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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의 나라’는 과연 있는가

‘명상의 나라’는 과연 있는가

점차 포화되는 중국 시장을 대신해 인도가 주목 받고 있다. 인도는 인구가 많고 자원이 풍부해 외국인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인도는 아직 경제성장보다 고요함, 참선, 기인 등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이광수(러시아·인도통상학부) 부산외국어대 교수는 10월 14일 서울 여의도동 63빌딩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IMI(국제경영원) 3기 CLIG(Creative Leadership Innovation Growth) 최고위과정 강연에서 인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강연은 ‘역사 속에서 CEO의 제왕학을 읽다’는 주제로 열리는 CLIG 최고위과정의 두 번째 시간이다. 이 교수는 인도 델리대 대학원 역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통념을 깨는 인도 전문가로 알려졌다. 다음은 강연 요약.

 인도로 가는 비행기를 탔는데 옆자리에 앉은 기업인이 책을 보고 있었다. 그 책을 읽고 나면 인도 사람을 도사 같고, 동물과도 대화할 수 있고, 거지 같지만 신비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 과연 인도에서 장사를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인도는 정체하지 않았다영국인이 처음 인도에 왔을 때 “당신들은 역사의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문명을 전해주겠다는 얘기다. 처음 인도를 연구하기 시작한 사람 중 하나인 막스 뮐러는 인도의 고대 문화는 수동적이고 명상적이며 목가적이라고 했다. 그 본질은 항상 진리만 추구하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는 인도의 과거가 수천 년 동안 이런 성향이 바뀌지 않고 유지됐다고 분석했다.

역사 기록에는 기록자의 시각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인도에 도착한 유럽인은 인도의 역사 기록을 찾았다. 남아 있는 기록은 카스트의 최고 계층인 브라만이 쓴 것이었다. 브라만은 실제 백성이 사는 모습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런 브라만이 쓴 기록을 낭만주의와 식민주의에 물든 유럽의 동양학자가 잘못 읽어냈다. 제임스 밀은 인도사를 힌두 문명, 무슬림 문명, 영국 문명의 세 부분으로 나눴다. 밀은 영국이 들어오기 이전의 인도 문화가 야만적이라고 생각했다. 인도 사회가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고 이어져 내려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런 정체된 사회의 영속성은 전제군주 아래서 계속된 사회의 폐쇄성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 역시 인도의 역사가 정체돼 있다고 봤다. 마르크스 이후 많은 좌파 연구자가 이를 답습했고 결과적으로 영국 제국주의 지배를 정당화한 결과를 가져왔다.

사실 무슬림 시대나 무슬림 문명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됐다. 통치자인 무슬림은 당시 백성을 무슬림으로 개종시키지 않았다. 무슬림은 카스트가 사회질서 유지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브라만을 적극 지원하기도 했다. 다만 이슬람의 원리에 따라 이슬람으로 개종하면 주민세를 면제해준 정도였다. 하지만 제임스 밀 이후 많은 유럽 역사학자가 이런 사실을 왜곡했다. 그들은 당시 무슬림이 힌두 문명을 파괴하고 힌두교를 탄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도 사회는 정체되지 않고 변화해 왔다. 이 변화는 통치자의 종교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런데 인도를 변하지 않는 영원한 본질을 가진 땅, 시간이 멈춘 곳 등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다.

인도에 관한 정보 가운데 힌두교만큼 잘못 알려진 것도 없다. 힌두교는 신석기시대 신앙에서 시작해 현대에 이른 종교다. 그렇기 때문에 힌두교는 창시자가 있을 수 없다. 가톨릭처럼 통일된 조직도 없다.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사상이 발달했지만 물질적이고 기복적이며 주술적 성격도 있다. 그러다 보니 체계적이지 않고 복합적이면서 상호모순적이기도 하다. 어떤 생각이나 세계관도 힌두교 안에 포섭될 수 있다.

▎인도인의 모습은 한가지로 규정 짓기 어렵다.

▎인도인의 모습은 한가지로 규정 짓기 어렵다.

힌두교 안에는 현실세계를 인정하는 쪽과 부정하고 버리는 쪽 두 가지 세계관이 존재한다. 현실세계를 인정하는 사람은 카스트의 전통을 지키며 가정을 이루고 열심히 돈을 벌며 산다. 세상을 버리는 사람은 카스트 전통도, 부모와의 관계도 버리고 세상을 떠돌며 수행한다. 이 두 가지가 모두 공존할 수 있는 것이 힌두교다.

하지만 한국에서 힌두교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생각된다. 힌두교는 식민주의자와 힌두 민족주의자에 의해 영적이고 신비로운 종교로 해석됐다. 세상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믿고 따르는 물질적, 기복적, 현실적인 면은 무시하고 명상과 사색, 요가로만 채색됐다. 많은 이가 힌두교의 본질로 알고 있는 비폭력, 살생 금지, 채식주의, 관용, 요가, 명상, 깨달음 추구는 미국 사회에서 확립된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이다.

미국이 베트남에 패하자 미국에서는 기독교와 서양 물질문명의 대안으로 힌두교를 생각했다. 기존 가치관과 생활양식으로는 작고 미개하다고 생각했던 동양의 나라에 패한 충격을 치유할 수 없었다. 미국인은 유토피아를 창조하는 것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중산층 출신의 대학 교육을 받은 소외된 미국 청년들은 힌두교라는 유토피아를 통해 실재하는 여러 현실정치의 문제에서 도피하고 싶어 했다.



힌두교의 여러 모습이렇게 만들어진 힌두교는 인도로 역수입됐다. 이 개념은 독립국가 이후 국가 정체성 확립에 대해 고민하던 인도인에게 해결책이 됐다. 반식민 투쟁을 거치며 국가 건설의 주체로 선 민족주의 엘리트들은 힌두교라는 종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았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단 대치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국가 이데올로기로도 힌두교는 유용했다.

인더스 문명의 유적은 파키스탄에 위치하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1947년 종교를 기준으로 나뉜 나라다. 인도 힌두 문명의 근원인 인더스 문명은 파키스탄에 있다. 파키스탄 정부는 이곳이 세계 최고(最古) 문명의 발상지면서 인도 힌두 문명의 젖줄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80년대 이래 이런 파키스탄의 움직임으로 인도는 곤혹스러웠다.

인도의 힌두 민족주의 학자는 이에 대해 새로운 주장을 내놨다. 지금은 말라붙은 인도 영토 내 사라스와티강 유역이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라는 것이다. 1990년대 인도에서는 힌두 민족주의 광풍이 불었다. 상당수 역사학자와 고고학자가 사라진 사라스와티강 문명 만들기에 혈안이 됐다. 힌두 광신도는 무슬림을 핍박하며 집단폭력을 일으키고 학살로 이어지는 비극을 만들었다. 다수의 학살은 소수의 보복성 테러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다수의 분노를 유도해 학살로 이어졌다.

종교를 함부로 건들면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벌어진다. 스스로를 볼 때, 그리고 다른 사람을 볼 때 한 가지 정체성으로 파악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누구는 어디 사람이니까 어떤 사람이다’는 식의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비극의 씨앗이다. 종교로 단일 정체성을 만들어버린 인도의 역사 역시 비극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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