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경기침체에도 ‘유령’은 건재
최악의 경기침체에도 ‘유령’은 건재
1986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영국에서 처음 공연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 공연이 전 세계적 인기를 끌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1970년 스물두 살에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로 스타가 되었고 연이어 ‘에비타’ ‘캐츠’의 성공으로 뮤지컬의 황제란 칭호를 얻은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작품이었지만 역시 ‘오페라의 유령’은 다소 위험한 도전으로 보였다. 이 작품은 이미 소설, 그리고 몇 번의 영화화를 거친 콘텐트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인기 아시아로 퍼져그러나 그의 탁월한 음악성으로 성공할 수 있었고 2년 뒤인 1988년 뉴욕 브로드웨이에도 진출하게 된다. 이때부터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오페라의 유령’을 세계화하기 위한 포석을 두기 시작한다. 그는 이때 이미 이 작품을 영화화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당시 웨버는 ‘배트맨 포에버’ 감독인 조엘 슈마허의 ‘THE LAST BOY’를 관람한 후 그를 점찍어 뒀다.
그리고 2004년 이 작품은 영화화됐다. 영화화되기까지 15년이 흐르는 동안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바쁘게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27개국 144개 도시에서 공연된 ‘오페라의 유령’은 약 1억 명이 관람했으며, 50억 달러 이상의 수입을 거둬들였다. 브로드웨이와는 좀 떨어진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시에선 2002년 ‘오페라의 유령’이 약 한 달 동안 공연된 적이 있다.
공연 후 디모인시는 약 400만 달러의 티켓 판매수입이 있었으며 적어도 티켓 판매액의 2배에 달하는 경제유발효과가 있었다고 발표했다. 관광객이 공연을 보기 위해 시를 찾아오고 주변 식당가에 활기가 돌았다는 것이다. 쇼 비즈니스의 천국이라 할 수 있는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이런 경제유발효과를 노리고 ‘오페라의 유령’을 유치하기 위해 4000만 달러를 들여 공연장을 지었다.
종연을 예상할 수 없이 계속되는 뉴욕 브로드웨이와 영국 웨스트엔드 공연은 말할 것도 없다. ‘오페라의 유령’은 2006년 ‘캐츠’의 7486회 공연기록을 경신했고 2009년 9월 17일 브로드웨이 9000회 공연을 돌파했다.
세계 27개국에서 50억 달러 매출흥행 행렬에는 한국도 포함된다. 최근 다시 장기공연에 들어간 이 작품은 2001년 처음 한국 무대에 올랐다. 2001년 12월부터 2002년 6월까지 7개월간 총 244회 공연됐으며 객석 점유율 94%, 24만 관객 기록을 달성하는 성공을 거두었다. 이 수치는 단일 공연으로는 아직 깨지지 않았다.
8개월간 공연되었던 ‘아이다’와 1년간 공연되었던 ‘라이언킹’ 역시 ‘오페라의 유령’ 기록엔 도달하지 못했다. 한곳에서 흥행하면 또 다른 곳으로 흥행이 전염되곤 했는데 한국 라이선스 공연의 대성공 이후 2005년 한국 공연계로는 최초로 RUC(RUG의 아시아·태평양 지사)와 설앤컴퍼니가 공동 제작한 월드투어가 좋은 예다.
이 월드투어는 중국, 남아공에서 전석 매진을 기록했으며 한국에서 역시 100회 공연 동안 객석 점유율 99%로, 실질적인 전석 매진 기록을 세우며 총 20만 명이 관람했다. 이쯤 되면 ‘오페라의 유령’을 가장 세계화된 문화상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목할 것은 최근 ‘오페라의 유령’ 티켓 판매율이 북미나 유럽 지역뿐 아니라 아시아 비율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회사이자 ‘오페라의 유령’을 제작하는 영국의 RUG(The Really Useful Group)의 아시아·태평양지사 RUC에 따르면 “크게 북미, 유럽, 아시아 지역으로 세계를 나눌 때 점차 아시아 매출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같은 회사의 ‘캐츠’는 일본에서 7000회 공연을 했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의 지속적 성장은 경기침체 속에서 이뤄낸 것이어서 의미가 깊다. ‘주라기공원’ 같은 할리우드 영화가 20주 정도 개봉된다면 ‘오페라의 유령’은 무려 23년 동안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영국에서 미국 그리고 아시아로 이어지는 흥행 돌풍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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