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 깨는 런던 이스트 엔드
수 세대 동안 런던 주민들은 시티(the City, 런던 구시가의 금융 중심지)의 동쪽 변두리 너머를 황무지로 여겼다. 그 금융가의 번쩍이는 고층건물들 뒤쪽으로 넘어가면 이스트 엔드의 더 어두운 세계로 들어간다. 거칠고 험한 런던 토박이 문화의 중심부다.
유대계 러시아인에서 방글라데시 무슬림에 이르기까지 영국으로 계속 밀려드는 이민자들이 가장 먼저 정착하는 곳이다. 따라서 가난한 지역이며 때로는 위험하기까지 하다. 외부인들은 이곳을 두고 암흑가의 살인, 불결한 공장, 미로 같은 빈민가, 부두를 떠올렸다. 주민들조차 벗어나고픈 곳이었다.
똑똑한 사람들은 돈을 모은 뒤 빠져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이스트 엔드에 부자들이 들어와 둥지를 틀기 시작한다. 예술가들이 새로 유입되면서 런던의 문화 축이 동쪽으로 급격히 기울어 간다. 그들은 과거 양조업이나 의류제조업이 점령했던 지역을 탈바꿈시켰다. 불결한 공장 자리에 최신식 바가 자리잡았다.
한때 토막살인마 잭(Jack the Ripper)이 출몰했던 화이트채펄의 위험지역에는 이민자들이 주로 입주하는 주택단지뿐 아니라 천장이 높고 세련된 감각의 로프트도 속속 들어선다. 이 도시에 화랑이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곳은 웨스트 엔드가 아니라 이스트 엔드의 쇼어디치 지구다(어림잡아 100곳).
변화의 속도는 더 빨라질 듯하다. 동계올림픽을 끝낸 밴쿠버가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런던은 이제 막 다음 올림픽 준비에 돌입했다. 그리고 현지 주민과 스포츠 팬들이 잘 알듯 2012년 하계올림픽은 이스트 엔드에서 주로 열린다. 이미 초기 구조물들의 윤곽(수용인원 8만 명의 중앙 경기장 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시티 동쪽으로 불과 5km 떨어진 곳의 버려진 널따란 차량기지가 그 중심에 있다. 재개발 열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관중을 경기장으로 실어 나를 바로 그 새로운 철도망이 재개발 지역의 경계를 계속 넓혀준다. 이스트 엔드의 요즘 부흥 열기는 주로 런던 부자동네의 공간 임대료가 급등한 덕분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같은 돈으로 좀 더 넓게 살아보겠다는 중산층 이주민뿐 아니라 저렴한 작업실을 찾는 예술가들이 동쪽으로 밀려들어 곳곳에 고급 주택 단지가 생겨났다(그런 추세는 불황 후에도 계속된다. 런던 곳곳의 부동산 가격이 다시 오름세를 탄다).
그리고 이스트 엔드가 여전히 변두리 동네일지 몰라도(영국에서 가장 가난한 영세민 주거지구 20곳 중 네 곳이 이스트 런던에 있다) 대부분 접근성이 좋다. 일례로 혹스턴의 최신 유행 거리는 옥스퍼드 서커스에서 지하철로 15분 거리다. 노팅 힐보다 그리 더 멀지 않다.
예술가들의 이스트 엔드 이주 움직임이 아주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공립인 와이트채펄 갤러리는 최근 1500만 달러 이상을 들여 재단장했다. 영국인들에게 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를 가장 먼저 소개한 곳도 이 갤러리다. 이스트 엔드의 화랑들 또한 1990년대의 도전적인 신세대 영국 미술가 그룹의 요람 역할을 했다.
혹스턴의 화이트 큐브는 대미안 허스트와 트레이시 에민 같은 유능한 신예 작가들을 후원했다. 비평가들은 가장 전도유망한 신진 예술가들을 찾아 플라워스 이스트로 몰려든다. 플라워스 이스트는 뉴욕과 런던의 일류 상점가 본드 스트리트에도 전시장을 둔 갤러리 그룹 소속이다.
이 지역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금융가의 그늘 속에 있다. 탈공업화 시대의 공동묘지에서 예술인 동네로 근사하게 탈바꿈했음을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카레 하우스로 가장 잘 알려진 브릭 거리 위에 우뚝 솟은 거대한 트루먼 브루어리에는 현재 그래픽 디자이너, 건축가, 미술가 등 소규모 창작 사업체 200여 곳이 둥지를 틀었다.
쇼콜라티에나 맞춤 드레스를 찾는 금융가 종사자는 맞은편 옛 스피털필즈 청과물 시장 자리를 메운 상점들을 둘러보면 된다. 옛 쇼어디치 시청에는 최신식 동남아 식당이 자리잡았다. 새로운 풍요의 조짐은 벌써부터 확연히 드러난다. 쇼어디치의 2세대 주택 임대료는 보너스를 넉넉히 받는 금융가나 성공한 예술가가 아니면 감당하기 어렵다.
패션 선도자들은 최근에 문을 연 쇼어디치 하우스에 앞다퉈 가입한다. 뉴욕과 런던의 소호에도 지점을 둔 회원전용 클럽 체인이다. 또는 잘 곳이 필요한 부자 보헤미안들은 바운더리 프로젝트 개발지구를 눈 여겨 볼 만하다. 중견 스타일 선도자 테렌스 콘란이 지난해 쇼어디치의 빅토리아 시대풍 창고를 개조해서 문을 열었는데 음식점과 바뿐 아니라 12개의 객실과 5개의 특실을 마련했다.
한때 의류산업의 허물어져가는 중심지였던 스피털필즈에는 경사진 땅에 조지 왕조 시대의 주택들이 바둑판 모양으로 들어섰다. 이곳의 타운하우스를 구입하는 사람은 에민의 이웃이 될지도 모른다. 그녀는 2년 전 600만 달러를 들여 거대한 옛 방직 공장을 개조해 자신과 동료 예술가들의 작업실로 사용한다.
강이 보이는 곳의 주택은 부르는 게 값이다. 원래 이스트 엔드 태생인 배우 헬렌 미렌은 와핑에 테임즈강이 내려다 보이는 주택을 마련했다. 장거리 통근에 지친 금융가는 캐너리 워프 주변의 강변에 늘어선 근사한 주택개발 지구 중 한 곳의 신축 아파트를 골라잡아도 괜찮다.
집값 상승 탓에 차세대 예술가들은 동쪽으로 더 멀리 밀려난다. 관광 명소도 거의 없고 아직도 헐값 매물이 풍부한 변두리 지역에 이미 화랑들이 새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환경이 그리 고급스럽지는 않다. 이스트 엔드의 상당지역에는 공공주택 개발지구의 추한 벽돌 더미가 무질서하게 널려 있다(공공주택에는 아직도 이민자들이 거주한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 대공습 때 무차별 폭격을 받은 탓이다. 그러나 올림픽 덕분에 이스트 엔드의 후미진 지역에도 재개발의 훈풍이 분다. 올림픽은 새로운 교통망(구상 단계의 올림픽 투창 열차는 시간 당 2만5000명의 승객을 불과 7분 만에 런던 중심부로 실어 나른다)뿐 아니라 선수촌에 3000호가 넘는 신축 아파트를 남겨줄 전망이다.
올림픽 경기장 부지는 지난 100년 래 영국 최대의 도시 공원이 된다. 300여 개의 매장이 들어선 유럽 최대의 쇼핑센터가 이 공원을 내려다본다. 토막살인마 잭조차 어리둥절하리라.
hot spots
East End Eating이스트 엔드의 맛집
앨비언 카페 - 쇼어디치
더 내로우 - 라임하우스
엠프리스 오브 인디아 - 빅토리아 파크
레 트루아 가르송 - 쇼어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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