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적 수요가 유가 밀어 올렸다”
“투기적 수요가 유가 밀어 올렸다”
|
유가가 심상치 않다. 연초 40달러 초반으로 출발한 국제원유현물시장 유가는 3~4월 중 혼조세를 보인 후 5월부터 상승하기 시작했다. 6월 말에는 배럴당 70달러를 넘어섰다.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9월 인도분은 7월 23일 67달러 선에 거래됐다. 경기보다 앞서 유가가 오름세를 보이는 요인으로는 우선 실물경제 회복 기대가 거론된다.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 위험자산인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된다. 달러화 표시 채권처럼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는 줄어든다. 이에 따라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고, 달러로 표시되는 원유 가격이 상대적으로 하락한다. 실질 구매력 감소에 대응해 산유국에서는 원유가격 상승을 유도한다.
“유가 상승은 투기세력이 조종한 결과”
경기회복 기대는 이런 경로를 거치지 않고도 곧바로 유가에 영향을 준다. 7월 중순 국제유가가 연일 오름세를 보인 것은 미국 민간경제연구소 콘퍼런스보드가 발표한 경기선행지수가 3개월 연속 상승한 덕분으로 분석된다. 삼성경제연구소 김화년 수석연구원은 “여러 경제지표와 기업실적이 좋게 나오면서 유가가 강세를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가 강세는 투기세력 때문이라는 의견도 많다. 한국금융연구원 장민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차량 주행이 늘어나는 휴가철이지만 유류 수요는 정체된 상태”라며 “그런데도 유가가 상승하는 것은 투기세력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장 실장은 “경기회복과 함께 유가가 상승해야지, 투기적 요인으로 급등하면 우리 경제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원유를 비롯한 상품시장에 투기성 자금 유입이 증가해 왔다. 석유시장에 유입된 투기자금의 규모와 성격을 정확히 파악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매주 발표되는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원유선물 순매수 포지션(매수 계약인 롱 포지션과 매도 계약인 숏 포지션의 차이) 추이를 통해 투기자금의 동향을 짐작할 수 있다.
투기자금이 많이 유입될수록 순매수 포지션이 증가하고 유가가 상승한다. 그래프를 보면 원유선물 순매수 포지션은 지난해 하반기에 급감해 연말엔 마이너스로 돌아섰다가 다시 증가했다. 7월 초 게리 겐슬러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회장은 “최근의 유가 상승은 투기세력이 유가를 조종하기 때문”이라며 “에너지 가격 급등을 막기 위해 투기차단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CFTC는 원유선물 포지션 보유량을 제한하는 방법으로 투기를 억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김 수석연구원은 “CFTC가 투기억제 방침을 밝히자 투기세력이 황급히 브레이크를 걸었고, 원유선물 순매수 포지션이 5월 12일 이후 최저수준으로 급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주춤했던 투기세력은 이내 활기를 되찾았다. 7월 둘째 주 원유선물 순매수 포지션은 전주보다 800계약 증가한 1만6157계약을 기록했다. LG경제연구원 이관우 수석연구원은 “유가는 미국 증시와 함께 움직이는데, 이로부터 유가가 경기회복에 따른 공급불안보다는 투기적인 수요로 인해 올랐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투기세력 외에 수급이 유가 강세를 뒷받침한 것으로 분석된다. 원유가 수요보다 많이 공급되면 재고가 늘어난다. 원유 재고는 5월 초 정점을 찍은 뒤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경기는 아직 회복되기 전이지만 원유 수요가 공급에 비해 점차 증가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통계수치에서 확인된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5월 초 미 원유 재고량은 3억7526만 배럴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한편 7월 둘째 주 미 원유 재고는 전주 대비 281만 배럴 감소한 3억4400만 배럴을 기록했고 셋째 주에는 이보다 180만 배럴 감소한 3억4270만 배럴로 나타났다. 5월 첫째 주와 비교할 때 3000만 배럴 이상 감소한 수치다.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는 “최근의 유가 상승은 재고가 지속적으로 감소한 결과”라며 “지난해 경기침체 때 미처 소진되지 못한 재고가 5월 말부터 소비되기 시작하면서 국제유가가 6월에 70달러를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로 수요가 늘면서 지난해부터 쌓였던 재고가 감소하는 한편 OPEC의 적극적인 감산정책으로 공급이 줄자 유가가 올랐다는 말이다.
반면 재고 감소가 소비 수요 증가 때문이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이문배 석유시장분석실장은 “원유 재고가 감소한 것은 소비가 늘어서가 아니라 중국의 전략비축유 구축이 마무리 단계에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전 세계 원유 소비량은 작년에 비해 300만 배럴 이상 감소했다”며 “중국의 전략비축유 구축이 완전히 끝나면 재고가 다시 증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원유 재고 감소, 유가 상승 거들어
|
켈릴 장관은 “현재 국제원유 시장에서 공급 과잉 탓에 쌓인 재고가 소진되고 나면 원유 가격은 배럴당 90달러 선의 균형점을 찾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16일 발표한 ‘2009년 상반기 국제유가 동향 및 하반기 전망 보고서’도 같은 기조다. 보고서는 “하반기 유가는 세계 경기회복 속도에 따라 완만한 상승세를 유지할 것”이라며 “올해 말 본격적인 경기개선 징후가 보이면 유가 상승이 가속화돼 배럴당 80달러에 도달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의 김종민 연구원은 “상반기까지의 유가 상승세가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와 중국 비축물량 확보 등에 따른 것이라면 하반기 상승은 투기적 수요에 따른 시장의 내부요인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투기적 요인이 향후 국제유가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지는 의견이 나뉜다. 삼성경제연구소는 7월 초 발표한 ‘6대 이슈로 본 2009년 하반기 경제’ 보고서에서 “국제유가는 달러화 약세와 투기 수요 등의 영향으로 상승세를 이어가겠지만 조정국면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투기적 수요만으로 가격이 오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中, 지난해 전기·하이브리드차 판매량 41% 증가…역대 최대
2미래에셋증권, 회사채 수요예측서 2조1600억원 확보
3국토위, 14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안질의
4‘역대급’ 독감…4주 만에 환자 수 14배 폭증
5'코코아' 가격 치솟는데, 농민들은 농사 포기
6펄펄 내린 ‘대설’에 항공기 136편·여객선 77척 결항
7BYD, 일본서 도요타 제쳤다...다음주 한국 진출 앞둬
8‘고강도 쇄신’ 주문한 신동빈...“지금이 마지막 기회”
9과기부 “올해 1분기 내 양자전략위 출범”…양자사업에 1980억원 투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