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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pe - Big Id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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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실로 뜬 무언가엔 온기가 실린다. 털실을 한 코 한 코 손가락에 감고 꿰는 동안 한 사람의 마음도 고스란히 스며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온정을 담은 털모자가 몇 년째 아프리카 대륙의 갓난이들을 살리는 데 쓰이고 있다. 비영리 국제아동권리기구 세이브더칠드런의 ‘신생아 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이하 ‘모자뜨기’)을 말한다. 모자뜨기는 세이브더칠드런 각국 지부가 공동으로 펼치는 국제 보건·의료 지원사업 중 하나다. 한국지부도 2008년부터 동남아와 아프리카 몇몇 가난한 나라에 털모자 20만 개를 보냈다.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 방송인 박경림, 뮤지션 김윤아 등 유명인사도 이 사업에 동참한다.

특히 한국지부는 지난 2년간 말리에 17만 4000개의 모자를 전달해 왔다. 사하라 사막 서부에 있는 말리는 아프리카에서도 보건·의료 시설이 가장 열악한 나라로 꼽힌다. 지난 1일 토머스 존 매코맥(48) 세이브더칠드런 말리지부장이 한국을 방문한 것도 모자뜨기에 대한 감사를 전하기 위해서다.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세이브더칠드런 한국지부에서 ‘뉴스위크 한국판’과 만난 매코맥 지부장은 “모자뜨기야 말로 진심이 담긴 정성스러운 후원(genuine heartfelt expression of support)”이라고 말했다. 마음이 스미고 짜여 지구 반대편의 생명을 살리는 털모자의 가치를 담은 표현이다. 그는 “모자뜨기는 매우 직접적인 지원 방식”이라며 “한국인들의 따뜻한 손으로 직접 뜬 모자가 아프리카 신생아들을 살린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한 가지 의문의 생긴다. 아프리카처럼 무더운 곳에서 털모자가 얼마나 쓸모가 있겠느냐는 궁금증이다. 그것도 신생아들에게 말이다. 하지만 그건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실제 말리의 갓난이들에겐 털모자가 ‘필요’를 넘어선 ‘생존’의 도구다. 말리에선 10개월을 다 채우지 못하고 태어나는 미숙아가 많은 탓에 신생아들이 저체온증에 노출되기 쉽다. 그런 이유로 5세 미만 영·유아 5명 가운데 1명(19.6%)이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세이브더칠드런이 그래서 고안해 낸 게 털모자다. 털모자는 아기의 체온을 2도 이상 높여줘 저체온증을 막아주는 고마운 존재다. 미숙아들에게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주는 셈이다. 털실 한 움큼으로 짠 손바닥만 한 모자가 이런 위대한 일을 한다. 그래서 이를 ‘생명을 살리는 기적의 모자’라고 부른다고 한다.

세이브더칠드런 한국지부는 2008년부터 말리 등 아프리카 국가에 털모자를 직접 짜서 보내는 모자뜨기 캠페인을 해왔다. 한국지부의 한 관계자는 “장애가 있는 여고생, 뜨개질이 서투른 초등학생, 치매노인 보호센터 노인, 수술 때문에 절반만 모자를 떠서 보낸 녹내장 환자 등 각계각층이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세이브더칠드런 한국지부 홈페이지(www.sc.or.kr)의 ‘모자뜨기 후기’ 게시판을 읽다 보면 털모자의 따뜻한 뜻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올해 이 캠페인에 처음 참여했다”는 고윤지씨는 이렇게 말했다. “꼬박 3일 동안 모자를 떴어요. 뜨개질이 처음이라 실수도 많았지만 이 작은 털모자가 어린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훈훈해졌어요. 모자를 받는 아이가 행복한 꿈을 꾸며 건강하게 자라길 바랍니다.” 윤성희씨도 “한 땀 한 땀 뜨면서 내 아이에게 바라듯 말리의 아기들이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며 “작은 정성이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썼다.

매코맥 지부장은 “재정적으로 큰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지구 반대편에 사는 아기들을 생각하며 직접 모자를 만들어 보낸다는 의미에서 이 캠페인은 매우 감동적인 것”이라며 “말리인들은 이런 한국인들의 마음과 후원에 크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말리의 열악한 육아 실정도 설명했다. 말리의 부모들은 대부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아기를 안는 법이나 아팠을 때 응급처치를 하는 법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의료시설도 드물어 지역 보건소에 가려면 2~3 달러의 차비를 들여 30㎞를 가야 하는 실정이다.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기 다반사다. 그는 “세이브더칠드런 말리지부는 각국 지부의 지원을 받아 육아교육과 의료서비스 확충, 깨끗한 식수 공급 등의 사업을 벌인다”며 “그동안 한국 정부, 한국 국제협력단(코이카), 한국 기업들이 큰 도움을 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미국 국적인 매코맥 지부장은 지난 2009년부터 세이브더칠드런 말리지부장을 맡았다. 세계 최빈국 10개국이 모여 있는 서사하라 사막지역의 식량안보와 구호활동 전문가다. 1996년부터 1998년까지는 미국 민간구호단체인 ‘머시코(Mercy Corps)’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카자흐스탄, 르완다,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활동했다. 이번이 첫 방한인 매코맥 지부장은 지난 3년간 모자뜨기 캠페인을 후원해온 ‘GS샵’을 방문해 감사패를 전달하는 등 7박 8일간 한국에 머문 뒤 말리로 돌아간다.

모자뜨기 캠페인은 세이브더칠드런 한국지부를 통해 털실과 설명서가 들어 있는 ‘모자뜨기 키트’(1만 2000원)를 사서 참여할 수 있다. 매년 3~4월에 아프리카 등 지원국으로 전달된다. “말리에선 매일 아기들이 태어난다. 한국에서도 모자뜨기 캠페인이 멈추지 않고 계속 되길 희망한다”고 매코맥 지부장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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