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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실낙원’

아시아의 ‘실낙원’

한동안 태국의 이미지는 지상낙원이었다. 정치적으론 1997년 인권보호를 명시한 헌법을 제정해 민주주의를 꽃피웠다. 경제적으로도 1980년대와 90년대 초 세계 최고에 속하는 성장률을 자랑했다. 90년대 말 아시아 금융위기 때도 태국은 잘 이겨냈다.

그 후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2002년 5.3%, 그 다음해엔 7% 이상 성장했다. 경관이 빼어난 해변과 산악지대를 가진 평온한 왕국, 외지인을 환영하는 분위기, 안정된 정치의 이미지는 투자자와 관광객들을 사로잡았다. 연간 13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너무도 매혹적인 이 ‘미소의 나라(land of smiles)’를 찾았다.

반짝이는 화려한 사원과 매혹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내세운 관광유치 캠페인 ‘경이로운 태국(Amazing Thailand)’ 등의 노력 덕분에 방콕은 세계적인 관광 전문잡지 트래블 & 레저, 콘데나스트 트래블러에서 독자가 뽑은 아시아 최고 도시로 군림했다. 지금은 어떤가? 태국의 국가 브랜드가 산산조각 났다.

지난 두 달 동안 방콕에서 벌어진 보안군과 붉은 셔츠 시위대의 충돌로 적어도 80명이 목숨을 잃었고, 증권거래소와 최대 쇼핑센터 등 방콕의 핵심 경제기반이 거덜났으며, 평화와 평온의 이미지가 깨졌다. 그러면서 태국 경제의 주요한 버팀목 중 하나(GDP의 8%)인 관광산업이 가쁜 숨을 몰아쉰다.

싱가포르 등 지역 내 관광 경쟁국들이 태국 방문객들을 따돌리려 안간힘을 쓰는 시점이기에 타격이 더욱 크다. 한국,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를 포함해 한때 ‘아시아의 호랑이’ 또는 ‘새끼 호랑이’로 불리던 나라 중 유일하게 태국만이 무너져내린다. 한때 역동적인 민주국가였던 태국이 이젠 통치불가능하고 실패한 국가로 널리 인식된다.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는 총선을 연기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은 듯하다. 사실 이전에 선출된 두 정부도 비민주적 방식으로 쫓겨났으니 선거를 해봐야 뾰족한 수가 나올지 의문이다. 국제인권단체 프리덤 하우스는 2010년 보고서에서 태국을 ‘부분적으로만 자유로운 나라’로 규정하며 정치적 권리에서 미얀마 같은 압제 정권과 동일한 수준으로 평가했다.

미국 국무부는 2000년엔 자유선거와 평화적 정권 이양을 이뤄냈다며 태국을 치켜세웠지만 지금은 법을 무시한 인명살상과 언론·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처사를 비난한다. 최근의 격변은 오랫동안 지속된 정치적, 경제적 불만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 불만이 곪아터져 도시 폭동으로 발전했다.

망명한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세력(대부분 시골 사람들)과 아피싯 현 총리의 지지자(주로 방콕에 근거를 두고 비교적 부유하다)들이 세를 겨루었다. 여기엔 뿌리 깊은 지역적, 계층적 격차가 작용한다. 하지만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이런 파국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지난 10년 동안 태국 지도자들은 신생 경쟁업체에 시장을 빼앗기는 기성 기업체의 CEO처럼 잇따른 실책을 범했다. 그 결과 이제 태국은 베트남, 중국, 심지어 경제가 마비된 국가였던 인도네시아 같은 이웃나라를 따라잡으려고 발버둥치는 형편이 됐다. 그 실책 중 한 가지는 장기적 사고의 결여였다.

잘나가던 시절에 아피싯이 이끄는 민주당도, 2001년 처음 정권을 잡은 탁신의 타이락타이당도, 기초적인 글 깨우치기와 기계적 암기를 강조하는 구식 교육체제의 개혁에 필요한 충분한 투자를 하지 않았다. 반면 대만, 싱가포르, 중국, 인도는 대학 교육, 영어 교육, 고부가 가치 기술에 투자했다.

그 결과 그들은 글로벌한 안목을 지닌 혁신적 기업들과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아웃소싱 산업을 일으켰다. 그러나 태국 정부와 대기업들은 외국 회사에 납품하는 저부가가치 제조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중국이나 싱가포르와 달리 태국은 기업들이 인력의 수준을 향상하고 세계적으로 뻗어나가도록 돕는 데 필요한 효과적인 유인책을 제공하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정치 지도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대기업들은 태국 정부가 중국을 비롯해 여러 동남아 국가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상황에서도 진정한 국제 경쟁을 포용하기를 꺼렸다. 실패는 불을 보듯 뻔했다. 대학 진학생들의 영어 능력을 측정하는 토플 시험에서 태국은 요즘 아시아 국가들 중 최하위권에 속한다.

대만의 세계적인 PC 제조업체 ‘에이서’나 인도의 일류 IT업체 ‘인포시스’와 비교될 만한 태국 기업도 없다. 중국이 세계의 저가 제조분야를 갈수록 더 많이 잠식해가는 상황에서 첨단기술 회사들마저 태국을 무시한다. 인텔은 베트남에 10억 달러 규모의 컴퓨터 칩 조립 공장을 세웠다. 베트남은 1980년대와 90년대만 해도 태국보다 크게 뒤진 나라였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대만 제조업체들은 태국에 2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베트남엔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태국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옮겨가지 못했고,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 정부지출을 이용해 경제를 무한정 떠받치는 일도 불가능했기 때문에 지난 4년간 성장률이 크게 떨어졌다. 2006년 5.2%에서 2007년 4.9%, 2008년엔 2.5%, 그리고 지난해엔 마이너스 2.3%를 기록했다.

한편 지도자들은 관광객들이 매력을 느끼는 태국의 핵심자산도 보존하지 않았다. 이웃나라 싱가포르는 엄격한 환경보호법을 제정했고, 심지어 산업화가 과도한 한국의 경우도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수도 지역의 녹지화에 힘썼으며 수도를 가로지르는 청계천을 복원했다.

반면 태국은 리조트와 콘도단지의 난개발을 방치해 빼어난 자연 경관이 하나씩 사라지면서 태국의 국가 브랜드를 이루는 주요 요소가 손상됐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는 2008년 보고서에서 역사적으로 태국 최고의 섬 휴양지인 푸껫을 이렇게 평가했다. “경이롭게 아름답고 훼손되지 않았으며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관광지로서의 원래 매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평화를 보존하는 문제에선 태국 지도자들이 지난 10년간 더욱 형편없이 실패를 거듭했다. 과거 태국 정치인들은 타협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1992년 군과 시위대 간의 폭력 충돌이 방콕을 휩쓴 뒤 양측은 서로 한발씩 물러나서 과도정부를 구성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했다. 그 결과 경제는 별다른 손상을 입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권위적인 CEO 출신으로 정계에 뛰어든 탁신은 2001년과 2005년 선거에서 큰 승리를 이뤄낸 뒤 독불장군처럼 태국을 운영했다. 법원·관공서·중앙은행 등 이론상 독립적인 기관들을 무력화했고, 가신들을 요직에 앉혔으며, 대중 연설을 이용해 수년 동안 태국의 안정에 기여해 온 이 기관들을 비하했다.

야당의 반응도 태국의 주요 제도와 기관들을 더욱 약화시켰다. 야당 지도자들은 선거를 통해 정권을 심판하는 대신 대규모 시위를 일으켰다. 궁극적으로 2006년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탁신은 망명길에 올랐다. 과거에도 태국엔 쿠데타가 많았지만 그 대부분은 타협으로 마무리됐다. 이번엔 달랐다.

2007년 친탁신 정부가 다시 출범하자 노란 셔츠를 입은 반탁신 시위자들이 방콕을 마비시켰다. 2008년 아피싯의 정부가 친탁신 정부를 갈아치웠을 때도 붉은 셔츠 시위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아피싯의 하야를 외쳤다. 이런 끊임없는 벼랑끝 대치의 결과로 태국인들은 정치적 균형추가 약간이라도 이동하면 곧 폭발해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타협은 훨씬 어려워졌다. 태국 지도자들은 권력을 자기 손에 전부 쥐려고 애썼다. 아시아의 경쟁국들은 그 반대였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방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려고 지자체에 권력을 더 많이 이전했다. 독재국가인 중국도 더 많은 권한을 지방 관리들에게 이양했다.

태국에선 2006년 쿠데타 후 지도자들이 혁신적인 1997년 헌법을 쿠데타 주도자들을 사면하는 헌법으로 대체했고, 상원을 덜 민주적으로 만들었으며, 중앙 정부의 권한을 강화해 지방의 불만을 억누르려 했다. 이런 조치가 심한 반발을 불렀다. 처음에는 무슬림이 지배하는 남부 지방에서 이미 비등하던 반란이 더욱 확산됐다.

그 다음엔 붉은 셔츠 시위대가 등장했다. 이 둘 다 중앙 정부의 권력 강화에 분개했다. 그런데도 아피싯은 계속 중앙 정부의 몸집을 키웠고, 이제 비상사태까지 선포해 시민 자유를 제한하고 보안군의 가혹한 시위 단속을 허용했다. 이런 아픔을 겪으면서 태국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인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중재에 나서리라고 기대한 사람이 많았다.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한 입헌 군주제의 국왕으로 푸미폰은 오랫동안 중립을 지켜주는 힘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친탁신계 붉은 셔츠 시위대는 이제 더는 그를 믿지 않는 듯하다. 태국이 과거의 빛나던 이미지를 되찾는 일이 가능할까? 다른 도시와 국가들은 물론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더 심하게 손상된 이미지도 되살려냈다.

벨파스트는 과거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폭탄 테러 본거지로 알려졌지만 지금은 떠오르는 문화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마약 카르텔이 활개치던 보고타는 콜롬비아 정부가 그들을 제어하면서 지금은 도시계획의 귀감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북아일랜드와 콜롬비아에서 이런 변화를 가능케 한 핵심 요인은 진정한 정치력을 가진 지도자였다.

하지만 지금 태국에는 그런 지도자가 없다. 아피싯은 시위대의 일부 불만을 해소하겠다고 약속했다. 새 예산에서 정부 지출을 20% 이상 늘리고, 헌법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어쩌면 1997년 헌법의 요소들을 회복하는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경제 계획은 부를 농촌에 재분배하는, 인기영합적인 동시에 분열을 부추기는 탁신의 계획을 일부 그대로 본떴다.

시스템을 개혁하고 국가 경쟁력을 되살리며 환경을 복구하려는 진지한 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아피싯 총리는 군부의 힘을 약화시킬 능력도 없는 듯하다. 아누퐁 파오친다 현 육군 참모총장은 오는 9월 퇴역한다. 하지만 그의 후임으로 유력시 되는 프라윳 찬 오차 현 부총장은 그보다 훨씬 강경한 인물로 알려졌다.

국왕은 벌써 몇 달째 입원 중이다. 그런 상황에서 국왕이 중재자로 나설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진정한 정치가가 나오지 않는다면 태국이 국가 브랜드를 회복하기는 요원한 일인 듯하다.

[필자는 미 외교협회(CFR)의 동남아시아 담당 연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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