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세에 던진 승부수‘반도체 왕국’ 초석 되다
74세에 던진 승부수‘반도체 왕국’ 초석 되다
▎83년 삼성반도체통신 기흥공장 건설현장을 방문한 이병철 회장(오른쪽에서 넷째). 오래된 사진을 회화기법으로 처리했다.
“반도체 산업을 우리 민족 특유의 강인한 정신력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추진하고자 한다.”
1983년 2월 8일 일본 도쿄. 당시 오쿠라호텔에 묵고 있던 이병철 회장은 장고 끝에 ‘왜 우리는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반도체 신규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른바 ‘도쿄 선언’으로 그룹 차원에서 반도체 사업을 적극 지원한다는 뜻이었다.
이 회장의 선언에 정부와 언론 등은 일제히 반대했다.
자본도 기술도 시장도 없다는 ‘3불가론’이 대세였다. 청와대마저 불확실한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했다가 실패하면 국민경제에 큰 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사업 자체를 우려했을 정도다. 삼성의 역량도 미지수였다. 당시 삼성은 전자산업에서 걸음마 단계였다. 선진국과 기술격차는 말할 것도 없고, 막대한 투자재원 조달과 고급 인력 확보 등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이 회장은 그러나 “미래 한국의 산업을 위해 반도체는 필수”라며 반대 여론을 정면 돌파했다. 도쿄 선언 1년 전 미국 IBM 등을 둘러본 그는 반도체가 없으면 우리나라가 미국과 일본에 예속될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생애 마지막으로 통 큰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이에 따라 1974년 당시 이건희 삼성 이사가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시작한 삼성의 반도체 사업이 꽃을 피우는 전기가 마련됐다. 그는 이건희 이사가 반도체 사업을 권유할 때만 해도 “반도체가 뭐꼬?”라고 말할 정도로 문외한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졌다.
미국과 일본으로 날아가 반도체 전문가를 수도 없이 만났고, 국내 전자산업 전문가에게도 반도체와 컴퓨터에 관한 의견을 숱하게 들었다. 그런 과정에서 반도체 산업의 가능성을 읽은 그는 81년 9월 그룹 전체 임원회의에서 반도체와 컴퓨터에 삼성의 흥망을 걸겠다고 공언한다.
이 회장은 도쿄 구상을 발표하기 6개월 전부터 반도체공장 부지 선정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반도체 공장의 특성을 감안해 ▶공업용수가 풍부할 것 ▶공기가 청정할 것 ▶소음이나 진동이 없을 것 ▶서울에서 1시간 이내 거리여야 할 것을 부지 선정 기준으로 제시했다. 타당성 조사 결과 기흥이 공장 부지로 선정됐다.
▎전두환 대통령이 83년 10월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반도체 조립 공정을 둘러보고 있다.
공장을 짓는 사이 기술개발도 착착 진행했다. 도쿄 선언 석 달 뒤인 83년 5월 삼성은 64KD램 기술개발팀을 꾸렸다. 칩 디자인 기술을 제공한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에서 기본 설계도면을 넘겨받았다.
6월 17일 마이크론과 기술계약을 하고 64KD램 3000개를 받아 조립작업에 들어갔다. 조립공정부터 개발하고 그런 과정에서 얻은 기술을 기반으로 가공·검사 기술까지 개발하겠다는 게 삼성의 복안이었다.
개발팀은 조립 시험생산에 들어간 지 40일 만에 생산수율을 일본과 맞먹는 92%까지 끌어올렸다. 자신감을 얻은 개발팀은 곧바로 공정개발에 착수해 11월 7일 마침내 309가지에 이르는 반도체 생산공정 개발을 모두 완료했다. 미국·일본과 달리 4KD램과 16KD램 개발 과정을 건너뛰고 단번에 64KD램을 개발한 것이다.
64KD램 개발에 6년 넘게 걸린 일본과 비교하면 놀라운 사건이다. 이로써 미국·일본에 10년 이상 뒤져 있던 반도체 기술 격차는 4년여로 좁혀졌다. 그 후 삼성의 반도체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92년 D램 분야 세계 1위에 오른 후 늘 세계 최초로 차세대 메모리를 개발하고 있다.
이런 영광은 거저 얻어진 게 아니다. 이 회장은 반도체 사업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87년 9월 당시 한 신문에 ‘국내에서 생산되는 반도체 제품은 모두 외국 제품의 복제품에 불과하다’는 기사가 실렸을 때가 그랬다.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이었던 그는 노구를 이끌고 한남동 자택을 떠나 기흥사업장으로 향했다.
당시 그를 이윤우(현재 삼성전자 부회장) 상무와 진대제(삼성전자 전 사장) 담당이 맞았다. 이 회장은 두 사람에게 “영국은 증기기관 하나를 개발해 100년 동안 세계를 제패했다”며 “내가 기껏 남의 것을 모방하기 위해 반도체 사업을 했겠느냐”라고 호통을 쳤다. 두 사람은 “(사실이) 아닙니다”라며 “다시는 그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세계시장을 석권하겠다”라고 결의를 다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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