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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깨물어줘!’왜 뱀파이어와 사랑에 빠질까

‘날 깨물어줘!’왜 뱀파이어와 사랑에 빠질까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사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켄드라 포터(27)가 남자를 보는 기준은 세 가지다. 똑똑하고 재미있고 키 큰 남자를 좋아한다. 물론 따뜻한 피가 돌며 의식이 있고 숨을 쉬는 산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그녀가 최근에는 천 살이나 먹은 스칸디나비아 반도 출신의 꽃미남 뱀파이어 에릭에게 끌리면서 적잖이 놀랐다.

에릭은 샬레인 해리스의 베스트셀러 소설 ‘남부 뱀파이어 시리즈(Southern Vampire Mysteries)’를 바탕으로 한 HBO 드라마 ‘트루 블러드(True Blood)’에 등장하는 매혹적인 뱀파이어 중 하나다. 포터는 일요일 밤 스케줄을 이 드라마의 방영 시간에 맞출 정도로 열성 팬이다.

“사실 좀 당황스럽다”고 포터는 말했다. “전엔 뱀파이어물을 이렇게 좋아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빠져버렸다. 뱀파이어에게 ‘날 깨물어 달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다. 물론 아주 사랑스러운 방식으로….” 뱀파이어 열풍이 벌써 몇 년째 미국 대중문화를 휩쓴다.

하지만 요즘 뱀파이어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섹시하다. 여성들이 뱀파이어에 열광하자 광고에도 뱀파이어가 등장했다. [매력적인 뱀파이어(특히 에릭 역의 알렉산더 스카스가르드)가 등장하는 광고를 마다할 여성이 있겠는가?] ‘트루 블러드’와 제휴한 질레트 면도기의 새 광고에서는 말끔하게 면도한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는 섹시한 뱀파이어 사진 옆에 ‘기막히게 섹시하군(Dead Sexy)’이라는 문구가 씌어 있다.

또 마크 에코의 향수 광고에서는 뱀파이어가 여자의 벗은 목을 깨무는 사진 옆에 ‘인간을 유혹하라(Attract a Human)’는 문구가 눈에 띈다. 하지만 요즘 드라마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라면 인간을 유혹하려고 향수 따위를 쓸 필요는 없다. 지난 몇 달 동안 관 속에서 자다 나온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요즘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가 뱀파이어물이라는 사실을 안다.

뱀파이어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뱀파이어를 주제로 한 연애소설들이 앞 다투어 나온다. 이번 가을 CW 채널에서는 10대를 겨냥한 드라마 ‘뱀파이어의 일기(Vampire Diaries)’가 막을 올린다. 인기 10대 드라마 ‘가십걸(Gossip Girl)’의 팬들이 체이스 크로퍼드(‘가십걸’의 미남 주인공) 말고 다른 누군가가 자신들의 목을 깨물어 주기를 바랄지 모른다.

7월 말 샌디에이고에서 개최된 대중문화 축제 ‘코믹-콘 인터내셔널’에서는 ‘트루 블러드’ 출연진과 책임 프로듀서 앨런 볼이 나오는 패널 토론 등 뱀파이어를 주제로 한 이벤트가 풍성하게 열렸다. 또 8월에는 남캘리포니아에서 또 다른 뱀파이어 축제 ‘뱀파이어-콘’이 열린다.

최초의 뱀파이어 중심 축제로 홍보된 이 이틀 일정의 할리우드 축제에서는 뱀파이어 영화제와 패널 토론, 섹시한 뱀파이어 분장을 한 남녀 무용수들의 춤이 펼쳐진다. “요즘 뱀파이어의 인기가 대단하다”고 뱀파이어-콘의 홍보감독 하이디 존슨이 말했다. “우리 할머니도 뱀파이어 팬이다.”

1897년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에서 성적 이미지가 강한 주인공 드라큘라 백작이 미나와 루시의 목을 깨문 후 뱀파이어와 섹스는 밀접한 관계다. 최근의 로버트 패틴슨(‘트와일라잇’의 에드워드 쿨렌)이나 스티븐 모이어와 스카스가르드(‘트루 블러드’의 뱀파이어 듀오 빌 콤프턴과 에릭 노스먼)가 여성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기 오래전인 1979년 존 배드햄 감독의 영화 ‘드라큘라’에서 남성적 매력이 넘치는 프랭크 란젤라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92년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에서 안경 쓴 섹시한 드라큘라로 나온 게리 올드먼도 그랬다. 또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는 1994년 앤 라이스의 소설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를 영화화한 작품에서 뱀파이어로 출연했다. 하지만 요즘 뱀파이어들은 과거의 어떤 뱀파이어보다 더 유혹적이다.


그들은 단지 섹시할 뿐 아니라 여자라면 누구나 그들과 섹스를 하고픈 열망을 품게 만든다. 이 새로운 뱀파이어들은 어떤 측면에선 뱀파이어의 고유한 특성을 잃었다.

성관계 때 콘돔을 사용하는가 하면 일부 뱀파이어(‘트와일라잇’의 뱀파이어들)는 고가 캐주얼 업체 애버크롬비 & 피치의 모델들처럼 찬란한 햇빛 아래서 매력적인 모습을 뽐내기도 한다.

하지만 뱀파이어 전설의 이런 변화는 캐릭터를 더 인간적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이제 뱀파이어는 불안한 10대의 줄리엣들에게 현대판 로미오가 됐다.

‘트루 블러드’의 프로듀서 볼은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뱀파이어의 이야기는 “세상에 동화돼 살아나갈 길을 찾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뱀파이어 같은 사람들이란 세상에서 이해 받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을 뜻한다. 흥미로운 일이다.” 뱀파이어의 섹시함과 잠재적 위험성이 결합돼 전혀 그러리라고 생각되지 않는 여성들까지 그들의 포옹을 갈망하게 만든다. 하지만 요즘의 뱀파이어 열풍은 위험성을 내포한 성적 매력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미국 일리노이주에 있는 오로라대의 영문과 조교수 도노번 그위너는 뱀파이어가 어쩌면 좀 더 큰 문제에서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위너는 자신의 강의 ‘문학과 영화와 대중문화에서의 뱀파이어(Got Blood? Vampires in Literature, Film and Popular Culture)’에서 학생들에게 몇몇 뱀파이어 관련 서적을 읽게 한다.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와 앤 라이스·샬레인 해리스·스테파니 메이어의 통속소설들이 포함된다. “우리는 요즘 세상 살기가 얼마나 힘든가를 두고 많은 토론을 했다”고 그위너는 말했다.

“경기침체와 일자리 상실에 따른 두려움, 전쟁의 공포가 팽배한 시대에 뱀파이어의 전설은 사람들에게 큰 의미를 지닌다. 막강한 힘을 지닌 데다 영생하며, 언제나 카리스마가 넘치고 매력적인 인물이 된다면 나쁠 게 없지 않은가?” 현대 뱀파이어 소설 작가들도 그런 사실을 증명한다.

베스트셀러 소설 ‘뱀파이어 헌터 애니타 블레이크(Anita Blake, Vampire Hunter)’ 시리즈의 작가 로렐 K 해밀턴은 뱀파이어의 이미지는 언제나 강렬하게 그려졌다고 말했다. “송곳니와 흡혈, 황홀경 등. 독자들은 뱀파이어와의 섹스가 여자로서 경험하는 최상의 섹스가 되리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왜 안 그렇겠는가? “뱀파이어들은 보통 수세기 동안 축적된 경험이 있지 않으냐?”고 샬레인 해리스는 말했다. 게다가 해리스가 그리는 뱀파이어들은 세상 밖으로 당당하게 나와 인간들과 어울려 살아간다. 동네 상점에서 파는 인조 혈액 덕분이다. 하지만 뱀파이어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영원한 젊음이라고 그녀는 믿는다.

“우리에겐 젊음을 유지하고픈 열망이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뱀파이어는 사회보장이나 무릎 인공관절 수술 따위는 걱정하지 않는다. 얼마나 부러운 이야기인가?”해리스는 작품에 등장하는 뱀파이어의 모습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릴 수 있지만 약간의 압박감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뱀파이어(적어도 일부 뱀파이어)를 단지 살인 기계로만 묘사해선 안 되고 섹시함을 유지하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녀는 한 책에서 뱀파이어를 살인 기계로 보이게 할 만한 장면을 삭제했다. 뱀파이어와 텔레파시가 통하는 대담한 웨이트리스 수키 스택하우스가 자신의 뱀파이어 연인 빌이 인간들과 ‘어울려 살기’ 이전에 살해한 사람들의 숫자를 계산기로 계산하는 장면이다.

“재미있으면서도 끔찍한 장면이다. 수키가 계산기를 들고 계산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해리스는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수키가 계산한 희생자 수가 10만 명이 넘어도 빌을 여전히 매력적인 인물로 보기는 매우 어려우리라고 생각됐다.”그러나 잠재적인 죽음의 위험성은 뱀파이어에게 성적 매력을 부여하는 큰 요인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드살레스 대학의 심리학 교수 캐서린 램스랜드는 뱀파이어에게 매료되는 현상을 “일종의 자기성애적 질식(오르가슴을 얻으려고 스스로 목을 매는 등의 방법으로 저산소증을 유발해 거기서 헤어나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는 현상)이다.

다만 실제로 죽지는 않는다는 점이 다를 뿐”이라고 설명했다. “뱀파이어와 관련된 환상의 90%가 성적 환상이다. 그것은 곧 위험한 섹스를 의미한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램스랜드는 저서 ‘어둠을 뚫고(Piercing the Darkness)’를 쓰려고 몇 년간 뱀파이어의 열성 팬들을 조사했다.

드라큘라의 환상을 실생활로 옮기는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는 변호사, 주식중개인, 정치인 등 전문직 종사자도 많았지만 인생의 방향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램스랜드는 대다수 여성이 뱀파이어 사냥꾼보다 희생자가 되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뱀파이어의 유혹을 받고 그들에게 피를 빨리고 싶어 하는 심리가 이상하게 느껴졌다”고 그녀는 말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자신을 던져 넣고 싶어 하는 여성이 정말 많았다. 여성들이 아직도 그 정도 수준일 줄은 몰랐다.”인터넷 게시판과 채팅방, 팬 클럽 모임 등에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유혹을 받고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는 과정이 환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트루 블러드’의 인기 팬 사이트 true-blood.net의 편집자이자 공동소유주인 멜리사 로워리(34)는 “잠시 동안 다른 누군가가 자신을 마음대로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많은 듯하다”고 말했다. 지난 한 달 동안 이 사이트를 다녀간 방문객 수는 14만 명이 넘는다.

로워리는 3700건의 댓글을 살펴본 후 한 가지 공통적인 주제를 발견했다. “여성들은 뱀파이어를 자신에겐 다정하고 친절한 연인일지라도 다른 누군가의 다리를 잘라내고도 남을 만한 힘을 지닌 존재로 생각한다. 여성들은 보호받고 싶은 본능이 있다. 그리 나쁘게 볼 일은 아니다.”

그것은 어쩌면 성인들이 여전히 가슴속에 억눌러온 청소년기의 불안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하버드 의대 정신과 조교수 스티븐 숄즈먼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난 키가 작은 유대인 남성인데 뱀파이어를 좋아한다. 고통스러운 관계가 주는 색다른 느낌 때문이다.”

숄즈먼은 정신과학 학회지 ‘아카데믹 사이카이어트리’에 발표한 논문 ‘뱀파이어와 뱀파이어를 잡는 사람들(Vampires and Those Who Slay Them)’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버피버스[Buffy-verse: 드라마 ‘버피와 뱀파이어(Buffy the Vampire Slayer)’의 팬들이 이 드라마의 배경인 가상의 우주에 붙인 이름]는 많은 성인이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청소년기의 성장통을 반영한다.”

‘버피와 뱀파이어’의 한 에피소드에서 버피는 투명인간이 되어 나쁜 뱀파이어 스파이크를 골탕 먹인다. 숄즈먼은 이 장면을 성인들이 뱀파이어 연인에게 느끼는 청소년 같은 동경의 ‘완벽한’ 비유로 본다. “뱀파이어와 섹스를 하고 싶지만 뱀파이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심정을 잘 나타냈다.”

뉴욕시에 사는 홍보 전문가 말리즈 엥걸 트레이버(25)는 숄즈먼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한다. 그녀는 ‘버피와 뱀파이어’의 팬이었던 10대 시절 이후 줄곧 뱀파이어 관련 작품에 탐닉했다. ‘트와일라잇’ 소설 전편을 다 읽었고 영화도 세 번이나 봤다. 요즘은 남편 톰과 함께 일요일마다 ‘트루 블러드’를 시청한다.

그녀에게 뱀파이어물은 나쁜 줄 알면서도 끌리는 ‘금단의 열매’ 같은 존재다. “로맨스 측면에선 ‘트와일라잇’을, 그 밖의 다른 면에선 ‘트루 블러드’를 좋아한다”고 트레이버는 말했다. “화면에서 본 일들이 종종 실생활에서도 일어난다고만 말해 두자. 남편은 내가 이 드라마를 좋아하는 걸 기쁘게 생각한다.” 다음엔 뱀파이어 전문 결혼상담사가 등장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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