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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미국의 리더십

되살아난 미국의 리더십

아직 미지근하지만 미국 경제에 온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특히 아직 무역이 지지부진하고 주택압류가 늘고 실업률이 높은 미국과 유럽의 많은 지역에선 웬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경기예측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던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모두 미약하나마 경기회복 조짐이 보인다고 밝혔다.

지난 4월, 내년 글로벌 경제성장률 예상치를 2%로 예상했던 IMF는 7월 들어 이를 2.5%로 상향 조정했다. OECD도 부국의 성장률 전망을 이번 금융위기 들어 처음으로 상향 조정했다. 국제금융시스템의 붕괴 우려는 진정됐다. 그리고 보호무역 압력은 여전하지만 각국 정부는 세계가 1930년대 같은 수렁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일단 덜었다.

미국의 회복세가 대다수 다른 나라보다 빠른 편이지만 과거의 불경기 때처럼 세계 경기회복의 견인차 역할을 할 만큼 강하진 않을 듯하다. 그런 역할을 할 만한 나라가 있다면 최소 7%가 넘는 성장률을 유지하는 중국이다. 실상, 미국의 경제상황은 안정을 되찾았다고 보기엔 아직 멀었다.

골드먼삭스, JP모건 같은 은행들의 실적이 빠르게 호전되지만 대표적으로 뱅크 오브 아메리카, CIT, 시티그룹 등 다른 대형은행 수십 곳은 부진에 허덕인다. 아직도 수십억 달러의 독성 자산이 존재하고 사분오열된 미국 규제체계 개혁은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뗐다.

실업률은 10%에 육박하고(시간제 근로자와 취업을 포기한 사람들을 포함하면 20%) 주택압류는 증가하며 무역은 여전히 감소한다. 거의 모든 주가 적자에 빠져 있으며 캘리포니아·미시간·플로리다 등 많은 주의 상황이 심각해 최소 2~3년간은 그런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다.

그렇다면 미국이 어떻게 경기회복을 선도한다는 건가? 놀랍게도 경제력이 아닌 정치적 여건의 힘이다. 이는 앵글로-색슨 자본주의의 보루인 워싱턴-월스트리트 축이 지난 18개월간 전 세계의 조롱거리였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앵글로-색슨 자본주의 지배의 종식을 선언했고, 중국의 왕치산(王岐山) 부총리, 저우샤오촨(周小川) 인민은행 총재 같은 고위관료 다수가 미국의 ‘방탕함’을 꾸짖었다. 클린턴 정부에서 재무부 부장관을 지낸 로저 알트먼 등 미국의 저명인사들조차 미국 금융 리더십의 종말을 선언했다.

그러나 오히려 미국 정부는 신속하고 단호한 조치로 글로벌 경제의 붕괴를 막았다(이번 사태를 수습해야 할 책임이 미국에 있었지만 말이다). 게다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어마어마한 도전에 직면했지만 그가 어느 누구보다도 인상적이고 안정적이고 조리 있고 정치력이 뛰어난 지도자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국내에서 맹비난을 받으며 머지않아 레임덕이 될 처지다. 지지기반이 무너진 아소 다로 일본 총리는 8월 30일 조기 총선을 실시하기로 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총선을 눈앞에 뒀고 세계에 절실히 필요한 부양책을 지나치게 목청 높여 반대해 왔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너무 일관성이 없고 변덕이 심해 국제무대에서 통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고 금고에 자금이 넉넉한 중국이 남는데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글로벌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없으며 세계가 그 역할에 중국 지도자를 받아들이려면 아직 몇 년 더 있어야 한다.

워싱턴의 새로운 영향력은 상당 부분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한 유능한 인재들이 있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행크 폴슨 전 재무장관이 너무 독자적이고 오만하게 행동했다는 이유로 최근 의회에서 매도 당하고 부시 정부 경제팀은 리먼브러더스 구제에 실패하는 등 몇 가지 실수를 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불확실성, 이미 한 발을 문 밖에 내놓은 대통령, 적대적인 의회의 악조건 속에서 신속하고 대담한 조치를 취한 폴슨과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공은 인정해야 한다. 오늘날 세계는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 로런스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버냉키 FRB 의장 등의 오바마 정부가 현명한 정책을 마련하게 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들이 잘못되기 쉬운 규제개혁을 신중하게 처리한 덕분에 투자자들은 마음을 놓았다. 만일 사베인스-옥슬리법(회계개혁법)과 같은 강력한 규제로 대응했더라면 투자자들의 불안을 키웠을 것이다.

게다가 부시 정부의 존 스노 재무장관(금융시장 경험이 거의 없었다)과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자유시장 원리주의 정책으로 일관해 이번 위기를 초래한 책임이 크다)이 경제정책을 맡았을 때 위기가 발생했더라면 세계가 미국의 리더십을 바라보는 시선은 전혀 딴판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많은 불확실성에 직면한 상황에서 세계가 리더십에 목말라 했다는 사실도 오바마 정부에 도움이 됐다. 요즘은 경기악화 추세를 억제하기만 해도 잘했다고 박수갈채를 받기 쉽다. 글로벌 경제는 아직도 강한 맞바람을 맞고 있다. 그러나 최근 세계순방 중 수많은 재계 지도자와 나눈 대화를 근거로 볼 때 적임자들이 세계 경제의 방향타를 잡았다는 인식이 유럽·아시아·중남미에 널리 퍼져 있다.

국가개입을 확대해 또 다른 위기를 예방하라는 요구와 앵글로-색슨 자본주의 모델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커지긴 했지만 미국의 지도력과 활력 넘치는 앵글로-색슨 스타일의 시장이야말로 실상 세계가 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난 30년간 글로벌 번영을 이끈 원동력도 바로 이 시스템이었다.

유럽뿐 아니라 중국·인도·브라질·멕시코·터키 같은 대규모 신흥시장은 모두 금리가 낮고 무역이 번창했던 예전 체제의 덕을 많이 봤다. 그들은 그 시절로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건 이해하지만 마땅한 다른 비전도 없기 때문에 가능한 한 미국 모델을 고수하고 싶을 것이다(내수 진작을 위해 정치적인 ‘미국 때리기’ 구호는 필요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틀렸는지도 모른다. 근본적인 구조개혁(예컨대 중-미 간 대규모의 무역·예산 불균형 해소) 없이는 곧 또 다른 위기가 닥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정부와 재계 지도자들은 이 문제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이 다시 떠오르는 리더십을 유지하고 ‘지구호’를 더 안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두 가지 중요한 선결과제가 있다. 첫째, 오바마 대통령과 경제팀은 앞으로 최소 10년간 미국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울 1조 달러 이상의 적자 문제에 진지하게 대처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지금까지는 말로만 떠들었을 뿐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경제·정치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미래의 인플레이션과 달러 가치 하락에 대한 (쉬 현실화할 수 있는) 시장 우려의 확대를 억제하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신뢰를 얻으려면 지금은 어떤 형태도 갖춰지지 않은 예산긴축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려면 갖가지 경제 지표에 공개적인 목표치를 설정해 의회의 지지를 끌어내야 한다. 어떤 지표를 사용할지 결정하는 일은 경제학자들 몫이지만 예를 들어 GDP 대비 예산적자 비율, GDP 대비 국가 공공부채 비율, 공공지출 대비 부채상환 비율 등이 있겠다.

7500만 명을 넘는 베이비붐 세대를 위한 사회보장과 건강보험(메디케어)의 정부지원금 지출이 늘더라도 앞으로 수년간 이런 비율이 호전 추세를 보여야 한다. 예컨대 내년에는 예산적자가 GDP의 13%에 달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따라서 가령 2012년부터 그 비율을 매년 1%포인트씩 줄여 4%포인트까지 줄인다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그런 시스템을 실행하는 길은 실질적인 세제개혁뿐이다. 주유소 휘발유 판매에 매기는 유류세(그중 일부는 저소득자에게 환급해 영세민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를 포함한 전국적인 판매세 형태가 될 것이다. 미국은 또 사회보장과 고령자 건강보험 수혜자격에 대해서도 사고전환이 필요하다.

고령자들의 사회보장 급여 수령 개시연령을 높이거나 고소득자에 주는 수당을 삭감하는 식으로 바꿔야 한다. 이는 좋게 말해서 실행하기가 지극히 어렵고 정치적으로도 매우 골치 아픈 문제라는 건 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장(다시 말해 미국 국내와 특히 국외에서 미국 국채를 보유한 사람들)이 거칠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미국에 그런 변화를 강요할 게 뻔하다.

터무니없이 높은 금리를 요구하거나 달러 가치를 급락시키는, 또는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하는 식이다. 그 결과는 무역과 예산적자가 급증할 동안 미국 주가가 자유 낙하했던 1987년의 상황과 비슷할 것이다. 10월 19일의 주가 폭락 다음날 미국 의회는 황급히 대폭적인 예산긴축법을 발효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적자는 그때보다 더 크고(1987년엔 GDP 대비 정부 부채가 50%선이었지만 지금은 68%다) 채권자들이 가하는 고통의 정도가 훨씬 더 심할 수 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미국 정부는 글로벌 경제의 미래를 두고 계속 모든 나라와 광범위하게 협력해야 한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선진7개국(G7), 주요 20개국(G20), 또는 G2(중-미) 회의에서 얼마나 많은 성과를 얻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미국이 앞장서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들이 따라줘야 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남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경제협력의 정치적 차원은 국내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해관계자들은 누군가 자신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미국 정부는 더 저명한 고위층 대표들로 국제협력팀을 확대해야 할지도 모른다. 현 정부의 고위층엔 유능하고 경험 많은 재계 지도자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데 그런 사람들 중에서 선발하면 된다.

가이트너 재무장관 혼자서 그 짐을 모두 짊어지긴 어렵다. 미국 정부는 민주당·공화당 할 것 없이 많은 역대 정부가 그랬듯이 국민에게 거만하게 설교하는 습관에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끝으로 그래도 미래의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설계해야 한다. G20 회의 두 번, G8(G7+러시아) 회의 두 번을 하고 공식·비공식 국제단체들이 수많은 조사를 했지만 큰 현안들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예컨대 글로벌 시장과 각종 국가 규제기관 간의 단절, 그리고 국제적인 조정의 내재적인 취약성 등이다. 매우 우려되는 시점에서 국가주의 경향마저 강해진다. 논란이 뜨겁지만 합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는 몇 가지 이슈의 예를 들어보자. 많은 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대형 글로벌 금융기관을 누가 규제해야 하나? 그들의 구조조정을 누가 맡아야 하나?

복잡한 파생상품을 어떻게 감독할 수 있나? 롤러코스터 세계 경제에서의 손실에 대비한 담보로 금융기관들이 자본을 얼마나 비축해야 하고 그것을 어떤 식으로 강제해야 하나? (약한) 글로벌 기관(IMF, 국제결제은행, 금융안정포럼) 무리를 누가 지휘해야 하나? 오바마 경제팀이 주도적으로 이런 문제들에 대처한다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망선고를 받았던 미국식 자본주의 시대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큰 효과를 거둘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경제적으로 큰 노력을 하지 않고도 정치적으로 글로벌 경기회복을 이끌 수 있다. 그런 리더십을 계속 유지하려면 국내에서 고통스러운 결단을 내려야 하며 과거 수십 년 동안의 어느 정부보다 외교적으로 폭넓게 손을 뻗어야 한다. 미국과 세계가 앞으로 수년간 부채와 적자에 억눌려 이런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면 더 큰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예일대 경영대학원 국제무역·금융학 교수다. 클린턴 정부 상무차관, 블랙스톤 그룹의 상무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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