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장과 식탁 ‘더 가까이’
생애 대부분을 프랑스에서 보낸 미국 여류작가 거트루드 스타인은 1937년 미국 순회 강연 요청을 받고 난감했다. 그녀의 평생 반려자이자 비서 겸 편집자였던 앨리스 B 토클라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먹게 될 음식”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 즈음 미국에 다녀온 그들의 한 프랑스인 친구가 미국에서 깡통에 담긴 야채 칵테일과 과일 샐러드 등 “아주 이상한 음식”을 먹은 경험을 들려주었다. 어쨌든 스타인과 토클라스는 미국에 갔다. 그들은 어렵사리 야생 쌀을 구해 먹었고 “아주 훌륭한 T본 스테이크와 껍질 연한 게 요리”도 맛봤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미국에 가길 두려워했던 이유는 충분히 있었다.
1934년 미국에선 ‘식생활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가공육과 통조림 식품이 쏟아져 나왔다. 그로부터 10년 전에는 식료품 체인점이 등장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음식의 맛보다는 편의성이 우선시됐다. 1959년 사회비평가 A J 리블링은 뉴요커지에 기고한 글에서 “치즈 맛이 나지 않는 가공 치즈와 냉동고에 얼마나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랍스터, 바닐라향이 나지 않는 합성 바닐라”가 판치는 세태를 개탄했다. 1960년 태어난 나는 그린 자이언트(냉동야채 전문회사)의 통조림 속에 든 거무스름하고 흐물흐물한 아스파라거스만 보며 자랐다. 나중에 한 이웃이 텃밭에 키우는 아스파라거스를 보고서야 통조림 속의 야채가 원래 모습과 얼마나 다른지를 깨달았다. 식료품점에서 파는 당근은 비닐 포장을 뚫고 나오지 않도록 끝을 뭉툭하게 재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보다 한참 후였다.
요즘은 ‘농장에서 식탁까지(farm to table)’ 운동 덕분에 끝이 뾰족하고 녹색 줄기가 달린 싱싱한 당근을 동네 시장과 전국 각지의 음식점에서 본다. 퍼플 헤이즈, 레인보우, 화이트 새틴 등 당근의 종류뿐 아니라 재배한 농부의 이름까지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치즈다운 치즈의 생산자 이름과 싱싱한 랍스터를 그물로 건져 올린 어부의 이름도 알 수 있다. 지난 30년 동안은 미국 요리사들이 수퍼스타가 됐지만 이제 농부와 어부, 목장주, 그리고 식품 채취자와 장인들이 현지 음식 운동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최근 나온 요리책 ‘수확에서 요리까지(Harvest to Heat: Cooking With America’s Best Chefs, Farmers, and Artisans)’는 갈수록 높아지는 농부들의 위상뿐 아니라 그들과 요리사들의 공생관계를 조명한다. 이 책에는 토머스 켈러의 회향풀 캬라멜 소스를 얹은 양등심 요리법 등 각종 요리법뿐 아니라 “자신이 키우는 양들과 자주 대화를 나눈다”는 펜실베이나주 엘리시안 필즈 농장의 키스 마틴 같은 생산자의 이야기도 소개됐다.
켈러는 마틴의 이야기에 감동받아 그에게서 양고기를 공급받기로 했다. 그뿐 아니다. 켈러가 운영하는 뉴욕 맨해튼의 식당 퍼시(Per Se: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세 개를 받았다)의 메뉴를 살펴보면 그 밖에도 다양한 농장과 생산자의 이름이 등장한다. 스콰이어 힐 농장의 아메라우카나 품종 닭이 나은 달걀로 만든 오믈렛, 살바토레 브루클린(치즈 제조업체)의 리코타 치즈와 카벤디시 농장의 메추리 고기를 넣은 아뇰로티(이탈리아식 만두의 일종), 에커톤 힐 농장의 후추와 아르굴라(겨자과의 샐러드용 식물), 스털링(캐비어 제조업체)의 백철갑상어 알을 넣은 샐러드.
재료의 출처를 시시콜콜 밝히는 걸 번거롭게 생각하는 손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달걀이 살모넬라균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대량생산품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이 먹던 대로 평화롭게 놓아 기르는 족보 있는 닭이 낳았다는 사실을 알면 기분 좋지 않겠나? 난 내가 먹게 될 아르굴라가 비닐봉지처럼 질기지 않으며, 양고기가 연한 풀만 먹고 자란 양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리블링은 음식의 재료가 본연의 맛을 잃었던 시대에 살았지만 우리는 다행히 그 맛이 되살아나는 시대에 산다. 게다가 생산자의 이름까지 알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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