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세의 삶 존재할까
둘째 아들 맥스가 세상을 떠난 지 3개월이 지난 작년 봄의 일이다. 집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계단에 나비가 한 마리 앉아 있었다. 뉴욕 브루클린의 우리 집 주변에선 본 적이 없는 종류였다. 나중에 알아봤더니 미국 북동부에 서식하는 산호랑나비의 일종이었다. 그 날의 일은 쉬 잊혀지지 않았다. 마침 내 생일이었으니까.
신비한 아름다움과 차분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나비는 영혼의 상징으로 자주 인용된다. 번데기에서 성충으로 변하는 모습이 망자의 부활을 연상케 하는지도 모른다.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낸 부모를 위한 지원단체의 회보에서도 나비나 새가 돌연 나타난다든가, 구름이 어떤 형태를 띤다든가, 라디오에서 특정한 노래가 흘러나온다든가 하는 현상이 망자와 교신한 증거로 자주 인용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말을 믿지 않으며 그런 데서 위안을 얻는다는 사람도 이해하기 어렵다. 지성과 근성의 화신이었던 맥스가 곤충의 몸을 빌어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려 한다고는 믿고 싶지 않다. 내가 그 기억을 떠올린 건 디네시 디수저의 신저 ‘사후의 생, 증거(Life After Death: The Evidence)’를 읽을 때였다.
저명한 보수파 정치평론가이며 기독교 옹호론자로 관련 저서를 많이 펴낸 디수저는 내 체험을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했다. 디수저는 이 책에서 육체의 사후에도 의식은 계속 살아남는다는 이론을 과학적인 근거를 들어 입증하려고 시도했다. 그는 유령이나 영매, 성인(聖人)이 기적적으로 병을 치료한 사례 등을 인용하지 않고 대신 양자역학이나 신경과학, 그리고 윤리학을 응용한다.
‘사후의 생’은 수학자 데이비드 벌린스키의 ‘악마는 망상이다-무신론과 사이비 과학’이나 물리학자 프랭크 J 트리플러의 ‘기독교의 물리학’, 미국 국립보건원(NIH) 원장인 유전학자 프랜시스 S 콜린스의 ‘신의 언어’ 같은 책의 계보를 잇는다. 모두 기독교를 믿는 저자가 기독교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무신론’에 맞서 성서나 계시에 기대지 않고 학문적으로 반박하려는 시도다.
이를 ‘한 손을 등 뒤로 묶고 하는 싸움’에 비유하는 디수저는 크리스토퍼 히친스(‘신은 위대하지 않다’)나 샘 해리스(‘신앙의 종말’) 같은 저명한 무신론자들의 단골 반대 토론자다. 그는 새로운 무신론자라는 적의 등장을 21세기에도 기독교의 진리를 옹호하는 활동을 계속하라고 신이 내려준 기회로 간주한다.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로 기독교 옹호론자로도 유명한) C S 루이스는 유대인 대학살 같은 자신이 처한 시대의 문제를 다뤘다”고 디수저는 지적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다윈이나 뇌과학, 현대 물리학, 이슬람 테러라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다. 새로운 무신론을 펼치는 사람들이 신앙의 문제를 논쟁거리로 만들어줘서 오히려 일이 수월해졌다. 10년 전에 이 책을 썼다면 뜬금없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웠다.”
디수저는 우리 현대인도 중세 유럽인과 마찬가지로 사후에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항상 마음속 깊이 의문을 품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 자신도 그렇다. 물론 상대가 기독교 신자라면 굳이 사후의 생이 있다고 설득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디수저가 설득하려는 대상은 기독교에 회의적인 사람, 즉 죽으면 모두 무로 돌아간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디수저의 논리 전개방식에 반발할지도 모른다. 그는 명제를 제시한 뒤 공평을 기하는 척 쌍방의 주장과 관련된 증거를 제시한다. 그리고 서둘러 결론으로 직행한다. 물론 디수저가 지지하는 주장의 승리로 결론이 난다. 하지만 디수저는 회의적인 사람들조차 사후세계를 믿고 싶어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는 있다고 믿는다.
사후의 생을 증명하는 ‘증거’는 아무래도 간접적인 성격을 띤다. 디수저는 자신이 망자와 소통한 적이 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사람의 마음에 초점을 맞춰 거기서 보편적인 도덕률을 찾아낸다. 그 도덕률은 ‘그대의 이웃을 이겨라’는 다윈의 법칙에 반하는 듯한 자기희생과 배려 행위를 실천하도록 한다.
이는 자신의 모습을 닮은 인간을 만들어 도덕심(그리고 도덕심에 따를지 말지를 선택하는 자유의지)을 불어넣은 신의 존재를 나타내는 증거로서 예로부터 전해지는 주장이다. 벌린스키도 저서에서 이런 주장을 제시하며 유전학자 콜린스는 이를 자신이 무신론자에서 기독교도로 변신한 이유로 든다(디수저는 저명한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가 인간의 선량함을 진화학적으로 설명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수긍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디수저는 “신이 있다면 어째서 인간의 고통을 방치하는가” 같은 무신론자의 주장을 역으로 이용해서 주장을 편다. 현세에서는 악이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도덕률이 필시 내세에서의 현실(사후에 사람의 영혼이 심판을 받아 악행의 처벌을 받거나 선행의 보상을 받는다)을 반영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사후의 생이 있다고 생각하면 현생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그는 썼다.
그 정도로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사람들을 위해 디수저는 사후의 생을 믿으면 어떤 이점이 있는지 줄줄이 열거한다. 정직하게 살게 되고, 인생에 ‘희망과 목적의식’이 생기며, ‘여러 조사에 따르면’ 사후의 생을 믿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섹스를 더 즐긴다. 이는 또 “우리 자녀들에게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법을 가르치는 메카니즘”을 제공한다.
학교에서 갈릴레오적 지식을 습득하고는 똑똑한 척하는 자녀가 “최후의 심판은 어디서 하나요” 라고 물을 경우도 디수저는 대답을 준비해 놓았다. 그것은 일부의 양자론에서 예측하듯 세계가 무한으로 증식하는 다중우주(multiverse)에서 이뤄진다. 다중우주에서는 물리법칙이 우리 세계와는 다른 값을 가지며 물질 그 자체도 다른 형태를 취할지 모른다.
따라서 “물리학에는 우리가 사후, 지금과는 다른 육체를 얻어 내세에서 계속 살아간다는 개념과 모순되는 내용이 전혀 없다.” 다중우주는 엄연히 이론물리학의 한 개념이지만 경험적인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는 영혼의 존재와 마찬가지다. 사후의 생과 관련된 과학적 연구는 적어도 지금으로선 아무런 진전이 없다.
다만 이른바 임사체험(near-death experiences)을 다루는 연구는 있다. 임사체험은 임상적 사망 이후 되살아난 사람들이 기억해낸 경험이다. 이 같은 체험을 한 사람 중에는 위에서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든가, 자신이 소생조치를 받는 모습을 봤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육체의 뇌로부터 의식이 이탈하는 일이야말로 사후의 생에 필요조건이 된다. “임사체험은 임상적인 죽음이 곧 끝은 아닐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디수저는 썼다.
“마음이 뇌에 종속돼 있지 않다는 점은 신경과학에서 밝혀졌다”고 그는 말을 잇는다. “의식이나 자유의사는 자연법칙을 벗어나 작용하는 듯하다. 따라서 이는 육체적 사망을 관할하는 법칙에 적용 받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이 같은 이론은 플라톤의 시대부터 서구철학 분야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과학적으로 검증되지는 않았다.
임사체험 연구에서는 무작위로 생성된 이미지를 중환자의 병실 안에 비춘다. 그 위치는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곳, 예컨대 유체 이탈한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이다. 임사체험을 한 환자가 되살아나 그 이미지를 기억해 낸다면 좀 과장해서 수세기에 걸친 자연과학의 유물론을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
와일 코넬 의료센터의 연구원으로 임사체험 연구 프로젝트를 이끄는 샘 파니아는 20개 병원에서 찾은 600명의 임사체험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하는 중이며 결과는 2010년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나도 파니아의 연구결과가 나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그것이 아들의 죽음으로 내 가슴에 휑하니 뚫린 구멍을 메워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맥스가 다른 우주에서 육체가 없는 의식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면 과연 위안이 될까? 나는 맥스가 지금 여기서 나와 함께 있으면 좋겠다. 한 번만 더 그 아이를 품에 안아볼 수 있다면 영원히 살아갈 권리를 준다 해도 기꺼이 포기하겠다.
C S 루이스조차 사별의 아픔을 극복하는데 신앙 등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내게 종교의 위안에 관해 말하려 들지 말라”고 그는 ‘슬픔의 고찰’에서 썼다. “그런 말을 들으면 정말 슬픔의 깊이를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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