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巨商의 반란

巨商의 반란

"투자자님들, 3년전 원금과 수익 돌려드린다고 했을 때 반신반의하셨습니까? 9월 기업 상장으로 약속 지킵니다.”
▎ 윤윤수 1945년 경기도 화성 출생 서울고·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1973년 해운공사 1975년 JC페니 1981년 화승 수출이사 1984년 대운무역 사장 1991년~ 휠라코리아 대표이사

▎ 윤윤수 1945년 경기도 화성 출생 서울고·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1973년 해운공사 1975년 JC페니 1981년 화승 수출이사 1984년 대운무역 사장 1991년~ 휠라코리아 대표이사





巨商의 반란

생각을 뒤집으니 세상이 뒤집혔다 … 역발상4




1
중국 짝퉁 도시에 진품 공장 세웠다



2
미국 죽쑤는 명품을 실속 브랜드로 변신



3
브랜드 고집 말고 현지 니즈 살펴라



4
회장은 숨는다, 이탈리아 이미지 지키기

휠라코리아가 9월 말 기업 공개를 예고했다. 윤윤수(65) 회장은 3년 전 휠라글로벌을 인수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상장을 통해 투자자들한테 이익을 돌려주겠다는 약속도 지킬 수 있게 됐다. 윤 회장은 샐러리맨 신화의 상징이었다. 세계 경영 신화를 써 나가고 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벌써 윤윤수 회장은 휠라의 다음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은 약속을 지켰다. 윤 회장은 3년 전 투자자들한테 원금과 수익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9월 28일 휠라코리아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되면 투자자들은 원금에 배당금을 받고 나서 매매 차익까지 실현할 수 있게 된다. 투자 받을 때 약속하지 않는 사업가는 없다. 약속을 하나도 어김없이 지켜내는 사업가는 드물다. 윤윤수 회장도 “이렇게 투자자들과 했던 약속을 모두 지키고 끝낼 수 있어서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윤윤수 회장님과 휠라코리아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덕분에 모두 행복하게 끝낼 수 있게 됐습니다.” 화인파트너스 한진욱 차장의 말이다. 화인파트너스는 휠라코리아에 200억원을 투자했다. 2007년 3월 휠라코리아가 휠라글로벌의 지주회사인 SBI를 인수할 때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했다. 휠라코리아가 상장되면 화인파트너스는 구주매출로 투자금의 10%가 넘는 수익을 거두게 된다. 한진욱 차장은 “대박은 아니지만 성공적 투자였다”며 “투자 실패 사례가 늘고 있는 요즘 분위기나 지난 3년 동안 금융위기로 경기가 몹시 나빴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행복한 결과”라고 말한다.

양하준 상무는 1996년부터 휠라코리아에서 일했다. 지금은 상품기획부를 총괄하고 있다. 2005년 휠라코리아가 SBI로부터 독립해 독자 경영을 시작할 무렵엔 동료 사원들과 함께 우리사주도 샀다. 양하준 상무는 “그때 거의 모든 사원이 예치된 퇴직금 100%를 회사에 투자했다”고 기억한다. 휠라코리아가 상장되면 그때 7500원 정도였던 주가는 단숨에 시장에서 3만5000원까지도 거래될 걸로 기대된다. 5배 장사다. 양하준 상무는 “무엇보다 입사할 때만 해도 이탈리아 브랜드의 한국 지사였던 회사가 이젠 글로벌 브랜드의 본사가 됐다는 게 감개무량하다”며 “윤윤수 회장님은 사원들과의 약속을 지켰다”고 말한다.

윤윤수 회장은 전 세계 휠라 관계자들에게는 구심축이다. 윤 회장이 있어서 휠라의 오늘이 있다. 화인파트너스 한진욱 차장은 “매년 열리는 전 세계 휠라 브랜드 담당자들의 서울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며 “그들에게 윤 회장은 신적인 존재였다”고 말한다. 윤 회장은 휠라 브랜드가 태어난 이탈리아 비엘라시의 명예시민이다. 그때 비엘라 시장은 윤 회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휠라가 당신에게 가 안주하게 돼 정말 다행입니다.” 휠라의 2010년 상반기 전 세계 매출은 2009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14% 증가했다. 2007년 휠라코리아가 휠라글로벌을 인수했을 때만 해도 휠라는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서조차 비틀거리고 있었다. 윤 회장은 전 세계 휠라 가족과의 약속을 지켰다.

▎휠라코리아 브랜드

▎휠라코리아 브랜드





약속을 지키는 힘은 역발상윤윤수 회장은 한때 연봉만 18억원을 받는 월급쟁이 사장이었다. 1998년엔 『내가 연봉 18억 원을 받는 이유』란 책을 펴낸 적도 있다. 지금 윤 회장은 휠라코리아의 회장이자 휠라글로벌의 주인이다. 하지만 윤 회장은 “지금은 그때의 절반도 못 받는다”며 손사래를 친다. 대신 할 일과 책임질 일은 곱절이 늘었다. 그는 돈을 좇아 사업해온 게 아니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그만인 월급쟁이 사장 대신 책무가 느는 주인 경영자가 된 건 오직 휠라 브랜드를 한번 뜻대로 키워 보겠다는 사업 욕심 때문이었다.

그건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휠라코리아 상장 일정이 발표된 뒤 윤 회장은 매일같이 기관투자가들을 상대로 IR(투자설명회)을 개최하고 있다. 강행군이다. 그런데도 윤 회장은 즐겁기만 하다. 윤 회장은 “휠라 브랜드는 무궁한 가능성을 지녔다”며 “그 가능성을 내 손으로 현실화하고 싶어 이 길로 들어섰고 하나씩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휠라코리아의 기업공개는 도움을 줬던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성과를 나눠주고 휠라코리아가 다음 도약을 준비할 발판이다. 윤윤수 회장은 자신과의 약속도 지켰다.

지난 7월 13일 윤윤수 회장은 중국 푸젠(福建)성 진장(晋江)시에 있는 휠라코리아 중국 공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구체적 상장 일정을 처음 공개했다. 윤윤수 회장은 “다음 달 말까지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는 것을 계기로 2014년까지 나이키,아디다스,퓨마에 이은 글로벌 4대 스포츠 브랜드로 도약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른바 휠라의 진장 선언이었다. 그런데 윤 회장이 선택한 장소가 중국의 진장시라는 대목이 특별했다.

푸젠성 진장시는 모조 상품으로 악명 높은 중국에서도 가장 유명한 짝퉁 생산지다. 윤윤수 회장은 2007년 휠라 글로벌을 인수한 다음 과감하게 중국 생산 거점을 진장으로 옮겼다. 가짜 소굴 한 가운데에 진짜 공장을 세운 꼴이었다.

윤윤수 회장은 “모든 걸 거꾸로 생각하는 게 내가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비결”이라고 말한다.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 수 있다는 건 그만한 기술력을 지녔단 뜻이다. 그곳에서 진짜 브랜드를 생산하면 짝퉁 기술자들은 진짜 기술자가 되고 브랜드 입장에선 질 좋은 노동력을 싼값에 확보할 수 있다. 윤 회장은 “게다가 가짜 소굴에 진짜 브랜드 공장을 차려 놓았더니 현지에서 생산되는 짝퉁 상품이 줄어드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었다”고 덧붙인다.

중국에서 시작된 윤 회장의 역발상 경영은 결국 미국 시장도 살렸다. 휠라USA는 2007년까지만 해도 몰락해 가고 있었다. 연간 6400만 달러의 적자를 보고 있었다.

윤윤수 회장은 중국에서 싼값에 생산한 제품들을 합리적인 가격에 미국 시장에서 판매하기로 했다. 유통 방식도 뜯어고쳤다. 겉만 번지르르한 매장을 자꾸 늘리는 일은 멈췄다. 대신 미국에서 1000개 가까운 매장을 보유하고 있는 대형 유통 업체 코올스에 입점했다.

중저가 전략으로 브랜드 방향을 전환한 셈이었다. 지금은 코올스뿐만 아니라 JC 페니와 시어스에도 휠라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윤윤수 회장은 “브랜드의 성공 방정식이란 의외로 단순하다”며 “원가와 유통에 답이 있다”고 말한다. 윤윤수 회장의 사업 전략은 적중했다.

6400만 달러에 이르렀던 휠라USA의 적자 규모는 2008년엔 절반인 3400만 달러로 줄더니 2009년엔 670만 달러가 됐다. 2010년엔 흑자 전환을 앞두고 있다. 가짜 공장에서 진짜를 만드는 중국 생산 전략이 미국 판매 전략으로 이어지면서 얻어진 결과였다.
▎윤윤수 회장이 중국 푸젠성 진장시에 있는 휠라의 화사 신발 공장에서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 몸매를 가꿔주는 이온 운동화는 필라의 차세대 주력 상품이다.

▎윤윤수 회장이 중국 푸젠성 진장시에 있는 휠라의 화사 신발 공장에서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 몸매를 가꿔주는 이온 운동화는 필라의 차세대 주력 상품이다.





역발상의 힘은 경륜윤윤수 회장은 이런 역발상이 반짝하는 창의력에서 나온다기보다 오랜 경험에서 생겨난다고 설명한다. 윤 회장은 2007년 휠라글로벌을 인수하면서 휠라의 지역 상표권자들에게서도 투자를 이끌어냈다. 남미 지역 상표권자인 다스 그룹과 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 상표권자인 인테그릭스는 휠라 상표를 반영구적으로 소유하는 대신 휠라코리아에 투자했다. 휠라코리아가 인수 대상인 휠라글로벌이 가진 남미와 유럽 지역 상표권을 담보로 다스와 인테그릭스에서 자금을 얻어낸 셈이었다. 일종의 LBO(차입매수)였다. 관건은 ‘휠라코리아가 휠라글로벌을 인수한 뒤에도 다스와 인테그릭스가 여전히 휠라의 상표권을 원할 것인지’였다.

윤윤수 회장은 확신이 있었다. 윤 회장은 1991년부터 휠라코리아 사장을 맡았다. 1992년 휠라코리아의 매출은 고작 60억원이었다. 윤 회장은 10여 년 만에 매출을 500배로 늘렸다. 아직 이탈리아에 휠라 본사가 있었던 때였다. 당시 엔리코 후레시 휠라 회장은 “휠라가 태어난 곳은 이탈리아지만 휠라를 꽃피운 곳은 한국”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휠라코리아가 돈을 더 많이 벌수록 휠라 이탈리아 본사의 간섭은 늘어만 갔다.

윤윤수 회장은 “한참 브랜드를 키워 놓았더니 라이선스를 빼앗아 가려고 한다든가 장사가 잘된다는 소식을 듣더니 로열티를 쥐어짜려 한다든가 하는 말 못 할 설움이 있었다”며 “사업권을 받아 장사하는 라이선시(licencee) 입장에 서 본 사람만이 그 마음의 상처를 안다”고 말한다. 다스와 인테그릭스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자신은 직접 겪은 설움에서 나왔다. 윤 회장은 “내가 라이선시였기 때문에 다른 라이선시들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브랜드 상표권을 소유하고 싶어 하리란 걸 알고 있었다”며 “역발상은 늘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야 했던 경험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지금 휠라 글로벌 브랜드는 20%의 통일성과 80%의 개별성을 통해 성장해 나가고 있다. 지역별 상표권자들이 독자적으로 자기 시장에 걸맞은 디자인을 개발하고 대신 브랜드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20%의 공통 상품을 판매하는 구조다. 20%의 통일성을 위해 2007년 이후 휠라코리아는 매년 두 차례씩 지역 상표권자들이 모두 모여 각자의 디자인을 공유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글로벌 브랜드의 수장인 윤윤수 회장이 오히려 더 많이 강조하는 건 브랜드의 탈집중화다.

이것 역시 경험에서 나온 역발상이다. 윤윤수 회장은 “지역별, 문화별, 기후별로 다른 소비자의 요구가 있기 마련”이라며 “글로벌 브랜드는 그런 개별 차이를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서 오히려 불필요한 재고가 쌓이곤 한다”고 지적한다. 윤 회장 본인이 상표권자로서 일할 때 본사의 강요로 한국 시장에선 팔리지도 않을 상품을 떠맡아 본 경험이 있다.

경쟁 글로벌 브랜드들이 지역 상표권자에 본사의 디자인을 강요할 때 휠라는 지역의 색깔을 북돋워주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윤윤수 회장은 아예 “나는 글로벌 라이선서라기보다 지역별 라이선시를 위해 서비스해주는 을”이라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휠라코리아는 그렇게 서비스해주는 대가로 매년 400억원의 로열티를 받는다. 윤 회장은 지역 상표권자의 장사가 잘되면 본사도 돈을 번다는 평범한 진리를 실천한 것뿐이다.

양하준 상무는 15년 동안 봐온 윤윤수 회장의 가장 큰 힘은 “직관력”이라고 말한다. 양 상무는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스포츠웨어 시장을 가늠하는 통찰력이 놀랍다”며 “라이선스 업계의 속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고 혁신적 생각을 맨 먼저 내놓을 때가 많다”고 얘기한다. 화인파트너스 한진욱 차장도 “휠라코리아는 그룹사가 아니어서 오직 회사의 성장성만 보고 투자해야 한다”며 “윤 회장이 누구보다 스포츠웨어 업계를 잘 아는 사람이라는 신뢰가 투자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윤윤수 회장은 “중국 공장을 옮긴다거나 휠라글로벌을 인수한다는 식의 중요한 결정은 결국 내가 과거의 경험에 비춰봐 내린 결정을 회의 시간에 화두로 던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경험에서 나온 역발상이야말로 윤윤수 회장의 가장 큰 무기다. 그가 시장의 신뢰를 얻고 끝내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저력이다.





브랜드를 이해하는 경영자국내에서 윤 회장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샐러리맨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다. 정작 1년의 절반을 살다시피 하는 해외에 나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해외 소비자들은 휠라가 한국인 소유란 걸 잘 모른다. 당연히 윤윤수란 한국인이 휠라의 회장이란 걸 아는 사람도 많지 않다. 여전히 휠라는 이탈리아 브랜드로 통한다. 휠라의 본사가 어디에 있는지는 관심도 없다. 나이키의 회장은 필립 나이트다. 아디다스는 독일 브랜드이고 헤르베르트 하이너 회장이 이끈다.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휠라의 진 윤(Gene Yoon)은 휠라글로벌 안에선 신화적인 존재일지 몰라도 소비자들에겐 무명에 가깝다.

휠라코리아 홍보전략파트 김민정 대리는 “회장님은 패션 전문가로 비춰지기보다 전문경영인으로 평가 받고 싶어 한다”고 말한다. 윤윤수 회장도 스스로를 “창작을 이해하는 매니저”라고 묘사한다. 패션 브랜드의 CEO는 흔히 스스로 패셔니스타가 되려 하기 일쑤다. 브랜드의 얼굴이 되려고 든다. 명품 브랜드일수록 더하다. 루이뷔통의 아르노 회장이나 프라다의 파트리치오 베르텔리 회장이 그런 경우다. 윤윤수 회장은 뒤에 서려고 한다. 휠라 브랜드를 위한 일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휠라는 고향을 잃은 브랜드다. 2005년 서버러스가 SBI를 설립하고 이탈리아 본사로부터 휠라글로벌 경영권을 인수했을 때 이미 휠라의 중심은 이탈리아에서 미국으로 한 차례 이동했다. 2007년 다시 윤윤수 회장이 휠라의 중심을 한국으로 옮겨오면서 휠라는 이탈리아와는 더 멀어졌다. 윤윤수 회장은 “이제 이탈리아에는 작은 현지 사무소 정도만 남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휠라의 경영은 한국이 중심이더라도 휠라는 영원히 이탈리아 브랜드여야 한다. 소비자는 휠라를 살 때 옷뿐만이 아니라 브랜드에도 돈을 쓰기 때문이다. 윤 회장도 그걸 안다. 양하준 상무는 “어느 미래학자가 2015년이 되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온전히 갖춘 브랜드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적이 있다”며 “휠라는 이탈리아 태생인 라이프스타일 스포츠 웨어라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계속 강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휠라 브랜드를 위해서라면 윤윤수 회장은 글로벌 브랜드의 최고경영자라는 화려함마저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 그는 냉철한 전문경영인이기 때문이다.

휠라코리아가 휠라글로벌을 인수하고 4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전 세계 금융위기가 터졌다. 그런데도 휠라의 매출은 꾸준히 늘었다. 당장 휠라코리아만 놓고 봐도 2007년 2934억원이었던 매출이 2008년 3327억원에서 2009년엔 3573억원으로 불어났다. 윤윤수 회장은 “스포츠 브랜드의 성장 가능성이 증명된 셈”이라고 말한다. 패션 시장은 고가 명품 시장과 중저가 브랜드 시장으로 양분되는 추세다. 중저가 시장은 최근 들어서는 패스트패션 브랜드가 주도하는 듯한 분위기지만 일상복에 가까운 스포츠웨어도 지분을 넓혀 가고 있다. 스포츠 브랜드가 점차 운동할 때 입는 옷이 아니라 평소에 입는 패션 의복으로 소비자 사이에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휠라는 애초부터 신발보다 의류 부문이 강한 브랜드였다. 중저가 시장에서 영토를 넓힐 잠재력이 충분했단 뜻이다. 윤윤수 회장은 이 지점을 발견했고 키워냈다. 윤 회장은 “앞으로도 스포츠 브랜드의 일상화는 더 빨리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올림픽과 월드컵 무대에서 천문학적 규모의 후원 경쟁을 하고 있다. 양하준 상무는 “솔직히 휠라 입장에선 부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윤윤수 회장은 이마저 조급해하지 않는다. 윤 회장은 “나이키와 아디다스가 있는 곳은 어디에나 휠라도 있다”고 강조한다.

아직은 종목별, 대회별로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영향력이 크지만 그 사이사이엔 늘 휠라가 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북한 대표단 유니폼을 후원했던 게 대표적이다. 얼마 전에는 연세대 전 종목의 선수가 휠라를 입기로 했다. 미국에선 신발이 효자 상품이다. 운동화는 스포츠웨어엔 상징적 품목이다. 나이키 농구화와 아디다스 축구화가 두 브랜드의 얼굴인 것도 그래서다. 동시에 휠라는 원래 갖고 있던 패션 의류 브랜드로서의 경쟁력도 잃지 않고 있다. 휠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면서 두 시장의 시너지도 노린다.





경영 능력으로 경영권을 지키는 경영자휠라코리아의 공모 희망가는 3만원에서 3만5000원 선 사이다. 올해 초 기업공개가 예정됐을 때만 해도 시장에선 휠라코리아가 더 높은 가격을 희망할 거라고 봤다. 실제로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윤 회장은 “적정 가격을 넘어선 가격 형성을 원하지 않는다”며 “시장의 기대치가 너무 크면 상장된 뒤 안정된 매니지먼트를 이어가기가 어려워진다”고 지적한다. 윤 회장은 기업공개 과정에서 잔뜩 부풀어올랐던 기대치가 실망으로 바뀌는 악순환을 피하려고 한다. 또 시장의 무리한 기대 탓에 회사 경영이 바람을 타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윤 회장은 “휠라는 글로벌 경영을 해야 하는 회사”라며 “단기 실적에 급급해선 절대 안 된다”고 강조한다.

기업공개가 끝나면 윤윤수 회장의 지분은 15.08% 남짓 된다. 지분 경쟁만으론 경영권을 방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물론 보이지 않는 경영권 방어 장치가 없진 않다. 윤윤수 회장은 휠라코리아의 BW(신주인수권부 사채) 262만5000주를 갖고 있다. 2017년 안에 신주인수권을 행사하면 지분율은 33.94%까지 늘어난다.

▎존 앱스타인 사장

▎존 앱스타인 사장

하지만 정작 윤윤수 회장이 제시하는 경영권 방어 장치는 이런 재무적 방패가 아니다. 윤 회장은 “사실 아무런 뾰족한 방어 장치도 없다”면서 “오히려 글로벌 패션 사업이란 특수성이 내겐 최고의 경영권 방어 무기”라고 말한다. 전 세계 시장 동향을 수시로 파악하고, 각 지역을 이끄는 경영진과 신뢰 관계를 맺고, 계속해 새로운 사업 파트너들과 찾아내고 제휴하는 건 단지 영어만 능통하다고 해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윤 회장은 “언어만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해야만 사업을 할 수 있는 분야가 패션 경영”이라며 “이 비즈니스는 잘 알지 못하면 한칼에 나가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한다. 브랜드를 이해하는 경영, 스포츠웨어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확신, 벤치 마킹 모델에 대한 깊은 분석, 욕심 부리지 않는 노련한 경영, 오랫동안 숙련된 글로벌 경영 전문성이야말로 윤윤수 회장의 경영권을 지켜주는 진짜 무기다. 윤 회장은 “돈을 원하거나 돈만 믿고 경영한 적은 없다”며 “아픈 곳도 많아 주변에서 걱정도 많이 해주지만 일이야말로 날 지켜준다”고 말한다.

▎최인호 작가

▎최인호 작가

==============================================================================================================



윤윤수의 사람 장사
- 한번 맺은 인연 오래오래 키운다.

▎박종안 전무

▎박종안 전무

심장병이었다. 윤윤수 회장은 골프를 하러 필드에 나갔다가 쓰러졌다. 사경을 헤맸다. 윤 회장을 살린 건 지금은 휠라USA의 CEO를 맡고 있는 존 앱스타인 사장이었다. 윤윤수 회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들려줬다. “존 앱스타인의 사촌동생이 유명한 심장병 전문의였어요. 소식을 듣자마자 존이 절 다음날 미국으로 공수했죠. 바로 수술을 받았어요. 제 목숨을 구해줬죠.” 존 앱스타인 사장은 휠라USA가 3년 만에 흑자 전환할 수 있게 만든 1등 공신이다. 하지만 윤윤수 회장과 존 앱스타인 사장은 상사와 고용 사장이기 이전에 오랜 우정으로 맺어져 있다. 어쩌면 최고 경영진의 두터운 신뢰 관계가 휠라USA 부활의 진짜 원인이다.

윤윤수 회장과 존 앱스타인 사장은 1985년 처음 만났다. 그때 윤윤수 회장은 휠라코리아의 자재 구매 담당자였고 존 앱스타인은 아디다스의 판매 담당자였다. 어찌 보면 둘 다 서로 만날 일은 없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업계 행사에서 만난 두 사람은 대번에 통했다. 윤 회장은 “존과 전 서로가 지닌 스포츠 브랜드 비즈니스에 대한 생각이 맞아떨어지면서 동료가 됐다”고 말한다. 결국 윤윤수 회장은 2007년 휠라글로벌을 인수하고 휠라USA를 존 앱스타인 사장에게 맡겼다. 미국 시장에서 살아남느냐에 휠라글로벌 인수의 성패가 달려 있었다. 어떤 면에서 존 앱스타인 사장과의 우정이 윤윤수 회장을 두 번 살린 셈이다. 한 번은 병마에서 구해줬고 또 한 번은 일생일대의 도박에서 승기를 잡게 해줬다.

윤윤수 회장과 소설가 최인호의 우정도 각별하다. 두 사람은 1945년 동갑내기다. 서울고 동기동창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인생 유전은 정반대였다. 최인호 작가는 일찍부터 주목 받기 시작했다. 1970년대 초 『별들의 고향』을 발표하면서 유명 작가가 됐다. 반면 윤윤수 회장의 젊은 시절은 고난의 행군이었다. 태어나고 100일도 안 돼 어머니를 여의었다. 서울고 2학년 땐 아버지마저 폐암으로 잃었다. 대학입시에도 낙방했다. 고시 공부에 매달렸지만 풀리지 않았다. 두 사람이 친밀해진 건 40대가 넘어서부터였다. 윤윤수 회장의 사업이 제자리를 찾아갈 무렵이었다. 당시 윤윤수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인호는 옛날부터 유명했지만 난 늦게 꽃을 피운 셈”이라고 말했다.

윤윤수 회장은 최인호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인 『상도』의 모델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졌다. 『상도』의 주인공인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의 삶은 여러모로 윤윤수 회장을 닮았다. 임상옥은 젊은 시절을 고난 속에서 보내지만 타고난 근면성실로 역경을 극복하고 거상으로 우뚝 선다. 윤윤수 회장 역시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을 근성으로 꼽는다. 포기할 줄 모르며 신뢰를 잃지 않고 일을 즐기는 게 윤윤수 회장이 늦게 꽃을 피운 비결이다. 여러모로 임상옥과 닮은 부분이다. 최인호 작가와 윤윤수 회장은 부부끼리도 가까운 사이다. 윤 회장도 “『상도』를 읽고 비즈니스는 이가 아니라 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상인의 도를 생각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휠라코리아에는 유달리 오래 근무한 일꾼이 많다. 휠라코리아 경리과장으로 합류해 20년 가까이 휠라코리아의 금고를 관리해온 박종안 전무가 대표적이다. 지금은 휠라코리아의 CFO로 2005년 휠라코리아가 서버러스와 함께 SBI를 설립하면서 진행한 MBO, 2007년 휠라 글로벌 인수 과정에서의 LBO와 BW 발행, 이번 기업공개까지 회사의 틀을 바꾸는 재무 전략을 책임지고 있다.





다음 100년을 본다2011년은 휠라 브랜드가 탄생한 지 100년이 되는 해다. 2010년 휠라코리아 상장과 2011년 휠라 탄생 100주년은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다. 휠라는 한 번의 내적 도약과 다른 한 번의 외적 도약을 통해 떨쳐 일어서려고 한다. 100년 역사를 지닌 브랜드는 흔치 않다. 2011년을 기점으로 시장을 공격적으로 확대할 수 있다. 휠라코리아에서도 이미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 우선 휠라의 탄생지인 비엘라시에 휠라 박물관을 세울 예정이다. 브랜드엔 성지가 필요하다.

윤 회장은 “비엘라시는 밀라노에서 1시간30분 정도 떨어져 있다”며 “대형 패션 할인 매장이 들어서기에도 적합한 입지 조건”이라고 덧붙인다. 주얼리 브랜드인 스와로브스키와 함께 수집가들을 위한 특별한 휠라 운동화도 만들 예정이다. 휠라가 생산했던 최초의 운동화를 재현한다. 모자 브랜드인 바비쇼와 합작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한때 휠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유명 이탈리아 디자이너인 롤란도가 전설적인 휠라 제품을 재현한다. 양하준 상무는 “이 밖에도 많은 해외 콜래보레이션을 기획하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이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윤윤수 회장의 관심은 중국까지 이어지고 있다. 휠라코리아는 2007년 중국 최대의 스포츠 업체인 안타와 합작 법인을 설립했다. 홍콩과 마카오를 중심으로 매장을 열기 시작했고 지금은 중국 전역 120개 매장을 운용하고 있다. 2010년 말까진 200개 매장으로 늘릴 계획이다. 빠른 성장세다. 하지만 윤 회장은 더 멀리 보고 있다. “브랜드 비즈니스의 궁극적 완성은 시장에 자신만의 리테일망을 갖는 것”이라며 “결국 미국 전역에 휠라만의 스토어 네트워크를 갖는 게 목표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윤윤수 회장이 2007년 휠라글로벌을 인수하겠다고 나섰을 때만 해도 시장은 반신반의했다. 휠라는 나이키도 아디다스도 아니었다. 힘 떨어져 가는 브랜드라고들 했다. 하지만 윤윤수 회장은 그때부터 이미 남보다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차근차근 전진했다. 운도 따랐다. 금융위기가 몇 달만 앞서 닥쳤거나 몇 달만 늦게 끝났어도 재무적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어려웠고 상장을 준비하기도 버거웠다. 윤윤수 회장은 멀리 볼 줄 아는 경영인이다. 그가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진짜 이유다.

신기주 기자 jerry114@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하나금융, 사회혁신기업 인턴십 지원…장애인·경력보유여성·청년 일자리 창출 앞장

2서울-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 진행

3대우건설,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 본격 착수…서울시 실시계획 승인

4펄어비스 ‘붉은사막’, 게임스컴 2024 참가

5KT, 1분기 영업익 5065억원…전년比 4.2%↑

6LX하우시스 ‘뷰프레임’…창호 ‘뷰’의 시대 열었다

7메리츠증권, 금융투자플랫폼 ‘Meritz365’ 출시

8‘니하오, 차이나’… 中 관광 매력 알리는 서울국제관광전 개막

9중국 공습에도...한국 디스플레이 기술력으로 반등노린다

실시간 뉴스

1하나금융, 사회혁신기업 인턴십 지원…장애인·경력보유여성·청년 일자리 창출 앞장

2서울-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 진행

3대우건설,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 본격 착수…서울시 실시계획 승인

4펄어비스 ‘붉은사막’, 게임스컴 2024 참가

5KT, 1분기 영업익 5065억원…전년比 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