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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는 어떻게 달릴까

현대차는 어떻게 달릴까

세계 자동차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야심 차게 왕좌에 오르려던 도요타는 리콜 사태를 맞아 급제동이 걸렸다. 제왕으로 군림하던 GM은 ‘힘만 센’ 거인이 됐다. 그사이 현대차는 착실히 영토를 넓히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자동차 시장은 정글이다. 현대차가 글로벌 톱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지금 현대차에 적절한 말은 ‘위기는 기회’라는 것이다.

지난 한 해 금융위기를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세계 자동차 업체들의 키워드는 생존이었다. 각 브랜드는 생산 축소와 자산매각 그리고 원가 절감을 통해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2010년, 사정은 비슷하다.

연초만 해도 올해는 세계 자동차 시장이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다수였다. 실제로 올 1월 세계 자동차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늘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도요타자동차의 대량 리콜 사태가 터지며 다시 위기감이 높아졌다.

도요타 변수가 워낙 커 파장이 어떻게 확대될지 가름하기 어려워졌다. 파이가 줄면 경쟁도 그만큼 치열해지는 게 시장 원리다. 지금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는 죽느냐, 사느냐를 가늠하는 치킨 게임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다.

한국 자동차연구소와 글로벌인사이트는 올해 자동차 공급 과잉이 최대에 달하며 모델당 판매대수가 최저치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세계 주요 브랜드의 생산 능력은 크게 향상됐지만 수요는 줄거나 예년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 현대·기아차는 비장하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 다들 주춤거리거나 후퇴할 때 앞으로 쭉 달려 톱 브랜드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긴장도는 훨씬 높아졌다. 잘나갈 때 조심하고, 앞길을 더 잘 내다보라는 말도 있잖은가. 금융위기의 파고 속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익혀온 공룡 업체의 견제와 신흥 후발업체의 추격을 따돌려야 하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요즘 자국 자동차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각국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난해 세계 주요 자동차 생산국은 타격을 입고 있는 자동차산업을 구하기 위해 일제히 지원책을 쏟아냈다. 자금지원과 각종 소비 진작책을 도입한 것은 물론 관세 인상 등 보호주의 장벽으로 자국 자동차기업을 감싸는 데 힘쓰고 있다.

올해도 이런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 정부는 자동차산업 지원책을 올해까지 연장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중국은 2010년 말까지 1.6L 이하 소비세를 7.5% 인하했다. 인도는 자동차용 할부금융 지원 및 소비세 인하 폭을 14%에서 8%로 낮췄다. EU는 폐차 인센티브를 올해 말까지 연장했다.

하지만 한국 상황은 좀 다르다. 국내 노후차 세제 혜택은 이미 만료됐고, 수입차 업체의 내수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보다 18% 증가한 7만2000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남들은 안방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데 우리는 조금씩 마당을 내주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그렇다고 한국이 자동차 보호무역을 따라 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자동차 업체들이 경쟁력을 높여 보호의 방패를 뚫으면 되는 것이다.



품질 경영만이 살길이다

현대차는 글로벌 비상경영 체제를 강화하며 위기에 대비하고 있다. 정몽구 현대겚蓚팃?회장은 “2010년은 글로벌 선두업체로 도약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며 “글로벌 비상경영체제 강화, 고객 존중 경영, 투자 및 고용확대, 선진적 노사문화 정착, 친환경 경영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의 이 같은 상황 인식은 적절해 보인다. 품질 경영을 소홀히 해 추락할 위기에 있는 도요타가 그 이유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세계 최고의 자동차 기업인 도요타가 가속페달 결함으로 촉발된 대규모 리콜 사태로 고전하는 상황은 현대차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아무리 잘나가도 품질이 담보되지 않으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례다.

도요타의 리콜 파문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여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점유율 판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리콜 후폭풍으로 도요타의 1월 북미지역 판매 실적이 곤두박질쳐 시장점유율 3위로 밀려났다. 현대차는 경쟁 업체들에 비해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파고를 성공적으로 넘었다.

현대차는 사상 처음으로 지난해 세계시장 점유율 5%를 돌파했다. 지난해에는 매출액 31조8593억원(해외공장 포함하면 53조2882억원), 영업이익 2조2350억원, 순이익 2조9615억원을 기록했다. 기아차도 매출액 18조4157억원, 영업이익 1조1445억원, 당기순이익 1조4503억원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최고의 성적표를 냈다.
▎인도 첸나이 공장을 찾은 정몽구 회장.

▎인도 첸나이 공장을 찾은 정몽구 회장.

지난해 3?분기까지 영업흑자를 기록한 글로벌 경쟁업체는 독일 폴크스바겐(1조9000억원)과 이탈리아 피아트(8000억원) 등 2곳에 불과하다. 도요타(-12조3000억원)와 포드(-3조3000억원), 혼다(-4조1000억원), 닛산(-2조4000억원), 독일BMW(-6000억원), 벤츠(-2조원) 등은 대규모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좋은 실적을 냈다고 현대차가 자만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잘한 것도 있지만 경쟁자들이 위기를 맞아 소극적이어서 반사이익을 얻은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현대차는 도요타의 위기를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품질을 잃으면 모든 것이 사라질 수 있다’며 도요타를 반면교사로 도약을 준비하는 중이다.

최근 현대차는 안전부품에 대한 품질검증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국내외 협력사와 함께 합동 점검을 늘렸고, 품질교육에도 힘써 그룹 및 협력사 임직원들의 의식을 제고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대차가 위기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1999년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품질경영이 밑바탕이다.

실제로 미국의 대표적인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JD파워의 신차품질조사(IQS)에서 현대차는 2000년 34위에서 2003년 23위, 2004년 7위로 수직 상승했고 2006년에는 벤츠, BMW, 도요타 등을 제치고 3위로 올라섰다. 꾸준한 품질 경영이 열매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자동차 전문지 <오토모티브뉴스> 는 이를 두고 ‘사람이 개를 물었다(Man bites Dog)’ ‘지구는 평평하다(The Earth is flat)’고까지 표현했다.

현대차는 2008년 ‘실질품질 3년 내 세계 3위, 인지품질 5년 내 세계 5위’를 의미하는 ‘GQ(Global Quality)-3???’를 목표로 ‘창조적 품질경영(Creative Quality Management)’을 선포했다. 이런 노력으로 현대차는 지난해 6월 미국 JD파워의 IQS에서 일반 브랜드 부문 역대 최고점인 95점을 획득하며 1위에 올랐다.

일본 차에 비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던 내구품질도 크게 개선됐다. JD파워의 2009년 내구품질조사(VDS)에서 닛산과 폴크스바겐을 제치고 일반 브랜드 6위에 올라섰다. 그야말로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현대차의 궁극적인 목표는 고객에게 가장 갖고 싶은 브랜드(Best Buy Brand)로 인정받는 것이다. 정 회장은 “품질은 현대의 자존심”이라며 “품질 개선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고 늘 강조한다.



미래 차량 기술로 승부한다

▎앨라배마 공장은 현대차 미국 공략의 중심지다.

▎앨라배마 공장은 현대차 미국 공략의 중심지다.

IT기술 개발을 위한 노력에도 속도가 붙었다. 전자, IT, 소프트웨어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며 자동차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

현대차는 자동차와 IT산업 간 복합화(convergence)를 위한 투자를 매년 늘리고 있다. 2008년 세계적 IT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전략적 제휴에 이어 차량 IT혁신센터 지원 등으로 차량 IT 및 인포테인먼트 분야 첨단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비록 자동차 회사로서 역사는 짧지만 첨단기술을 탑재한 새로운 유형의 자동차 개발에는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게 현대차의 구상이다. 미래 차량 기술 개발을 위해 연구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8년 ‘차량IT혁신센터’를 설립해 중소기업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이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 정보통신산업진흥원 등과 함께 글로벌 차량 IT 전문기업을 육성하는 데도 적극 나서고 있다.

현대차의 신기술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0 국제전자제품 박람회(CES)’에서 소개됐다. 여기에서 현대차는 UVO 터치패널, 북미형 텔레매틱스, 북미형 지상파 디지털 모바일 TV, 햅틱 스티어링 휠 스위치, 차량용 위젯, 통합형 차량용 능동 안테나 등 선행기술 6종을 선보여 업계를 놀라게 했다.

노사 문제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현대차가 꼭 풀어야 할 숙제다. 하지만 최근에는 현대차 성장의 걸림돌로 꼽히는 노사관계에도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해 무분규 임단협 타결에 이어 노사 상생의 윈-윈 전략도 제시됐다. 노조는 공존공생을 위한 9가지 역할을 열거했다.
▎현대차에서 개발 중인 하이브리드 차.

▎현대차에서 개발 중인 하이브리드 차.

민노총 산하 최대 노동조직으로 지난 20년간 강성 노조로 알려졌던 현대차 노조가 상생의 실천전략을 내놓은 것은 이례적이다. 노조의 유연한 자세는 현대차 노사 관계 발전은 물론 향후 글로벌 경쟁력 향상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서비스 마인드를 도입한 국내 영업 변화도 주목된다.

고객만족 실현을 위한 ‘조직·제도·의식’ 혁신을 추진하고 있는 국내영업본부는 최근 고객만족 전담부서인 CS추진실을 신설하는 한편 고객 불만 접수 시 즉시 해결하는 현장 중심의 원스톱 서비스를 강화했다. 전 거점을 대상으로 CS인증제 실시 및 우수 거점 포상을 통해 고객 최우선 경영이 조기에 정착될 수 있도록 했다.

또 최고의 정비 서비스를 위해 지난 24일 서비스사업부 23개 서비스센터 AS 주재원과 고객센터, 긴급출동봉사반 9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대적인 CS 발대식을 가졌다. 이와 함께 고객 감동 프로그램도 선보일 예정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국내 최초로 아반떼 고객이 재구매하면 구입 차량 최고의 중고 가격을 보장하는 중고차 가격보장 서비스를 시행한 바 있다. 올해는 대상 차종을 확대할 예정이다.

또 프리미엄 스포츠 마케팅과 고품격 문화 마케팅 등 글로벌 프로모션을 강화해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현대차의 이런 활동이 글로벌 시장에서 얼마나 통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세계 자동차 업계가 생존에 바쁜 터에 시장 확대를 위한 마케팅과 품질을 혁신하는 작업은 바람직한 일이다. 현대차가 어떻게 얼마만큼 달릴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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