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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클라이밍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왜 클라이밍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서울 성수동 K2클라이밍 &피트니스센터(C&F)의 인공암장에는 유명 연예인이 넘친다. 지진희, 이서진, 유지태, 이승현, 하지원 등이 C&F 스포츠클라이밍의 열성 멤버다.

암벽 등반은 혼자 하기 어렵다. 한 명이 로프를 묶고 등반에 나서면 다른 한 명은 반드시 벽 아래서 줄을 잡고 등반을 지켜봐야 한다. 등반 용어로 빌레이(belay)라고 한다.

탤런트 지진희의 자일 파트너는 K2코리아 정영훈(41) 대표다. “지진희씨가 저보다 훨씬 잘하죠. 선수로 나서도 무방할 정도예요. 아무래도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찍다 보니 운동신경이 좋은가 봐요.”

파트너에 대한 애정이 넘친다. 둘은 일주일에 세 번, 오후 4시30분에 만난다. 그리고 1시간30분 정도 벽을 오르내리며 굵은 땀방울을 쏟아낸다. 아래서 빌레이를 보던 정 대표가 이번엔 자신의 기량을 직접 보여준다.

가파른 벽을 성큼성큼 오르는 자세가 제법이다. C&F에 설치된 수십 개의 루트 중 그가 도전하는 것은 초보자와 중급자 사이의 난이도. 전문 용어로 ‘5.10a’급이라고 부른다.



골프·등산·자전거 등 운동 매니어“클라이밍을 배우기 전엔 체력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하면 할수록 부족하다는 걸 느껴요. 고난도 등반을 하기 위해선 근력을 더 키워야 하죠. 살을 더 빼야 하고, 악력을 높이고, 손목과 어깨 힘을 길러야 해요. 갈 길이 멀죠.” 정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운동 욕심이 많았다.

소싯적엔 수영을 했고, 중·고등학생 때는 알아주는 농구·축구 매니어였다. K2에서 일하기 시작한 30대 초반부터 등산을 했고, 그때 배운 골프 실력이 수준급이다. 겨울을 제외하곤 손에서 자전거를 놓지 않는 ‘자출족’이기도 하다.

“사업은 안정적으로 하고 싶은데 아웃도어는 모험적인 것을 해 보고 싶어요. 트라이애슬론에 도전하고 싶고, 경비행기 타고 전국 일주를 하고 싶어요. 전문 클라이머처럼 전 세계 거벽 탐방도 떠나고 싶죠.”

올봄엔 일단 북한산 인수봉, 도봉산 선인봉에 도전할 생각이란다. 정 대표는 지난해 가을 스포츠클라이밍에 입문했다. 그래서 아직 자연 벽은 한 번도 오르지 못했다. 매로 치자면 둥지에서 날갯짓만 해 보고 첫 비행은 못 한 셈이다. 자연스럽게 자연 벽 등반이 기다려질 수밖에…. K2익스트림팀 김형일 팀장은 “근력이 좋아 자연 벽에서도 잘 적응할 것 같다”고 치켜세운다.

인수봉 다음으로는 알프스에 도전하고 싶단다. 정 대표는 “올여름 이탈리아 아웃도어엑스포에 출장을 가는데, 기왕 간 김에 그곳 벽도 올라보고 싶다”며 “샤모니·돌로미테 등 알프스의 유명 암장에도 꼭 도전하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자연 벽에서 ‘5.11b’ ‘5.11c’급까지 도전하는 게 목표다.

정 대표가 인공암벽에 빠져든 것은 C&F를 설립한 후다. 수익성으로 봐서는 밑지는 장사다. 정 대표는 “K2는 순전히 산에서 돈을 번 기업이기 때문에 산을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투자했다”고 말했다. K2코리아는 38년 역사의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

특히 전문 등산화로 오랫동안 등산 애호가의 사랑을 받아왔다. C&F의 실내 암벽장은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벽 높이가 13m, 오버행(상부가 처마처럼 돌출돼 있는 부분)까지 합치면 등반선이 15m나 된다. 15m 인공 벽과 함께 볼더링(높이 5m 내외의 벽이나 바위를 확보 없이 오르는 등반) 벽까지 갖추고 있다.

유명 연예인이 앞다퉈 회원에 가입한 이유도 ‘땀 냄새가 가득하면서도 쾌적한’ 운동공간이란 입소문이 나서다. K2코리아는 국내 아웃도어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스포츠클라이밍 학생 선수에게 장학금을 지원한다. 훗날 스포츠클라이밍이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적극 육성하고 있다.



클라이밍 덕에 회사 분위기 좋아져한 기업의 CEO로서 ‘매주 3회 이상 운동’ 원칙을 지키는 것은 고행이다. 체력 관리를 위해 술·담배를 자제해야 하고, 저녁 이후 시간은 짬을 내기 어렵다. 그래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3년 반 정도 피웠던 담배를 다시 끊었다. 음주는 일주일에 2∼3회 정도. 클라이밍을 하고 난 저녁이면 “녹초가 돼 집에 가자마자 드러눕는다”며 너스레를 떤다. 집에 일찍 가 좋은 것은 딸 재롱을 볼 수 있다는 점.

운동하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더 느끼게 된단다. 클라이밍에 흠뻑 빠진 후 업무 스타일도 변했다. 대표로서 해야 할 일은 오후 4시까지 마치려 한다. “중요한 업무는 가능한 한 오전에 마무리하려고 하죠. 제가 회사에 있지 않아도 업무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결재 시스템을 바꾸는 중입니다.”

매주 열리는 월요일 간부회의도 오전 7시로 앞당겼다. 처음엔 불만이 없지 않았지만 이젠 일찍 시작하는 것을 반긴다고. 본사 대부분 직원이 C&F 회원에 가입해 저녁 시간이면 센터로 향한다. 여직원들은 피트니스·요가 등에 빠져 있다. 덕분에 회사 분위기가 한결 나아졌다. 정 대표는 “작정하고 만든 것은 아니지만 예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졌다”며 “회사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웃도어 전문 기업인 만큼 역동적인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가능하다면 아웃도어 업계의 구글이 되고 싶습니다. 그레이트 워크 플레이스? 그런 직장을 만들고 싶어요. 앞으로 그렇지 않은 회사는 기대하는 만큼의 성과를 내기 힘들지 않을까요?”

K2코리아는 정 대표가 경영에 참여한 1990년 말 이후 매년 성장하고 있다. 210곳에 이르는 매장을 계속 확장할 계획이고, 아웃도어 시장의 범위를 넓혀 유니폼 시장에도 뛰어들 방침이다. 또 프랑스 본사로부터 국내 상표권을 획득한 아이더(EIDER) 브랜드에 대해 보다 공격적 마케팅을 펼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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