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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열 토막 난 대한전선 향배는?

주가 열 토막 난 대한전선 향배는?

대한전선 안양공장. 회사 측은 매각을 추진 중이다.

대한전선 주가는 최근 3개월 새 반 토막, 2년 새 열 토막 났다. 지난 5월 28일 종가는 8940원. 2007년 11월 9만원을 돌파한 후 속절없이 추락했다. 회사는 ‘빚잔치’ 중이다. 계열사와 자산을 팔고 유상증자로 자본을 확충해도 시장의 신뢰가 회복될 만큼 빚이 줄지 않았다.

워낙 차입금이 많았기 때문이다. 시장은 대한전선에 여전히 부정적이다. 2009년 중순 이후 증권사에서 ‘매수 리포트’는 단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 지난해 말에는 국내 3대 신용평가기관이 이 회사의 무보증회사채 신용등급을 ‘BBB+안정적’에서 ‘BBB+부정적’으로 내렸다.

“단기간에 재무구조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공통된 이유였다. 시장에서는 대한전선의 신용등급이 더 낮아질 수 있다고 본다. 회사 설립 후 50년 넘게 적자를 본 적이 없는 알짜 회사 대한전선이 유동성 위기에 빠진 것은 잘 알려졌다시피 무리한 M&A(인수합병) 탓이다.

2002년 이후 대한전선은 M&A 시장의 큰손이었다. 2002년 무주리조트를 시작으로 쌍방울, 명지건설, 남광토건, 온세텔레콤을 인수했다. 2007년에는 5100억원을 들여 세계 2위 전선업체인 이탈리아의 프리즈미안 지분을 사들였다. 이때 대한전선의 주가는 고점을 찍었다. 대한전선은 사세가 확장된다는 착각에 빠졌던 것 같다.

이 과정에서 부채가 너무 빠른 속도로 늘었다. 2006년 말 대한전선의 부채 비율은 80%였다. 하지만 2007년 말 180%, 2008년 290%로 늘더니 2009년 말 350%까지 증가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시장에 몇몇 대기업이 어렵다는 소문이 돌았다. 대한전선은 소문의 단골로 등장했다.

결국 이 회사는 지난해 5월 주채권은행 재무구조 평가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고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었다. 당시 이 회사의 순차입금은 2조3300억원. 부채비율은 358%였다.



빛 바랜 자구노력대한전선은 자구계획을 발표했다. 2009년 말까지 부채비율은 220%로 떨어뜨리고 2010년에는 118%(1조3000억원)로 감축한다는 것이었다. 대한전선은 대한ST, 트라이브랜즈(옛 쌍방울) 등 계열사를 매각하며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2007~2008년에만 19개의 계열회사를 편입했던 이 회사는 지난해에만 11곳을 계열사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사정은 좋아지지 않았다. 2009년 말 현재 차입금은 2조2900억원. 부채비율은 약정 당시와 거의 비슷했다. 한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는 “과도한 부채를 지닌 기업은 어느 한 곳에서 현금 흐름이 막히는 순간 부채를 줄여가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회사와 사정이 비슷한 다른 대기업 관계자도 같은 얘기를 했다.

현재 주채권은행과 재무약정을 맺은 A기업 관계자의 얘기다. “계열사를 매각하려고 내놓으면 회사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가격을 터무니없이 제시하는 곳이 많다. 아무리 어려워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가격에 팔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경기가 어렵다 보니 부동산을 매물로 내놔도 잘 팔리지 않는다. 재무 리스크가 부각되면 돈이 잘 돌지 않고 거기에 업황까지 안 좋으면 이자 갚는 것도 어렵다. 만기가 오는 단기 차입을 갚기 위해 다시 빚을 내야 하기 때문에 부채 비율을 줄이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시장에서는 대한전선이 재무구조 개선에 노력해 왔던 점만큼은 인정한다. 이 회사는 올 1월 노벨리스코리아 주식과 프리즈미언 지분 전량을 매각해 5000억원 정도를 확보했다. 지난 4월에는 유상증자를 통해 확보한 1840억원을 포함해 모두 차입금 상환에 쓸 방침이다. 회사 측은 “올해 말 부채비율 목표는 190%”라고 밝혔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차입금을 1조원 가까이 줄여야 가능한 수치다. 대한전선은 투자주식 매각 6800억원, 부동산 및 대여금 회수 2400억원, 자본 확충 2000억원 등 1조2000억원의 유동성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대한전선은 상반기에 외국회사에 투자한 지분을 뺀 돈과 유상증자를 통해 “만기가 오는 단기 차입금을 갚지 못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해소했다.

대한전선에 냉소적이던 증권가도 다소 우호적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유진투자증권의 김장환 연구원은 “상환 계획과 실행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전제 아래 “대한전선은 올해 1조원 규모의 현금을 확보하고 내년에도 안양공장 유동화와 자산매각을 통해 9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솔로몬투자증권도 최근 보고서를 내고 “채무 상환 계획에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한전선에 따르면 올해 만기 도래하는 차입금은 상반기 1조300억원, 하반기 6000억원 정도다.

내년에는 상반기에 3600억원, 하반기에 2900억원을 상환해야 한다. D증권사 관계자는 “재무구조 약정 당시 대한전선 주가가 2만원대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기업이 완전히 분해되지 않는다면 채권이나 주식도 저가 매수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재무개선 약정을 맺었다는 사실 자체로 주가가 지나치게 ‘할인’돼 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재무 상태만 어느 정도 호전되면 전선업계 1위인 대한전선의 지위를 봤을 때 저가 매수 시점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남광토건 워크아웃설이 나오고 건설사 문제가 계속되고 있어 당장 주가가 오를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또한 올해 계획된 차입금을 갚는다고 하더라도 내년에 1조원 정도 차입금이 남고 이자비용만 12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여 영업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주가가 오를 호재를 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한 시흥이나 안양공장을 매각하는 과정도 대한전선의 계획대로 추진될지 확신할 수 없어 상환 과정이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자산매각·부채감축 진척되나 관심계열사인 남광토건도 고민거리다. 최근 퍼진 남광토건 워크아웃설에 대해 대한전선은 공시를 통해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남광토건 사정이 워낙 좋지 않아 대한전선이 재매각하거나 워크아웃으로 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남광토건의 차입금은 4200억원 정도로 부채 비율이 370%다.

게다가 남광토건이 채무 보증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채가 1조5000억원에 달한다.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영업이익으로 차입금 이자비용도 감당하지 못하는 남광토건에서 우발 채무가 발생하면 대한전선 주가는 바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대한전선은 지난 5월 초 남광토건의 2대 주주인 에스네트 보유 지분 15%를 인수해 단독경영권을 확보했다.

시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라는 얘기가 많았다. 올 들어 경영진을 교체한 대한전선은 국내외 보유한 비핵심 자산을 팔아 연말까지 차입금을 1조원 줄인다는 계획을 거듭 밝혔다. 특히 지금까지 방만하게 진행됐던 사업다각화 전략을 접고 ‘본업’에 충실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3월 취임한 강희전 사장은 4월 열린 간부 워크숍에서 “재무개선 속도를 올리고 글로벌 호황기의 전선사업에서 미래 성장을 위한 새 판을 짜야 할 것”이라며 ‘해현경장(解弦更張·거문고의 줄을 바꾸어 맨다)’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는 취임 후 여러 차례 “본업에 충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한전선 측은 “전선 산업은 선진국 교체 수요가 많고 신흥국의 신규 수요가 많아 초고압 전력망이나 광통신선 시장 전망이 밝다”며 본업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강 사장이 취임하면서 밝힌 목표는 2015년 매출 5조원, 영업이익 4000억원이다.

내년 세계 최대 규모인 충남 당진공장이 돌고 해외 생산망을 구축하면 가능하다는 설명인데 과한 목표로 보인다. 지난해 대한전선은 매출 2조2600억원에 26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이 회사 매출은 지난 5년간 2조원 초반대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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