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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위의 호텔

구름 위의 호텔

비행기가 태국 서쪽 안다만해 상공을 지날 때 객실 문을 어떻게 막을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싱가포르 항공 에어버스 A380 기내의 전용 특실에 대자로 드러누운 채였다. 불과 몇 시간 뒤엔 여행이 끝나고 나의 새 둥지를 비워줘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바로 그 순간 발버둥 한번 치지 않고 순순히 포기하지는 않겠다고 작심했다.

누가 뭐라든 이 객실을 얻으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가? 취재 명목으로 3개 항공사(싱가포르·에미레이트·에티하드 항공)를 설득한 끝에 신설된 호화판 독방을 무료로 제공받았다(인도의 제트 항공도 특실을 갖췄지만 내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과연 제 정신으로 구상한 전략인가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글로벌 불황의 한복판에서 주력 항공기에 초고가·초특급의 완전 폐쇄된 소형 객실을 설치하다니 말이다. 그 전략이 먹혀 들지 궁금하기도 하고 객실이 정말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기도 해서 내 머리로 짜낼 수 있는 가장 힘든 여행을 계획했다. 6일 동안 4만2720km를 이동하는 일정이었다(뉴욕→싱가포르→런던→아부다비→두바이→뉴욕). 초특급이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53시간가량을 보내며 머리가 몽롱해지고 허리가 뻣뻣해지는 끔찍한 고통을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시험하려는 목적이었다.

이 정도면 내가 용감하지 않냐고 자랑하고 싶어지지만 정말로 대담무쌍한 쪽은 문제의 항공사들이다. 물론 비행기 여행이 사치의 대명사였던 때가 있었다. 팬 아메리칸 항공 최초의 여객기는 파리의 유명 음식점 맥심으로부터 음식을 공수했고, 보잉 747 점보 제트기 도입 초기에는 위층에 피아노와 미니바가 마련돼 있었다. 하지만 연료비 증가, 산업규제 완화, 그리고 경쟁격화로 항공사들이 피아노와 마티니를 버리고 벌크 여행으로 전환하게 됐다. 쾌적함은 거의 고려하지 않고 가능한 한 많은 승객을 빠르고 저렴하게 수송하는 데 주력했다는 뜻이다. 사업모델이 호화 유람선에서 시내버스로 바뀌었다.

그러던 중 최근의 세계 금융위기가 닥쳤다. 국제항공운송협회에 따르면 2007~2009년 전체 항공교통량이 10.7% 감소한 반면 고급 여행의 매출은 20% 하락했다. 이 시장이 항공사 수익의 30%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그 충격파가 작지 않았다. 상당수의 미국 항공사, 그리고 호주 퀀태스나 에어 캐나다 등 대다수 항공사가 퍼스트 클래스 좌석을 없애거나 대폭 줄였다. 이오스나 실버젯 등 일부 고급여행 전문 항공사는 완전히 파산했다. 하지만 몇몇 항공사는 역발상 전략을 구사했다. 스탠더드&푸어스의 항공산업 분석가 짐 코리도어가 말하는 이른바 ‘티파니 vs 월마트’ 전략이었다. 이들 프리미엄 항공사들은 천문학적인 가격에 유례 없는 초특급 서비스(민간 항공에서 최고의 사치로 간주되는 거의 완벽한 개인공간 등)를 제공한다. 싱가포르와 런던 간 왕복여행 비용이 1만2000달러 선이며 두바이와 뉴욕 간 왕복비용도 거의 비슷하다.

이 전략이 정확히 어떻게 효력을 발휘할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 항공사들은 숫자의 공개를 극도로 꺼리며 이익이나 매출을 언급하더라도 비즈니스석과 퍼스트 클래스 특실을 구분해서 말하지 않는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특실이 아직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대단히 위험한 도박이며 그 배경에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첫째는 단순히 물리적 요인이다. 신형 A380기는 여분의 공간이 너무 많아서(장거리 여객기 747보다 40%가량) 항공사들도 달리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일반석의 불편을 덜어주는 방법도 있었지만 에볼루션 증권의 산업 분석가 닉 커닝엄의 말마따나 일반석 승객은 “촌사람들이라서 그 차이를 모를 뿐 아니라 항공사들이 일반석을 더 편하게 만들 경우 사람들이 고급 좌석을 찾지 않게 된다”는 논리가 성행했다. 싱가포르 에어라인 같은 항공사들은 일반석을 더 안락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남아도는 공간이 많았다.” 그래서 특급 서비스로 알려진 소수 항공사들은 호화로운 이미지를 더 강화할 만한 최고급 상품을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커닝엄의 표현을 빌리자면 “브리티시 항공이나 에어 프랑스의 콩코드 여객기처럼 상품 전체를 번쩍거리게 포장하는 격”이었다. 에티하드 최고경영자 제임스 호건은 “지난 2년 동안 항공산업이 부진에 허덕였지만 우리는 퍼스트 클래스 객실의 도입을 계기로 회복의 발판을 다졌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항공의 대변인 제임스 보이드는 경쟁적인 요소도 있다고 덧붙였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보라는, 일종의 선전포고였다.”

그러나 그런 전술로 항공산업 전쟁에서 승리가 가능할지는 아직 상당부분 미지수로 남아 있다. 그런 초고가 서비스는 일반 좌석보다 훨씬 더 이익이 많이 남는다. 하지만 먼저 팔려야 한다. 그러나 항공산업 분석가들은 이런 후광 효과(이들 새로운 특실이 전체 항공사에 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준다는 이론)가 항공권 판매증가로 이어진다는 데는 대체로 회의적이다. 그리고 S&P 코리도어의 말로는 역사적으로 항공사들이 이런 실험을 성공적으로 이끈 사례가 드물었다(피아노 바가 대표적인 예다). 업계 관계자들은 새로 도입한 특실의 이용실적이 좋으며 단순히 이미지의 고급화만을 목적으로 제품을 선보일 만한 여력은 없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내가 이용한 항공편들의 경우 특실이 25% 이상 채워진 적이 없었다. 이는 사실 단편적인 사례에 불과하지만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경제상황이나, 이런 여행을 이용할 만한 사람이라면 커닝엄의 말마따나 누구나 “전용기를 이용할 능력이 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말이다. “수퍼 퍼스트 클래스가 전용기를 빌리는 비용과 별 차이가 없다면 누가 그걸 이용하겠나?”

과연 누구 말이 옳은지 알아볼 생각으로 나는 몇 주 전 눈 내리는 금요일 저녁 뉴욕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특실전용 여행의 첫째 혜택은 지상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났다. 기다릴 필요가 거의 없었다. 물론 공항 터미널에 너무 일찍 도착하면 특실 여행자라도 밖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그러나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은 없다. 터미널(일반적으로 특급 호텔처럼 장식된 전용 홀)에 도착하면 개인 도우미가 맞아준다. 그 순간부터 이 일종의 비서 겸 안내인이 조용히 그리고 신속하게 비행기로 인도한다. 전용 탑승수속, 입국심사, 보안검색 경로를 일사천리로 통과해서 신발끈을 풀 틈도 없을 정도다.

그런 시중을 받으면 우쭐한 기분이 들지만 한편으로 위험하기도 하다. 나는 여행의 첫 일정에서 그 사실을 깨달았다. JFK 공항에서 싱가포르 항공 여객기의 좌석에 앉으려다가 내 여행가방을 본 지가 한참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기내 승무원이 지극히 조심스럽게 들고 가서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기억이 있다는 승무원은 나오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안내인의 존재에 너무 정신이 팔려 보안 검색대에 가방을 그냥 남겨둔 채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싱가포르 항공의 세심한 개인적 배려가 다시 진가를 발휘했다. 탑승 브리지가 비행기에 다시 연결되고 직원들끼리 귓속말을 주고 받더니 터미널에 다녀와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졌다. 결국 가방은 찾았지만 이륙이 40분간 지연됐다. 하지만 내가 받은 수모라고는 교통안전국 요원의 도를 넘는 생색과 다른 승객들의 따가운 눈총이 전부였다. 일반석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극단적인 수준의 개인적 배려와 마찬가지로 사치스러운 편의 서비스 또한 지상에서 시작된다. 대표적으로 공항으로 이동할 때 기사 딸린 자동차로 모시는 식이다. 그 밖에 전용 VIP 라운지(싱가포르 항공의 경우는 약간 쓸쓸했다), 또는 무료 마사지(에티하드)도 있다. 모든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는 풀 서비스 음식점의 예약석도 준비했다. 기내에서 이륙대기 중 공짜 음식이 끊임없이 나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거의 불필요한 서비스지만 (a) 남다른 대식가이거나 (b) 비행시간이 여덟 시간 미만이라서 그동안 줄곧 잠을 잘 생각이라면 아주 좋은 특전이다.

일단 좌석에 착석하면 드디어 특실 여행이 본격화된다(좌석은 싱가포르와 에티하드의 경우 페라리 자동차의 인테리어를 담당하는 폴트로나 프라우가 디자인했다). 특실의 첫인상은, 이런 말을 하면 배 부른 소리라고 하겠지만, 약간 실망스러웠다. 이름이나 광고사진을 보고 나는 독실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곳은 캡슐에 더 가까웠다. 상당히 넓고 편안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좌석이라는 뜻이다. 복도 쪽으로 설치된 스크린 도어를 닫아서 시야를 차단할 수 있지만 완전히 가리지는 못한다. 파티션의 높이가 1.5m가량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안전상의 이유에서 필요한 조치라고 하지만(비상시 승무원이 승객의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퍼스트 클래스 객실이 안락한 칸막이 사무실 같은 인상이다. 내부는 난장이 배우들 용도로 지어진 영화 세트의 옛날 열차 객실 칸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불평하는 건 아니다. 처음 내 팔꿈치 쪽의 문을 닫았을 때 약간 폐쇄공포증이 일었다. 그러나 그런 느낌은 곧 사라지고 외부인의 방해를 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조명이 어두워지자 엄마 뱃속 같은 분위기가 됐다. 소파 쿠션으로 만들어진 요새 속에 안전하게 보호받는 어린이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23인치 평면 TV도 마련돼 있었다.

세 항공사의 특실은 기본적으로 모두 같지만 분위기는 약간 다르다. 온통 크림색과 마호가니 소재인 싱가포르 항공이 가장 차분하다. 반면 에미레이트 항공은 옹이 무늬 단풍나무와 금박으로 장식되어 휘황찬란하다. 단추를 누르면 팔걸이에서 미니바가 튀어나온다. 미니바가 필요하냐고? 아니다. 근사하냐고? 두말 하면 잔소리다.

하지만 진짜로 필요한(또는 대단히 고마워할 만한) 시설은 널따랗고 평평한 침대다. 모든 특실의 좌석이 침대로 바뀐다(싱가포르 항공은 접이식 형상기억 매트리스도 갖췄다). 무료 제공되는 크루그 샴페인을 홀짝이다가 자리에 누우려 하면 친절한 승무원이 눈치 빠르게 올이 촘촘한 리넨(싱가포르 항공의 경우 지방시)을 깔아준다. 나의 경우 잠깐 동안 심한 식중독에 걸려 드러누웠을 때 침대를 아주 유용하게 이용했다. 싱가포르발 비행기가 런던을 향해 14시간에 걸친 비행을 시작한 직후였다(중간기착지 싱가포르에서 24시간 머물 동안 비위생적인 길거리 음식을 너무 먹은 탓이었다).

그러나 몸이 아프지 않더라도 기내에서 발을 쭉 뻗고 누울 만한 침대는 혁신적인 특권이다. 이는 개인공간을 포함한 온갖 편의시설(그리고 방대한 영화 타이틀)과 함께 이른바 발륨(신경안정제) 효과를 발휘한다. 특실에 앉아 있는다고 해서 여행시간이 짧아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시간을 의식하지 않게 된다. 마지막 날, 최종 일정(두바이에서 뉴욕 행)을 위해 비행기에 오를 때 공황에 가까운 허탈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침대에 누워 담요를 덮고 5×7cm 터치 스크린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는 순간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나는 보통 비행기를 타면 잠이 오지 않는다. 비즈니스 클래스에 앉든 약을 먹든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행 중 내내 깨지 않고 푹 잠을 잤다. 속이 좋지 않을 때도 술을 많이 마셨을 때도 상관 없었다(몸이 아픈 사람이라도 2000년산 돔 페리뇽이나 1989년산 생줄리앙 포도주를 거절하기는 힘들다). 이런 여행의 아마도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어디를 가든 사실상 상쾌한 기분으로 트랩을 내리게 된다. 샤워 시설을 갖춘 에미레이트 A380기를 이용하거나 3개 여행사 모두 도착 라운지에서 제공하는 스파 시설을 이용할 경우에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결론적으로 6일 동안 비행을 한 뒤에도 처음 여행을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거의 쌩쌩한 모습으로 내 아파트에 들어섰다. 이는 특히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돌아다녀야 하는 출장 여행자에게는 대단히 소중한 특권이다. 그 값을 매기기는 어렵다. 물론 실제로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는 다르지만 말이다.

With ANDREW B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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