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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해 양팔 모두 잘랐다”

“살아남기 위해 양팔 모두 잘랐다”

■ 미국 모토롤라 1500만 달러 투자 없었으면 지금의 팬택도 없다 ■ 모토롤라 레이저폰 히트 칠 줄 예상치 못했다 ■ 2006년 레이저 쓰나미 몰아쳤을 때 빠르게 조직정비 했어야 ■ 신뢰하는 임원 내치지 않았다면 구조조정 실패했을 터 ■ 팬택의 새 DNA는 자율과 열정 그리고 맷집 ■ 팬택 신화 끝나지 않았다. 잠시 주춤했을 뿐이다

한눈에 봐도 주름살이 부쩍 늘었다. 몸무게는 7~8㎏ 빠진 듯했다. 벤처신화의 주인공에서 부실기업 오너로 추락…. 그것도 1991년 팬택 창업 이후 처음 맛본 고배.

아무래도 팬택계열 박병엽 부회장에게 전달된 충격파가 이만저만 아니었던 모양이다. 9분기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가며 재기의 날개를 펴고 있는 지금, 박 부회장은 “남아 있는 것은 독기뿐”이라고 했다.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는 일념 하나로 워크아웃 기간을 묵묵히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10월 16일 팬택 본사 19층에 위치한 부회장실에서 그를 만났다. 시종일관 밝은 미소를 보였지만 때론 목멨고, 때론 언성도 높였다.


모토롤라 덕에 웃고, 모토롤라 탓에 울고
>> 언론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게 공식적으로 2006년 말 이후 3년여 만입니다. (인터뷰 전날 팬택은 기자간담회를 열었고, 이 자리엔 박 부회장이 참석했다.) 몸무게가 많이 준 것 같습니다.“그래 보입니까? 7~8㎏은 빠진 것 같아요. 마음고생이 심해서…. 주름살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습니다.(웃음)”

박 부회장의 속앓이. 생각보다 심했을 게다. 자신이 창업한 팬택이 워크아웃 기업으로 전락했으니, 두말하면 잔소리 아니겠는가. 더구나 첫 번째 시련이었다. 박 부회장은 팬택이 워크아웃에 돌입했던 2006년까지 성공가도를 질주했다. 그의 꼬리엔 늘 ‘신화’라는 말이 따라붙을 정도였다. 무리도 아니었다.

자본금 4000만원에 직원 6명으로 시작한 무선호출기 제조업체에서 연 매출 3조원 휴대전화 제조사로 변신. 창업 후 2005년까지 연 평균 50%가 넘는 성장률. 호사가들은 신화, 그 이상의 단어가 있었다면 여과 없이 붙였을지 모른다. 물론 이런 고속성장을 곱지 않게 바라보는 시선도 많았다.

“정·관계 인맥 때문에 컸다”는 루머는 박 부회장을 따라다니는 또 다른 꼬리표였다. 그는 아직도 이 말만 들으면 울화통이 터진다고 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 이야기 아닌가요? 팬택은 수출 중심 기업입니다. 경쟁사도 삼성전자, LG전자죠. 우리가 인맥의 도움을 받았다? 만약 그랬다면 경쟁사가 가만히 나뒀겠습니까? 가당치도 않은 소리입니다.”

틀린 말이 아니다. 팬택의 고속성장 밑거름 중 하나는 발 빠른 변신이었다. 무선호출기로 승부를 걸기 어렵다는 판단으로 사업방향을 과감하게 휴대전화로 돌린 게 주효했다. 팬택을 창업한 지 6년 만인 1997년 LG정보통신(현 LG전자)으로부터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계약을 따내, 그해에만 76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글로벌 휴대전화 제조업체 모토롤라도 팬택 성장을 도왔다. 1998년 모토롤라는 1500만 달러를 투자했고, 이를 발판으로 팬택은 2000년 287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 모토롤라가 성장의 발판을 마련해 준 격이군요.“부인할 수 없습니다. 모토롤라의 투자가 없었다면 지금의 팬택은 없었을지 모릅니다.”


>> 모토롤라가 왜 팬택에 투자했는지 궁금한데요.“모토롤라는 한국시장을 아주 만만하게 봤어요. 그런데 삼성전자가 CDMA폰으로 점유율을 높이니까 안 되겠다 싶었나 봐요. 그래서 우리를 인수하려 했죠. 엄청난 금액을 제시했지만 거절했죠.”

박 부회장은 모토롤라가 인수자금으로 얼마를 제시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큰 액수라는 말만 할 뿐…. 궁금하다. 인수제안을 단칼에 거절한 이유는 무엇일까.

“제가 창업한 팬택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게 유일무이한 꿈입니다. 그때도 그랬죠.” 당시도, 지금도 그에게 중요한 것은 돈보다 꿈이라는 얘기다.


>> 인수를 거절하니까 투자했다는 말이 되는군요. 뜻밖입니다.“그렇습니다. 총 1500만 달러를 투자했죠.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죠. 우리에겐 큰 발판이 됐습니다. 제대로 된 기업이, 제대로 투자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죠. 더욱 갚진 것은 모토롤라의 수준 높은 경영문화를 배울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우리에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파트너였죠.”

경제정글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좋은 파트너 모토롤라가 팬택에 비수를 꽂을지 그때까진 박 부회장도 몰랐다. 경제정글의 냉혹함이 읽힌다. 팬택이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2006년 중순.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에 이른바 ‘레이저 쓰나미’가 몰아쳤다.

모토롤라의 레이저 휴대전화가 예상을 깨고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팔린 양만 해도 7000만여 대에 달했다. 여기도 레이저, 저기도 레이저, 곳곳이 레이저였다.


>> 2006년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을 강타한 ‘레이저 쓰나미’가 팬택을 부도 위기에 빠뜨렸죠?“그렇습니다. 레이저 때문에 덤핑을 쳐도 팔리지 않았죠. 당연히 재고가 쌓였고, 적자폭은 연일 커졌습니다.”


>> 예상하지 못했습니까?“솔직하게 말해야겠죠. 그렇게 히트 칠 줄은 몰랐습니다.”

2006년 한 해, 팬택은 339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2007년 상반기 적자까지 포함하면 5000억원에 이른다. 팬택은 속수무책이었고, 박 부회장도 손쓸 틈이 없었다. 그는 “최고경영자로서 두 가지 실수를 범했다”고 털어놨다.


>> 두 가지 실수는 무엇입니까?“일단 레이저의 인기를 예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나름의 이유야 있지만 모두 제 탓이죠. 두 번째 실수는 수습시기를 놓쳤다는 것입니다. 빨리 경영전략을 재조정해야 했는데, 여의치 않았습니다. 긴박한 조치가 한 템포 늦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은행들까지 목줄을 조이더군요. 시중은행들은 2006년 한 해 2000억원을 회수하고, 2000억원의 신용거래를 중단했습니다. 한꺼번에 4000억원이 날아가버린 셈이었죠.”


채권은행들 “법정관리 외 방법이 없다” 압박

>> 당시 심경을 듣고 싶습니다.“울다가, 웃다가, 또 울다가…. 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망연자실이었죠.”

2006년 11월, 박 부회장은 갈림길에 섰다. 법정관리냐, 워크아웃이냐였다. 은행들은 법정관리밖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럴 만도 했다. 당시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소멸된 상태. 워크아웃이 개시되려면 채권단 100% 동의가 필요했다. 기촉법만 살아 있었다면 75% 동의만 받으면 됐다.

문제는 또 있었다. 팬택의 채권자 가운데 소액주주가 많았다는 점이다. 당시 팬택 부채는 1조1000억원 선. 그중 6000억원가량은 산업은행을 포함한 10여 개 시중은행의 채권. 나머지는 개인·새마을금고·신협 등으로 구성된 소액 채권자의 몫이었다. 이들이 워크아웃 개시에 동의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 자포자기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였습니다. 독기가 생기더군요. 그래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 계기가 있었습니까?“2006년 11월 워크아웃 신청을 하자마자 산업은행은 관리인을 우리 쪽에 파견했습니다. 그런데 관리인이 이렇게 얘기했다고 하더군요. ‘3개월이면 복귀한다’고 말입니다. 그때 ‘이렇게 무너질 순 없다’고 다짐했죠.”

박 부회장은 곧장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4500억원에 이르던 주식 대부분을 처분했다. 채권은행은 물론 소액 채권자들도 일일이 찾아다녔다. 여기엔 박 부회장의 눈물겨운 호소가 숨어 있다. 칼바람이 불었던 2006년 겨울. 박 부회장은 혈혈단신으로 100여명에 이르는 부산 새마을금고 채권자를 만나러 갔다. 싸늘한 분위기.

모두 박 부회장을 죄인처럼 쳐다봤다.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중앙단상으로 나가 90도로 꾸벅 인사를 하고 이렇게 소리쳤다고 한다.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내 책임입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도 없습니다. 15년 동안 단 한 번 실수해 이 지경이 됐습니다. 반드시 회생시키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진심은 얼어붙은 마음을 녹이게 마련이다. 부산 새마을금고의 채권자들은 박 부회장에게 박수를 보냈다. 워크아웃을 신청한 지 5개월 만인 2007년 4월. 박 부회장은 100% 가까운 동의를 얻어 워크아웃 개시결정을 얻어낸다. 기적이었다.

“15년 동안 단 한 번 실패했다”

이후 박 부회장은 과감한 구조조정을 꾀했다. 임원 70명을 먼저 내보냈다. 그 가운덴 워크아웃 개시를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었던 박 부회장의 오른팔, 왼팔도 포함돼 있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단이었다. 적자투성이였던 현대큐리텔을 인수했을 때조차 단 한 명도 자르지 않았던 그였기 때문이었다.


>> 인적 구조조정은 박 부회장의 스타일과 다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회사가 중요했습니다. 제가 신임하는 사람을 정리하지 않으면 구조조정의 명분을 찾을 수 없었죠. 창업주가 시베리아 벌판에 홀로 섰구나 하는 비장함을 주지 않으면 안 됐습니다.”

박 부회장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마음에 단단히 걸리는 모양이었다.


>> 그야말로 읍참마속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아직도 마음 한편에 미안함이 남아 있나 봅니다.“생각이 나죠.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줬죠. 나는 어쩔 수 없이 회사를 살려야 할 책임이 있으니 이해해 달라고…. 살기 위해 오른팔, 왼팔을 자를 수밖에 없는 것, 처참한 기억입니다.”

박 부회장이 구조조정만큼이나 심혈을 기울인 것은 또 있다. 마인드 변화다. 명령과 지시에 의해서가 아닌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그런 문화를 원했다. 그가 자율코드 정착을 얼마나 밀어붙였는지 알 수 있는 사례 중 하나. 당시 박 부회장이 금기어로 지정한 게 있었다. 제출·승인이었다. ‘경영계획 채권단 제출·승인’이라는 문구만 보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 제출, 승인이라는 말은 통상적 단어 아닙니까? 호통까지 칠 필요는 없었을 것 같은데요.“그렇지 않습니다. 경영계획은 우리 스스로 달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의식하고, 누군가에 의존하면 팬택의 미래는 없다고 봤습니다. 설사 그게 저여도 마찬가집니다. 제가 말하는 자율은 채권단, 최고경영자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했습니다.”


>> 채권단은 그렇다 치더라도 최고경영자로부터의 독립은 낯설게 느껴집니다.“제가 없을 때도 팬택은 무리 없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팬택의 힘은 직원들의 자율에서 나와야 합니다.”

박 부회장의 ‘자율경영’ 의지는 조직 전반에 퍼지고 있다. 팬택 직원들은 주말을 반납한 지 오래다. 매주 토요일 적게는 300명, 많게는 1200명이 일한다. 매주 일요일에도 100명 안팎의 인원이 상시 근무한다. 자율경영이 조직을 관통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 마인드 개선만큼이나 전략도 많이 수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픽스앤맥스(Fix&Max) 전략인데요.“자원과 지출은 고정하면서 효율성은 극대화하자는 것입니다. 회사 상황이 어려운 만큼 한정된 내부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효율을 최대한 끌어올리자는 취지죠. 이는 이른바 ‘3효 전략’으로 업그레이드됐습니다. 효율적인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고, 연구개발의 효율효용을 증대하면서 비효율적 요소를 제거하자는 것이죠.”


>> 해외시장 진출 전략을 ‘팽창’에서 ‘선택과 집중’으로 바꾼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그렇습니다. 버릴 곳은 버리고, 가능한 곳은 집중 공략하자는 것이죠. 그것도 대충 공략하는 게 아니라 맞춤형으로 말입니다. 가령 모바일 인터넷 등이 가능한 스마트폰 수요가 높아지는 북미시장에선 고급 스마트폰을 출시하고, 음악문화가 발달한 중남미에선 뮤직폰으로 공략하는 식이죠. 국내에서 추진하는 사업자별 맞춤폰도 같은 전략입니다.”


>> 재무개선을 위한 노력도 눈에 띕니다. 특히 반도체 칩 제조사 퀄컴에게 지급해야 할 로열티 미지급액 7600만 달러를 출자전환한 것은 돋보입니다. 협상이 만만치 않았을 듯합니다. 퀄컴사로선 손해보는 장사라는 생각이 들테니까요.“협상 과정이 간단치 않았습니다. 폴 제이콥스 회장과 구두 합의하고 성사될 때까지 수개월이 걸렸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저는 성사될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안 되면 되게 하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사실 퀄컴의 출자전환은 의미가 큽니다. 우리의 기술력과 성장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는 얘기니까요.”

이런 노력 덕분인지 팬택의 실적은 날로 개선되고 있다. 이 회사는 올 3분기 매출 5557억원에 영업이익 418억원을 올렸다. 2007년 3분기 이후 9분기 연속 영업흑자다. 올해 매출은 2조2000억원, 영업이익은 21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잠정 집계된다. 휴대전화 판매량도 2007년 750만 대, 2008년 970만 대 등으로 증가추세다.

올해엔 1100만 대가 팔릴 전망이다. 워크아웃 개시 전 판매량(2006년 1510만 대)의 63% 수준이다. 주목할 점은 팬택의 프리미엄 브랜드 스카이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로 론칭 10년째를 맞은 스카이의 총 판매량은 1530만여 대. 이 가운데 지난 3년간 판매된 수량은 740만 대로, 전체의 48%에 이른다.

‘스카이는 매니어층을 위한 브랜드’라는 선입견이 깨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박 부회장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잘라 말한다.


>> 워크아웃 졸업이 2년 정도 남았습니다. 지금 중요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글로벌 기업과 본격적으로 경쟁할 수 있기 위해선 내부 전열을 정비해야 합니다. 2011년 12월까지 연구개발투자를 꾸준히 늘리는 등 장기성장에 필요한 내실을 쌓을 방침입니다. 이런 계획이 차질 없이 추진되면 2013년 휴대전화 판매 2500만 대, 매출 5조원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 팬택과 팬택앤큐리텔의 합병도 선언하셨는데요.“지금 필요한 것은 경영 효율화입니다. 세계 시장에서 더 큰 성과를 내기 위해선 강력한 시너지가 필요합니다. 두 법인은 현재 사실상 하나의 법인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두 개 법인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영활동을 제외한 조직·업무·프로세스·의사결정체계 등을 통합해 놓은 상태죠. 두 법인이 합병되면 업무상 비효율과 일부 자원의 중복 요소를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마사이족처럼 집착하라”
하지만 팬택으로선 한 가지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내실을 탄탄하게 하기 위해선 투자가 필요하지만 곳간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팬택의 부채 규모는 현재 5000억원가량. 더구나 워크아웃도 2년여 남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를 늘린다는 것은 무모한 전략 아닐까?


>> 아직 투자를 늘릴 때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병마와 싸우는 동안 글로벌 기업들은 한 걸음 전진했습니다. 연구개발투자를 늘려 경쟁사보다 월등한 기술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판매량을 늘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판매량을 늘려야 부품가격 등 원가가 떨어집니다. 규모의 경제를 꾀하기 위해서라면 투자가 수반돼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박 부회장은 워크아웃 경험이 새로운 자신감을 줬다고 말했다. 이젠 어떤 역경도 능히 이겨낼 수 있는 비법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별게 아니다. 벼랑 끝에 몰려도 열정과 집념만 있으면 회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마사이족을 아십니까? 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고 하더군요. 왜 그런지 아십니까? 올 때까지 지내기 때문입니다(웃음).” 악착같이 달려들면 꿈은 이뤄진다는 뼈 있는 농담이자 그가 바라는 팬택의 미래 DNA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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