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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 벗어난 듯 … 회복은 내년 2분기쯤

바닥 벗어난 듯 … 회복은 내년 2분기쯤

경기침체는 이제 옛날 일이 된 걸까?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라고 얘기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곳곳에서 낙관론이 나오고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6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경기불황의 가장 어려운 시기가 지났다”는 견해를 밝혔다. 같은 날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경기가 하강국면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여러 곳에서 한국 경제의 앞날을 긍정적으로 보는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

한 대형 마트 식품코너에 손님들이 몰려 있다.

윤 장관은 니혼게이자이신문과 인터뷰에서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닥친 불황의 가장 어려운 시기는 지났다고 본다”면서 “한국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5%, 내년 4%로 수정했는데 이것도 보수적으로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을 애초 -2%에서 -1.5%로 상향 조정했지만 성장률을 더 높게 잡을 수 있을 만큼 경기상황이 좋아지고 있다는 전망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윤 장관은 또 “한국은 내년에 경제성장이 플러스로 전환될 수 있는 대외 요인이 있다”면서 “국내에서도 금융시장이 안정을 찾을 것이며 생산 지출 등도 호전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획재정부 장관으로서 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자국 경제의 건전성과 성장 가능성을 강조해 언급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발언은 향후 경기전망을 상당히 낙관적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윤 장관이 각종 거시경제정책과 통화정책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인식이 바뀌었다는 것은 향 경제정책 기조가 바뀔 수도 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앞서 언급한 KDI의 ‘2009년 7월 경제동향 보고서’도 같은 기조다. 보고서는 5월 중 광공업 생산은 전월보다 1.6% 늘면서 1월 이후 증가세를 이어가고, 생산·재고 순환은 재고 조정이 지속되는 가운데 생산 증가율 하락세가 크게 둔화하면서 경기가 하강 국면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5월 소비지표도 한시적 자동차 세제지원으로 승용차 판매가 20.6% 늘면서 내구재를 중심으로 소비부진이 비교적 빠르게 완화되는 양상을 나타냈다. 특히 내수용 소비재 출하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3.5%, 전월 대비 5.6%로 감소세가 둔화했다.



“한국 경제 최악 상황 모면했다”

국내 의견뿐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경제가 경기 저점을 지났다며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을 당초보다 각각 1%포인트씩 상향 조정했다. 연례협의를 위해 방한한 IMF 협의단은 지난 7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올해 -3.0%를 기록하고 내년에 2.5%로 플러스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IMF는 앞서 4월 한국의 올해와 내년 성장률을 각각 -4%와 1.5%로 전망한 바 있다. 수비르 랄 IMF 한국 담당 과장은 “한국경제가 최악의 상황을 모면했다”면서 “경기가 바닥을 쳤고 유동성 위기와 신용경색을 현명하게 피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국의 신속한 재정·통화·금융정책 대응으로 경기침체가 제한적이었고 하방 리스크가 크게 조정될 수 있었다”며 “올해와 내년 한국의 경제를 비교적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소비행태나 소비자 심리에서도 불과 수 개월 전과 달라진 게 사실이다. 6월 소비자심리지수(한국은행 소비자동향조사)는 2007년 3분기 이후 최고치인 106을 기록했고, 6월 신용카드 사용액(27조1900억원) 또한 작년 11월 이후 8개월 만에 두 자릿수 증가세를 나타냈다. 백화점 매출은 이미 3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소비자 경기전망의 ‘선행지표’라 할 수 있는 ‘소비자태도지수(삼성경제연구소)’는 올 2분기에 기준치인 50에 근접한 48.9를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 37.7을 기록한 이후 3분기 연속 상승곡선을 그렸다. 또 신세계가 발표하는 이마트 지수에 따르면 올 2분기 지수는 99.0으로, 1분기보다 4.2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1분기를 정점으로 내리막을 걷던 지수가 5분기 만에 상승기조로 돌아선 것이다. 기준치인 100에도 근접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인 지난해 2분기 수준으로 회복됐다. 최근 강남을 중심으로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는 것도 경기침체에서 벗어난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게 한다.

부동산정보업체에 따르면 올 상반기 아파트 매매 가격은 송파(6.27%), 강남(3.85%), 서초(3.65%) 등 강남 3구 지역이 급등했다.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던 지난해 하반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처럼 최근 상황은 곳곳에서 경기 회복 신호가 나타나고 있지만 문제는 지표와 달리 체감경기는 여전히 냉랭하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고용시장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지난 5월 실업률은 3.8%로 여전히 1분기와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실업자 수는 93만8000명으로 지난해 말 78만7000명보다 크게 늘어난 상황이다. 취업자 감소세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5월 취업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0.9% 줄었다.



체감경기는 여전히 냉랭


지표는 좋아지고 있는데…
여기에 비정규직 해법이 아직 나오지 않고, 대기업의 구조조정도 진행 중이어서 체감경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또 해고 등 인력감축까진 가지 않더라도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많은 기업이 임금삭감이나 연봉 자진반납 등 허리띠 졸라매기를 해 가계에서 느끼는 경제위기 상황은 여전하다.

고용의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고용의 질이 떨어진 셈이다. 당연히 소비지출이 활발해지지 않고, 일반인들의 심리적인 위축이 크다. 또 상반기 경기 하강을 막는 데 정부의 재정정책 역할이 컸다는 점도 문제다.

정부가 올해 연간 경기부양을 위해 투입하는 집행관리예산(인건비 등 기본 경비를 뺀 주요 사업 예산)은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해 총 272조7000억원이다.

이 가운데 올 상반기(1~6월)에만 본예산 156조1000억원, 추경예산 4조7000억원 등 160조8000억원이 투입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연간 예산 중 60%가 이미 상반기에 집행된 셈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각국 정부도 올해 상반기에는 막대한 재정을 투입한 상태이기 때문에 상반기 경기 상황을 근거로 하반기 경기를 예측하긴 힘들다.

상대적으로 하반기에는 정부의 역할이 축소될 것으로 보여 경제여건이 급변할 수도 있다. 경제전문가들도 한결같이 “하반기에는 세계경제가 살아나 민간소비가 늘어나지 않으면 경기가 저점 근처에서 맴돌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부 경제전문가가 경기 저점을 지났거나 지나고 있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경제가 본격적으로 회복되고 있다는 데는 아직 흔쾌히 동의하지 못하는 것도 상반기 경제가 지나치게 정부에 의존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권순우 거시경제실장은 “아직 경기 저점을 완전히 통과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3분기까지 두고 봐야 경기 저점을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다. 권 실장은 “2분기 경제지표는 정확하게 펀더멘털을 반영했다기보다 착시성 지표가 좀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서비스업이 괜찮게 나왔는데 주로 금융보험업의 성장에 기인한 것이다.



“불붙기도 전 화력 조절하자는 격”

권 실장은 “지난 몇 달간 주식시장이 상당히 좋았고, 부동산시장이 좋았기 때문에 금융보험업의 지표가 좋게 나와 서비스업 지표가 덩달아 좋아진 것”이라면서 “다시 주식시장이 주춤하고, 부동산시장의 성장도 정상적인 경기 회복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지표가 좋아졌다고 경제가 좋아진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수출도 6월만 보면 전년 동기 대비 -11%로 감소세가 크게 둔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5, 6월을 합치면 -20%로 크게 감소한 상태다. 권 실장은 “6월 수출 감소가 크지 않은 것은 5월에 인도돼야 할 선박이 지연돼 6월 지표에 도움을 준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물론 경기 저점을 통과했다는 정부 의견에 동의하는 의견도 있다.

임지원 JP모건 이코노미스트는 “최악의 국면은 지난해 4분기에서 올해 1분기로 본다”면서 “지금은 바닥을 통과했지만 U자형 패턴을 그리고 있어 경기회복을 체감하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의 특성상 세계경제가 회복돼야 고용이 늘고 민간 부문이 활기를 띠는데 아직 중국을 제외한 미국과 유럽이 경기침체를 겪고 있기 때문에 한국경제도 완연한 회복세를 띠지 못하고 있다.

재정정책 외에도 정부에서 자동차 특소세를 한시적으로 인하하는 등 각종 세제혜택을 통해 인위적으로 소비를 끌어올린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 각국이 정부의 재정정책에 의존해 경제를 유지해 왔다는 점도 걱정거리다. 임 이코노미스트는 “민간 부문의 자생력으로 경기가 최악의 국면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반기 경제를 낙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그동안 한국경제의 버팀목이 돼 왔던 유가하락, 원화가치 하락 등도 하반기에는 반대로 움직일 가능성이 커 경기회복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임 이코노미스트는 “KDI나 정부에서 말하는 경기회복은 최악의 국면에서 벗어났다는 것이지 잠재성장률로의 회복은 아니다”며 “일반인들이 경기회복론에도 불구하고 체감적으로 나아지는 느낌을 갖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3분기 정도에는 마이너스 성장이 멈출 것”이라면서 “그때까지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최근 과잉유동성을 흡수해 인플레이션을 예방해야 한다는 이른바 ‘출구전략’에 대해서는 “시기 상조”라고 말했다.

그는 “불을 붙이는 게 중요한 상황인데 불이 붙기도 전에 화력을 조절하자는 격”이라고 빗댔다. 유 본부장은 하반기 경제 운용과 관련해 “재정이 이미 소진된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정책은 기업들이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면서 “정치적 혼란과 논쟁을 떠나 경제 살리기와 기업 투자환경 개선을 위해 정부가 다양한 유인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전문가들은 또 “내년 상반기가 끝나는 시점이 돼야 경기회복을 가늠할 수 있다”는 데 공통된 의견을 보였다. 올 하반기 미국과 유럽의 금융불안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를 확인해야 경제위기의 큰 맥이 잡히는 만큼 올 한 해 경제성장률 등 각종 지표는 모래 위에 있는 집과 같다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을 벗어났다 해도 좋은 시절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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