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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이 최고의 집무실

산길이 최고의 집무실

조웅래 선양 회장과 선두훈 선병원 이사장은 맨발 걷기에 푹 빠졌다. 조 회장은 2006년 대전시 계족산 13㎞를 황톳길로 단장했다. 맨발로 황톳길을 걷고 뛰는 ‘마사이 마라톤’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축제가 됐다. 선두훈 이사장은 올 4월 이 길을 처음 걸어본 후 일주일에 두 번씩 황톳길을 걷는다. 소주회사 사장과 병원 경영자이자 벤처기업 대표인 두 사람의 맨발 경영론을 들어봤다.

10월 3일 일요일 오전 대전 계족산을 찾았다. 대전의 소주업체 선양이 5년 전 이 야산 둘레길에 황토를 쏟아부어 13㎞의 맨발 마라톤 코스를 만들었다. 이날은 맨발로 달리는 ‘마사이 마라톤’ 대회가 다섯 번째 열리는 날이다. 대회 시작이 1시간도 더 남았을 시각. 벌써부터 등산화 없는 등산객이 산을 오른다. 마라톤 코스까지는 경사가 좀 있지만, 황톳길은 경사가 완만하다. 내린다던 비는 오지 않고 간간이 구름 사이로 해가 보였다.

이날은 조웅래(50) 선양 회장과 선두훈(53) 선병원 이사장의 맨발 경영론을 듣는 자리다. 조웅래 회장은 이 산 둘레길에 5년 동안 자비로 황토를 쏟아부은 대전의 맨발 전도사다. 출발을 앞두고 열린 간단한 식전 행사장에서 그를 만났다. 인사말 대신 환하게 웃으며 손을 건넨다. 그는 축사를 할 때도 이미 맨발이었다. 준비한 원고도 없었다. 보기 좋게 환한 미소가 축사를 대신했다.

선두훈 선병원 이사장을 찾는 데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면바지에 백팩을 메고 참가자 사이에서 웃고 있는 선 이사장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얼굴 가득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짓고 두 손으로 내민 손을 덥석 잡는다. 선 이사장은 행사 사회자가 박수를 치라면 두 손을 높이 올려 박수를 치고, 뒤돌아서 손을 흔든다. 시선을 좇으니 멀리 정성이 이노션 고문이 보인다. 선 이사장의 부인이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큰딸이다.

오전 10시 대회 조직위원장인 조웅래 회장이 징을 울렸다. 사람들이 맨발로 산길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조 회장은 간이로 마련된 작은 연단에서, 선 이사장은 황톳길 위에서 뛰는 사람을 향해 연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북적거리는 행사장에서 두 사람을 데려오는 게 미안할 만큼 얼굴 가득 웃음이 그치질 않는다. 전날 내린 비로 질척해진 황토에서 혹시 미끄러질까 봐 운동화 끈을 질끈 맸던 기자가 머쓱해진다. 조 회장은 뛰는 사람을 방해하지 말자며 결승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소풍 온 아이처럼 상기된 표정의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조웅래 회장은

대전 소주시장 휩쓴 마라톤 매니어
【조웅래(50) 선양 회장은 경북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삼성반도체에서 엔지니어로 사회 첫발을 내디뎠다. 1992년 휴대전화 벨소리·컬러링(통화연결음악) 서비스업체인 생활정보사 ㈜5425를 설립했다. 2004년 대전 지역 소주회사인 선양을 인수했다. 선양의 당시 지역시장 점유율이 40%에도 못 미쳤지만, 2005년 신제품 ‘맑을 린’을 출시해 대전·충남 시장 점유율을 37%에서 50%로, 대전은 60%까지 높였다.

조 회장은 마라톤 매니어로도 유명해 이 회사 직원이 마라톤 풀코스나 하프코스 등을 완주하면 성과급을 지급하는 건강경영을 도입하기도 했다. 그가 2006년 처음 연 맨발 걷기대회인 ‘마사이 마라톤’은 지방자치단체가 벤치마킹하는 성공적인 지역 축제로 자리 잡았다.】


-계족산을 찾기 전에 맨발로 걸었던 기억이 있습니까?



선두훈 어렸을 때 집 앞에 텃밭이 있었어요. 형제들과 맨발로 뛰놀던 기억은 있습니다.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오래전 추억이죠. 하지만 철이 들고 맨발로 걸어본 기억은 올해 4월 조 회장이 조성한 계족산 황톳길에 한번 따라나서면서였어요. 묘한 매력이 있더군요, 그 후로 일주일에 두 번 이상씩 찾게 됐습니다.



조웅래 제가 농부의 아들입니다. 어릴 적 농사를 지으면서 맨발로 뛰어 놀던 기억은 있습니다. 도시에서 살면서는 누구나 맨발로 걷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잖습니까? 그러다가 2005년 처음 대전에 이사 와서 계족산을 자주 찾게 됐습니다. 어느 날인가 동행한 여성 두 명이 불편한 구두를 신고 와서 고생하기에 제가 신고 있던 운동화를 벗어 주었습니다. 한 발짝 내딛기는 주저됐지만, 불과 몇 발짝을 더 떼니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더군요. 그때 기억이 지금의 황톳길을 있게 한 거나 다름없죠.

-간밤에 비가 와서 그런가요? 맨발로 길을 걷는 게 생각만큼 쉬워 보이진 않습니다. 미끄러지는 사람도 많네요. 지금 시대에 신을 벗는 건 자유고 일탈입니다만, 고대로부터 맨발이 되는 것은 존경심의 표현이자 경건한 수련이었습니다. 맨발이 된다는 게 어떤 의미를 지닙니까?



선두훈 그렇게 깊은 생각은 해보지 않았지만, 실제로 같이 직원과 와서 걸으면 회의시간에 닫혔던 소통이 탁 트이게 됩니다. 계족산 황톳길은 또 하나의 회의실이 되는 겁니다. 실제로 아이디어도 많이 나오고, 서로 이해하기도 쉬워집니다. 신입사원도 이곳에 함께 오면 하고 싶은 말을 참 잘하고 꾸밈이 없어요. 그런 게 큰 의미가 있죠. 회사를 끌어가는 데는 역시 사람이 제일 중요하니까요.



조웅래 맨발로 숲 속 황톳길을 걷다 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잡생각이 다 사라져요. 집중력이 높아지는 거죠. 머릿속에 복잡하게 얽혀 있던 생각도 하나둘씩 풀리며 정리가 됩니다. 그러면 또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릅니다. 제가 소주회사 사장 아닙니까? 술자리가 많아요. 거의 매일같이 술을 마십니다. 신기하게도 다음날 맨발로 30분만 걸으면 몸이 개운해집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매일 계족산을 걷습니다. 건강도 챙기고 업무도 정리할 수 있는 계족산은 지붕 없는 또 하나의 집무실입니다. 손님 모시기도 좋죠. 함께 맨발로 거닐고 정성껏 준비한 도시락을 먹으면 다들 무척 좋아하십니다.



선두훈 이사장은

정몽구 회장 맏사위 … 인공관절 첫 양산
【선두훈(53) 이사장은 가톨릭대 의대 출신의 정형외과 전문의다. 1995년 스탠퍼드대 방문교수를 지냈고, 2001년까지 가톨릭대 교수로 명성을 쌓았다. 2001년 가업인 영훈의료재단 선병원 이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국내 최초로 인공관절을 생산하는 벤처기업 코렌텍을 창업해 10년간 운영 중이다. 선 이사장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맏딸인 정성이 이노션 고문과 결혼해 1남1녀를 두고 있다. 그의 선친은 저명한 정형외과 전문의 고 선호영 박사다. 영훈의료재단은 대전 선병원을 중심으로 목동, 중촌, 유성에 병원이 있고 건강증진센터와 선치과병원도 운영하고 있다.】



신입사원 말문 여는 맨발 회의조웅래 회장이 조성한 이 계족산 황톳길은 각 지자체가 앞다퉈 와서 배워가는 지역특성화의 상징이다. 초기에는 반대도 많았다. 비에 황토가 쓸려 나오는 누런 물줄기가 보기 싫다는 거였다. 하지만 황토가 없으면 산길을 맨발로 걷기 힘들다. 자비로 질 좋은 황토를 장마가 끝날 때마다 조건 없이 뿌렸다. 지금도 이 행사는 선양이 모든 경비를 댄다. 이제는 지역 주민이 더 좋아한다. 휴일이면 대전 시민이 수천 명씩 찾아온다.

조 회장과 선 이사장은 맨발로 황톳길을 걸으면 아무 생각이 없어 좋다고 했다. 생각이 필요 없어 좋다는데 골치 아픈 생각을 강요하는 질문을 하는 일도 고욕이었다.

-조웅래 회장님께선 최근 회사를 매각한다는 악성 루머에 시달리셨죠. 결국 근거 없는 얘기로 판명이 났습니다만 마음고생이 심하셨겠습니다. 그때도 황톳길을 맨발로 걸으셨나요?



조웅래 그랬죠. 원래 같이 나누자고 만든 길이니 주로 여러 사람이 함께 걷습니다만, 그때는 혼자서 걸었습니다. 근거 없는 얘기다 보니 마음고생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래도 맨발로 혼자 걷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많은 분이 힘내라고 격려해 주신 것도 도움이 됐고, 악성 루머는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자문도 받았습니다. 주위 분들 덕분에 편안한 마음으로 크게 고민하지 않았어요.

조 회장은 새벽 5시30분에 이곳 계족산 황톳길에서 일과를 시작한다. 맨발 걷기를 통해 얻은 몸과 마음의 즐거움을 ‘에코 힐링’이라는 개념으로 만들어 전파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곳도 바로 이곳이다. 에코 힐링은 생태계를 뜻하는 에콜로지(ecology)와 치유를 뜻하는 힐링(healing)을 조합했다. 조 회장은 그간 “에코 힐링은 자연 속에서 치유력을 회복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누린다는 뜻”이고 “맨발로 걷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에코 힐링”이라고 말해왔다. 대전 출신이 아닌 조 회장을 견제하는 일이 주기적으로 불거졌다. 올여름엔 그 루머가 더 심해 기사화되기도 했다. 조 회장은 자신이 창안한 에코 힐링을 몸소 체험한 셈이다. 선두훈 이사장에게도 이런 에코 힐링의 순간이 있었을지 궁금했다.

-이사장님이 국내에선 처음으로 인공관절 생산업체인 코렌텍을 세운 게 11년 전입니다. 처음 가는 길이라 부침이 심했을 것 같습니다.



선두훈 그럼요. 많은 일이 있었지요. 하지만 맨발 걷기를 올 4월에 시작했으니, 그 효과를 회사나 제 개인에게 적응하기는 이릅니다. 다만 직원과 이곳에 가끔 와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면 새로운 생각도 많이 나오고, 단합도 잘 됩니다. 코렌텍은 이제 시작입니다.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아질 거고 분주해질 겁니다. 인공관절 수출도 해야 하고 국내시장도 더욱 넓혀야죠. 그래서 과거보다는 지금부터가 훨씬 중요합니다. 앞으로는 더욱 맨발 걷기 같은 운동이 진가를 발휘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

코렌텍은 선 이사장이 국내에서도 인공관절을 생산하는 업체가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세운 회사다. 올 초에는 인공관절에서 뼈의 역할을 하는 금속을 티타늄처럼 비싸지 않은 알루미늄으로 대체하는 논문을 썼다. 표면 특수처리를 새롭게 해 인공 뼈와 결합력을 높이는 기술이다. 선 이사장은 자신의 이론을 실제 양산에 도입했다. 연말이면 다양한 제품군이 나온다.

세간의 시선처럼 대전의 명문가 출신이자 재벌가 맏사위라서 사업이 순탄하진 않았다. 초기에 생산을 맡았던 모 대기업 계열사가 해외수출권을 넘겨달라고 요구해 거절하니 코렌텍 제품을 양산하지 않겠다고 밝혀왔다. 2004년 일이다. 그 후로 몇 년을 생산시설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고 투자도 유치하는 데 쏟아부었다. 그러다 보니 새벽 서너 시면 잠에서 깨는 일이 잦아졌다. 선 이사장은 “계족산을 처음 맨발로 걷고 난 날 잠자리에 들자 발바닥이 후끈거리더니 오랜만에 숙면을 이뤘다”고 말했다.

-계족산 황톳길을 처음 맨발로 걸을 때는 어떤 느낌이었습니까?



조웅래 그때는 계족산 숲길이 거칠고 돌도 많아 발이 좀 아프긴 했지만, 나쁘지 않았습니다. 발바닥과 다리가 화끈거리는 느낌이 오히려 좋았죠. 집에 들어와 오랜만에 숙면을 취할 수 있었어요. 그런 기분이 좋아서 더 많은 사람이 맨발 걷기를 경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흙을 깔고, 마사이 마라톤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선두훈 주저되긴 했어요. 흙이 발에 묻어 지저분해지고, 딱딱한 지면을 밟을 때는 자극이 심했습니다. 혹시 다칠까 걱정도 했고요. 하지만 몇 발짝 떼다 보면 그런 우려는 사라지고 걷는 데만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시원한 공기와 햇살, 초록의 향기를 서서히 느끼게 되죠. 이 단계에 오면 맨발로 황톳길을 걷는 매력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참 빠르지요. 가족이 산을 찾으면 누가 가장 먼저 신발을 벗고 맨발이 되는지 아세요? 아이들입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 할 필요 없다 이거죠.

-맨발 걷기를 하고 난 후 개인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선두훈 저는 환자를 보는 의사이자 병원 경영자입니다. 그리고 인공관절을 제조하는 사업가이기도 합니다. 시간에 쪼들리기 쉽죠. 황톳길은 일주일에 한 시간 반씩 두 번 정도 걷습니다. 바쁜 생활 중에도 건강유지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됐어요. 뱃살도 상당히 빠진 게 지난 반년 동안의 변화입니다. 주위 분들의 인사도 많이 받습니다. 보기 좋아졌다고요.



조웅래 많죠. 여유로운 마음을 갖다 보니 농담이 많아지고, 얼굴에 웃음이 돌게 됐습니다. 그래서 젊어졌다는 소리도 많이 듣습니다. 밤에 잠을 잘자고, 부부금실도 더 좋아졌습니다.

이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 계족산 황톳길을 찾는 이유가 건강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 회장과 선 이사장은 대전 지역에서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사업가다. 혼자서 올 때도 건강과 함께 명상과 비움을 챙겨간다. 사업을 하다 보면 욕심이 화를 부르는 경우가 잦다. 스트레스가 판단을 흐리게 하는 때도 있다. CEO로서 균형 잡힌 판단을 하는 데도 황톳길 맨발 걷기가 큰 도움이 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맨발 걷기는 조직 내 활발한 의견교환의 장이 되기도 한다. 자연 속에서 허물없이 얘기가 잘 통하기도 한다. 회의실에서 상사 얼굴을 바라보며 위축되기 쉬운 신입사원도 상사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걸을 때는 활기를 되찾는다고 했다.

-두 분께는 맨발 경영론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것입니까?



조웅래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주로 산에서 맨발 산책을 하면서 하고 있습니다. 월 2회 임원회의를 이곳에서 맨발로 걸으면서 합니다. 따지고 보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은 늘 산에서 내리게 됩니다. 최근에는 노조위원장과 맨발로 걸으면서 솔직한 대화를 했습니다. 그 결과 선양 37년 노사 역사 이래 처음으로 임금협약 백지위임에 합의했습니다. 회사도 이에 대한 보답으로 임금을 인상키로 결정했고요.



선두훈 이곳에 오면 아무 생각 없이 걷게 됩니다. 골치 아픈 일은 일단 좀 식힐 수 있는 거죠. 특정한 문제가 있을 때에 황톳길을 걸으면서 어렴풋하게나마 해결 방안이 도출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집중력이 생긴다는 뜻도 되겠죠.

-경영철학이 바뀌던가요?



선두훈 경영철학이라고 하면 좀 거창해 보이는데요? (웃음) 글쎄요. 그 부분은 잘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다만 열심히 해서 나와 내 직원, 내 병원과 회사가 사회에 그 몫을 다하겠다는 다짐은 있습니다. 훌륭한 직장을 오래도록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제 자신과 직원, 직장과 사회 등에 대해 생각을 더 많이 해보는 계기가 됐어요. 이런 게 좋은 변화 아닐까요?



조웅래 맨발 걷기를 통해 건강을 유지 할 수 있어서 긍적적인 생각과 적극적인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덕분에 사업도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여행 함께 다니며 우정 쌓아-조 회장님은 경상도 출신으로 대전 전통의 소주회사를 인수하셨습니다. 업종도 다르고 지역도 생소해 처음에는 반대가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조웅래 인수 당시 선양은 지역시장 점유율이 40%에도 못 미치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지리적으로도 수도권에 접하고 있어 경쟁이 치열했죠. 하지만 이러한 선양의 상황이 기회라고 판단했습니다. 점유율이 낮기 때문에 빼앗을 시장이 많은 것이었죠. 지리적으로도 중앙에 위치해 수도권 공략과 시장 확대에 더 유리할 것으로 생각돼 인수를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인수 후 내면을 보니 심각한 상황이었죠. 지역민에게 선양의 기업 이미지가 매우 부정적으로 새겨져 있었습니다. 직원 사기도 바닥까지 떨어진 상태였고요. 우선 장기적으로 선양의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에코 힐링 기업철학을 만들어 계족산에 황톳길을 조성했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랜드마크를 만들어야 했죠. 이제 시작입니다. 앞으로도 자연친화적인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많은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합니다. 에코 힐링 정신이란 게 이런 거죠.

-선 이사장님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맏사위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세간의 시선이 때로는 부담이 되진 않나요? CEO로서 지켜본 정몽구 회장은 어떤 분입니까?



선두훈 부담스럽진 않습니다. 장인은 매사 인간을 중심으로 깊고 넓게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오랜 기간 뵈었지만 어떤 일이든 결정을 신중히 하시는 부분이 CEO로서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선 이사장님 부인이신 정성이 이노션 고문께서 최근 활발하게 경영에 참여하고 계십니다. CEO 부부로 지내는 건 어떻습니까?



선두훈 아이도 성실히 잘 키웠고, 본인도 재미있게 열심히 하고 있으니 항상 보기 좋더군요.

정성이 이노션 고문은 대담 내내 멀찍이 떨어져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라톤 참가자에게 정 고문이 먼저 인사를 하기도 한다. 남편인 선 이사장의 직장이 있는 대전을 그만큼 많이 찾기 때문이다. 선 이사장 부부는 대전에 올 때 항상 KTX를 탄다. 불편하지 않으냐고 물으니 시간이 덜 걸려 더 좋다는 답이 온다.

-두 분이 가깝게 지내시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선두훈 5년 전 지인 소개로 만났습니다. 조 회장은 연고가 없는 곳에서 사업을 하면서도 지역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이사까지 했죠. 대단하다 생각했습니다. 만날 때마다 늘 즐거우니 자연스럽게 가깝게 됐어요.



조웅래 선 이사장님과 함께 걸으면서 진솔한 대화를 많이 했습니다. 무엇보다 안목이 무척 넓은 분이세요. 짧은 시간에 선병원을 중부권 최대 메디컬 그룹으로 성장시킨 경영능력도 배워야죠. 특히 직원과 소통을 중시하는 경영철학을 본받고 싶습니다. 제 이야기도 잘 들어주시고, 재벌가 사위답지 않게 무척 소탈하시니 큰형님처럼 늘 든든합니다.



선두훈 아니에요. 제가 배울 점이 많습니다. 조 회장은 아이디어가 ‘억수로’ 많습니다. 생각하는 바를 꾸준히 힘차게 실천합니다. 생면 부지의 지역에 와서 기업을 일군 일이나, 계족산 황톳길을 만들어 시민에게 큰 기쁨을 주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지 않습니까? 열정적이고 큰 인물입니다. 함께하면 즐거운 것이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겁니다.

조웅래 회장은 선두훈 이사장 부부와 함께 올 1월 세이셸공화국으로 여행을 다녀오면서 더욱 친해졌다. 인도양의 섬나라 세이셸공화국의 제임스 미셸 대통령은 지난해 ‘마사이 마라톤’에 참가한 인연으로 조 회장과 무척 가깝다. 작은 보트를 타고 프랄린 섬, 라디그 섬에서 낚시를 즐기며 함께 휴가를 다녀온 얘기는 계족산 황톳길을 걸을 때 나오는 단골 화제다.

-약속을 하고 만나십니까?



조웅래 약속해서 만나기도 하지만, 늦은 오후에 계족산에 가서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나곤 합니다. 신기한 일이죠. (웃음)



선두훈 요즘은 계족산에서 자주 만나는 것 같네요. 대화 내용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인생 철학, 직원 이야기를 합니다. 가끔은 전날 술 마신 얘기도 합니다. 같이 여행 갔던 이야기도 있고 아이고 참 많네요. 주로 제가 듣는 편인데 얘기를 하다 보면 계족산 황톳길 한 바퀴가 모자라죠.

계족산 황톳길은 계족산성 밑으로 해발 200m에서 높아야 300m인 코스로 돼 있어 경사가 완만하다. 대청호 갈림길을 지나고 이현동 갈림길이 나올 때까지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지나게 된다. 모퉁이를 돌 때면 곳곳에 세워진 정자에서 들려오는 단소 소리가 땀을 식혀준다. 절고개를 지나면 절반이 지난 거다. 다시 임도 삼거리에서 잠시 쉬었다가 완만해진 길을 통과하면 결승점이다. 시작점과 맞물려 있는 결승점은 몇 시간 후엔 꽃잎으로 장식된다. 완주기록도 직접 적는다.

대담을 서둘러 마친 두 사람이 다시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멀리서도 들렸다.



5년 맞은 마사이 마라톤

대통령도 대전에선 맨발의 청춘
【대전시 대덕구 장동의 계족산 산림욕장에서 5년째 열리고 있는 맨발 축제다. 선양과 마라톤 전문 여행사 에코원이 주최하는 이 행사는 13㎞ 숲 속에 조성된 황톳길을 맨발로 걷거나 뛰면서 문화공연과 예술작품도 즐길 수 있어 참가자를 5000명으로 제한해야 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외국인 참가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지난해에는 37개국 600여 명의 외국인이 맨발로 황톳길을 달렸다. 계족산 숲 속 황톳길은 한국관광공사가 ‘5월에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선정한 바 있다. 인도양의 섬나라 세이셸공화국의 제임스 미셸 대통령도 지난해 계족산 황톳길을 맨발로 걸었다.

선양이 행사비 전액을 부담한다. 5㎞코스 5000원, 13㎞코스 1만3000원을 내야 하는 참가비는 행사비용으로는 쓰지 않고 전액 결식아동 급식비로 기부된다. 젊은 층 참여를 늘리기 위해 30세 이하는 무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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