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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힐은 이제 파라다이스 아니다

워커힐은 이제 파라다이스 아니다

입지가 예전 같지 않다. 사업장 위치를 탓할 지경이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 업체 파라다이스의 이야기다. 파라다이스그룹의 카지노 계열사는 워커힐·부산·골든게이트(인천) 등 3개다.

서울에 있는 파라다이스 카지노 워커힐(카지노 워커힐)은 코스닥 상장업체. 나머지는 비상장이다. 카지노 계열사의 총매출은 2009년 현재 4614억원. 이 중 카지노 워커힐의 비중은 71%에 달한다.

워커힐이 흔들리면 파라다이스그룹의 카지노 사업부문이 위축될 수 있다는 얘기다. 5년 전만 해도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카지노 워커힐은 그야말로 알짜 사업장. 경쟁자가 없었기 때문에 외화를 쓸어 담았다.

카지노 워커힐의 매출은 2000년 1922억원에서 2005년 2370억원으로 23% 커졌다. 입장객은 2002년 이후 37만5000명 수준을 꾸준히 유지했다. 1978년 SK(당시 선경개발)로부터 카지노 허가권을 양도받은 카지노 워커힐의 독점 구도는 무려 28년 동안 이어졌다.

파라다이스그룹에 워커힐은 아성이자 곳간이었다. 하지만 밀물이 있으면 썰물도 있는 법. 이 세상에 불멸은 없다. 철옹성 같았던 카지노 워커힐에도 틈이 생겼다. 2004년 정부가 서울·부산에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신규 허용하겠다고 발표한 이후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와 외화 획득을 통한 관광수지 개선’이 목적이었다.

2년 후인 2006년 카지노 허가권을 얻은 한국관광공사의 자회사 그랜드코리아레저(GKL)는 세븐럭강남(1월)·세븐럭힐튼(5월)·세븐럭부산(6월)을 순차적으로 개장했다. 카지노 워커힐이 독점하던 서울에 행운을 상징하는 2개의 세븐럭이 둥지를 틀었다.



작은 균열이 철옹성 무너뜨려그래도 설마 했다. 파라다이스의 아성이 금세 무너질 것으로 예측하긴 힘들었다. 더구나 GKL은 출범 초기 숱한 비리 의혹에 휘말려 난항을 거듭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카지노 신규 허가의 파장은 생각보다 크고 매서웠다. 경쟁 구도가 시작된 2006년 카지노 워커힐의 입장객은 전년보다 5만2744명 감소한 32만2195명에 그쳤다.

카지노 워커힐의 연 입장객 수가 37만 명 이하로 떨어진 것은 2002년 이후 처음이었다. 세븐럭힐튼·강남이 본격 가동한 2007년엔 카지노 워커힐의 균혈이 커다란 구멍으로 바뀌었다. 매출은 전년 대비 16% 줄어든 2185억원에 그쳤고 입장객은 25만5119명에 머물렀다.

이 역시 전년 대비 21% 줄어든 수치. 놀라운 사실은 세븐럭힐튼과 세븐럭강남을 찾은 외국인이 22만4302명, 21만8598명에 달했다는 점이다. 세븐럭의 입장객 수가 불과 1년 만에 카지노 워커힐을 턱밑까지 쫓아온 셈이다. 파라다이스그룹은 문제를 사업장 위치에서 찾았다.

파라다이스 전 관계자는 “도심에서 가까운 힐튼, 최첨단 시설이 집결한 강남 코엑스센터 대신 누가 워커힐에 오겠느냐”고 말했다. 일리 있는 판단이었다. 요컨대 세븐럭힐튼은 명동·남대문·동대문 등 서울 최대 상권과 가깝다. 경복궁·청계천·인사동 등 서울 관광명소와 인접해 있다.

근처에 하얏트·롯데·조선 등 특급호텔도 많다. 파라다이스그룹으로선 특별한 대책이 필요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워커힐 호텔을 떠나 시내 중심부로 진입하는 것.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장충동 호텔신라를 후보지로 생각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1978년 SK와 체결한 합의서가 덜미를 잡았다.

무슨 말일까. 여기선 파라다이스그룹과 SK의 질긴 인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듯하다. 애초 워커힐 호텔의 카지노 사업권은 한국관광공사(당시 국제관광공사)에 있었다. 하지만 기대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자 박정희 정부는 카지노 사업권을 SK에 팔았다. SK는 이 사업을 파라다이스에 맡겼다. 1973년의 일이다.

5년 후인 1978년 정부가 또다시 ‘카지노 사업을 허가 받은 자가 다른 사람에게 영업을 위탁해선 안 된다’는 골자의 법령을 공포했다. 이에 따라 SK는 파라다이스그룹에 ‘언제든지 요청하면 카지노 허가권을 반환한다’는 조건으로 이를 양도했다. 물론 합의서도 작성했다.

쉽게 말해 카지노 허가권을 양도받은 파라다이스그룹으로선 SK가 요구하면 곧바로 반환해야 한다. 바로 이게 카지노 워커힐의 이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 셈이다.

실제 파라다이스그룹은 2007년 12월 영업장 소재지 변경 허가 신청서를 문광부에 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듬해 4월 SK가 1978년 작성한 합의서를 근거로 카지노 사업 이전 불가, 카지노 사업 허가권 반환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2009년 1월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파라다이스는 워커힐 호텔 밖으로 이전해선 안 된다’며 ‘카지노 사업 허가권은 파라다이스에 있다’고 판시했다. ‘카지노 허가권이 파라다이스에 있다 해도 영업장을 맘대로 교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워커힐 호텔도 그렇지만 현재로선 파라다이스그룹의 손해가 더 크다. 파라다이스가 분쟁에 열을 올리는 동안 외국인 전용 카지노 시장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20 08년 세븐럭힐튼엔 44만727명, 세븐럭강남엔 21만9715명이 찾았다.

20만6700명이 방문한 데 그친 카지노 워커힐은 졸지에 3위(입장객)로 밀렸다. 1위 세븐럭힐튼과의 격차는 더블스코어가 넘는다. 게다가 카지노 워커힐이 단 한번도 넘지 못한 40만 입장객의 벽을 세븐럭힐튼이 가뿐하게 깼다.



좌절된 승부수, 대안은?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2009년 세븐럭힐튼엔 52만3722명, 세븐럭강남엔 22만866명의 외국인이 방문했다. 카지노 워커힐의 입장객은 20만 명 이하로 뚝 떨어졌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2006년 이후 서울의 외국인 전용 카지노 시장이 한껏 커졌음에도 카지노 워커힐의 성장세는 둔화한다는 점이다.

서울의 외국인 전용 카지노 시장은 2006년 32만2195명(입장객)에서 2007년 69만8019명, 2008년 86만7142명, 2009년 94만3205명으로 커졌다. GKL 관계자는 “새로운 시장을 형성한 대부분의 외국인이 카지노 워커힐이 아닌 세븐럭으로 흡수되고 있다”고 말했다. 카지노 워커힐로선 이제 매출 순위도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2009년 현재 카지노 워커힐의 매출은 2227억원으로 1위다. 세븐럭힐튼은 1344억원, 세븐럭강남은 1855억원이다. 큰 베팅을 즐기는 외국인은 아직 워커힐에 간다는 얘기다. 하지만 양쪽의 성장률이 크게 다르다. 세븐럭힐튼의 매출은 2007년 395억원에서 2009년 1344억원으로 3.4배가 됐다.

세븐럭강남의 매출은 같은 기간 744억원에서 1855억원으로 149% 커졌다. 반면 카지노 워커힐의 매출은 2007년 2185억원에서 2009년 2227억원으로 2% 증가하는 데 그쳤다. 워커힐 호텔은 파라다이스그룹에 더 이상 파라다이스가 아니다. 올 3월 현재 카지노 워커힐(7만6568명)의 입장객은 세븐럭힐튼(19만5818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매출(708억원)은 세븐럭강남(714억원)에 추월당했다. 협공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이사다. 하지만 쉽지 않다. SK가 순순히 놔줄 리 만무하다. SK와 파라다이스그룹은 법원의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현재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파라다이스 관계자는 “올 6월 결과가 나올 예정”이라며 “소송이 일단락될 때까진 꼼짝할 수 없다”고 말했다.

파라다이스그룹이 돈을 벌기 위해선 워커힐 호텔을 빠져나와야 한다. 워커힐 호텔로선 카지노가 빠지면 수익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때 양쪽은 훌륭한 사업 파트너였다. 한쪽은 높은 수익을 올렸고 다른 한쪽은 짭짤한 임대료를 챙겼다. 잭팟을 함께 터뜨렸던 이들은 등을 돌린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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