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조는 에디슨만의 것이 아니다.
한국인의 창조력 위치는 세계에서 어디쯤일까? 불행히도 산업화 이후 우리의 생활에 영향을 준 창조적 제품을 살펴보면 우리의 창조력은 높지 못한 듯하다. MP3나 초코파이 그리고 압력밥솥 정도가 그나마 세계적인 제품에 속한다. 더 양보하면 페이스 북의 원조쯤 되는 싸이월드도 들 수 있다. 다음으로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엄청난 양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우리 주위에서 돌아다니고 있음에도 우리의 독창성이 깃든 것을 찾기가 정말 어렵다.
일본을 들여다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플라스틱 지우개, 전기밥솥, 이어폰, 워크맨, 샤프 연필, 구부러지는 빨대, 부러지는 칼 커터, 접는 우산, 삼각 및 사각 팬티, 샴푸, 텔레비전 안테나, 내시경 카메라, 라면과 용기라면, 조미료 그리고 청색 LED, 최근에는 삼각김밥에 이르기까지. 우리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많은 물건이 일본인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국가별 지능지수는 세계 2위인데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한국인의 지적 역량이 떨어져서? 이 질문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2010년 영국 얼스터 대학의 리처드 린 교수가 제시한 국가별 IQ(지능지수) 비교를 보면 한국인의 평균 IQ는 106이었다. IQ테스트 실시 국가 184개국 중 싱가포르에 이어 2위다. 일본은 105로 3위다. 미국은 98로 22위다. 창조적이고 머리 좋기로 소문난 이스라엘의 경우는 94위다. 2010년 기준 한국 학생들의 읽기·수학·과학 성적은 OECD 국가 중 1위, 2위, 7위라고 한다. 한국 학생(15~24세)들의 하루 평균 공부 시간은 7시간 50분으로 세계 1위다. 이런 자료들은 한국인의 평균 지적 역량이 다른 나라를 크게 압도하고 있음을 잘 말해준다. 그럼에도 우리의 창조력은 왜 이렇게 초라한 것일까?
오랜 시간 한국인의 창조력을 관찰하면서 이른 결론이 하나 있다. 한국인의 창조력을 억제하는 것은 역량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의 문제라는 점이다. 특히 일본인과 비교해 한국 사람은 창조를 매우 어렵게 생각한다.
한국인이 창조를 어렵게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창조적 인물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창조적인 인물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열 명에 일곱 여덟은 에디슨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뇌리 속에 ‘창조적 인물=에디슨’이라는 등식이 매우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에디슨을 닮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창조를 어려운 것으로 인식하게 하는 계기도 만들어졌다. 창조는 에디슨 같은 위인들이나 하는 것이지 우리 같은 범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말이다.
이에 비해 일본 사람들은 창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창조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사람이라고 창조를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러지는 칼 커터를 개발한 사람은 일본의 기능공인 오모라는 사람이다. 이 사람은 전사지를 자르는 단순 기능공이었다. 두꺼운 종이를 자르다 보니 칼이 쉽게 무뎌졌다. 그럴 때마다 칼을 가는 것이 귀찮아서 칼을 부러뜨렸다. 부러진 칼끝이 날카로워지면서 작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칼이 무뎌지면 다시 부러뜨렸다. 하지만 칼을 부러뜨릴수록 점점 부러뜨리기가 어려웠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고민하다 우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우표를 잘 찢어내기 위해 구멍이 나 있는 것을 보고 칼에 금을 그어 잘 부러지게 한 것이 오늘날의 커터 칼이다. 이런 사람을 보고 우리는 타고난 천재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모는 우리 주위에 있는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창조를 하는데 내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일본인의 생각이다.
창조를 하려면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창조관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한국인은 인재를 좋은 학벌로 판단한다. 좋은 대학을 나오거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학에서 공부하면 그 사람의 능력을 높이 산다. 따라서 창조도 이런 사람들이 훨씬 잘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인은 창조와 학력과의 관계를 우리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구부러진 빨대의 탄생몇 년 전 타임지가 일본의 한 인물을 조명했다. ‘현대 과학기술을 능가하는 최고의 센서를 지닌 인간’이라는 찬사와 함께 오카노 마사유키를 소개했다. 이 사람이 주목 받게 된 것은 휴대전화에 사용되는 원피스형 리튬전지 케이스를 개발하면서다. 이것이 없었으면 휴대전??화의 소형화는 불가능했다고 한다. 2005년 그는 또 하나의 사건을 친다. 모기에 물리는 수준의 ‘아프지 않은 주삿바늘’을 개발해낸 것이다. 둘레 0.2㎜, 바늘구멍의 지름이 0.06㎜인 주삿바늘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런데 이 사람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다. 이런 사람들이 일본에는 매우 많다. 그러다 보니 ‘나는 학력이 낮아 창조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자기비하를 할 수 없다. 오히려 ‘나는 그 사람들보다 학력이 높은데도 무엇을 하고 있었나’라는 반성의 기회를 가지게 된다.
한국인은 창조는 배워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은 천성적으로 태어나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일본 사람은 생각이 다르다. 일본에 가보면 유독 창조적 사고와 관련한 책들이 많다. 한국에도 이런 종류의 책이 최근에는 많이 소개돼 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다. 우리는 한편으로 수긍은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타고난 기질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런 책을 실제로 활용하는 노력이 약하다. 반면 일본 사람은 책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실제로 활용한다. 왜일까? 창조란 것도 배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구부러지는 빨대 이야기를 해보자. 빨대는 미국인이 개발했지만 이것을 구부러지게 만든 사람은 일본의 한 엄마다. 자신의 아이가 입원해 병간호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우유를 마시고 싶어한다. 문제는 아이가 목을 가누기가 어렵다는 것에 있었다. 아무리 해도 우유를 먹일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기저귀에 사용하는 어린 아이용 노란 고무줄이 생각났다. 빨대를 반으로 자른 후 관처럼 구멍이 뚫려 있는 이 고무줄을 토막 내 자른 빨대를 연결했다. 아이가 이것으로 우유를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우유를 다 먹은 아이가 자신의 엄마를 부르며 이런 말을 한다. “엄마 우유에서 고무 냄새가 나.” 이후 엄마의 고민이 다시 시작됐다. 어떻게 하면 빨대를 고무줄을 사용하지 않고 구부릴 수 있을까? 그런 고민 중에 집에 감겨 있는 호수를 보았다. 그리고 호수를 쉽게 감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호수 표면의 주름에 주목했다. 이것을 응용해 빨대에 주름을 넣은 것이 구부러지는 빨대다.
이것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에는 한 권의 책이 있었다. 병간호를 하면서 무료했던 이 엄마는 마침 병실 주위를 돌아다니던 ?생각하는 법?이라는 책을 읽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구부러지는 빨대에 대한 생각으로 이르게 된 것이다.
일본인이 갖는 창조관의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이들은 창조를 재미있는 활동으로 인식한다. 일본의 재미있는 발명품을 소개한 책이 한 권 있다. ?101가지 쓸모없지 않은 일본의 발명품?이라는 책이다. 이 책 속에는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담겨 있다. ‘맥가이버 칼’처럼 농사에 쓰는 낫, 삽, 호미 같은 것을 모아 놓은 장비, 뜨거운 라면을 먹을 때 사용하는 소형 선풍기, 뒷면을 개조해 지갑으로 사용할 수 있는 넥타이…. 이들을 보고 있자면 웃음이 절로 난다. 하지만 여기에는 기발한 생각들이 담겨 있다. 비록 실용화는 안 됐지만 이런 생각을 통해 이들은 창조행위를 즐기고 있었다. 창조를 매우 심각한 행위로 인식하는 우리의 생각과는 사뭇 다르다.
▎구부러진 빨대는 일본의 보통 엄마가 발명했다.
한국인은 창조란 무언가 엄청난 것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생각하는 특성이 있다. 한 마디로 창조를 너무 심각한 것으로 생각한다. 국내 굴지의 연구소에서 워크숍을 할 때다. 세계에는 3대 생활발명이 있는데 철조망, 지우개가 달린 연필, 그리고 팬티에 고무줄을 집어넣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랬더니 한 박사 연구원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그런 것은 창조가 아니잖아요.”
이처럼 우리의 창조관 속에는 매우 크고 웅장한 그 무엇을 만들어야 창조를 했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들어 있다. 일본인의 창조에 대한 생각은 매우 소박하다. 이들은 아무리 작은 아이디어라도 생활에 도움이 된다면 창조로 인식한다. 남자의 팬티에는 소변을 쉽게 보도록 구멍이 나있다. 이 구멍을 낸 사람도 일본인이다. 삼각팬티가 나온 유래도 재미있다. 원래는 사각팬티였는데 원단이 모자라 원단을 아끼려고 만든 것이 삼각팬티란다. 이것도 일본인의 작품이다. 한국 사람이 거대한 창조에 신경을 쓰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동안 이들은 아기자기한 창조에 힘을 썼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본 것이 <표 1> 이다. [목숨 걸고 일한다]에서 오사노 마사유키가 이런 말을 했다.
기업은 창조적인가?“창조란 것은 매일 조금씩 변화하는 습관에서 온다. 어제 못한 일을 오늘 해보고 어제 생긴 문제를 오늘 풀어보는 것이다. 어제 잘 못한 일을 오늘 개선하는 것이다. 창조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습관이다. 연습이 필요할 뿐이다.”
이것이 일본인의 창조관이다. 일본인의 이런 생각은 누구나 연습만 하면 창조를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한다. 이것이 창조로 덤벼드는 빈도와 강도를 강하게 한다.
하버드 대학의 테레사 애머바일 교수는 창조를 위해서는 지식, 사고력 그리고 열정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바로 열정이다. 열정의 출발은 하면 된다는 신념이다. 무엇을 이룰 수 있다는 기대확률이 높아져야 열정도 높아진다. 그런데 우리의 창조관은 시작도 하기 전에 창조에 대한 기대확률을 낮춰 버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 사람들의 창조력이 약화한 이유다.
한국인의 창조관이 단순한 생각으로 남는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이런 생각이 창조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기업에서도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염려스럽다. 한국의 기업은 고도의 창조력을 발휘해야 하는 시대로 다가서고 있다. 하지만 기업 구성원 스스로 자신의 창조력을 낮게 생각한다. 더 큰 문제는 경영자가 구성원의 창조 역량에 의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회사에 있는 사람들은 학력도 낮고 시키는 일이나 할 줄 알지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낼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필자는 기업의 창조습관에 관한 연재를 통해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보려고 한다. 그 첫 출발점은 우리가 우리의 창조력을 너무 비하하고 있는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만들어져야 우리의 억압적 창조관에서 탈출하기 위한 노력도 시작될 것이 아닌가?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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