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를 구할 정신적 양식
▎살바도르 달리 ‘구운 베이컨과 부드러운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61.3X50.8㎝, 1941년, 달리미술관.
38세에 자서전을 쓴 살바도르 달리(1904~1989)는 자만심이 강했다. 그는 숱한 기행과 기이한 작품으로 미치광이라는 평을 들었지만 사실은 매우 합리적이고 주도면밀한 사람이었다. 영화배우 뺨치는 외모를 특이하게 가꾸거나 회화 외에 영화, 저술 등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유럽을 넘어 미국 뉴욕근대미술관에서도 달리의 대회고전이 열렸다. 이 자화상은 세계적 작가로 성장한 시절의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작가가 ‘자화상’이라고 제목을 달지 않았다면 자화상으로 해석하기 어렵다.
이 작품에서 역시 달리의 특성인 기이한 면이 엿보인다. 부드러운 형상, 지팡이, 개미 등이 등장하고 이를 극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갈색 톤의 정제된 색채 역시 그가 즐겨 쓴 방식이다. 상자에는 친절하게 ‘부드러운 자화상’이라고 제목까지 써놨다.
무엇을 말하려고 이렇게 그린 것일까. 달리의 작품은 보는 이에게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그림은 아니다. 그렇다고 자기 연출에 능했던 달리가 자신을 그렸다고 버젓이 밝히면서 아무 생각 없이 그림을 그렸을 리 없다. 어떤 의미를 숨겨놨을까.
달리의 그림에는 수수께끼 같은 요소가 많다. 특히 지팡이는 자주 등장하는 사물이다. 그는 이것을 ‘어린 시절 헛간에서 봤던 신기한 물건 중 가장 인상 깊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억의 파편을 중요한 이미지로 가져온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개인적 기억을 이미지로 나타낸 것일 수도 있지만 혹시 어린 시절 입었던 정신적 외상에 대한 자가치료는 아니었을까.
형의 환생이라는 믿음이 안겨준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심리적으로 어딘가에 기대고 싶었을 것이다. 지팡이의 용도는 이런 달리의 심리와 잘 맞아떨어졌다. 훗날 운명의 여인이 되는 갈라는 달리에게 현실에서의 지팡이였다.
달리는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자신의 얼굴 껍질과 지팡이로 표현했다. 얼굴은 움직이는 물체처럼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항상 변하는 정신의 세계인 것이다. 그가 그리는 세상은 현실 뒤에 숨어서 자신을 조종하는 정신의 모습이다. 세상에 보여주는 것은 껍질일 뿐 진짜는 현실에서 모습을 볼 수 없는 정신이라는 생각을 그린 것이다.
그가 가진 정신은 어떤 것일까. 해답의 힌트를 그려놨다. 잘 구운 베이컨이다. 식사대용으로 서구인이 즐겨 먹는 식품이다.
상자 위에 배치한 베이컨 때문에 달리의 얼굴은 먹음직스러운 식품처럼 느껴진다. 잘 구운 식빵 혹은 훈제 햄처럼 보인다. 스스로 음식처럼 보이게끔 그린 것이다.
예술가가 식품이 된다면 그것은 정신적 양식일 것이다. 예술가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정신적 부분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혼돈의 시대에 예술이 인류를 구하는 정신적 양식이라는 달리다운 오만한 생각이 이 자화상을 탄생시켰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이란에 ‘무조건 항복’ 요구한 트럼프…중동 군사 개입 수순 밟나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팜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뉴진스 항고 기각…어도어 "제자리로 돌아와"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이란에 ‘무조건 항복’ 요구한 트럼프…중동 군사 개입 수순 밟나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호텔신라, 인건비도 재료비도 줄였는데…인천공항 임차료 폭탄에 발목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최경은 에스티젠바이오 대표 “美서 수주 미팅 활발…ADC로 포트폴리오 확장”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