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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작가의 ‘원초적 본능’

스릴러 작가의 ‘원초적 본능’


데이비드 발다치는 미국 의회 도서관의 희귀본·특별소장본 책임자를 암살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전에는 주로 MP5 기관단총, 단검, 권총, 독극물 주사, 주문 제작한 반자동 SR75 소총 등을 사용했다.

그러나 의회 도서관 안으로 총과 단검을 들여가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창의력이 필요했다. 발다치는 소설가다. 따라서 상상력을 얼마든지 동원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일을 했다 하면 제대로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발다치는 희귀본 책임자인 마크 디뮤네이션의 안내로 도서관 내부를 샅샅이 둘러봤다. 미국 초기의 의학 서적을 모아둔 서가를 지나 어린이 도서가 진열된 중2층으로 올라갔다.

발다치는 계단 맨 위에서 작은 대리석 흉상의 머리를 가볍게 치고는 좁은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정확히 무엇을 찾고 싶은지 자신도 몰랐다. 그러던 중 책이 빼곡히 꽂힌 높은 서가들 사이의 벽에 튀어나온 가스 노즐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뭐죠?” 발다치가 물었다. 바로 그 노즐이 발다치의 인기 정치 스릴러 중 하나인 ‘수집가(The Collectors)’ 38쪽에서 살인 도구로 사용된다. 암살자가 할론 1301[당시 의회도서관 내부의 소화제(消火劑)로 사용됐다]

가스통을 치명적인 이산화탄소로 바꿔치기한 뒤 희귀본 책임자로 나오는 극중 인물 조너선 디헤이븐은 이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한다(원래 구상에서는 그 살인이 그보다 좀 더 일찍 일어나지만 발다치는 등장인물의 모델이 된 디뮤네이션이 “인간적으로 마음에 들어” 몇 페이지를 더 할애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얼마 전 발다치는 그 이야기를 하며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희희낙락했다. 그는 도서관 내부 사정을 소상히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 한 큐레이터를 만나러 의회 도서관을 다시 찾았다. 늘 그렇듯 발다치는 이 도서관에서 소설 속에서 활용할 만한 또 다른 장치가 눈에 띌까 싶어 주의를 늦추지 않았다.

“어느 누가 의회 도서관을 첩보 공작 무대로 삼을 생각을 하겠나?” 발다치가 우쭐대듯 한쪽 다리를 흔들며 물었다. 그러나 사실 여러 작가가 똑같은 생각을 했다. ‘다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를 쓴 댄 브라운, ‘4의 규칙(The Rule of Four)’을 쓴 이언 콜드웰, ‘비밀의 계절(The Secret History)’을 쓴 도나 타트가 그랬다.

하지만 사회부적응자로 이뤄진 팀(강박증에 시달리는 천재 기술자, 약물중독에서 회복 중인 전 국방정보국 요원, 늘 노심초사하는 도서관 큐레이터, 정부가 고용한 건달 암살자)이 숱한 음모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를 지어내려면 그 정도의 허세는 있어야 한다. 발다치의 ‘캐멀 클럽’ 시리즈 2탄인 ‘수집가’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발다치로서는 호들갑을 떨 일이 아니다.

그가 쓴 소설 16권(스릴러가 아닌 작품이 두 권이다)이 전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의 최신 작품 ‘천벌(Divine Justice)’은 1위로 출발했다. 그 바로 6개월 전에 나온 ‘진실(The Whole Truth)’도 그랬다. 4월 말이면 서점에 도착할 다음 작품 ‘대통령의 가족(First Family)’도 베스트셀러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문학비평가들은 발다치의 소설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다. 서평이 나오는 경우도 드물지만 어쩌다가 나와도 모욕적인 혹평이 많다. 뉴욕타임스의 한 비평가는 발다치의 소설 ‘승자(The Winner)’를 읽고 이렇게 썼다. “어지러운 은유, 단어의 우스꽝스러운 오용이 가득하며, 영어 구사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쓴 습작처럼 읽힌다.”

대다수 일반인, 특히 뉴욕타임스 독자들도 발다치를 진지한 작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발다치? 공항 서점 진열대에 꽂힌 3류소설을 쓴 사람 아냐?’라는 식이다. 대중시장을 겨냥한 스럴러는 대개 패스트푸드 취급을 받는다. 맛은 있을지 모르지만 마치 기계로 찍어낸 듯하고 심장에 해롭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런 생각이 발다치의 부아를 돋운다. “만약 내가 10년이 걸려 책 한 권을 쓴다면 누구누구만큼 훌륭한 작가라는 말을 들을까? 글쎄…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이 문제를 스릴러가 해롭니 이롭니 하는 찬반 논쟁으로 끌어간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섭섭하다.”

읽기 수준이 초보 또는 초보 이하로 추정되는 사람이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나 되는 나라(미국)에선 그렇게 많은 사람의 손에 책을 쥐여줄 만한 능력이 일종의 공공 서비스에 속한다고 발다치는 말했다. “흔히들 독서라고 하면 해변에 드러누워 책을 읽다 졸다 하는 모습을 떠올리는데 사실 독서가 민주주의에 얼마나 크게 기여하는지 사람들은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른다!”

실제로 발다치는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이다. 읽기 능력 증진을 위한 ‘위시 유 웰(Wish You Well)’ 재단을 설립해 운영하며 그의 소설 중 페이퍼백으로 나온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당신이나 당신이 아는 누군가가 읽기 능력을 향상하고 싶다면’ 그 재단의 상담소로 연락하라는 안내문이 들어 있다.

물론 스릴러 읽기가 일종의 시민적 의무라는 주장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 3류소설을 읽으면 좀 더 진지한 책을 접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발상을 반박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발다치의 생각에도 일리가 있다. 책을 읽으며 그 다음 쪽에 무슨 내용이 들어 있을지 궁금해 하는 데는 짜릿한 흥분이 따른다.

아울러 스릴러가 사람들의 마음에 해롭다는 주장은 이롭다는 주장보다 더 터무니없을지 모른다. 지금처럼 경제위기로 암울한 시기에 발다치는 정신적 휴식을 제공한다. 그리고 책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발다치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스릴러가 민주주의에 중요한 기여를 하는지 여부는 논외로 치더라도 스럴러는 출판사에는 분명히 필수적이다.

좀 더 문학적인 책은 하드커버로 5만 부가 팔리면 성공작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발다치 같은 작가의 소설은 100만 부 이상 팔린다. 평균으로 볼 때 한 주 동안 가장 많이 팔리는 책의 3분의 1가량이 스릴러다. 베스트셀러의 제왕은 제임스 패터슨이다. 뉴욕타임스 하드커버 부문에서 그의 작품 19권이 연속 1위에 올랐다.

패터슨은 너무 자주 책을 내느라 집필 협력자 팀이 있다. 해쳇 북 그룹에서 발다치의 소설을 내는 그랜드 센트럴 퍼블리싱 출판사의 대표 제이미 라브는 이렇게 말했다. “끊임없이 책을 내는 작가들, 또 그 책이 몇 십만 부씩 팔리는 작가들을 확보해야 출판계에서 성공한다. 그런 작가들을 출판사가 오랜 시간을 투자해 육성하기도 한다.

그런 작가들을 저변에 깔아두면 다른 분야로 사업을 확대할 여지가 생긴다.” 패터슨과 뱀파이어 소설 ‘트와일라잇’을 쓰는 다수의 작가를 포함해 베스트셀러 작가 여러 명을 확보한 해쳇 북 그룹이 특히 그런 면에서 뛰어나다. 그 결과 2008년 출판업계가 구조조정에 들어가 정리해고의 칼바람이 한창일 때도 해쳇은 모든 직원에게 연말 상여금을 지급했다.

스릴러가 왜 먹히느냐고? 참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백만 달러짜리’ 질문이다. 하지만 스릴러가 중요한 이유는 경제적인 차원을 넘어선다. 물론 발다치의 문장이 어설픈 면도 있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가위의 경우나 마찬가지로 안전정치가 풀린 장전된 총을 들고 뛰어다니지 말아야 한다(As with scissors, one should avoid running with a loaded gun while the safety was off).”

하지만 발다치처럼 쓸 능력이 누구에게나 있다면 더 많은 사람이 그처럼 책을 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가장 기본적인 차원에서 스릴러가 시장에서 먹히려면 독자가 가능한 한 빨리 책장을 넘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독자가 계속 책장을 넘기고 싶어 하도록 만드는 손쉬운 방법은 서스펜스 제공이다.

가장 궁금한 점을 교묘하게 지속해 가는 전략이다. 그러나 블록버스터가 되려면 서스펜스만으로는 부족하다. 대다수 스릴러 작가처럼 발다치도 작품에 독창적인 플롯, 호소력 있는 등장인물, 행운, 그리고 일관성을 혼합한다. 그러나 다른 작가들과 달리 발다치의 책은 첨단 기술이나 극적인 반전보다는 등장인물들의 상호관계에 더 기댄다.

발다치는 잠수함이나 기발한 장치보다는 워싱턴 교외지역을 무대로 삼는다. 법정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물론 변호사 출신이기에 발다치는 약간의 수사 과정을 포함시킨다). 아무튼 발다치는 뭔가 색다른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물론 그의 소설에는 대통령이 등장하고 언론 조작과 스파이, 비밀, 음모가 난무한다.

그리고 그가 그리는 워싱턴도 다른 소설에서처럼 늘 일반 밴으로 위장한 당국의 감시차량이 어디엔가 주차해 있고 근처에 암살자가 숨어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의 영웅들은 대개 뜻밖이다. 부자도, 천재도, 미남도 아니다. 제임스 본드와는 거리가 멀다. 연애도 제대로 못하고, 편집증이 있고, 어두운 과거를 가졌다.

그들 중 일부는 자유세계 지도자의 목숨을 구하기보다는 TV로 스포츠 경기나 보며 게으름 피우기를 더 좋아하지만 그들의 운명은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발다치가 그리는 워싱턴에선 늘 외부자들이 구원의 투사로 나선다. 그래서 워싱턴 내부자만이 아니라 외부 사람들도 그의 책을 읽는다.

어느 누구도 워싱턴 내부자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진 않지만 영웅은 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발다치가 데뷔한 1996년 이래 그의 책은 전 세계에서 모두 7500만 부가 인쇄됐다. 그러니 그의 소설이 각계각층에서 같은 취향을 가진 부류에 호소력을 갖는다고 말해도 무방할 듯하다. 지난 12월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날 아침 버지니아주 레스턴에 있는 그의 사무실 서재를 찾았다.

발다치는 기자에게 “지금 새 책을 마무리하는 단계인데 당신은 진짜 흥미진진한 순간에 나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물론 흥미로운 순간이겠지만 그에겐 드문 일도 아니다. 발다치는 약 7개월마다 책을 한 권씩 써낸다. 혼자서 자료를 찾고 글을 쓰는 작가로서는 지옥 같은 일정이다. 발다치는 정식 직원 3명을 고용했다.

비서, 사무실 관리자, 그리고 위시 유 웰 재단 운영 책임자다. 가족들도 거든다. 그날 아침 그의 장인은 회의실의 커다란 나무 탁자 앞에 앉아 온라인 저자 서명회를 위한 편지봉투 겉봉에 주소를 적어 넣었다. 그의 작업 방식은 매우 열정적이다. “내게는 정신적인 스승이 한 명 있다”고 발다치가 말했다.

“법정 변호사다. 그는 실제 재판에서 본 최고의 변호사였다. 그 변호사는 줄담배를 피우고 지나치게 안달하는 성격이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는 반드시 화장실에 가서 구토를 한다. 하지만 재판이 시작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열변을 토한다. 그를 보고 경탄하며 ‘그냥 토해 내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사실 나도 비슷하다. 늘 산만하지만 소설의 마지막 단계에 가면 레이저처럼 집중한다.”

그리고 한 작품이 끝나면 곧바로 새 작품을 시작한다. 그래서 독자가 한 책의 마지막 쪽을 넘길 때 또 다른 책의 첫 장이 기다린다. “책 한 권을 방금 끝냈는데 또 새 작품을 갖고 온다”고 그의 에이전트인 에어런 프리스트가 말했다.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아이디어가 쏟아지나 하는 생각이 든다.”

발다치는 올해 48세다. 갈색 머리에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몇 가닥 보인다. 턱이 뾰족하고 어깨가 넓고 단단한 체격이다.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교외에서 자라면서 일찍이 성실한 생활을 체득했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등교 전에 신문을 배달했다. 버지니아 주립대와 버지니아대 법학대학원 시절에는 야간에 경비원, 건설 현장 인부, 진공청소기 외판원으로 일했다. 법학대학원 졸업 후에는 9년 동안 법정 변호사, 기업 전문 변호사로 현장에서 뛰었다(그의 소설 여러 권에서 변호사가 등장하는 데 개업 변호사들은 한결같이 딱한 처지다).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밤이면 영화대본과 소설을 썼다. 하지만 연거푸 퇴짜를 맞았다. 그러다가 1994년 그는 한 도둑이 우연히 대통령이 연루된 살인사건과 진상 은폐를 목격하는 내용의 소설을 썼다. 그 작품이 ‘앱솔루트 파워(Absolute Power)’였다. 그러자 마침내 여기저기서 큰 관심을 보였다.

발다치는 프리스트와 계약했다. 프리스트는 대중시장을 겨냥한 스릴러 작가를 대표하는 에이전트로 유명했다. 당시 타임워너 북그룹의 책임자였던 래리 커시봄이 프리스트에게서 ‘앱솔루트 파워’를 넘겨받은 그날 저녁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출판계에서 오래 활동하면서 그 책처럼 ‘바로 이거야!’라며 무릎을 친 경우는 드물었다”고 커시봄이 전했다.

“끝까지 읽다 보니 어느새 새벽 4시였다. 그래서 샤워를 하고는 한 시간 동안 누워있다가 바로 사무실에 나갔다. 출근하자마자 발다치의 에이전트인 프리스트에게 전화를 걸어 ‘이 책의 판권을 사겠소’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가 ‘벌써 다 읽었다고요? 말도 안 돼’라고 말했다. 나는 ‘진짜 다 읽었소. 의심스럽다면 내게 내용을 물어보시오’고 대답했다.”

계약금 200만 달러에다 영화(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 겸 주연을 맡았다) 판권 300만 달러와 외국어판 판권까지 거둬들이면서 발다치는 갑자기 부자가 됐다. 우선 빚을 갚은 뒤 그의 가족(아내와 두 자녀)은 버지니아 북부의 침실 일곱 개짜리 저택을 현금으로 구입해 이사했다. 발다치는 불어난 재산에 아직 거리감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물론 레스턴에 있는 사무실도 잘 꾸며져 있다. 회의실의 거대한 나무탁자는 반들반들 윤이 나고 서재의 소파는 부드럽고 푹신하다. 그는 서재를 둘러보며 “늘 이런 방을 갖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흡족함보다는 놀라움에 가까운 말투였다. 발다치는 낡은 청바지를 입고 자녀를 워싱턴 지역의 고급 사립학교가 아니라 가톨릭 교구 학교에 보낸다.

워싱턴의 단골 식당은 소박한 네이선스다. 첫 데이트를 할 때 아내를 데려갔던 조지타운의 선술집 겸 식당이다(네이선스 식당은 발다치의 소설에 빈번히 등장한다). 그의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들도 당연히 돈과 애증의 관계다. 그는 돈 문제를 쓰는 대목에선 글에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부자들은 “가운이 몇 벌씩 있고” 옷들은 단순히 “아주 비싸다”고만 묘사된다. 그들은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하고 저택을 벽화로 장식한다. 또 끊임없이 불륜을 저지른다. 가장 지독한 악당은 돈에만 혈안이다.

발다치 자신은 돈 때문에만 소설을 쓰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테러리스트의 머릿속에 들어가고, 국민이 정치인들의 권력 남용에 신경을 곤두세우도록 촉구하고, 선량한 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 어떻게 대응을 하는지 보려고 그들을 한계 이상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을 설정하고 싶어한다. 발다치는 자기 소설이 정의를 다시 세우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변호사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 불의를 숱하게 목격한다. 처벌 받아야 마땅한 사람이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수없이 본다. 또 부당하게 처벌 받은 사람이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소설은 그런 부당함을 바로잡는 방법의 일환이다. 적어도 사람들이 정의가 실현 가능하며 인과응보가 분명히 이뤄진다고 믿도록 해준다.”

그는 부친의 올곧은 성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의 부친은 주말이면 아들을 자신이 일하는 운송회사에 데려갔다. “회사엔 흑인용 화장실과 백인용 화장실이 따로 있었는데 백인용이 훨씬 좋았다”고 발다치가 말했다. “아버지는 정비기사였는데 승진해서 주임이 됐다. 주임이 되자마자 가장 먼저 백인용 화장실을 폐쇄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는 화장실 하나만 사용합니다. 그 화장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을 폐쇄하고 백인용 화장실만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화장실이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내가 소설에서 주제로 삼는 정의 실현 중 일부가 거기서 나왔다.”

발다치가 자기 소설에서 악한 사람이 선한 일을 하는 경우가 있고, 대통령들이 인간 쓰레기일지도 모른다는 도덕적 복잡성을 다룬다고 얘기할 때 그의 부드러운 남부 말씨는 갑자기 빨라졌다. 그는 자신이 하는 말을 실제로 믿는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그가 선과 악 사이의 경계선을 흐려놓기를 좋아한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책을 끌고 나가는 힘은 도덕적 계산법보다는 열정적이고 폭넓은 그의 상상력이다. 그는 집필을 위해 현장 조사와 자료를 파고든다. 발다치가 책에서 다루는 분야에 종사하는 팬들은 그가 자신들의 세계를 제대로 파악했다고 말한다. 발다치는 박제술과 테러리즘을 다룬 책을 읽고, 로또를 조작하는 방법을 꾸며내고, 자기 책에 지리, 역사, 탄도학, 희귀본에 관한 유익한 정보를 약간씩 섞는다.

때로는 쓸모없을지 모르지만 재미있는 실제 정보를 가득 제공하는 전략이 스릴러의 성공을 보장하는 또 다른 열쇠다. 그는 공항 활주로에 나가서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모습을 관찰했고, 기관총을 쏴 보았으며, 저격수·경호원들과 친분을 텄다. 물론 발다치에게도 한계가 있다. 최면술과 관련된 소설을 쓰려고 했을 때 한 심리학자가 그에게 직접 최면을 걸어보겠다고 제의했지만 발다치는 겁이 나서 거절했다.

“그는 인터뷰를 할 때 아주 꼼꼼하게 묻는다”고 의회 도서관의 디뮤네이션이 말한다. 발다치는 저술 활동을 계기로 자신의 삶을 거대한 실습 현장으로 바꿔 놓았다. 한때 그의 이웃에 살았던 친구 로버트 슐레(카터 대통령의 특별 비서관이며 로비업체 설립자)는 어느 날 직장에서 귀가할 때 발다치의 집 앞에 서 있는 마필 운송용 트레일러를 보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저게 도대체 뭐야?”라고 말했다고 슐레가 돌이켰다. 당시 발다치는 버지니아 교외의 목장에서 일꾼으로 위장한 첩보요원을 다룬 소설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그 트레일러 안에 직접 들어가 그곳에 마약을 어떻게 숨길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했다. 발다치의 팬은 일반인에서부터 정치인까지 다양하다.

그의 사무실은 국토안보부와 록히드 마틴(군수업체) 중간에 끼어 있다. 사무실은 액자에 넣은 베스트셀러 목록과 자기 소설의 포스터로 장식돼 있고, 응접실 벽에 늘어선 서가는 거의 그가 쓴 책으로 가득하다. 그중 일부는 알아볼 수 없는 언어로 된 책이다. 퍼스트레이디 여러 명, F W 드 클라크 전 남아공 대통령, 컨트리 가수 돌리 파튼, 그리고 미국 대통령 두 명이 쓴 팬레터도 액자에 들어 있다.

“대통령에게서 편지를 받으면 액자에 넣어둬야 한다”고 발다치가 말했다. 1999년 빌 클린턴은 발다치의 ‘단순한 진실(The Simple Truth)’을 그해 자신이 가장 좋아한 책이라고 말했다. 조지 H W 부시는 한 편지에 “휴스턴에서 당신의 No.1 팬이 보냅니다”라고 서명했다. 부시는 발다치의 책을 너무 좋아해 메인주 케네벙크포트 별장으로 그를 초대했다. “대통령은 정말 보트를 잘 몰더라”고 발다치가 말했다.

발다치는 유력인사들과 어울리는 기회를 즐기는 듯하다. 민주당 전국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버지니아 주지사에 출마한 테리 매콜리프가 다음날 사무실에 온다고 대수롭지 않은 듯 얘기했다. 그는 정부와 계약한 경비업체가 ‘대참사 시나리오’(예컨대 수퍼보울 경기장 폭탄테러)를 구상하려고 자신에게 자문을 구했으며, 정부 기관들이 소설에 좀 나오게 해 달라고 로비했다는 사실을 자랑했다.

그런데도 발다치에게서는 평범한 남자가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우연히 아주 특별한 상황에 놓이게 된 듯한 분위기가 풍긴다. 하지만 모든 일이 음모로 귀결되는 발다치의 세계에선 ‘진짜’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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