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되지 않은 5가지 문제
해결되지 않은 5가지 문제
▎지난 5월 월가의 금융 개혁을 촉구하는 시위가 미국 워싱턴 시내에서 열렸다.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지기 전에 이런 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헨리 폴슨 전 미국 재무장관이 최근의 한 뉴욕 타임스 기사에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말 아쉽다.”
15일 상원을 통과한 금융규제 법안을 일컫는 말이다. 그 말이 맞다. 다음에 금융위기가 찾아올 때 문제의 실상과 대책을 신속히 파악할 만한 힘과 정보를 준 데 대해 규제 당국자들은 바니 프랭크 하원의원에게 짤막한 감사기도를 올릴 만하다. 이 법안은 음지의 파생상품을 거래소와 결제소로 끌어들이고, 당국자들에게 비제도권 은행(shadow bank)을 감독하고 부실기업을 정리할 권한을 부여하며, 금융시스템 전반에 위험을 초래하는 대형은행을 감독할 강력한 감독기관들의 협의회를 소집하는 등 그 밖에도 많은 점을 개선하게 된다.
그러나 이 법안은 실제로 다음 금융위기의 발생을 차단하기보다 금융당국이 그것을 감지하고 억제하도록 돕는 기능이 더 강하다. 그런 점에서 공중보건의 향상과 의약품 개선 간의 차이점과 같다. 이 법안은 당초 병을 유발하는 환경(하수도 시스템, 대기 상태, 위생기준 등)보다는 의사가 환자의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춘다.
다시 말해 금융위기를 유발했던 취약점과 불균형 중 다수가 새로운 규제로 해소되진 않는다는 뜻이며 바로 그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다음은 우리가 앞으로도 주시해야 할 다섯 가지 문제를 살펴본다.
1 글로벌 저축 과잉 “금융위기의 주요 지표 중 하나는 유입되는 자본이 오랫동안 급증하면서 금리가 싸고 차입이 쉬워질 때”라고 하버드대 경제학자 케네스 로고프가 말했다. 미국의 위기도 다르지 않았다. 1987~99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들어오는 돈 대비 나가는 돈의 차이)는 국내총생산(GDP)의 1~2% 사이를 오르내렸다. 하지만 2006년에는 6%에 달했다.
경상수지 적자의 급증은 고도성장을 구가하면서 투자기회가 거의 없는 신흥국가들(예를 들어 중국)의 자금이 투자기회가 많고 성장률이 낮은 선진국으로 몰리는 데 따른 현상이었다. 미국의 경우를 보자. 실감나는 말투와는 거리가 먼 벤 버냉키 FRB 의장은 신흥국가들이 매년 미국 금융 시스템에 쏟아붓는 수천억 달러를 “글로벌 저축 과잉”이라고 부르며 이 문제를 빼고는 “이번 위기의 이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은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위기를 빠져나왔다. 중국은 더 빨리 성장하고 더 많이 수출하며 그렇게 얻은 돈을 미국에 투자한다. 미국은 덕분에 경제성장 없이도 지출이 가능해지므로 지금도 그 돈을 기꺼이 받는다. 금융위기 후 3%로 떨어졌던 경상수지 적자가 다시 4%로 돌아서 오름세를 지속한다. 리고프는 그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1~2%라야 감당할 만하다.”
2 가계부채, 그리고 그것이 필요한 이유 빌릴 자금이 풍부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미국인들의 부채가 그렇게 많은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0년대 초 60%를 약간 밑도는 수준에서 2006년 10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이 문제는 소득격차에서 비롯된다”고 시카고대 경제학자 래구람 라잔이 말했다. “80년대와 90년대 미국인구 중 상당수가 상대적으로 소득정체를 겪었다. 소득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빌린 돈으로 생활 만족도를 유지했다. 소득이 늘지 않아도 소비수준은 높아졌다.”
실업률이 9% 수준에 이르는 요즘에는 물론 소득이 훨씬 더 줄었다. 그리고 그 고통은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불평등은 실상 불황 이전부터 확대됐다. 실업은 서민들에게 타격을 주지만 경기회복은 부자들에게 빨리 찾아왔다. 가계대출은 아직도 GDP의 90%를 웃돌며 그 저변 환경은 오히려 더 악화됐다.
3 ‘비제도권 금융’시장 대공황은 시각적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은행이 망하기 전에 저축한 돈을 마지막 한 푼까지 모두 인출하려고 공황상태에 빠진 많은 사람이 은행 앞에 장사진을 이뤘다. 이번 금융위기도 비슷하게 심각한 상황으로 출발했지만 일부 낙담한 듯한 트레이더들을 빼곤 색다른 풍경은 없었다. 그것은 처음에는 소비자들의 위기가 아니라 은행들의 위기였기 때문이다.
개인저축은 보험으로 보장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위기로 비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대형 투자자들(연금기금·은행·기업 등)에겐 보험혜택이 없다. 그들은 보유채권을 환매조건부로 매매하는 단기자금거래 시장(repo market)을 이용한다. 모기지 담보부 증권 등을 담보로 받고 다른 대형은행에 돈을 빌려주는 식이다. 그러나 담보가치가 떨어지면 돈의 반환을 요구한다. 그리고 너도나도 동시에 돈의 반환을 요구할 때 과거와 같은 은행인출 사태가 벌어진다. 은행들이 모든 이에게 동시에 돈을 지급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산을 시장에 내놓아 자본을 구한다. 그러나 모두가 자산을 팔아치우려 하기 때문에 자산 가치가 폭락하고 은행은 도산한다.
“이는 사적으로 생성된 자금의 본질적인 문제”라고 프린스턴대의 경제학자 게리 고턴이 말했다. “그 돈은 이런 유의 인출사태에 취약하다. 1857년 예금을 둘러싸고 실질적인 첫 공황이 발생한 뒤 1934년에 와서야 예금보험이 마련됐다.” 올해 미국은 이런 비제도권 은행 시스템을 규제당국의 통제 아래로 끌어들이고 규제당국에 온갖 정보와 권한을 부여하지만 예금보험 같은 제도는 마련되지 않는다. 하지만 예금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인출사태 같은 시대착오적인 소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4 부자 은행들 1980년대 전체 기업이익에서 금융업종이 차지하는 비율은 10~20%선이었다. 하지만 2004년에는 35% 안팎으로 증가했다. MIT 경제학자 사이먼 존슨은 어떤 헤지펀드 매니저와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사이먼, 그건 푼돈이야! 1000만 달러로 상원의원들을 움직인다고!?’ 라고 그 친구가 내게 말했다”며 존슨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 친구들[큰손 투자자들]은 100만 달러 단위가 아니라 10억 달러 단위로 생각한다.”
그들은 그런 규모의 돈으로 특혜를 얻는다. 지난 금융위기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대중은 다른 문제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금융인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치인들을 위한 자금모금 행사를 주최하고, 친구들을 사귀어서, 금융규제가 얼마나 부담스럽고 불공평한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런 규제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무너져내린다. 금융위기는 한동안 우리 머릿속을 떠나지 않겠지만 영원히 남지는 않는다. 전체 기업이익에서 금융업종이 차지하는 비율은 15% 아래로 잠시 떨어졌다가 30% 이상으로 다시 증가했다. 그 정도의 자금이면 금융업계가 친구들의 기억 속에서 그 불명예스러운 사건을 지우고도 남는다.
5 느슨한 규제당국 가장 걱정스러운 전망은 만일 미국이 2000년에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고 해도 이번 금융위기를 막지 못했을 가능성이다. 법안을 과소평가하려는 뜻은 아니다. 규제당국은 위기를 예측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더 많이 확보하게 될 듯하다. 그러나 당국자들은 충분한 정보가 있었지만 그것을 묵살했다. 그들은 호황기에 다른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방심하다 허를 찔린다. 말하나 마나 거품은 그것을 터뜨릴 권한을 지닌 규제당국까지 속아넘어가야 성립된다.
2005년 주택가격이 역사적인 추세를 크게 앞서나갈 때 버냉키는 주택거품의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하다”고 말했다. 2007년에도 그는 FRB 당국자들에게 “서브프라임(비우량) 대출 시장의 문제가 경제의 다른 분야로 크게 확산되리라 예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은 지난 4월 금융위기를 되짚으며 이렇게 털어놓았다. “규제 당국자들은 습관적으로 실패하는 참담한 기록을 보였다. 역사를 돌아보면 그들은 위기가 언제 발생할지, 정확히 어디서 일어날지, 손실이나 파급효과가 얼마나 클지 알아내지 못한다.”
그러나 이번 법안은 규제 당국에 많은 권한을 부여한다. 기업을 감독하고, 자본요건을 정하고, 부실은행을 청산하기 전에 합의를 이뤄야 하고 온갖 일을 다한다. 그린스펀은 앞서의 연설에서 “완벽하지 않은 인간에게 앞으로 다가올 위기의 예측을 맡기기보다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규칙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번 법안에는 그런 요소는 극히 드물다.
고튼은 이렇게 말했다. “역사적으로 금융규제를 제대로 하는 데는 항상 오랜 시간이 걸리며 이번에도 그럴 성싶다. 어쩌면 올해나 앞으로 2년간은 문제가 없을지는 몰라도 문제가 모두 해결됐을 리는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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