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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료 싸다고 막 옮길 텐가?

수수료 싸다고 막 옮길 텐가?

▎펀드 판매사를 옮길 때는 조건 하나만 보지 말고 다양한 조건을 골고루 따져 봐야 한다. 은행,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 어느 한 종류의 금융회사에 치중하지 않고 종합적인 관리가 가능한 맞춤형 판매사를 찾도록 하는 게 이번 제도의 의의다.

▎펀드 판매사를 옮길 때는 조건 하나만 보지 말고 다양한 조건을 골고루 따져 봐야 한다. 은행,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 어느 한 종류의 금융회사에 치중하지 않고 종합적인 관리가 가능한 맞춤형 판매사를 찾도록 하는 게 이번 제도의 의의다.

1월이다. 묵은 것은 털어버리고 새 단장을 하고 싶은 욕구가 가장 충만한 때다. ‘장기투자하라’는 조언에 고이 간직해 온 펀드도 정리 대상이다. 새해에는 펀드가 아닌 펀드 판매사를 정리하는 투자자들이 늘어날 것 같다. 1월 25일부터 ‘펀드 판매사 이동제’가 시행될 예정이라서다.

이 제도는 투자자가 추가 비용을 들이지 않고 펀드 판매사를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것으로 2010년 달라지는 증시제도 중에서 단연 최고의 화두다.

현 제도에서 펀드 판매사를 바꾸려면 기존 판매사에 환매 수수료를, 새 판매사에 판매 수수료를 내야 한다. 펀드 판매 수수료는 펀드의 종류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1% 수준이다. 펀드 판매사 이동제가 시행되면 이 수수료 없이 판매사를 갈아탈 수 있게 된다.



미국·일본에선 이미 시행금융감독원은 2009년 6월에 고객 편의를 더하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 자산운용서비스국 관계자는 “펀드 투자자의 선택권을 넓히고 판매사에 의한 일방적인 불이익을 없애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세부 조건은 다르지만 미국과 일본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절차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기존 판매사에서 계좌확인서를 발급받아 5거래일 안에 옮길 판매사에 계좌를 개설하고 이동 신청을 하면 다음 날 바로 적용된다. 단, 직접 지점을 방문해야 하기 때문에 지점 수가 적은 증권사의 고객이나 온라인 펀드 가입자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온라인 펀드는 사실상 배제된 상황이다. 대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펀드의 종류에도 제한이 있다. 세금 혜택이 있는 장기주택마련 펀드, 해외에서 운용되는 역외펀드, 펀드 간 전환이 필요한 엄브렐러 펀드, 사모펀드, 머니마켓펀드(MMF) 등 조건이 붙는 펀드는 예외다.

금감원은 전산시스템을 보완해 2단계에서 추가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 제도가 계획대로 시행되면 펀드 판매에 그치지 않고 철저한 사후관리를 하는 등 질적인 서비스가 향상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 펀드 판매는 대부분 증권사(52%)와 은행(38%) 차지다.

이 외에 보험회사, 자산운용사 등이 펀드를 판매한다. 하나금융그룹은 제도 시행 이후 미국이나 영국처럼 펀드 수퍼마켓, 어드바이저 채널 같은 다양한 판매 채널이 생길 것으로 분석했다. 공급자 위주의 시장이 소비자 중심으로 바뀐다는 얘기다. 판매사 간 과당경쟁 등 논란이 많지만 투자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투자자들이 기대하는 만큼 판매사들의 부담은 늘었다. 직접적으로 광고는 못해도 수수료 인하, 서비스 신설 등 보이지 않는 경쟁을 벌이는 눈치다. 시행 초기에 특정 판매사로 투자자가 몰리면 다른 판매사들은 경쟁에서 불리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러 증권사가 2009년 12월에 수수료 인하를 발표했다.

IBK투자증권은 수익률이 하락하면 주식워런트증권(ELW)으로 하락폭을 만회해주는 수익률관리서비스를 선보였다. 삼성증권은 ‘팝’이라는 자산관리서비스를 내놓으며 자산관리 대상을 1억원 이상의 고액자산가에서 소액 적립식 고객으로 확대했다. 미래에셋증권은 펀드, 퇴직연금, 신탁 등을 통합해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래에셋 어카운트’를 선보였고, 우리투자증권은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설계하는 ‘옥토폴리오 서비스’의 최소 가입 금액을 대폭 낮췄다.

또 대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펀드 리서치를 강화하는 추세다. 더 전문적이고 차별화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기존에 팔지 않던 펀드를 추가하는 ‘라인 업’ 작업도 한창이다. A라는 펀드를 B판매사에서 C판매사로 옮기려면 C판매사가 A펀드를 판매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판매에 치중해 온 은행은 증권사들의 서비스 경쟁에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수수료 인하가 곧 서비스 향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결국 ‘맨 파워’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펀드 판매사 이동제에 대비해 직원 교육을 강화하고 시스템을 튼튼히 하는 데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왜 옮기려는지 생각하라

판매사들이 드러내놓고 투자자들을 유혹하지 못하는 것은 제 살 깎아먹는 경쟁 과열로 이어질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아무래도 소비자는 물건값이 10원이라도 더 싼 곳을 찾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펀드 전문가들은 비용 면에서 펀드 판매사 이동제를 활용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단기 마케팅에 혹해 ‘메뚜기’처럼 옮겨 다니다간 ‘주(고수익과 양질의 서비스)’와 ‘객(싼 수수료)’이 전도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은 이 제도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좋은 펀드 판매사를 고르는 기준을 몇 가지 짚어봤다. 우선 판매사를 바꿀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 현대증권의 오성진 WM컨설팅 센터장은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펀드가 이곳저곳에 분산돼 있어 계좌를 관리하기 어려울 때다.

둘째,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다. 여기에는 비용, 담당자와의 커뮤니케이션, 사후관리 등 많은 부분이 포함된다. 판매사를 옮기기로 결심했다면 주변을 둘러보자. 규모가 큰 판매사가 있고, 인지도가 높은 판매사도 있고, 높은 수익률을 낸 판매사가 있으며, 수수료가 싼 판매사도 있다. 어느 쪽으로 발길을 돌려야 할까.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의 민주영 연구위원은 “회사가 아닌 나를 먼저 보라”고 조언했다.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나와 궁합이 맞지 않으면 안 옮기느니만 못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면 판매사를 왜 옮기려고 하는지 다시 생각해보고, 그 조건에 맞는 판매사를 찾아야 한다.

민 연구위원은 특히 “수수료만 보고 이동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판매사들이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려고 일시적인 마케팅을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종합자산관리계좌(CMA)가 붐을 이룰 때 금리를 ‘반짝’ 올린 것과 같다. 수수료 외에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할까. 회사의 평판이나 이미지를 빼놓을 수 없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오 센터장은 “펀드에 대한 분석 툴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상품이 작년에 대박 났다’든지 ‘3년 만에 수익률 100%’라든지 과거 실적만 내세우는 게 아니라 시장 상황에 따라 대응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판매사로 옮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 펀드 노하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맞춤형 종합자산관리서비스다.

한 은행 PB는 “펀드뿐만 아니라 다양한 투자 상품을 관리해주고 종합적으로 조언할 수 있는 판매사로 갈아타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초보 투자자는 하나에서 열까지 일일이 조언해주는 서비스가 아쉬울 것이고, 거액 투자자라면 절세나 부동산 투자, 자녀 교육 등 부자 고객을 위한 맞춤 프리미엄 서비스가 수수료 인하보다 더 절실할 것이다.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를 찾는 것 역시 중요하다. 민 연구위원은 “자산관리사는 고수익을 내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투자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돕는 사람이다. 시장 예측이 아닌 목표에 맞게 계획하는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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