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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살리기 아닌 정쟁 도구로 전락

경제살리기 아닌 정쟁 도구로 전락

7월이 코앞인데 비정규직법 개정안은 국회 상정도 안 됐다. 여야는 몇몇 쟁점 법안을 놓고 1년째 샅바싸움 중이다. 나가떨어지는 것은 서민과 기업이다. 경제 법안을 둘러싼 국회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짚어봤다.



#쟁점 법안 무엇이 있나 = 3월 파행을 겪었던 국회는 여러 쟁점 법안을 4월에는 꼭 처리하겠다고 했지만 공염불이었다. ‘경제 살리기’에 대한 숙고와 타협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재보선과 박연차 게이트 공방으로 허송세월을 했다. 현재 국회에는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법안들이 쌓여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를 골자로 한 소득세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고, 금산분리 완화를 위해 개정을 협의해 왔던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 중 은행법만 처리된 상태다.

한국은행에 금융안정 기능을 추가하고 금융조사권을 강화하는 한은법 개정의 경우 한은과 정부 간, 한나라당 의원 간, 여야 간 대립각이 분명해 올 정기국회에서 처리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법안 하나가 다른 법안을 볼모로 잡고 있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 비정규직법이라도 조속히 처리해야 = ‘MB악법’이라는 언어게임 속에 법안 통과를 늦춰서는 안 되는 중차대한 법안까지 공회전 중이다. 비정규직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노사 모두의 우려 속에 시행된 비정규직법은 오는 7월 완료됨에 따라 자칫 고용대란을 일으킬 수 있는 중대하고 시급한 사안이다.

하지만 4월 국회 때 처리되지 못한 채 아직 상정조차 안 됐다. 비정규직법 개정은 시행을 2년이나 4년 미루는 것으로 논의가 진행됐지만, 한나라당도 아직 확실한 당론을 정하지 못한 상태다. 지금 상태로는 6월 국회에서 처리되는 것이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다. 만약 이대로 7월이 오면 18대 국회는 커다란 역풍을 맞을지 모른다.



청와대·정부 기세에 국회 눌려




# 정부보다 의원 발의가 ‘참 쉽죠 잉!’= 올 초 홍준표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정부가 여당 의원들 뒤에 숨어 법안을 발의해 달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청부입법’이라고 말했다. 홍 전 대표가 말한 청부입법은 정부가 만든 법을 국회의원이 이름만 빌려주고 발의해 주는 것을 말한다.

이유가 있다. 정부 제출보다는 의원 발의가 속도가 빠를뿐더러, 예민한 사안일 경우 직접적인 비난을 피할 수 있어 정부 관료들이 종종 쓰는 방식이다. 참여정부가 추진했던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 종합부동산세법 등도 의원 발의로 국회를 통과했었다. 이번 정부에서 미디어법, 비정규직법, 금산분리 완화 등이 청부입법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서병수 의원은 이와 관련해 최근 국회의원 전원에게 e-메일을 보내 “정부 법안이 의원입법으로 우회 입법되는 데 경각심을 가지라”고 당부했다. 국회는 정부의 2중대가 아니다.



#무책임한 감세법안 = 김진표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말 부가가치세율을 현행 10%에서 7%로 인하하는 내용의 ‘부가가치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은 현재 계류 중이다. 부가가치세 인하와 관련해서는 오랜 논쟁이 있었지만, 이 법안은 무리라는 지적이 많다. 법안이 통과한다면 2011년까지 감소하는 세수는 24조원에 달한다.

정부가 지난해 중순 2011년까지 감세하기로 한 21조원을 넘는 규모다. 이한규 기획재정위 전문위원은 이 법안에 대해 “세수감소와 불확실한 가격효과, 세율 환원 시 예상되는 물가상승 등을 감안하면 타당하지 않다”고 밝혔다.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18대 국회가 내놓은 세법개정안의 감세 부분을 합하면 230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1년 새 150건 가까이 감세법안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이 중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16건이다.



국회에서 잠자는 민생법안 수두룩




# 정부, 도를 넘은 국회 무시 = 이번 국회 들어 법안이 만들어져 처리되는 양상을 보면 정부는 ‘갑’, 국회는 ‘을’이다. 경기부양 속도전 탓에 정부는 법안을 밀어붙이고 국회는 받아주는 형국이다. 반면 국회에서 상정된 법안은 정부에서 퇴짜를 맞는 일이 빈번하다. 여당 의원조차 불만이 많다.

어느 재선 의원은 “정부는 감세안을 내면서 국회에서 발의된 기저귀, 분유, 영구주택 난방비 면세, 도서지역 주민 석유류에 대한 부가가치세는 대부분 반대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기획재정부의 경우 지난 4월 국회가 신규 상정한 38개 법안에 대한 검토의견을 내놨는데, 추진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절반이 반대였고, 중장기 검토라는 모호한 의견을 내놓은 것이 6건이었다. 청와대와 정부의 기세에 국회가 완전히 눌려 있다.



# 누구를 위한 법인가? = 한나라당 김용태 의원이 올 4월 발의한 ‘여신전문금융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소비자들의 원성으로 황급히 철회한 경우다. 문제가 된 조항은 ‘신용카드가맹점은 현금영수증을 발급하는 경우에 한해 1만원 미만의 거래에 대해서는 신용카드 결제를 거절하거나 가맹점 수수료를 신용카드회원이 부담하게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었다.

김 의원은 카드 사용자들의 비난이 일자 발의한 4일 후 법안을 철회해 1만원 미만 소액 결제 시 수수료를 소비자에게 물리도록 하는 내용을 삭제하고 재발의했다. 1만원 미만 카드결제 시 가맹점이 거부할 수 있는 조항은 그대로 뒀다. 이에 대해 다수의 네티즌은 “이 법안이 그대로 통과됐다면 가장 큰 수혜자는 카드업계”라며 대표적인 청부입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참! 한가한 법안 = 최근 의원직을 상실한 양정례 전 친박연대 의원은 지난해 11월 ‘한국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개정안의 내용은 이렇다. 한국은행의 허가 없이 주화를 장신구로 만들기 위해 임의로 용해 또는 분쇄하면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것이다.

이 법안은 2006년 2월 발의됐다가 임기만료로 폐기된 법안이다. 양 전 의원이 낸 개정안과 한 글자도 다르지 않다. 미국, 일본, 영국 등 화폐를 훼손할 경우 벌금이나 징역형에 처하는 국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10원짜리 동전을 장신구로 만드는 일이 사회 문제화된 것도 아니고, 영리 목적으로 화폐를 훼손해 판매하는 행위를 처벌한다는 것인지, 개인적으로 훼손해도 처벌 대상이라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더욱이 이 법안이 당시 꼭 발의해야 할 만큼 시급하고 중차대한 사안인지 생각해볼 문제다.



# 밀려 있는 민생법안 = 덩어리가 큰 법안 하나를 가지고 싸우다 겨우 협의했지만 시간이 촉박해 기타 법안은 심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통과시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럼에도 국회에는 민생에 도움이 되는 법안들이 산적해 있다. 5월 22일 현재 계류 중인 법안은 2793건이다. 국회만 통과되면 당장 서민과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법안이 많다.

사회안전망 확충 위해 사행산업 수익금을 고용보험 기금에 지원하는 ‘복권 및 복권기금법(추미애 의원)’, 전월세 자금 소득공제 근거 규정을 마련한 ‘소득세법(백재현 의원)’, 재래시장 육성을 위한 신용보증 확대 규정을 신설한 ‘재래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유성엽 의원)’, 고령자 취업 다양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고령자고용촉진법(이성헌 의원)’ 등은 왜 국회에서 자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민생법안의 일부분이다.



# 경제계가 정작 바라는 법안은? = 참다 못한 경제계는 지난 4월 22일 경제5단체가 함께 ‘경제위기 극복 관련 입법 현안에 대한 경제계 의견’ 건의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경제계가 조속 처리를 요구한 현안은 추경안 조속 통과, 빚 상환 목적 자산 매각 시 세금 감면, 신규투자 때 임시투자 세액 공제 10% 추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 제외, 구조조정기금 신설, 기업 비업무용 토지 매각 시 법인세 중과 폐지, 2010년 적용 예정인 최고 세율 인하 내용을 종전 수준으로 환원, 증권집단소송제 전면 확대 유보, 비정규직 고용기간 2년에서 4년으로 연장 등이다. 대부분 4월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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