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박지성이 말하는 ‘명장 리더십’

박지성이 말하는 ‘명장 리더십’

1986년 처음 맨유의 지휘봉을 잡음. 맨유 감독 재임 기간 따낸 우승컵만 프리미어리그 11회, FA컵 5회, 유럽챔피언스리그 2회 등 20여 개. 70년대 말 스코틀랜드의 애버딘 감독 때 리그 우승과 함께 스코틀랜드 최초로 유럽대회 우승컵까지 차지. 41년생으로 70세를 바라보지만 “은퇴는 없다”고 강조.

모든 축구팀은 마술을 부리고 신비한 주술을 쓰는 사람이 필요하다. 자칫 냉소적이며 통제가 힘든 스타들을 하나의 동기로 묶어 승리를 얻어내는 것이 축구 감독의 임무다.

승리했을 때는 화려한 평가가 쏟아지지만 패배라도 하면 온갖 비난에다 경질까지 감수해야 한다. 감독들은 매주 홈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 앞에서 자신이 만든 성과를 입증해야 한다.

단지 전술만으로 승리할 수는 없다. 최고의 선수를 골라내는 안목과 경기 상황을 꿰뚫고 필살의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과 선수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축구 감독은 CEO와 비교되곤 한다.

성공한 축구 감독과 CEO들은 자신만의 비법을 지니고 있다. ‘명장 아래 약졸 없다’는 말처럼 명장들이 주문을 외우면 모두가 영웅이 된다. 대한민국의 캡틴 박지성(29·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IFFHS)이 선정한 현역 최고의 축구 명장 1위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과 4위 거스 히딩크 터키 감독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행운아다. 25년째 맨유를 맡아 우승 전설을 써 온 퍼거슨 감독과 약팀에도 생명을 불어넣어 강팀을 꺾는 히딩크 감독에게는 어떤 비법이 숨겨져 있을까. 박지성에게 이들 축구 명장들의 경영론을 직접 들었다.



한마디가 인생을 바꾼다

1967년 21세에 네덜란드 2부 리그 축구팀에서 미드필더로 활약. 1986년 에인트호번 감독. 1998년 네덜란드, 2002년 한국을 월드컵 4강에 진출시킴. 2006년 월드컵에서 호주를 16강에 견인했고 유로2008에선 러시아를 4강에 올려놓음. 지난해 영국 첼시의 임시 감독으로 FA컵에서 우승.
박지성에게 ‘어떻게 최고의 무대까지 오를 수 있었는가’라고 물었더니 “최고의 지도자들이 들려준 한마디 때문이었다”고 답했다. 때로는 짤막한 한마디가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한·일월드컵을 준비하던 2002년 1월 북중미 골드컵이 열린 미국. 히딩크 감독은 오른발 아킬레스건을 다쳐 벤치만 달구던 박지성에게 다가와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걸었다.

“자네는 정신력이 훌륭해. 그런 정신력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을 거야. 희망을 갖고 열심히 해봐.”

특별히 주목 받지 못한 데다 부상까지 겹친 박지성은 당시 ‘과연 월드컵에 뛸 수 있을까’ 자신감을 잃고 있었다. 주전들에게만 신경 쓸 줄 알았던 감독이 직접 다가와 들려준 이 한마디에 그는 한국의 사상 첫 16강을 확정 짓는 포르투갈전 골을 만들어낸다. 맨유에 입단했던 2005년 영국 언론은 박지성의 영입이 아시아 시장을 노린 것이라며 ‘티셔츠를 팔러 온 사나이’라고 연일 비꼬았다.

벤치만 달굴 것이라며 ‘벤치성’이라고 약을 올렸다. 이 소식을 들은 퍼거슨 감독은 “언론은 한국이나 영국이나 다 똑같군. 다들 아직도 나를 잘 모르는구먼”이라고 받아넘겼다. 이 말 한마디에 벙어리 냉가슴 앓던 박지성은 순조롭게 적응할 수 있었다.



위닝 멘털리티 vs 팀 정신박지성에게 “맨유가 왜 세계 최고의 팀이냐”고 물었더니 퍼거슨 감독이 만든 ‘위닝 멘털리티’(winning mentality) 전통을 얘기했다. 그는 “맨유가 최고인 까닭은 스타들이 즐비하기 때문이 아니다”며 “어느 팀보다도 의사 소통이 잘되고 승패를 떠나 다음 단계를 대비하는 정신적인 준비가 잘돼 있다고 자부한다.

우리는 이걸 두고 위닝 멘털리티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5월의 일화를 소개했다. 첼시 원정에서 1대2로 패하는 등 어려울 때 맨유는 FC 바르셀로나(스페인)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을 앞두고 있었다. 박지성은 “어느 때보다 긴장이 필요한 때였지만 퍼거슨 감독은 농담하고 장난치면서 오히려 선수들의 긴장을 풀어줬다.

그는 항상 패배에서 긍정을 찾으라면서 선수들보다 먼저 패배감을 씻어낸다”고 설명했다. ‘위닝 멘털리티’와 비견되는 히딩크 감독의 운영 원칙은 ‘팀’이다. 2002년 초 히딩크 감독은 북중미 골드컵에 이어 남미 원정에서도 연일 패배를 당하며 경질 위기에 직면했다.

경기 내용도 좋지 않았지만 좀처럼 골이 터지지 않았다. 그때 히딩크 감독이 내놓은 처방전이 ‘팀’이었다. 그는 “우리 문제는 단지 슛만이 아니다. 경기를 풀어가는 과정을 모두 복기해야 한다. 팀 전술 속에서 스스로 어떻게 움직이고, 얼마나 효율적인지 따져봐야만 골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하며 위기에서 벗어났다.

박지성은 “‘히딩크 매직’이라고 부르는 믿기지 않는 승리에는 ‘팀’이라는 비결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2002년 월드컵 4강을 거둔 한국이 그랬듯이 2005년 5월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을 거둔 에인트호번 역시 특급 스타들이 아닌 팀으로 승부를 걸었다. 히딩크 감독이 독일월드컵 본선에 올려놓은 호주가 그랬고, 유로2008에서 네덜란드를 3대1로 꺾은 러시아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회고했다.

박지성이 퍼거슨 감독에게 감탄하는 것 중 하나는 일흔 가까운 나이에도 컴퓨터를 내장한 듯한 방대한 기억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박지성은 “하프타임 때 드레싱룸에 모인 우리들 앞에 서면 감독님은 항상 ‘몇 년, 몇 월, 며칠 어디서 누구와 붙었던 그 경기 때는 말이지’라는 말로 지시를 시작한다. 당시 상황을 비디오 화면 보듯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후반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와 전술을 일러주신다”고 말했다. 이어 “수시로 상황이 변하는 축구 경기인지라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닐 텐데도 그의 설명에는 사례와 경험이 묻어난다. 그래서 자신이 지휘봉을 잡은 2000여 경기를 모두 복기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고 감탄했다. 퍼거슨 감독이 경기 도중 껌을 씹는 이유는 리듬감이 생겨 경기를 풀어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히딩크 감독은 유머가 넘치고 친화적이다. 나이키의 후원을 받는 박지성이 에인트호번과 암스테르담 중간 지점에 위치한 나이키 매장에 가서 자신이 필요한 물품을 고를 때였다. 그곳에서 히딩크 감독을 우연히 마주쳤다. 팀 안에서는 쉽게 친한 척 못하던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에게 다가와 “여기 있는 것 다 가져가도 돼. 훔쳐가도 괜찮아”라고 귀엣말을 했다.

박지성이 맨유로 이적할 때 히딩크는 “혹시 맨유에서 잘 안되면 다시 내게 오라”며 애정을 표했다.



스타를 휘어잡아라

퍼거슨은 팀 플레이를 해친 선수는 아무리 스타라도 가차없이 내쫓았다.
퍼거슨과 히딩크의 마법은 스타들을 휘어잡을 때 가능했다. 18세 때 운전면허를 딴 라이언 긱스는 퍼거슨 감독의 방을 찾아가 구단에서 후원하는 차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가 된통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피거슨은 “고작 몇 경기 뛰었다고 이런 요구를 하는 거야. 너란 놈한테는 망할 놈의 자전거 한 대도 못 줘!”라고 불호령을 내리고 그를 쫓아낸 적이 있다. 퍼거슨은 팀플레이에 해가 된다고 생각되면 베컴과 판 니스텔로이, 로이 킨 등 수많은 스타를 팀에서 가차없이 내쫓았다. ‘퍼거슨의 단두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혹했다.

히딩크는 시계 초침까지 맞춰두고 미팅 때마다 정시가 돼서야 어슬렁거리며 나타나던 브라질의 특급스타 호마리우를 휘어잡았던 일화가 있다. 자신의 시계를 1분 앞당겨놓은 후 지각한 그를 호되게 나무라고 벌금형을 내렸다. 약이 바짝 오른 호마리우는 부큐레슈티전에 투입되자마자 15분 동안 3골을 뽑아냈다.

네덜란드 대표팀을 맡아 유로96에 출전할 당시 히딩크는 대회 도중 미디어 앞에서 자신을 욕한 에드가 다비즈를 쫓아냈다. 그는 약을 바짝 올리다 98프랑스월드컵이 다가와서야 복귀시켰다. 팀 규율에 관한 12개 항의 각서에 사인하는 조건이었다. 다비즈는 프랑스월드컵 유고와의 8강전에서 결승골을 뽑았다.



꼼수는 없다, 공평함이 최고
히딩크는 자기 방식을 고집하기 보다 팀 특징에 따라 스스로 변화한다.
히딩크가 펼치는 마법을 잔머리나 쓰는 꼼수로 봐선 안 된다. 네덜란드 언론인 베벨링과의 인터뷰에서 히딩크는 “절대 속임수를 쓰면 안 된다. 경기를 평가할 때 개인적으로 하든 여러 명 단위로 하든 감독은 능력이 출중한 선수들의 잘못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며 “잘하는 선수들은 대개 영향력이 강하다. 그 힘에 대응하는 상위의 힘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퍼거슨은 ‘로테이션 시스템’의 창시자다. 매 시즌 60경기를 뛰는 살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주전과 비주전을 가리지 않고 선수 전원에게 고루 기회를 준다. 그래서 맨유 속에는 두 개의 맨유가 있다는 말이 생겼다.

무서운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퍼거슨은 선수들 코앞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모습이 마치 헤어드라이어를 연상케 한다고 해서 그의 호통을 ‘헤어드라이어 트리트먼트’라고 부른다. 하지만 박지성은 “내가 지켜본 퍼거슨은 결코 무턱대고 화를 내지 않는다”며 “조직이 방향성을 잃지 않으려면 적절한 자극이 필요한데 퍼거슨은 화를 내야 할 때와 내지 않아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안다. 그래서 선수들은 퍼거슨을 더 무섭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히딩크는 “욕을 해대고 나무란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선수들이 ‘이봐 감독! 다 했어. 괜찮다면 우리 하고 싶은 대로 놔두지 그래?’라는 반응을 보인다면 그건 치명적”이라고 말한다.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하기보다는 그 팀의 특징에 따라 스스로 변화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2001년 8월 체코와의 평가전에서 3골을 내주는 실수를 범하며 0대5 대패를 안긴 김남일을 중용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김남일은 “다시 기회를 얻었을 때 목숨 걸고 보답해야겠구나. 모든 걸 바쳐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회고했다.

퍼거슨은 팀의 연대감을 고취하기 위해 외부의 적을 만드는 일에 능하다. 외부의 적에 대항하면서 내부의 잡다한 분쟁을 잊고 적을 상대로 싸우기 위해 똘똘 뭉치도록 집중력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포위심리’라고 부른다.

애버딘 감독 시절 퍼거슨은 선수들에게 스코틀랜드 축구계 모두가 애버딘의 좌절을 원하고 있다는 의식을 심어주며 선수들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BBC의 축구해설가였던 지미 힐이 맨유 선수의 반칙을 비판하자 퍼거슨은 “젖비린내도 가시지 않은 얼간이 지미 힐 같은 녀석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쓸 가치가 없소. BBC는 그저 우리가 패하기를 학수고대할 뿐이오. 고향이 리버풀인 사람들은 몽땅 다 리버풀 머플러를 가슴에 품고 있는 인간들이잖소”라고 응수했다.

히딩크 역시 20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한 국내 언론과 심각하게 대립했다. 선수를 모아두고 언론을 적으로 규정하며 선수들의 집중력을 높인 바 있다. 당시 기술위원장이었던 이용수 세종대 교수는 “히딩크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 선수들과 일체감을 만들어냈다. 폴란드전 승리를 거둔 데는 이 같은 심리전이 주효했다”고 회고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 ‘유퀴즈’ 출격 고현정, 드뮤어룩 완성한 ‘이 브랜드’

2이커머스에 반격…기대 이상 성과 낸 ‘스타필드 마켓’ 비결은

3‘1400원 强달러’에 달러보험 눈길 가네…장·단점은?

4구글 최고의 무기, 세계 1등 브라우저 크롬…분사해야 한다면?

5‘제2의 도시’의 운명…성장과 쇠퇴 그리고 도전

6“최강야구부터 무쇠소녀단까지”...땀 흘리는 예능이 인기인 까닭

7코오롱 ‘인보사 사태’ 이웅열 명예회장 1심 무죄

8‘코인 과세유예·상속세 완화’ 물 건너가나…기재위 합의 불발

9최상목 “야당 일방적 감액예산…결국 국민 피해로”

실시간 뉴스

1 ‘유퀴즈’ 출격 고현정, 드뮤어룩 완성한 ‘이 브랜드’

2이커머스에 반격…기대 이상 성과 낸 ‘스타필드 마켓’ 비결은

3‘1400원 强달러’에 달러보험 눈길 가네…장·단점은?

4구글 최고의 무기, 세계 1등 브라우저 크롬…분사해야 한다면?

5‘제2의 도시’의 운명…성장과 쇠퇴 그리고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