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코스 선정위원 김운용이 만난 명사] 축구도 골프도 지독한 연습벌레
- [100대 코스 선정위원 김운용이 만난 명사] 축구도 골프도 지독한 연습벌레

진주중-진주고-연세대 선수
1982~87년 대우 소속
2010년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A매치 기록/80경기 12득점
지도자 수상 경력/K리그 우승(2000) 프로축구 최우수감독상(2000) 아시안클럽선수권 준우승(2002)
FA컵 준우승(2008)
김운용 프로필을 보기 전까진 조 감독이 후배인 줄 몰랐습니다. 당시 진주중엔 축구부가 없었을 텐데요. 더구나 시험을 쳐 들어가는 학교였는데 축구를 어떻게 시작한 겁니까?
조광래 어릴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반장을 놓치지 않을 만큼 공부도 잘했어요. 그래도 축구가 좋아 축구부가 있는 중학교에 특기생으로 진학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보다 공부를 못하던 짝이 진주중에 간다고 자랑하는 거예요. 자존심이 상해 저도 진주중에 입학하게 됐지요.
김운용 진주고도 시험을 보고 입학했습니까? 진주고는 도내에서 알아주는 명문고였는데요.
조광래 시험을 보고 들어갔죠. 당시 진주고엔 축구부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같이 공을 찼던 친구들이 축구 특기생으로 와 다시 만났죠. 1학년이 끝날 무렵 축구부에 있던 친구가 찾아와선 연습 경기가 있는데 사람이 부족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같이 뛰었는데 경기가 끝나고 나서 교장 선생님과 감독님이 절 불렀어요. 축구를 다시 해 보라는 겁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저를 끌어들이려고 친구들이 만든 계략이었어요(웃음).
김운용 중간에 쉬었으면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조광래 틈틈이 공을 찼기 때문에 기술은 크게 문제가 없었는데 체력적으로 힘들었습니다. 체력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에 등하교를 동네 뒷산을 넘어 가는 길로 바꿨어요. 1시간 넘는 산길을 실전 경기처럼 강약 템포를 조절하며 뛰어다녔습니다. 그랬더니 체력이 붙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지금도 산은 잘 안 탑니다(웃음).
김운용 혼자 연습하는 건 지루하진 않았나요?
조광래 전 연습하는 게 재미있어요.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면서 기본을 터득해 가는 과정이 얼마나 흥미진진한지 몰라요. 당시엔 평지를 다닐 때도 앞만 보고 걷지 않았습니다. 실제 경기하는 것처럼 옆으로 뛰어가면서 뒤를 자주 봤어요. 그러다가 마주 오는 어른들에게 혼도 많이 났습니다(웃음). 강당 벽을 활용해 패스 연습도 많이 했습니다. 마라도나의 볼 트래핑 능력을 보고 천부적이라고 하지만 그의 자서전을 읽어 보면 그만큼 지독한 연습벌레였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골프도 똑같습니다. 제게 맞는 스윙을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하지요. 라운드가 있는 전날 연습장을 찾아 어프로치만 500회 이상 연습할 때도 있습니다.
김운용 74학번이면 고등학교를 4년 다닌 건가요?
조광래 제가 1학년을 마치고 2학년 때 축구부에 들어갔는데 교장 선생님이 저를 1학년으로 등록했던 거예요. 1년 더 시켜 우승시키고 싶었던 거지요. 저도 몰랐어요. 3학년 때 여러 군데서 오퍼가 왔는데, 막상 제 학적을 떼 보니 2학년으로 돼 있는 거예요. 그래서 교장실에 가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지만 소용없었어요. 결국 1년을 더 다니면서 축구부 우승까지 맛봤습니다. 당시엔 그런 일이 많았지요. 정무(허정무 감독)는 74학번 동기지만 실제 나이는 저보다 한 살 많습니다.
김운용 연세대에 들어가자마자 주전 자리를 꿰차고 국가대표도 됐지요.
조광래 대학입시를 본 후 집에 와 자고 있는데 밤에 누가 찾아왔어요. 잠옷 바람으로 나가 봤더니 연세대 선배들이었어요. 엉겁결에 봉고차에 탔는데 그 길로 서울까지 가 연세대에 감금당했습니다. 나중에 원서 마감일이 지난 후에야 풀어주더군요. 솔직히 제가 축구에 소질이 있었어요. 스스로 다양한 상황을 가정해 생각하며 훈련한 게 효과가 컸습니다. 연습은 많이 한다고 느는 게 아닙니다. 골프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습 샷을 할 때도 왜 하는지 항상 생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조광래 감독이 대학에 입학했던 74년은 한국 축구사에서 지워지지 않을 해다. 당시 한국은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 ‘테헤란의 치욕’이라고 불리는 역사적 오점을 남겼다. 북한과의 맞대결을 피하기 위해 승부 조작으로 일부러 경기를 졌다가 결국 참담한 성적을 낸 것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이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획기적인 세대교체로 완전히 새로운 국가대표팀, 이른바 ‘화랑’을 만들었다. 덕분에 조 감독을 비롯해 허정무, 박성화 등 ‘새내기’들이 대거 대표팀에 합류했다.
조 감독은 말하자면 세대교체의 선봉장이었다. 74학번들은 화랑 1기일 뿐 아니라 83년 출범한 프로축구의 1세대 주역이기도 하다. 조 감독은 대우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볐는데 자로 잰 듯한 정확한 패스로 ‘컴퓨터 링커’라는 별명이 붙었다. 74학번 선수들은 한국이 86년 멕시코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을 때도 최고참급으로 팀을 리드했다. 당시 조 감독은 불가리아전에 선발 출장해 후반 극적인 동점골을 어시스트하면서 월드컵 본선 첫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김운용 32세 때 갑자기 은퇴를 선언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조광래 은퇴를 마음먹은 건 86년 아시안게임을 준비할 때였어요. 당시 세대교체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고, 최고의 모습으로 은퇴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태릉선수촌에서 뱀탕까지 먹으면서 정말 독하게 훈련했습니다. 그 덕분에 인도네시아와의 준결승전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결승에서 연속으로 결승골을 넣었어요. 금메달을 목에 걸고 인터뷰에서 은퇴 의사를 밝혔죠. 당시 소속팀인 대우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한동안 대우에서 트레이너 겸 선수로 뛰었어요. 독일로 지도자 유학을 다녀온 후엔 코치와 감독까지 맡았는데 한 팀에서 네 가지 역할을 모두 한 사람은 저밖에 없을 거예요.
김운용 골프는 언제 시작한 겁니까?
조광래 대우 감독을 맡았다가 2년 만에 성적 부진으로 물러났어요. 다시 지도자 공부를 하기 위해 외국으로 떠났는데 당시 수원 삼성팀이 창단됐어요. 김호 감독의 간곡한 요청으로 창단팀의 코치를 맡으며 다시 한국에 왔지요. 아마 감독을 했다가 코치가 된 사람도 대한민국에 저밖에 없을 걸요(웃음). 골프를 배운 것도 그때였습니다. 당시 가족은 외국에 그대로 있어서 저녁에 시간이 날 때마다 골프를 연습했어요. 당시 연습장에 있던 프로들에게 지기 싫어서 열심히 연습한 덕에 실력이 많이 향상된 것 같아요. 골프는 섬세한 운동이기 때문에 레슨을 통해 기본 스윙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언더파를 쳤을 때도 연습장에 가면 꼭 레슨 프로를 불러 제 스윙을 점검해 달라고 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운용 1999년 안양LG 감독을 맡은 후 K리그 우승까지 차지했습니다. 비결은 무엇이었습니까?
조광래 역시 기본을 강조했죠. 하지만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잘못된 습관을 고치기가 쉽지 않다는 걸 느꼈어요. 어린 선수들을 키우는 데 노력을 많이 기울였습니다.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은 친구들을 프로에 입단시켰죠. 나중엔 그마저 늦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아예 중학생들에게 눈을 돌렸죠. 이청용의 경우 중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입단시켰어요. 당시엔 중퇴하면 학력 미달로 군 면제까지 받을 수 있었으니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한 거지요. 축구 외에 외국어와 같은 필요한 교육들은 LG그룹을 통해 시켰습니다. 자기계발의 중요성도 강조했기 때문에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08년 경남 사령탑을 맡아 4년 만에 K리그에 복귀한 조 감독은 무명의 신예들로 돌풍을 일으켰다. 번외 지명 선수들이 만들어낸 놀라운 결과를 보고 언론은 ‘조광래 유치원’이라는 별칭을 만들었다. 최근 대표팀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이고 있는 윤빛가람이 대표적 케이스다.

김운용 박지성 선수의 맨유 진출에도 도움을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조광래 LG 감독을 그만두고 독일에 있을 때 지성이가 아버지와 함께 찾아왔어요. 당시 지성이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 그리고 리버풀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상태였는데 어느 팀이 좋겠냐는 거였어요. 그때 맨유를 추천했습니다. 첼시의 경우 감독이 다혈질이라 비위를 못 맞추면 벤치 신세가 될 수 있고, 맨유의 경우 같은 포지션에 있는 선수들이 노장들이라 출전 기회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맨유 입단 후에도 한동안 함께 들어가 지성이 대변인 겸 코치 역할을 했습니다.
김운용 독일, 브라질, 잉글랜드 등 축구 선진국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았는데 우리와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조광래 요즘 젊은 선수들은 체력적인 면이나 신체 조건에선 세계 축구에 가까이 있습니다. 하지만 틀에 박힌 것만 배우다 보니 변화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속도가 외국 선수들에 비해 느린 것 같습니다. 예컨대 제가 패스를 강조하지만 이는 전진 패스에 한해서입니다. 쓸데없는 패스는 하지 말라고 해요. 그런데도 일부 선수는 숏 패스에 집착하곤 합니다. 한 명이 패스를 한 번만 줄이면 공격 템포가 얼마나 빨라지겠습니까. 이건 기본입니다. 이런 것까지 세세하게 가르치기가 쉽지 않아요.
이는 비단 축구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 전체의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창의력과 이해력을 높여주는 교육이 활성화되면 더 많은 스타 플레이어가 등장할 겁니다. 얼마 전 독일에 가 손홍민 선수의 경기를 지켜봤는데 어린 선수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경기 전에 만나 간단하게 이야기를 해줬는데 골까지 넣는 바람에 기분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김운용 조 감독에게 골프는 어떤 존재인가요?
조광래 저를 즐겁게 해주는 스포츠입니다. 축구를 사랑한다면 골프는 좋아합니다. 정말 골프를 좋아해요. 골프가 안 될 때도 있지만 골프 때문에 짜증나 본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골프가 정말 안 될 때 전 오히려 묘미를 느낍니다. 왜 안 되는지 분석하고 나중에 그것을 고쳤을 때 희열을 느끼는 거지요. 그린에서 퍼팅을 할 때도 자신감이 있어요. 수만 명 앞에서 골을 넣어봐서 그런지 퍼팅에 대한 부담감도 없어요. 특히 오늘처럼 최고의 코스에서 라운드를 하면 스트레스가 싹 사라집니다.
김운용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조광래 1월 카타르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에 전념해야겠지요. 아시안컵은 우리가 51년 동안 한번도 우승하지 못했어요. 개인적으로 아시안게임 우승도 해 보고 월드컵 본선도 나가 봤지만 아시안컵만은 인연이 없더군요. 이번엔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랍니다. 좀 더 장기적인 꿈이라면 구단을 직접 운영해 보고 싶습니다. 구단은 행정이나 마케팅 담당과 선수단 운영이 나뉘어 있습니다. 최근 J리그를 봐도 축구인 출신이 행정과 마케팅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저를 통해 축구인이 감독뿐만 아니라 행정과 마케팅에도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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