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맹모삼천지교’에 한국경제 멍든다
대치동‘맹모삼천지교’에 한국경제 멍든다
#사례1 대치동 1학년 136명 vs 6학년 395명강남구 대치동에서 명문으로 손꼽히는 A초등학교. 강남 주부의 비뚤어진 교육열을 제대로 꼬집어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강남 엄마 따라잡기’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이 초등학교에선 매년 기현상이 벌어진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학생 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이다. 올 9월 현재 이 학교의 1학년 학생 수는 4개 학급 136명.
그런데 6학년은 11개 학급 395명에 달한다. 6학년 학생 수가 1학년 대비 190% 많은 셈이다. A초등학교만 그런 게 아니다. 대치동 소재 나머지 초등학교 3곳의 사정은 비슷하다. 이들 3개 학교의 1학년, 6학년 평균 학생 수는 각각 156명, 323명이다. 6학년 학생 수가 1학년보다 평균 2배 이상 많다.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제 아이를 대치동의 유명한 학교에 일찌감치 보내려는 학부모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엔 국제중학교의 폭발적 열기도 한몫 톡톡히 한다는 분석이다.
초등학교 5학년인 큰아들을 대치동 소재 학교에 전학시킨 학부모 김진영(가명·40)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대치동에서 학교를 다녀야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며 “대치동은 강북 학부모 사이에서 희망으로 통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중학교부터 제대로 교육을 받지 않으면 그야말로 끝”이라며 “일류대로 가는 관문은 중학교”라고 강조했다.
규모 3.5㎢, 인구 10만여 명에 불과한 대치동. 그러나 교육 열기와 분위기만큼은 최상, 최고급이다. 이 때문인지 위장전입을 해서라도 대치동 학교에 보내려는 학부모가 적지 않다.
#사례2 범죄의 유혹에 빠진 엄마 이야기두 아들을 둔 강남구 역삼동 학부모 한순애(가명·41)씨. 그는 지난해 대치동 소재 유명 C중학교에 큰아들을 보내기 위해 위장전입을 꾀했다. C중학교의 6대 외고 진학률(전체 학생 수의 5.4%)은 전국 1위다. 한씨는 “욕심 낼 만하지 않은가”라고 했다. 마침 C중학교 옆 아파트엔 절친한 친구가 살고 있었다.
이제 전입신고만 하면 큰아들의 C중학교 진학은 떼놓은 당상. 강남구 교육청의 중학교 배정 원칙은 근거리이기 때문이다. “주민센터에 전입신고 하러 갔을 때, 얼마나 떨렸는지 몰라요. 이것저것 물어볼까 봐서요. 그런데 의외로 쉽더라고요. 신원확인만 했다니까요.” 위장전입이 법망을 뒤흔들면서 판을 치는데, 단속의 칼날은 무디기 짝이 없다는 얘기다.
비뚤어진 교육, 집값 왜곡
사회 고위층은 위장전입을 하고도 장관 후보에 버젓이 나오는데, 우리는 왜 안 되는 거냐다. 이귀남 법무장관 후보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이귀남 후보자는 1997년 9월 1일 장남이 원하는 고교에 배정되도록 하기 위해 위장전입을 했다는 사실이 최근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났다.
한씨의 불감증은 사회 고위층의 모럴 해저드가 아래로 전이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런 비뚤어진 교육열이 초래하는 것은 불법만이 아니다. 주변 집값도 왜곡한다. 건설된 지 수십 년이 흐른 대치동 M아파트. 시세는 3.3㎡당 3000만원에 이를 정도로 비싸다. 흥미로운 점은 이 아파트의 1, 2단지 가격이 각각 다르다는 것이다.
매물이 많을 땐 (같은 평형대 기준으로) 1단지 가격이 2단지보다 3000만원가량 비싸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학군 프리미엄 때문이다. 1단지에 사는 초등학생은 대부분 명문 C중학교에 진학한다. 반면 2단지 학생들은 다른 중학교에 배정될 가능성이 높다. 1단지 아파트 가격이 2단지보다 비싼 이유다.
학군이 집값을 부풀리고 있는 셈이다. 사례는 더 있다. 대한민국 ‘부의 상징’ 도곡동 타워팰리스 1차 138㎡의 가격은 올 7월 현재 20억원이다. 그런데 완공된 지 20년이 훌쩍 흐른 우성아파트 2차 128㎡ 가격은 24억원에 이른다. 타워팰리스보다 작고 오래됐음에도 4억원가량 비싸다.
이유는 역시 학군 프리미엄이다. 우성아파트 2차에 거주하는 초등학생은 명문 C중학교에 배정되지만 타워팰리스는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내집마련정보사 양지영 팀장은 “강남 집값은 학군 프리미엄 탓에 상당부분 부풀려진 측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대치동이 위장전입으로 몸살을 앓고, 집값에 거품이 잔뜩 끼는 것은 비단 공교육 때문만은 아니다.
대치동의 사교육 열기도 한몫 거들고 있다.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는 명실공히 대치동이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대치동 학원 수는 9월 현재 600개를 훌쩍 넘는다. 목동(308개), 중계동(271개)보다 훨씬 많다. 양만 많은 게 아니다. 이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상의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스타급 강사 모셔오기는 기본이고 각종 교육 서비스도 최고 수준이다. 그렇지 않으면 살벌한 ‘대치 학원 전쟁’에서 생존하기 어렵다. 사교육비 지출이 부담스럽지 않은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와 목동, 중계동 학부모가 아이들을 대치동에 보내는 이유다. ‘강남3구·목동·중계동의 꼭짓점은 대치동’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대치동에선 어쩌면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지고 있을지 모른다.
타워팰리스의 굴욕? 학군 때문
노후가 산산조각 날 우려도 있다. 국가경제도 악영향을 받는다. CJ 전략기획팀 김정호 박사에 따르면 국내 평균 소득의 가구(월 평균 소득 320만원·사교육비 65만원)가 사교육비 20만원을 더 쓰려면 임금을 6% 더 받아야 한다.
그러면 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는 각각 1.7%, 1.9% 오른다(한국은행 물가파급 보고서). 당연히 수출 단가가 0.5% 올라, 수출물량 0.8%를 떨어뜨린다. 수출물량 감소는 투자 및 생산 감소에 영향을 끼치고, 결국 소득감소와 실업률 증가로 이어진다.
무리한 사교육비 증가가 국가경제를 멍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본지 957호 참조). 이명박 대통령,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나서 “사교육비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블루스. 가진 자에겐 애틋한 추억을 되살리게 하지만 없는 자에겐 외로움을 주는 절절한 음악이다. 대치동 블루스도 어쩌면 마찬가지다. 감당하기 힘든 학부모에겐 부담스럽고, 블루스가 익숙지 않은 아이들은 듣기 괴롭다.
그렇다고 점점 커지는 교육 양극화 현상을 먼 산 불구경하듯 지켜볼 수도 없다. 불법을 조장하고, 집값을 부풀리고, 게다가 가계와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맹목적인 ‘대치동 맹모삼천지교’에 이젠 칼을 대야 한다. 블루스가 슬프다고 마냥 상념에 빠져 있을 순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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