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있는 성장 위한 7대 제언
고용 있는 성장 위한 7대 제언
‘푸앵카레의 추측’이라는 게 있다. 100년 동안 풀리지 않던 세계 7대 수학 난제다.‘일자리 창출’은 푸앵카레 가설을 닮았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늘 일자리의 위기였다.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은 일반 용어가 됐다. 경제성장률이 오르고 국민총소득이 증가해도 고용률은 지난 10년 동안 제자리다. 역대 정부는 이 난제를 풀기 위해 온갖 정책을 다 썼다. 정책은 먹히지 않았다.
사정은 갈수록 나빠졌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 보였다. MB정부도 같은 숙제를 안고 출범했다. 그 와중에 세계 금융위기를 맞았다. 위기는 실업자를 더 늘렸다. 공식 실업자 89만 명. 지난해만 16만 명이 구직을 단념했다. ‘사실상 실업자’ 400만 명.
“새로운 게 별로 없다” 비판에 직면한 정부 대책경제는 회복세로 돌아서는 듯하지만, 일자리 위기는 진행형이다. 5%에 육박할 것이라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고용 한파를 녹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오히려 올 상반기 고용 대란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집권 3년차. 정부는 고용 정책의 기조를 바꿨다.
“성장만 하면 고용은 저절로 늘어난다”에서 “고용을 수반하는 성장”으로의 변화다. 그만큼 위기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난 21일 출정식이 있었다. 처음 열린 ‘국가고용전략회의’다. 첫 회의는 230분 동안 열렸다. 이날 이른바 고용 회복 프로젝트가 발표됐다.
답안지였을까? 여론은 “기대는 하지만 고민이 부족했다”는 쪽으로 읽힌다. “새로운 게 별로 없다”는 비판도 나왔다. 정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반응이다. 사실,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해법과 대안은 수없이 나와 있다. 외환위기 이후 고용 없는 성장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많은 전문가가 숱한 연구물을 내놨다.
인터넷에서만 일자리 창출 관련 보고서를 수백 종 찾을 수 있을 정도다. 남은 것은 정부와 기업과 경제 주체들이 수많은 노작을 어떻게 잘 조합하고 선별해 실천하느냐다. 범국가적으로 머리를 맞대면 답이 나올 수도 있다.
밀레니엄 난제라는 ‘푸앵카레의 추측’이 한 수학자의 집념에 의해 100년 만에 풀렸던 것처럼 말이다. 이코노미스트가 그동안 수많은 전문가가 내놓은 일자리 해법을 종합 분석해 ‘고용 있는 성장 7대 제언’으로 정리했다.
01 현실을 직시하라‘고용 없는 회복(Jobless Recovery)’. 올해 경제는 이 말로 요약될 듯하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외치고, 재계가 대규모 투자와 채용 확대로 화답해도 실업률을 단번에 끌어내릴 수는 없다.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경제성장률 4~5% 전망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
경제성장률과 고용률의 연결고리는 끊어진 지 오래다. 올해 희망찬 성장률 전망조차 지난해 바닥을 쳤던 것에 따른 기저효과다. 우선 일자리 사정부터 보자. 지난해 정부는 대대적인 재정지출로 취업자 급감을 막았다. 하지만 민간부문 일자리 창출은 열두 달 내내 마이너스였다.
공공부문을 뺀다면, 매월 30만 개 안팎으로 줄었다. 올해도 상황은 어려울 듯하다. 고용은 경기에 후행한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 ‘25만+알파’를 약속했지만, 재정이 받쳐줄지도 의문이다. 기업은 신규 채용 확대를 주저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가 올 상반기 고용 한파를 예상하는 이유다.
문제는 일자리 빈곤이 경기 순환적이 아닌 구조적 문제라는 데 있다. 류지성 삼성경제연구소 전문연구위원은 ‘성장과 고용의 연결고리 약화, 산업별 취업유발계수 하락, 수출의 고용 기여도 감소’를 일자리 위기의 핵심으로 본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실업률은 3%대지만 ‘사실상 실업자’는 400만 명에 가깝다.
청년 실업률은 더 심각해 실업률은 7.2%나 되고 고용률은 42%에 불과하다. 지난해 16만 명이 구직을 포기했고, 이유 없이 노는 남성은 100만 명을 넘었다. 600만 명에 가까운 자영업자는 연쇄적으로 가게 문을 닫고 있다.
일자리 부족은 실업자의 고통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준다. 국민은 일자리 문제의 모든 책임을 정부에 돌리려는 경향이 있다. 선거는 다가오고 그래서 정부는 단기 방편, 실적 보이기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것을 경계하는 것이 일자리 문제를 푸는 시작이다.
02 고용정책 판을 바꿔라정부는 일자리 창출의 마법사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DJ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까지 매년 일자리 창출 대책이 나오지 않은 적이 없다. 결과는 10년째 60%선 밑에서 정체돼 있는 고용률이 말해준다. 경제 상황으로 보면 최근 10년 사이 일자리를 늘리는 데 가장 적기였던 노무현 정부 때도 고용정책은 실패작이었다.
이코노미스트는 2007년 초 “참여정부가 청년실업 대책 예산으로 4년간 2조5000억원을 썼지만 청년 일자리는 44만 개 줄었다”고 보도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지난 대선 당시 5년간 30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공약했다. 당연히 힘든 얘기다.
지난 15일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 대통령은 “OECD 국가 중 고용문제를 가장 빨리 해결하겠다”고 했고,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자리 창출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정부가 위기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 외엔 특별한 내용이 없다”고 평했다. 단기 대책은 역대 정부가 썼던 것이 대부분이고, 중장기 대책 역시 새로울 게 없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가 성장하면 고용이 저절로 생겨난다는 시각에서 벗어나 고용을 수반하는 성장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인식의 전환이다. 판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아쉬운 점은 이번 정부의 고용 대책이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역대 정부가 실패해 폐기해버린 정책도 포함돼 있다.
그래선 바뀌지 않는다. 사실 그간 수많은 전문가가 내놓은 고용 정책만 잘 연구해 실천해도 사정은 나아질 수 있다. 정부가 좀 더 용기를 낼 필요도 있다. 국정 최우선이라는 일자리 정책에 왜 ‘세종시 땅값’ 같은 파격적인 인센티브가 나오지 않는가?
03 대기업 투자에 목매지 마라“일자리 창출은 기업의 몫이다”. 지난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재계 총수들과 아침식사를 하면서 한 말이다. 백번 맞는 말이다. 이 자리에서 30대 그룹은 올해 87조원을 투자하고 7만900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해에 비해 투자는 16%, 고용은 9% 늘어난 것이다. 즉흥적인 화답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을 돌이켜 보면 회의가 든다. 지난해에도 재계는 ‘일자리 10% 늘리기’를 발표했지만 지킬 수 없었다. 오히려 투자와 고용은 줄었다.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역대 정부는 때만 되면 재계 총수와 경제 5단체장을 불러모아 대규모 투자와 고용 약속을 받아냈다. “지난 10년간 정부와 재계가 공언한 일자리만 합해도 1000만 개는 될 것”이라는 것은 농담이 아니다.
많은 전문가는 대기업에 목숨 거는 고용 창출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기업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선다고 해도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달라진 산업구조 때문이다. 그동안 취업유발계수는 하락했고, 노동생산성은 높아졌다. 당연히 고용창출 능력은 낮아졌다. 수출이 일자리를 늘리는 효과도 점차 약해지고 있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수출주도형 경기 회복세가 실현될 경우 고용회복 속도는 상당히 더뎌질 전망”이라고 밝혔다. 또한 대기업이 투자를 늘려도 해외에서 집행된다면 국내 고용은 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기업에 채찍과 당근을 반복하는 정책보다는 중소기업이나 벤처, 사회적 기업 일자리를 늘리는 데 정부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일부 전문가는 특히 전체 일자리의 85%를 차지하는 중소·벤처를 일자리 확대의 중심에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중소·벤처는 투자 여력이 부족해 지속적인 고용 확대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대기업 대 중소벤처의 이분법이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상생 정책에서 일자리 창출의 해법이 나올 수 있다.
04 사회적 기업·신산업 육성하자
박준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의 견해다. 제3의 대안은 바로 사회적 기업이다. 사회적 기업은 일반 기업처럼 영리활동을 하지만 창출된 수익을 사회적 목적에 재투자하는 기업을 말한다.
사회적 기업은 선진국에서 정부를 보완하는 복지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영국의 경우 2005년 현재 약 5만5000개의 사회적 기업이 65만 개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참여정부 때 관련 육성법이 만들어졌다. 박준 연구원은 “사회적 기업이 청년실업 해소에 일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반 기업에 비해 임금 수준은 낮지만 성취감, 자아 실현감, 사회문제 해결 등 이른바 내재적 보상이 크다는 장점이 20대 청년층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아직 기반은 미흡하다. 2009년 11월 현재 노동부 인증을 받은 사회적 기업은 260여 개에 불과하다.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경쟁력 있는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고, 민간 비영리 재단 설립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아직 인지도가 낮은 사회적 기업에 대한 홍보 활동도 시급하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사회적 기업의 인증 요건을 완화하고 창업자금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새로운 일자리를 위한 신산업 육성 방식도 보다 고용친화적으로 갈 필요가 있다. 녹색산업이 그렇다. 정부는 국가 전략으로 향후 5년간 107조원을 투입해 156만~181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녹색성장 전략과 일자리의 연관성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 보조를 받아 5만 평 규모에 태양광발전 설비를 건설해도 그곳에서 일하는 인력은 얼마 되지 않는다”며 “고용과 연계된 분야에 집중적으로 지원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자리를 늘리자고 노동집약적 산업 육성을 주장해서도 안 되지만, 기왕 국가의 미래를 걸고 키우는 신성장동력 산업이라면 고용친화적 전략으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하다.
05 수출지향형 서비스산업이 답‘고용창출 면에서 서비스 산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의료, 교육, 보육 등 유망 서비스 분야의 진입 및 영업 규제를 완화해 나가겠습니다.’ 정부가 발표한 1차 국가고용전략회의 발표문 중 일부다. 내수 부진에 시달려 온 한국 경제에 서비스 산업은 대안으로 꾸준히 제기돼 왔고, 역대 정부 역시 서비스 산업 육성을 외쳐왔다.
서비스업이 각광받는 것은 일자리 창출여력이 제조업보다 크기 때문이다. 서비스업 취업유발계수는 제조업의 두 배다. 현재 서비스업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가 조금 안 된다. 또한 고용은 적고 부가가치는 낮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1만 달러 수준의 서비스업’이라고 표현한다.
전문가들은 교육과 보육 분야 서비스 산업은 물론 법률, 디자인, 회계 등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 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서비스 산업 육성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다. 정부는 서비스 산업 육성을 강조하면서 “서비스 산업 선진화를 위해 소관 부처별로 일자리 창출 규모가 제시되고 실행방안이 마련된다”고 밝혔다.
그게 먼저가 아니다. 서비스 산업에 대한 세제나 재정, 금융지원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영리 의료법인 허용, 법률 및 교육시장의 개방 등 논란이 됐던 서비스 산업 규제를 실질적으로 풀어 시장에 믿음을 줘야 한다.
동시에 업종별 맞춤형 인력 개발에도 힘써야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단순히 내수 진작용이 아닌 궁극적으로 수출을 지향하는 서비스 산업 육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큰다. 2008년 국내 서비스 수지는 167억 달러 적자였다.
06 취업 취약계층 정책이 우선이다
반면 같은 기간 40대는 21%에서 28%, 50대는 14%에서 18%로 증가했다. 이와 동시에 일자리 위기는 전 세대의 문제가 됐다. 20~30대는 만성 실업, 40대 이상은 만성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우선 심각한 것이 청년실업이다. 지난해 15~29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관련 통계가 집계된 1999년 이후 가장 낮았다. 공식 실업자 32만 명, 취업준비자 59만 명, 그냥 쉬었음 30만 명. 청년실업의 현주소다. 고령 실업자나 고용불안에 상시 노출돼 있는 비정규직 중고령 세대의 불안을 해소하는 정책도 미룰 틈이 없다.
가사와 육아로 노동 시장에서 이탈한 여성의 재취업을 위한 제도와 기반 마련은 오래 미뤄놓은 숙제다. 자영업자나 임시·일용직의 창업, 전업, 취업을 지원하는 대책도 시급하다. 정부는 취업 취약계층별로 일자리 표적을 명확히 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계층별 해법과 대안은 각계에서 충분히 제기돼 왔다.
무엇보다, 이들 취업 취약계층이나 실업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을 마련해야 한다. 실직을 해도 일정 기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강화돼야 한다. 하지만,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고용보험에 가입한 실직자 중 21%만이 실업급여 수급 자격이 있다. 고용보험 가입과 상관없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실업자는 100명 중 6명뿐이다.
07 고용 주체의 총체적 부실 개조하라일자리 빈곤은 정부만의 책임일까? 고용을 늘리지 않은 기업 책임일까? 아니다. 류지성 전문연구위원은 “정부와 기업, 노동 시장, 교육기관의 총제적 문제”라고 분석한다. 우선 정부. 그동안 정부의 일자리 대책은 공무원이 돌리고 돌려 만든 정책의 반복이었다. 위기가 오면 단기 일자리 처방으로 때웠고, 경제가 살면 손을 놨다.
청년인턴제나 희망근로 등 정부가 만드는 일자리는 근본적인 처방이 아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정부 공공근로에 참여한 100명 중 1년 이상 지속한 비율은 19%에 불과하다. 교육기관과 노동 시장, 기업을 연계하는 종합적인 해결 시스템도 부족했다. 관련 부처 간 조율도 되지 않았다. 컨트롤 타워 기능이 미흡했다는 얘기다.
노동 시장은 유연성 부족이 해소되지 않았다. 고용이 경직되다 보니 들고나는 길이 막혔다. 신규진입이 쉽지 않고 실직 후 노동시장 재진입은 어렵다. 결국 세대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일자리 쟁탈전이 벌어졌다.
산업 분야는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 서비스 산업의 경우 고용 인원은 늘었지만 영세 자영업 위주 후진적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일자리 양극화가 심화하면서 중간 임금 계층이 일할 수 있는 허리가 끊어졌다. 이는 소득 양극화와도 연관이 깊다. 일반계 고교 졸업생의 88%, 전문계고의 73%가 대학을 가는 획일적 진로도 문제다.
이들이 중소기업 생산직을 꺼리면서 미스매치 인력이 양산됐다. 중소기업은 인력난을 호소하고 대졸자는 갈 곳이 없다는 ‘구직 속의 구인난’이 만성화했다. 또한 대학은 산업이 요구하는 직무 역량에 소홀했다. 이 총제적 부실을 고치지 않고는 아무리 경기가 좋아져도 일자리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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