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가들에게 화풀이하라
세계적인 금융붕괴의 여파로 연극과 영화의 세계에 새로운 악역이 출현했다. 악덕 금융업자들이다. 런던 소호 극장의 새 연극 ‘로링 트레이드(Roaring Trade)’는 얼마 전까지 한 달 내내 매진 행진을 기록했다. 공매(空賣)로 벼락부자가 된 4명의 채권 트레이더에 관한 이야기다(공매는 지난해 영국과 미국에서 시장 혼란을 야기한다는 이유로 일시 금지됐다).
그중 한 명인 도니는 이렇게 말한다. “얼마나 기분이 좋아.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팔다니 말이야.” 이 연극은 시장이 추락하기 전의 정점을 돌아보면서 무의미한 자존심 싸움에 휘말린 트레이더들의 일그러진 모습을 교훈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은 오만 때문에 단 한 건의 거래로 수백만 파운드를 잃을지 모르는 위험을 보지 못하다가 결국 몰락한다.
탐욕스럽고 부정한 금융업자가 정직한 서민의 돈으로 판돈이 어마어마한 포커 도박을 벌이는 모습은 특히나 요즘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에 창작 소재로서 그만이다. “금융업자라면 젊고 상스러우며 싸움꾼 같은 남자가 떠오른다”고 ‘로링 트레이드’의 작가 스티브 톰슨이 말했다.
“그런 점에서 악역으론 안성맞춤이다.” 그들을 도덕극의 핵심에 끌어들이면 관객은 요즘 같은 시련기에 절실히 필요한 오락만이 아니라 상상 속의 복수를 실현함으로써 통쾌함도 얻는다. 이런 연극계의 ‘금융업자 때리기’ 중심지는 런던이다. 런던이 유럽의 금융 수도이기 때문에 당연한 일인 듯하다.
지난겨울 런던의 전통적인 팬터마임(통속 희극적 뮤지컬)도 무대 위의 사악한 고리대금업자들에게 야유를 보내는 통쾌함을 제공했다. ‘딕 휘팅턴’에서 이름도 그럴듯한 킹 랫(King Rat)이 그랜 카나리아섬을 파산시킬 비열한 음모를 꾸민다. 영세 사업자들에게 저리의 대출을 해준 다음 돌연히 일제히 상환을 요구한 뒤 중앙은행을 사들인다는 내용이다.
이 연극의 연출자인 존 브래드필드는 관객이 금융사기꾼 ‘버나드 메이도프’ 같은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응보를 받는 모습을 재미있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런던시장 선거에서 ‘정직한 딕’에 의해 정치적 야망이 꺾인 뒤 결국 무일푼 신세로 전락한다. 브래드필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관객이 재미있는 이야기에 웃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관객은 그뿐이 아니라 킹 랫의 몰락에 야유를 보내는 데도 열을 올렸다. 야유의 휘파람 소리가 엄청나게 컸다.”올해 후반에는 금융위기를 소재로 한 뮤지컬 ‘신용경색(Crunch: The Musical)’이 런던의 웨스트 엔드에서 막을 올린다(‘아직 볼 만한 금전적 여유가 있을 때 보라’가 슬로건이다).
이 작품은 직장생활에 대한 풍자극으로 수년 전에 착상됐는데 얼마 전 작가들이 금융위기를 중심으로 재구성했다. 지금 여러 극장이 그 작품의 초연을 유치하려 아우성이다. “우리가 이 작품에서 꼭 필요로 했던 양념을 금융위기가 제공했다”고 작가 중 한 명인 돔 하들리가 말했다.
어쩌면 그는 영국에서 신용경색을 고마워하는 유일한 사람일지 모른다. 메가뱅크 은행을 배경으로 하는 이 작품은 그 은행의 법률고문의 생각을 따라간다. 그는 자신이 담당하는 대규모 증권화 거래의 위험을 걱정한다. 그러나 사악한 재무담당 이사가 그를 꼬드긴다. “이건 고전적인 자산금융 기법입니다.
우리는 마술로 무엇이든 돈으로 만들어 낼 수 있어요. 모자에서 토끼를 꺼내 두 번 판 다음 다시 모자 속으로 넣는 거죠.” 이 뮤지컬의 음울하면서도 재미있는 음악은 당연히 관객의 공감을 얻는다. TV 시청자도 비열한 금융업자들을 만난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리틀 도릿’을 기초로 한 BBC 드라마 시리즈는 비록 먼 과거를 무대로 하지만 섬뜩하리만큼 현실과 잘 맞아떨어진다.
이야기는 1800년대 런던의 마샬시 빚쟁이 감옥에서 펼쳐진다. 에이미 도릿과 아버지가 빚을 못 갚아 수감돼 있는 곳이다. 도릿 부녀는 날아든 횡재 덕분에 감옥에서 탈출하지만 탐욕스러운 은행가 미스터 머들의 사기극에 휘말린다. 그 은행가는 결국 사기가 들통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부실채권의 파급효과와 대형 금융거래 때문에 몰락하는 정직한 사람들에 관한 교훈적인 이야기다(이 드라마가 지난해 말 영국에서 방영됐을 때 시청률은 기대만큼 높지 않았다. 어쩌면 그 슬픈 종말이 일부 사람의 아픈 곳을 정확히 찔렀기 때문일지 모른다). 영화로는 폭스 스튜디오가 1987년 영화 ‘월스트리트’의 속편을 기획 중이다.
마이클 더글러스가 분한 고든 게코가 탐욕을 선(善)이라고 뻔뻔스럽게 선언한 영화다. 속편 제목은 ‘돈은 절대로 잠들지 않는다(Money Never Sleeps)’로 출옥한 게코의 행적을 뒤따라 간다. 그는 옥살이를 마치고 나와서도 반성은커녕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금융거래를 국제 규모로 확대한다.
세월이 흘러도 게코는 87년 당시와 다름 없이 경멸스럽다. 하지만 이제는 그가 주택담보 대출기관 프레디맥과 패니메이에 관해 이야기를 할 듯하다. 궁극적으로 지금의 위기를 부른 장본인을 등장시키는 극은 요즘 같은 현실에 딱 들어맞는 오락을 제공하는 동시에 우리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손쉬운 표적을 제공한다.
‘로링 트레이드’를 쓴 톰슨은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모두 꼴사나운 인간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좋아할 만한 인물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무대에 선 그들에게서 눈을 떼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한 푼도 맡기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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