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 깊은 장인기업은 불황에도 아니 흔들릴새
환부가 곪아 터지기 전엔 잘 모른다. 그들의 역할을. 문제가 발생하고 클레임이 들어오면 새삼 드러난다. 그들의 가치가 말이다. 마이스터. 이들은 기업 경쟁력의 정수다.
장인(匠人)정신은 기업 성장동력의 원천이다. 이게 없으면 기업은 사상누각이나 다름없다. 세계적 제품을 생산하기는커녕 졸지에 신뢰 없는 기업으로 낙인 찍힌다.
장인정신을 잃고 추락한 도요타의 사례는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기업은 위기에 강하다. 양질의 품질은 위기를 극복하는 내성이다. 세계 최초로 심장박동기를 개발한 미국 메드트로닉은 글로벌 불황 속에서도 영업이익률 20%를 달성했다. 원동력은 명품이다.
‘당신의 가족이 심장병을 앓고 있다면 어떤 제품을 사용하겠는가’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미국 의사가 “메드트로닉 제품”이라고 답했을 정도다. ‘맞춤형 오토바이’라는 컨셉트로 해마다 명품 오토바이를 시장에 내놓는 할리데이비슨도 연평균 10%의 고속성장을 거듭한다.
매출이 꺾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그랬다. 독일의 파버 카스텔이 연필 하나로 세계적 명성을 쌓을 수 있었던 이유도 품질에 있다. 세계적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찬사를 들어 보자. “파버 카스텔의 연필은 두께가 이상적이고 질이 뛰어날 뿐 아니라 연필심이 부드럽다.” 삼성경제연구소 윤영수 수석연구원은 “품질이 좋은 제품은 불황을 타지 않는다”고 말했다.
불황에 빛나는 장인정신
그래서 ‘비싸서가 아니라 없어서 못 사는’ 상품으로 대접받는다. 독일을 ‘자동차 왕국’으로 만든 주역은 벤츠·폴크스바겐 등 글로벌 메이커만이 아니다.
3000곳에 이르는 중소 자동차 부품 생산업체의 역할도 컸다. 실례로 벤츠에 들어가는 2만여 개의 부품 중 60%는 독일 중소기업이 공급한다. 폴크스바겐의 외주 비율은 80%를 넘는다. 이런 중소기업이 부품을 제대로 만들어 공급하지 않았다면 독일은 자동차 대국의 자리를 내놓았을 것이다.
대규모 리콜 사태에 시달리는 도요타의 문제는 부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에서 시작되지 않았던가. 우리는 어떨까. 작지만 강한 마이스터 기업이 있을까. 한국생산기술연구원(생기원)과 이코노미스트는 음지에서 양질의 제품을 공급하는 강소(强小) 마이스터 기업을 선정했다.
대금지오웰(건설 중기계 부품), 동남정밀(자동차 부품), 선일다이파스(자동차용 볼트), 영신금속공업(볼트·너트), 이구산업(비철금속), 제우스유화공업(산업용 윤활유) 등 6곳(가나다순)이다. 이들 기업은 장인정신으로 똘똘 뭉친 곳이다. 품질만큼은 국내를 넘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한다.
자동차용 볼트 생산업체 선일다이파스의 제품 불량률은 0.0009%에 불과하다. 10만 개 볼트 가운데 불량품이 1개뿐이라는 얘기다. 산업용 오일 생산업체 제우스유화공업은 30개에 이르는 검사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윤활유에 이물질이 들어갈 가능성을 이를 통해 미연에 방지한다.
자동차 부품소재 업체 동남정밀은 주원료인 철이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한겨울에도 에어컨을 가동한다. 온도에 예민한 철이 팽창하면 품질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도요타의 추락 반면교사로 삼아야선일다이파스 김지훈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불량식품을 만든 기업은 여론의 질타를 받습니다. 하지만 부품소재 업체는 그렇지 않죠. 불량품을 만들어도 눈에 띄지 않으니까요. 이게 문제입니다. 눈에 보이든 그렇지 않든 부품을 제대로 만드는 것은 기업의 책무입니다. 자동차용 엔진 부품이 불량하면 소비자의 목숨을 앗을 수도 있죠. 그래서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겁니다.”
생기원 이만식 수석연구원도 “이들 6개 기업은 각고의 기술개발과 품질관리 노력으로 국내외 시장을 주름잡고 있다”며 “이들의 장인정신은 다른 기업에서 본받을 만하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이런 마이스터 기업을 어떻게 육성하느냐다. 일본은 기술력을 가진 기업의 가업 승계를 지원할 정도로 이 문제에 적극적이다.
일본 시중은행은 경영 후계자를 찾지 못해 애로를 겪는 마이스터 기업을 위해 펀드까지 조성한다. 일본 최대 은행 미쓰비시도쿄 UFI가 조성한 60억 엔 규모의 ‘꿈승계펀드’는 대표적이다. 일본에 창업 100년 이상의 기업이 2만 곳을 훌쩍 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마이스터 기업의 장인에게 부와 명예를 주는 국가도 많다.
장인을 존경하는 문화를 정착해 마이스터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전략이다. 벤츠의 최고급 프리미엄 자동차인 마이바흐는 ‘유럽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빌헬름 마이바흐의 이름에서 나온 브랜드다. 프랑스 파리직업학교 학생의 꿈은 에르메스의 가죽 장인이 되는 것이다. 벽에 에르메스 로고를 붙여 놓고 공부할 정도다.
마치 사법시험을 보듯 말이다. 스위스·독일·프랑스 등 유럽 국가는 아예 직업학교를 장려한다. 스위스 주정부는 1824년 연간 30명만 입학할 수 있는 최정예 제네바시계학교를 설립했다. 이는 스위스가 시계 왕국으로 우뚝 서는 데 주춧돌이 됐다. 독일 정부는 연간 2만5000명의 장인을 직접 육성한다.
우리나라 역시 마이스터 기업 육성을 위한 각종 정책을 내놓고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반길 일이다. 무엇보다 한국판 모노즈쿠리법을 만들어 제조업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일본이 2006년 시행한 ‘중소기업 모노즈쿠리 기반기술 고도화에 관한 법률’을 벤치마킹했다.
모노즈쿠리는 ‘물건 만들기’라는 뜻으로 일본에선 ‘장인정신’으로 의역된다. 또 사출·금형·도금 등 24개 분야를 제조기반 업종으로 선정하고 2012년까지 1000여억원을 투입한다. 생기원도 장인정신을 계승한 중소기업과의 교류를 통해 뿌리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상호협력 시스템 구축으로 글로벌 중견기업을 육성하는 게 목표다.
장인정신 계승기업 관련 커뮤니티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커뮤니티 회원사 기업엔 R&D(연구개발) 장비 사용료 및 수수료 50% 할인, 연구원 시설 무료 사용, 멘토 역할 수행하는 전담 연구원 배치, 정부 지원 R&D 사업 공동 참여 등 여러 혜택이 주어진다. 최근엔 상속제를 개편해 가업 승계를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었다.
정부는 상속공제를 받을 수 있는 요건을 ‘피상속인이 사업기간의 60% 이상 또는 상속 직전 10년 중 8년 이상을 대표이사로 재직한 경우’로 완화한다. 기존엔 설립한 지 10년 이상 된 사업주만 공제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육성책은 아직 알찬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지원정책은 숱하게 많지만 부처별로 산재한 탓에 연계성이 낮다.
그에 따라 효율 역시 높지 않다는 지적이다. 규모가 작은 장인기업이 R&D 자금을 지원받기 힘든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마이스터 기업으로 선정된 제우스유화공업 이선도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중소기업이 R&D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정부 지원을 받기도 여의치 않고요. 그래서 창업 초기부터 작성된 실험노트를 하루에 한번 보면서 연구합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전략이죠.”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해 낡은 실험노트를 봐야 하는 현실, 바로 이게 우리 마이스터 기업의 불편한 진실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발표한 ‘명품기업의 DNA’라는 보고서에서 “대량생산 업체가 명품 기업으로 변신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장인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명품 기업을 만들고, 이 소기업의 성공사례를 모아 명품 기업의 집합체로 육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마이스터 기업을 제대로 키워야 할 때라는 얘기다. 글로벌 휴대전화 제조업체 노키아는 1998년 수제 휴대전화 회사인 버튜를 설립하고 마이스터 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작은 거인이 만든 메이드 인 저머니이제 작은 핸드백에도 예술을 넣어야 한다. 연필심엔 혼을 담아야 한다. 겉으로 보이지 않는 자동차 부품도 대충 만들면 큰코다친다. 도요타처럼 말이다. 독일의 기능인은 경영관리보다 작업을 중시한다. 제품의 질, 제품 인도 기한의 엄수, 판매 후 서비스에 대한 조사에 주력하는 것이다. 음지에서 발현되는 이런 장인정신은 ‘메이드 인 저머니’로 이어졌다.
그래서 이들을 작은 거인이라고 부르는 거다. 세계 최고 브랜드의 원천은 다름아닌 장인정신과 마이스터 기업이라는 얘기다.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답은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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