금 지급을 강제하는 문부과학성은 최악이다.

문부과학성의 관료들을 즉각 전원 교체해야 한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유달리 공립학교에 애착이 강해 “(학부모가 자녀를 사립학교에 입학시킬 때는) 공립학교에 없는 부가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며 (학부모 입장에선) 그만큼 돈이 더 들어야 당연하다”며 사학조성금을 삭감하기도 했다.

그는 변호사 시절에도 “변호사 중에도 에스컬레이터 식으로 (쉽게) 올라오는 사람과 공립에서 다져져 올라오는 사람은 전혀 다르다. 사립학교의 동질성 안에서 자라게 되면 이질적인 인간들과 접하기가 힘들어진다”는 지론을 펼치기도 했다. 하여간 이 같은 추진력 덕분에 오사카부는 변화의 징후들이 하나 둘씩 나타났다.

당장 11년 만에 올해는 오사카부의 일반회계가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했다. 인건비 삭감 등 과감한 행정개혁의 효과가 1년 만에 나타난 셈이다. 특히 세출은 지난해 대비 2.4% 줄어들었다. 그러자 곱지 않은 시선으로 지사를 대하던 공무원들의 자세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고통분담이 눈에 보이는 성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도 하시모토 지사의 활약에 기죽은 듯 국가 직할사업의 지자체 부담금 비율을 33%에서 10%가량으로 낮추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물론 하시모토 지사는 “10%도 안 된다. 0으로 해야 한다”고 목청을 돋운다. 하시모토 지사의 다음 미래 구상은 ‘도주(道州)제’ 쟁취다. 일본의 행정구획은 현재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 예컨대 홋카이道, 도쿄都, 오사카府, 지바縣 등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를 홋카이도는 그대로 두고 나머지 지자체를 보다 크게 묶어 몇 개의 대규모 주(州)로 만들려는 구상이 바로 도주제다. 늦어도 2018년까지는 도주제가 성립되도록 하겠다는 게 그의 꿈이다. 이에 따라 올해는 전국의 지방도시를 적극적으로 돌아다니며 도주제의 필요성을 호소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그가 오사카는 물론 교토(京都), 나라(奈良), 고베(神戶) 등 간사이 지역의 지자체를 하나로 결합한 ‘간사이주 대통령’을 염두에 두지 않았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39세의 젊은 지사 하시모토의 최종 목표는 ‘일본국 총리’가 아니겠느냐는 이야기도 주변에서 벌써 새어 나온다.

다만 그가 ‘지역구’에서 ‘전국구’로 영역을 넓히는 과정에선 공격적이고 앞뒤를 가리지 않는 그의 성격이 적어도 일본에서는 강점 아닌 약점으로 작용할지 모른다. 그걸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그의 미래가 달려 있다.

[필자는 중앙일보 도쿄특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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