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릿PC 돌풍에 세상이 꿈틀
태블릿PC 돌풍에 세상이 꿈틀
# 살지 말지 고민했다. 갓 구입한 아이폰의 재미가 쏠쏠했다. 전자결제업체 이니시스의 기술개발본부장 김제희 상무는 올해 중순 애플 태블릿PC 아이패드를 큰맘 먹고 구입했다
.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라는 직업상 어쩔 수 없었다. ‘스마트폰과 뭐가 다를까’라는 의문이 도리어 많았다.
지금은 다르다. 그의 업무방식은 크게 달라졌다. 요즘 떠오르는 ‘스마트 워크’가 무엇인지 실감한다. 사내 기술회의를 할 땐 종이 보고서를 따로 챙기지 않는다. 아이패드로 설명하고, 부족하면 동영상을 보여준다. “효과 만점”이라고 그는 말했다. 다른 연구개발자를 만날 때도 거추장스러운 넷북 대신 아이패드를 들고나간다. 아이패드의 무게는 넷북(평균 1㎏)의 절반 수준인 670g. 삼성전자 갤럭시탭은 이보다 가벼운 380g에 불과하다.
또 PC 사용시간이 크게 줄었다. 문서 작업할 때를 빼곤 PC를 켜지 않는다. 손만 대면 곧장 부팅되는 아이패드의 편리함 때문이다. 성능도 PC와 비슷하다. 김 상무는 “영화·게임 콘텐트를 사용하거나 소비하는 데엔 태블릿PC가 제격”이라며 말을 이었다. “태블릿PC로 교육·출판산업이 크게 변하고, 성장할 것이다. 특히 게임산업은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스마트폰보다 화면이 크기 때문에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게임 등 신개념 장르의 게임도 생길 거다.”
컴투스 박지영 대표는 “모바일 게임 시장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스마트폰은 물론 태블릿PC의 게임 개발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며 “태블릿PC는 게임의 주요 소비매체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 개발 단계부터 (태블릿PC의) 해상도를 고려한다”고 말했다. 게임업계의 팔색조 변신을 유인하는 건 다름아닌 태블릿PC다.
‘만들어진 콘텐트’ 소비에 제격태블릿PC의 공습이 본격 시작됐다. 올 4월 출시된 아이패드는 820만 대 이상 팔렸다. 국내엔 11월 말께 상륙한다. 11월 17일 예약판매가 시작됐는데 반응이 폭발적이다. 18일 현재 4만 대 넘게 팔렸다. “10만 대 돌파는 시간문제”라는 말도 나온다. 13일 출시된 삼성전자 갤럭시탭의 출발도 상큼하다. 첫 공급물량 2만 대가 일주일 만에 동날 지경이다. 해외 반응은 호의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아이패드의 진정한 경쟁자”라고 분석했고, 뉴욕 타임스는 “그동안 기다렸던 안드로이드 기반의 태블릿PC”라며 호감을 감추지 않았다. 전망도 장밋빛이다. 미국 IT 리서치 전문업체 가트너는 태블릿PC의 전 세계 수요량이 2012년 1억만 대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태블릿PC는 장점이 꽤 많다. 무게가 가벼워 휴대가 간편하다. 마우스·키보드 없이 쉽게 조작할 수 있다. 기존 디지털 기기의 한계도 극복했다. PMP는 통신기능이 없고 화면이 작다. 게임기기는 멀티 터치 기능이 없다. 넷북은 다소 무겁고 부팅시간이 길다.
태블릿PC의 인기가 치솟는 이유다. 어쩌면 예상 밖의 일이다. 아이패드가 출시되기 전 일부 해외 언론은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는 빌 게이츠 MS(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의 실패 전철을 그대로 밟을 것”이라고 비아냥댔다. MS는 2001년 태블릿PC를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가 쓴잔을 마셨다. 그 후 10년간 태블릿PC 시장은 형성되지 않았다. 하지만 잡스는 ‘시대의 빠른 변화’를 읽었다. IT 기술력과 인터넷 환경이 이전과 다르다는 거였다. 실제 아이패드는 터치 기능을 보완한 기술력과 무선 인터넷 인프라가 없었다면 실패했을지 모른다. 아이패드가 내세운 주요 컨셉트는 멀티 터치와 간편 휴대였다.
스마트 워크 시대 본격화냉철한 현실 직시는 혁신의 발판이다. 혁신은 또 다른 변화를 부른다. 태블릿PC가 그렇다. 출판·교육·게임산업에 ‘혁신 바람’을 일으킨다.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분야는 출판업계. 대부분의 출판사는 태블릿PC용 콘텐트 구축에 열을 올린다. 태블릿PC용 전자책 ‘토이스토리’는 색칠놀이 등 다양한 기능을 추가했다. 월스트리트·뉴욕 타임스·타임 등 유력 매체는 아이패드에 3D로 만든 동영상을 제공한다. 여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태블릿PC는 리더(reader) 기능이 탁월하다. 전자책 단말기와 달리 화면이 크고, 컬러·동영상 구현이 가능하다. 이를 통해 출판·미디어 분야에 새 수익원이 생길 수 있다. 태블릿PC에 실리는 광고의 몰입도가 생각보다 높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의 아이패드용 앱에 실린 JP모건 지주회사 JP모건 체이스앤컴퍼니 광고엔 웹 광고보다 10배 많은 사람이 클릭했다.
태블릿PC는 교육업계도 탈바꿈시킨다. 디지털 교과서를 이용한 쌍방향 교육이 태블릿PC의 등장으로 한결 간편해졌다. 미국엔 아이패드로 일대일 맞춤식 교육을 하는 시범학교도 있다. 태블릿PC가 교육방식을 일방적 지식 습득·축적에서 공유·협력으로 바꾸는 것이다. 게임업계도 그렇다. 태블릿PC가 새로운 게임 플랫폼으로 등장한다. 게임에 유용한 멀티 터치 기능과 정밀한 3D 그래픽 덕이다. 아이패드 앱스토어에 등록된 앱 중 게임 콘텐트가 가장 많은 건 그래서다. 닌텐도·소니가 주름잡는 가정용 게임시장에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것도 같은 이유다. 김제희 상무는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에서만 즐길 수 있었던 게임이 이젠 아이패드에서도 구현된다”며 “ 닌텐도·소니의 아성이 태블릿PC로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태블릿PC의 기능이 다른 모바일 기기와 겹친다는 비판이 많다. 차별적 요소가 없다는 것이다. ‘넷북은 몰라도 노트북을 대체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문서 등 오피스 작업이 여의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대부분의 IT 전문가는 태블릿PC가 독자 영역을 구축할 것으로 전망한다. 김제희 상무는 “태블릿PC는 문서작업 등 콘텐트를 생산하는 게 아니라 영화·게임 등 ‘만들어진 콘텐트’를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며 노트북 대체기기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IT·가전제품 가격비교 사이트 다나와 정세희 부장(마케팅)은 “태블릿PC는 다른 모바일 기기의 단점을 보완했기 때문에 수요층이 두텁다”며 “독자 수요를 얼마든지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태블릿PC의 초반 돌풍이 거세다. 바람의 영향권에 있는 산업은 덩달아 꿈틀댄다. 한마디로 ‘태블릿PC의 판’이 커졌고, 이 판은 스마트TV 등 가전영역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변화에 박자를 맞추지 못하면 시장에서 고전할 수밖에 없다. 미국 최대 오프라인 서점이었던 반스앤노불은 전자책의 위력을 얕봤다가 킨들을 내세운 아마존에 역습을 당했다. 여기에 아이패드가 인기를 끌면서 입지가 더 좁아졌다. 반면교사의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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