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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는 끝났다!

경기침체는 끝났다!

최근 보스턴 남서쪽 약 100㎞ 지점인 매사추세츠주 웨스트포트의 6번 도로는 교통 정체가 심했다. 인근의 대서양 해변 휴양지 호스넥이나 베이커스로 향하는 자동차들이 줄을 이어 거북이 걸음을 했다. 도로 재포장 공사 때문이었다. 일꾼 10여 명이 도로에 타르를 쏟아 붓고 갈퀴질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여름만 되면 미국 전역에서 운전자들이 겪는 대수롭지 않은 불편함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야심찬 경제 살리기 전략의 일부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매사추세츠주 루넨버그에 본사를 둔 건설회사 P J 키팅은 지난 4월 연방 교통부가 실시하는 열두어 건의 경기부양용 공사에 입찰해 두 건을 따냈다.

그중 하나가 이 406만 달러짜리 도로 보수공사다. 그 공사로 P J 키팅이 위기를 모면했다고 회사의 건설 공사 책임자인 데이비드 베이커(36)가 말했다. 지난 2년 동안 공사 수주 건수가 감소하면서 이 회사는 열두 명을 정리해고했다. “이번 경기부양용 공사를 따내지 못했더라면 추가로 6명을 내보내야 했다”고 베이커가 말했다.

하지만 그 공사 덕분에 회사는 나머지 직원 300명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오히려 5명을 신규 채용했다. 보통 때 같으면 6번 도로의 보수처럼 정부가 자금을 대는 공사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 그러나 이번 공사는 바닥을 치고 다시 상승세를 타려는 미국 경제의 희망을 보여준다.

물론 거기엔 함정도 있다. P J 키팅사의 거대한 도로포장 기계처럼 미국인들의 삶을 깔아뭉갠 ‘대(大)침체(Great Recession: 공황은 아니지만 심각한 경기침체라는 뜻)’는 이제 끝난 듯하다. 부동산 매기가 아직은 1년 전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석 달 연속 증가했다(2004년 이후 처음이다).

주식시장은 지난 3월 이후 44% 상승했다. 다시 움튼 낙관론과 골드먼삭스·애플 같은 대기업들의 수익성 호전 덕분이다. 지난 6월 미국의 민간 경제연구소 콘퍼런스 보드가 발표한 경기선행지수(LEI)의 10개 지표 중에서 7개가 호전됐다. 특히 제조업 분야의 작업 시간이 늘고 실업수당 신청 건수가 줄었다.

세인트루이스 소재 컨설팅 업체 매크로이코노믹 어드바이저스는 미국 경제가 3분기 들어 연간 2.5% 수준의 성장세를 보인다고 발표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벤 버냉키 의장은 의회에서 “2009년 하반기에 경제활동이 약간 증가할 전망”이라고 증언했다.

물론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은 결코 아니다(비이성적 과열은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이 1990년대 증시 호황을 묘사한 표현으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상황에 비추면 후퇴하지 않는 상태만 해도 대성공이다. 미국 경제는 2008년 9월부터 2009년 3월까지 연율로 따져 거의 6%의 비율로 오그라들었다.

이런 충격적인 미국의 경기 둔화로 세계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심각한 경기침체에 빠졌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은 지난 1월만 해도 “제2의 대공황이 시작되는 조짐”이라고 말했다. 이제 그런 대참사는 모면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이 경기침체가 끝났다고 선언할 때는 전문적인 용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전문 용어로 경기침체가 끝났다는 말은 경제 생산(주로 GDP)의 감소가 중단됐다는 의미다. 좋은 소식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주디 갈런드가 부른 ‘행복한 시절이 다시 왔네(Happy Days Are Here Again)’를 아이팟의 노래 목록에 추가하기엔 시기상조다. GDP 성장만으로는 가정을 부양하거나 대출금을 갚기가 어렵다.

미국 경제의 저주는 엄청나게 늘어난 국가 부채의 부담이고 축복은 역동적이고 성장하는 노동력이다. 따라서 미국 경제가 그냥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고 느끼는 데만 해도 적어도 연간 1.5%의 성장이 필요하다. 더구나 소비자의 심리적 안정에 가장 중요한 실업률은 계속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2007년 12월 이후 일자리가 650만 개나 사라지면서 실업률은 1930년대 이래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제조업 일자리가 해외로 빠져나가고 기업들이 추가적인 비용 절감에 나서면서 현재 9.5%인 실업률이 10%를 넘어설지도 모른다. “경제 생산의 증가와 경제 회복은 별개의 문제”라고 로런스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말했다.

지금까지 경제의 임사(臨死: 죽었다가 살아난) 체험을 한 미국인들은 이제 굼뜨고 고통스러운 회복 단계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쳐야 할 처지다. “향후 1~2년 동안 1% 정도의 성장이 예상된다”고 이번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측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경제학 교수가 말했다.

“경기침체가 끝나도 계속 그 상태에 머무르는 듯한 느낌이 들지 모른다.” 14조 달러 규모인 거대한 미국 경제는 FRB, 재무부(부시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 의회(두 회기), 그리고 납세자의 영웅적인 노력으로 급속한 후진에서 겨우 멈춰 섰다. 앞으로 힘든 일은 인플레이션을 촉발하지 않으면서도, 일자리가 생겨나고 소득이 높아지고 기업 이익이 늘어나게끔 경제를 성장시키는 일이다.

1년 전 뉴스위크는 이번 경제위기를 ‘새로운 종류의 경기침체’라고 이름 붙였다. 평소와 달리 제조업의 불황이나 소비자 지출의 약화 때문이 아니라 주택과 금융 부문의 혼란에 의해 촉발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하강이 멈춘 미국 경제엔 그에 걸맞은 ‘새로운 종류의 회복’이 필요하다.

지난 60년 간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은 다양하고 간단한 도구를 활용해 경기둔화를 막고 성장을 촉진했다. 예를 들어 FRB가 금리를 내리고, 정부가 세금을 깎아주고, 규제에서 해방된 월스트리트가 돈을 풀었다. 그런 조치가 부채를 기반으로 한 소비를 부추겼고 상품과 용역의 세계적 이동을 촉진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조치가 불가능하다. FRB가 금리를 더 이상 내릴 여지가 없다. 현재 익일 상환 초단기 기준 금리는 0%다. 미국의 재정 적자와 민주당 정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광범위한 감세 정책이 시행될 전망도 거의 없다. 미국인들은 여전히 매트리스 아래 현금을 쌓아둔다.

“지난 몇 차례의 경제 회복이 지속적인 효과를 내지 못한 이유는 거품과 과잉 소비, 소득의 불균등에 기초했기 때문”이라고 서머스가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와는 다른 종류의 경제 확장을 원한다.”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은 종종 ‘산업 중시 정책’이라느니 ‘과도한 정부의 개입’이라고 불린다. 심지어 ‘은밀하게 진행되는 사회주의’라고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전략을 ‘스마트 이코노미(smart economy: 지능형 경제)’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가 늘 사용해 온 무딜 대로 무딘 경제적 수단을 피하고 자원과 정책을 전략적 부문에 집중한다는 의미다. 신재생 에너지/녹색 기술, 인프라(사회기반시설), 광대역(초고속 인터넷망) 서비스, 그리고 의료 부문을 가리킨다.

또 필수적인 시스템을 더욱 지능적으로,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데 필요한 투자를 의미한다. 그래야 새로운 인프라가 생겨나 민간 부문이 기막힌 ‘마술’을 부리게 된다. 이 개념의 기본 골격은 7870억 달러 규모의 미 경기부양법(미국 경제 회복 및 재투자법: ARRA)에 담겨 있다.

표적화된 투자, 세금 공제, 보조금, 개혁, 직접 구매의 혼합으로 단기적으로 일자리를 보존 또는 창출하며,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경제적 경쟁력을 키우고 민간 부문의 투자를 촉진하는 전략이다. 이런 담대한 재정·정치 도박이 과연 효과를 낼지 섣불리 판단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1930년대 초 금융 부문이 스스로 붕괴했던 경우처럼 경제 회복을 이끄는 역할은 워싱턴의 몫이다. 현재 민간 자본이 대규모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공공 자본으로 대체되는 중이다. 그런 과정이 미국 경제 회복에 필수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명문대 학자들과 카리스마 강한 젊은 대통령들이 짜낸 최선의 계획이 실패한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베트남전을 보라).

경기 부양책이 경제에 스며드는 속도는 매우 느리다. 그리고 그 자체로는 지난 2년 동안 사라진 부(富)와 일자리를 메우기엔 크게 미흡하다. 게다가 ‘스마트 이코노미’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의료 부문에 어떤 영향이 미칠지는 감을 잡기조차 힘들다.

우익은 오바마의 전략이 정부의 직접 개입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고 말한다(실제로 하원의 공화당 의원 전원이 경기부양법에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좌익의 일부 인사조차 경기부양이 산업 부문에 치우쳤다고 지적한다.

소비자가 경제활동의 70%를 차지하는 미국 같은 경제에선 “상품과 서비스의 수요 증가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워싱턴 DC 소재 경제정책연구소의 로런스 미셸 소장이 말했다. “오바마의 계획에서 빠진 중요한 요소는 생산성과 함께 임금도 올리는 프로그램이다.” 또 비판자나 지지자 모두 부양책 실시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안달한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임기 첫 100일 동안 뉴딜 정책을 제시하며 젊은이 25만 명이 하루 1달러를 받고 산림에서 일하도록 촉구했다. 1933년 여름 노조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젊은이 25만 명이 민간자원보존단(CCC)으로 숲 속에서 구슬땀을 흘렸다. 그들은 나무 30억 그루를 심고, 주립공원 800군데를 조성해 미국 전역의 비옥한 표토(表土)를 보존하는 데 기여했다.

또 토목사업청(CWA) 같은 대규모 공공 근로 프로그램으로 수백만 명을 교량과 댐 건설에 신속히 투입했다. 물론 오바마의 ‘뉴딜 2.0’에선 일이 그처럼 신속하게 진행되진 않는다. 지금까지 경기부양법이 할당한 자금 중 실제로 경제에 투입된 액수는 일부에 불과하다. 감세(430억 달러), 주·지방 정부 지원(640억 달러)이 전부다.

그러나 그중 대부분이 일자리 창출보다는 일자리 감소를 막는 데 사용됐다. 예를 들어 뉴욕시의 경우 그 돈으로 교사 1만4000명이 정리해고를 면했다. 그리고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이 1930년대보다 훨씬 복잡해졌기 때문에 투자 부문은 시행에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지금까지 특정 프로그램에 투자하기로 약정된 신규 지출은 약 1200억 달러에 불과하다. 백악관은 경기부양책으로 2009년 4분기까지 일자리 150만 개가 보존되거나 만들어지고, 2010년 4분기까지 추가로 350만 개가 보존되거나 만들어진다고 추산한다. 일자리 하나를 유지하거나 만드는 데 정부 지출 9만2000달러가 필요하다는 개략적인 기준에 따른 계산이다.

그러나 백악관은 2009년에 나타나는 경기부양책의 고용 효과는 전체의 10% 미만이라고 내다본다. 장기적으로 내다본다는 의미다. 연방 정부의 자금이 매사추세츠주 웨스트포트 같은 지역에 사는 근로자의 급여 통장에 입금되려면 여러 달이 걸린다. 연방 교통부는 도로 보수 공사로 5777건을 승인했고 그 명목으로 책정된 전체 금액 266억 달러 중에서 169억 달러를 지출하기로 약정했다.

“공사 한 건이 광고되고 승인되는 데는 대개 6~8주가 걸리며, 그 다음에야 공사 개시 공고가 나간다”고 연방 교통부의 교통 정책 담당 부차관보 조엘 자바트가 말했다. 지난 5월 말까지 교통 부문의 공사로 직접 창출된 일자리는 6000~7000개에 이르렀다. 고무적이지만 아직은 새 발의 피다.

특히 구직 수요를 감안하면 그렇다. 지난 3월 델라웨어주 베어에서 미국 철도여객공사의 보수시설을 감독하는 류 우드는 객차 60량을 보수하는 작업에 5850만 달러의 경기부양 자금을 배정받아 55명을 고용하도록 승인 받았다. “55명 채용 광고를 내자 지원자가 6000명이나 몰렸다”고 우드가 말했다.

그중 다수는 자동차회사 제너럴 모터스(GM)나 크라이슬러에 다녔던 사람들이었다. 도로를 재포장하고 철도 서비스를 개선하는 이점은 눈에 확실히 띄기 때문에 평가하기가 쉽다. 기존 시설을 보수하고 기존 산업을 부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마트 이코노미’의 상당 부분은 더욱 추상적이고 성공 여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새로운 상업적 인프라와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경기부양책의 핵심 부문인 대체 에너지와 청정 기술 부문이 그렇다. 예를 들어 대체 에너지 투자용 60억 달러의 융자보증 프로그램, 45억 달러의 연방 친환경 건물 개조 프로그램, 50억 달러의 저소득 가정 주택 내후성 개조 프로그램, 그리고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 지능형 전력망)’ 기술 개발 등이다.

연방 조달청의 공공 건물 서비스부 책임자인 앤서니 코스타는 연방 건물 개조용으로 3억7500만 달러 규모의 80개 공사를 승인 받았다(경기부양법이 그 명목으로 할당한 총액은 55억 달러다). 노조와 환경운동가들의 합작 기업인 ‘블루-그린 동맹’에 따르면 기존 공장의 제조업 일자리 중 85만 개가 친환경 일자리로 전환될 듯하다.

기존 장비와 현직 근로자의 기술로 새로운 제품을 만든다는 의미다. 미네소타주 세인트클라우드에서 하이브리드 버스를 만드는 캐나다 회사 뉴 플라이어는 필라델피아, 시카고, 밀워키, 뉴욕 로체스터의 관청에서 2억1300만 달러어치의 하이브리드 버스를 주문 받았다. 연간 매출의 약 4분의 1에 해당한다.

주문한 관청들은 그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경기부양법에서 지원 받는다. 이런 프로그램은 핵심 사업을 쉽게 ‘스마트 이코노미’로 전환할 수 있는 소수의 기업체엔 큰 혜택이다. 그러나 이 전략이 성공하려면 효과가 더 깊이 전달돼야 한다.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사업체를 만들려면 정부가 특정 기술 부문, 그리고 그중에서도 특정 세부 기술에 모험 투자를 해야 한다.

“미국은 1950년대에 순전히 국가 안보 차원에서 거액을 투자해 각 주 간 고속도로를 만들었는데 그게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던 엄청난 경제적 혜택을 가져왔다”고 컨설팅업체 무디스 이코노미닷컴의 수석 분석가 마크 잰디가 말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스마트 이코노미’를 추진하는 ‘스마트한’ 사람들은 신재생 에너지 투자가 어느 정도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지 정확히 안다고 믿는다.

스티븐 추 에너지 장관은 물리학으로 노벨상을 받았지만 그의 부처는 여러 가지 다른 종류의 대체 에너지 프로젝트들의 융자 신청을 선별하는 일을 한다. 과연 추 장관이 뛰어난 모험자본가임이 입증될까? 융자보증이 전통적인 태양전지판을 사용하는 프로젝트에 제공돼야 할까 아니면 건축자재에 통합되는 박막 태양전지판에 주어져야 할까?

대체 에너지 프로젝트가 일자리를 만들어내긴 하지만 그중 다수는 노동집약적이지 않다. 풍력 발전 기지는 유지 보수에 대규모 인력이 필요하지 않다. 콜로라도주에서는 관리들과 기업주들이 빌 리터 주지사가 말하는 ‘신에너지 경제’를 지지한다. 그에 따라 덴버 지역은 태양 발전 연구와 풍력 터빈 제조와 관련된 일자리가 수천 개 생겨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번 경기침체가 시작된 이래 이 지역에서 사라진 일자리 5만 개 이상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다. 컨설팅 업체 글로벌 인사이트에 따르면 2019년이 되면 신재생 전력 생산과 운송 연료, 건물 개조, 연구 부문의 투자로 일자리가 254만 개 창출될 전망이다.

사실 대단한 성과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원기 왕성한 회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역사적으로 연방 정부는 새로운 산업의 탄생을 유도하고 민간 부문 투자를 촉진하는 새로운 상업 인프라를 만들어내는 데 능했다. 뉴욕 주정부가 자금을 댄 이리 운하는 뉴욕주 북부와 미국 중서부 지방 북쪽에서 큰 성장을 이끌었다.

그러자 민간 자본으로 건설된 수로가 여럿 생겨났다. 또 연방 의회는 1844년 볼티모어에서 워싱턴까지 전신선을 최초로 가설했다. 그 후 기업가들이 ‘번개(당시 전보가 그렇게 불렸다)’에 매료돼 전신망이 뻗어나갔다. 이뿐만 아니라 1860년대에 연방 의회가 상당 부분의 자금을 대 최초의 대륙 횡단 철도가 건설되자 그 직후 비슷한 민간 철도 노선이 6개나 생겼다.

녹색 기술 부문의 공공 투자가 민간 투자를 촉진한다는 조짐도 있다. 사실 요즘은 모험 자본의 암흑기다. 그러나 지난 7월 22일 캘리포니아주 산 마테오에서 ‘스마트 그리드’ 관리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신생업체 e미터는 3200만 달러의 모험 투자를 유치했다고 발표했다.

직원이 160명인 그 회사는 경기부양법으로 ‘스마트 그리드’ 기술 부문에 할당된 45억 달러 중 일부가 전력회사들에 흘러 들어가면 사업이 크게 성장하리라고 기대한다. “경기부양이 실제로 시작되면 직원을 신속히 채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e미터의 CEO 크리 에드워즈가 말했다.

정부의 도움이 있든 없든 민간 부문이 새로운 인프라를 만들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 1990년대의 인터넷 출현이 좋은 예다. 경기부양법은 그런 선례를 재현하려고 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위한 광대역 인프라를 산간 오지로 확장하는 사업에 72억 달러를 책정했다(가정에서 광대역 서비스를 이용하는 미국인은 전체 인구의 63%에 불과하다).

고속 인터넷망을 산간 오지로 확대하는 작업이 일자리 창출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노스캐롤라이나주 서부에 본부를 둔 비영리 무선 인터넷 서비스 제공단체 ‘산악지대정보네트워크(MAIN)’의 설립자며 대표인 월리 보우언은 많은 상관이 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이 오지에서의 삶에서 상당한 혜택을 누렸다.

건강이나 가정기반 사업을 관리하는 데 용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대역 서비스가 오지에 제공되지 않으면서 그들이 경쟁력을 크게 잃었다고 보우언이 말했다. 그는 오지 동네에 사는 80대의 과부를 한 예로 들었다. 그 할머니는 e베이에서 상품 판매로 소득을 보충했지만 요즘은 광대역 서비스 없이 구식 다이얼업 모뎀으로는 그 일을 할 수 없다.

MAIN은 현지 사업자들과 공공-민간 제휴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경기부양 자금에서 5000만 달러를 제공받아 광케이블을 설치하고 무선 기지탑을 세우려 한다. 컬럼비아 대학의 라울 카츠 교수는 새로운 네트워크 건설로만 4년 동안 최대 12만8000개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추산한다.

광대역과 통신 사업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지면 그 혜택은 e베이에서 상품을 파는 노인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윌리엄 레어는 “경기부양 프로젝트의 다른 잡다한 부분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열쇠가 바로 광대역 서비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경기부양법은 의사와 환자, 보험업자의 정보 공유를 용이하게 해주는 건강 관련 정보의 디지털화에 190억 달러를 책정했다. 그러면 수십억 달러가 절약된다. 그런 조치는 이미 민간 부문의 투자를 유도했다. 얼마 전 인터넷 네트워킹 대기업 시스코와 보험업계의 대기업 유나이티드헬스는 경기부양 자금의 도움으로 병원 등 의료 제공자들을 위한 기술적 네트워크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의료 기록의 디지털화는 매우 간단한 일이다. 전형적인 개인 병원은 일반 식료품점보다 훨씬 주먹구구식이다. 어쩌면 그 때문에 의료 기록의 디지털화가 ‘스마트 이코노미’의 여러 부문을 필수적인 의료 산업으로 끌어들이는 데 가장 간단한 방편이 될지 모른다. 경기부양법은 바로 이 부문에 상당한 혜택을 준다.

의료 부문은 경기침체에도 고용 수준이 유지된 몇 안 되는 부문 중 하나다. 국립 보건원(NIH)에 100억 달러, 실직자들의 건강보험 보조로 247억 달러가 책정됐다. 하지만 그것은 첫 단추를 꿰는 비용에 불과하다. 오바마 행정부가 구상하는 야심적인 의료 개혁에선 경제 못지않게 사회 정의도 중요하다.

미국 경제 전체의 16%를 차지하는 의료 부문은 낭비 요인이 널려 있다. 저렴한 건강보험이 없다는 사실이 근로자와 사업자 모두에게 장애물이다. 메디케어(고령자 의료 보조)와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 보조) 비용의 통제에 실패하면 다른 투자가 억제되고 소비 수준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이 비용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국가의 재정 적자를 제어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오바마 대통령이 7월 22일 기자회견에서 강조했다.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더욱 지능적인 의료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려는 노력의 발목을 잡는다. 의료 개혁엔 새로운 지출과 투자가 필요하다.

연방 의회 예산국(CBO)은 10년 동안 1조 달러가 필요하다고 추정한다. 하지만 비용 절감 효과도 크다. 기술과 효율성, 협상력의 개선 때문이다. 서머스가 이끄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는 최근 “의료가 노동 시장에서 대규모 일자리 창출의 근원이 될 전망”이라고 보고했다.

특히 간호사와 물리치료사의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이 부문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원하는 생산성 향상, 개혁, 비용 통제로 인해 기존의 의료 일자리 중 다수가 사라질 가능성이 있다. 올해 안에 의료 개혁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그 효과를 둘러싼 치열한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게다가 궁극적으로 도출될 계획도 ‘스마트 이코노미’의 사고방식보다는 이익단체와 당쟁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지난주 워싱턴에서는 기대치가 낮아진 듯한 이야기가 들렸다. 어쩌면 미국 경제는 기대치를 낮춰야 하는 시대를 맞았을지 모른다.

도로 보수 공사가 완전 고용의 해법은 아니다. 녹색 기술이 조만간 화석 연료를 대체하진 못한다. 광대역 인터넷의 혜택이 과장됐을 가능성도 있다. 고장 난 의료 시스템이 하룻밤 사이에 역풍에서 순풍으로 바뀌기는 불가능하다. 경기침체는 끝났을지 모르지만 앞으로 어려움이 많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스마트 이코노미’가 낭비일까? 결코 그렇진 않다. 경기부양법이 통과된 지 5개월밖에 안 된 시점에서 그 법의 실패를 선언하는 일은 마라톤의 첫 구간 기록만으로 경기 결과를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앞서 말한 투자의 거의 전부가 필수적이다. 경제와 해당 산업을 더욱 ‘똑똑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런 투자가 스마트 경제·정치 전략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경기부양책은 대대적인 규모이긴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 뚫어놓은 구멍을 메워주거나 21세기에 적합한 여러 대규모 산업을 일으키기엔 역부족이다. 각각의 프로젝트는 지출에 가장 관대한 진보주의자가 생각하는 어떤 부문보다 우선적인투자가 필요하다.

에너지 생산과 배급 체제를 개혁하려면 “수십 년에 걸쳐 수조 달러의 투자가 필요하다”고 콜로라도주 골든에 있는 미국 신재생에너지연구소의 댄 아르비주 소장이 말했다. “민간 부문이 나서서 이 일을 성사시켜야 한다.”역사적으로 볼 때 경제는 한 가지 발전이 특정 분야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골고루 영향을 미쳐야 고속 성장이 이뤄졌다.

증기 기관, 전기, 컴퓨터 칩, 세계화, 인터넷, 저리 대출 등을 보라. 이 다음의 혁신적인 도약이 어디서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로런스 서머스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은 빌 클린턴이 1992년 대통령에 선출된 뒤 개최한 확대 경제 정상회의에 참석했을 때 ‘인터넷’이라는 용어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과거의 실적이 미래의 지침이 되지는 않는다.” 투자 관리사들이 고객들에게 반드시 알려줘야 할 단서다. 경제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미국은 경제위기가 왔을 때마다 탄력적으로 대응했다.

뉴딜 정책이 완전한 실패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지만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노력은 대재난을 막고 최악의 경기침체를 끝냈으며, 후버댐에서부터 애팔레치안 트레일(마크 샌퍼드의 소설에 나오는 허구가 아닌 실제를 말한다)까지 수십 년 동안 경제적 혜택을 가져다준 인프라를 만들어냈다.

역사는 확실한 보증은 못하지만 미국이 그런 사례를 재현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음 차례의 대혁신이 나오기 전까지 소비자와 기업들은 지난 몇 달간 해 왔던 활동을 되풀이해야 한다. 부채를 갚고, 구조조정을 하고, 생존에 전념하는 일을 말한다.

그동안 소비자와 기업들은 연방 정부의 공적자금을 지렛대와 부목으로 사용하면서 점진적인 개선에서 만족을 찾아야 한다. 매사추세츠주 웨스트포트의 뙤약볕 아래서 도로를 재포장하는 일처럼 무척 힘든 일이다.

With NICK SUMMERS and JESSICA RAMIREZ in New York, and EVE CONANT and DANIEL STONE in Washing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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