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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경제 좌절시킨 보수파의 모험

개혁경제 좌절시킨 보수파의 모험

▎지난 8월 평양시내에 새로 문을 연 보통강 상점을 찾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지난 8월 평양시내에 새로 문을 연 보통강 상점을 찾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북한 경제가 갈림길에 섰다. 아니 이미 한쪽으로 접어들었다. 2000년 이후 2004년까지 개혁 성향으로 기울던 북한의 경제정책은 2005년부터 보수적 방향으로 선회했다.

11월 30일의 화폐개혁 조치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 10년간 북한에서는 두 세력 간의 치열한 정치, 사회적 투쟁이 전개됐다. 구체제의 특권을 재편, 연장하려는 강력한 수구세력이 한편이고, 아직 힘은 미약하지만 미래를 잉태하면서 강화되는 신흥세력이 다른 한편이었다.

북한의 개혁정책은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준비돼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로 가시화됐다. 북한의 개혁은 2003년 9월 박봉주가 총리로 임명되면서 한층 탄력을 받았다. 그는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박봉주는 경제정책 결정권과 아울러 내각의 인사권까지 장악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중심 국가인 북한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2004년 들어 북한의 개혁은 상당히 대담한 양상을 보여준다. 포전담당제(농가생산책임제)의 시범 실시, 기업의 경영 자율성 제고, 계획 체계의 분권화, 기업 실적 평가에서 현물 지표 대신 화폐 지표 도입, 기업의 임금결정 자율성 확대 등이다.

김 위원장의 지원과 개혁 조치 실시에 고무된 박봉주는 2004년 중반 이후 보다 대담한 경제개혁을 위한 정책 시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개혁의 기본 개념은 중국이 1984년부터 실시했던 ‘사회주의 상품경제’에 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 핵심은 국가가 국영기업에 대한 지령성 계획 하달을 포기하고, 국영기업의 상업적인 독자 경영을 허용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경제적 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이는 ‘국영기업으로 구성된 시장경제’ 도입으로도 인식될 수 있다. 박봉주의 이러한 개혁 조치에 당과 군 등 기존세력은 긴장했다.

개혁이 추진되면 내각 권한이 강화되는 반면, 당과 군의 경제 특권과 경제 간섭은 축소되게 마련이다. 2004년 4월 당시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한 사람이던 장성택이 실각했다. 수십 명의 측근이 동반 실각했다. 아울러 그가 관장했던 일련의 경제사업이 내각으로 이관됐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중앙당의 구조조정이었다.

2004년 9월부터 11월 사이 중앙당 인원의 40%가 축소됐다. 경제정책에서 전권을 행사하던 경제정책 검열부와 농업정책 검열부가 폐지됐고, 그 권한은 내각으로 이전됐다. 이러한 대담한 개혁 시도에 당과 군의 권력기관이 2005년 초부터 반격에 나섰다. 그 저항의 중심엔 개혁 추진으로 손해를 보게 되는 5대 세력이 있었다.

군부, 군수공업관련 세력, 당 경제 세력, 내각에 뺏긴 권한을 회복하고자 하는 당기관, ‘비사회주의’ 현상의 만연을 우려하는 공안 세력이 그것이다. 마침내 이들이 힘겨루기에서 일정부분 승리하면서 경제 정책 관련 권한을 재차 장악했다. 그 단초가 2005년 9월 중앙당에 계획재정부가 신설되고 박남기가 부장으로 임명된 사건이다.

중앙당에 경제정책 담당 부서가 또다시 신설된 것이다. 내각의 경제정책 권한과 인사권도 당으로 환원됐다. 그후 박남기는 지금까지 북한의 대내경제정책 추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5년 이후 전반적인 경제정책의 향배는 이렇다. 우선 보수파는 시장에 대한 적대감을 확실히 내보였다.

시장은 무질서와 비사회주의 현상의 온상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에 대한 국가의 장악력이 강화되고, 시장은 억제되어야 했다. 각종 시장 억제책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강화됐다. 2005년 10월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배급제의 부활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식량전매제가 실시되기도 했다.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던 시기, 장성택이 공안 및 사법을 책임지는 중앙당 행정부장으로 복귀했고, 시장의 통제는 한층 더 강화됐다. 2008년 8월 26일 김정일 위원장은 급기야 ‘시장은 비사회주의의 서식장’이라는 교시를 하달했다. 2008년 말에는 2009년부터 종합시장을 과거식 농민시장으로 전환한다는 정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6월 UN의 대북 제재 결의안 통과를 비난하는 북한군.

▎지난 6월 UN의 대북 제재 결의안 통과를 비난하는 북한군.

2009년에는 ‘150일 전투’라는 고전적 동원경제 수법도 활용됐다. 다음으로 2000~2004년 동안 추진됐던 개혁정책이 철폐되고, 이 시기에 득세했던 세력을 억압했다. 특히 박봉주 총리가 추진했던 개혁적 경제조치는 대부분이 철폐됐다. 이 시기 동안 내각으로 이관됐던 이권 사업은 모두 당 등으로 원위치 했다.

또한 이 시기 동안 개혁정책과 대남경협 일선에 섰던 주요 인물들도 숙청됐다. 2006년 6월부터 박 총리는 공식활동을 중단했다. 2007년 4월에 그는 김영일로 교체됐다.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되기 직전인 2007년 9월부터 남북경제협력 관련 기관과 인물에 대한 전반적 조사가 시작됐다.

일련의 주요 인물이 2008년 초까지 모두 숙청됐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인 김양건만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그는 장성택의 측근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2007년 5월부터 각종 ‘비사회주의 검열(비사검열)’이 두드러지게 강화됐다. 4월 박봉주 총리가 교체된 직후였다. 사회 내의 개혁개방적 현상은 ‘무질서’와 ‘비사회주의적 현상’으로 간주됐다.

특히 장성택이 행정부장으로 임명된 2007년 10월부터 2008년 내내 강력한 ‘비사검열’이 상시화되는 경향을 띠었다. 비사검열의 주체와 대상은 다양했다. 중앙당 조직부, 국방위원회, 국가보위부, 인민보안성, 호위사령부, 도당 등이 개별 또는 합동으로 진행했다. 검열단이 전국 도처, 특히 국경지역에 파견됐다.

‘비사검열’의 주요 대상은 시장의 생계형 중소 상인, 일부 지방의 거상과 토호, 지방·국경연선 및 군부의 무역회사, 지방의 ‘부패한’ 당·정 간부 등이었다. 또한 불법 월경, 마약, 남조선 알판(CD·DVD), 각종 밀수, 중국 TV 시청, 인신매매, 무직상태, 친척이 남조선으로 도주 등도 빈번한 검열 대상이 됐다.

정책의 주도권을 누가 장악하느냐에 따라 음지와 양지가 바뀌었다. 2000~2004년의 개혁 국면에서는 특권 경제(당 경제와 군수 경제, 특권기관 소속 무역회사)가 손해를 보는 반면, 민수용 내각 경제와 그 산하의 지배인과 노동자, 장마당의 중소상인들, 그리고 협동경제 농민 등이 이익을 누렸다.

이 시기엔 자금과 이권의 배분이 권력기관의 정치적 결정이 아닌 시장의 경쟁력에 의해 좌우되는 흐름도 강화됐다. 만약 이러한 경향이 지속되면, 특권 경제의 이익이 계속 쪼그라들고, 비특권경제는 번창해 특권경제가 궁극적으로 존립위기에 처할 가능성도 있었다. 2005년 이후 반개혁적 보수 국면에서는 그와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보수 경제정책으로의 회귀로 국가의 자금과 이권을 정치적으로 배분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특권경제가 다시 번성할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자원과 이권을 탈취당한 ‘비특권경제’는 구조적으로 위축 받게 됐다. 아울러 개혁 국면에서 성장했던 장마당의 여러 세력과 개혁 동조 세력을 약화하거나 퇴출하려는 조치가 뒤따랐다.

물리적으로 시장 기능을 억제하거나 단속하고, 중소 상인과 중소 무역 회사, ‘부패’ 간부들에게 여러 가지 명목으로 비사검열이 들이닥쳤다. 2009년 들어서는 그 공격 양상이 약간 달라졌다. 주민에 대한 권력의 선택적 공격을 뜻하는 ‘비사검열’은 약화되고, 주민통제를 구조적이고 조직적으로 강화하는 정책이 시행됐다.

4월 20일부터 9월 17일까지 시행된 ‘150일 전투’, 그 뒤 곧바로 이어졌던 ‘100일 전투’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11월 30일 시행된 ‘화폐교환조치’는 이런 정책의 절정에 서있다. 그 단초는 진작부터 엿보였다. 2009년 2월부터 4월 사이에 국방위원회가 더욱 보수적인 진용으로 개편됐기 때문이다.

경제 살리기보다는 정권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려는 사회 세력과 대안적인 생계 공간을 분쇄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결국 국방위 진용 개편은 화폐교환조치 등의 배경이라고도 하겠다. 그렇다면 2005년 이후의 보수적인 대내정책이 실패한 것일까? 그렇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

그것의 본래 목적이 경제진흥이라기보다 북한사회에 대한 정권의 통제력 강화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화폐개혁 조치를 둘러싼 대내 정치적 의미는 남다르다.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이 조치는 국가의 재정능력을 단번에 끌어올림으로써 북한 정권의 통치능력과 주민들의 대내 통제력을 일거에 강화한 결과를 가져왔다.

둘째, 장마당 중심의 잠재적 정권 비충성세력엔 삽시간에 큰 타격을 주는 한편, 체제 내 가시적·잠재적 충성파에게는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조치로 평가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성과는 일시적인데 반해 뒤따르는 후유증과 부담은 영속적이다. 화폐 개혁은 시장과 민간부문을 폐쇄하고, 생명력을 잃은 국영 상업망 및 계획체계를 복구하려는 조치나 다름없다.

그런데 당장에 민간부문의 위축 효과는 큰 반면, 국영부문의 회생은 매우 더디고 실제 효과도 미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2005년 이후 북한에서 줄곧 시도됐던 국영 상업망 및 국영부문 강화조치가 예외 없이 실패했던 점에 비춰보면 뚜렷하게 알 수 있다.

또한 이번 화폐 개혁조치는 북한사회에 커다란 좌절과 불만을 잉태시켰다. 2010년 북한 당국 초미의 관심사는 악화되는 경제에 맞서 대내치안을 확보하는 일일 듯하다. 그런 점에서 북한 당국은 더 강경하고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

[필자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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