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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나의 경영론] 이 악물고 쉼 없이 뛰어라

[CEO 나의 경영론] 이 악물고 쉼 없이 뛰어라

흔히 ‘일이 꼬인다’고 표현한다. 상고·지방대 출신으로 4대 그룹 CEO에 오른 신헌철(66) SK에너지 부회장. ‘샐러리맨의 좌표’로 꼽히는 그의 청년 시절까지 삶이 딱 그랬다.

포항에서 태어난 신 부회장은 포항초등학교 1학년 때 부친을 여의었다. 어머니는 유일한 재산인 집 한 채로 하숙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 그는 여객터미널에 나가 여리꾼으로 일했다. 아이스크림 장사도 해봤다. 미군이 주는 초콜릿과 껌을 얻기 위해 미군부대 교회에 다녔다(현재 영동교회 장로인 그가 독실한 기독교인이 된 계기다).

부산상고 진학도 어려운 집안형편 때문이었다. 은행원이 돼 안정적 삶을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다 성적이 아까우니 대학에 가라는 권유 때문에 뒤늦게 입시 공부를 시작했다. 부산상고 동기인 이성태 전 한국은행 총재는 서울대 상대에 수석으로 붙었지만 신 부회장은 두 번이나 떨어졌다. 세 번째는 서울대를 포기하고 부산대를 선택했다. 삼수로 까먹은 시간을 조금이나마 벌충해 보려고 당시 복무기간이 4개월여 짧은 해병대(179기)에 자원했다. 그러나 제대 직전인 1968년 ‘김신조 청와대 습격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8개월을 더 복무해야 했다.



청년기까지 꼬인 삶이 쓴 약이렇게 꼬인 고단한 삶은 그에게 쓴 약이 됐다. 그는 “힘들고 아픈 경험에서 기다리고 인내하며 겸손해 하는 삶을 배웠다”고 들려줬다. 더욱 단단해지고 독해지는 계기가 됐다. SK에너지 전신인 대한석유공사에서 72년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는 입사 통지서를 지금도 갖고 다닌다. 신입사원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명함도 모두 보관하고 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이를 악물고 쉼 없이 뛰겠다는 각오에서다.

“성공은 실패의 옆집에 산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그는 일에서는 독종이다. 1981년 SK에너지 전신인 유공은 첨가제 CX-3를 앞세운 호남정유의 공세에 밀려 시장점유율이 10%나 떨어지는 위기를 맞았다. 당시 판매기획부장이던 그는 전국 주유소를 돌며 이른바 ‘300일 전쟁’을 이끌었다. 그는 옥탄가 89짜리 보통 휘발유를 주유소에서 모조리 회수하고 같은 값에 옥탄가 94짜리 고급 휘발유를 공급했다. 결국 전세를 1년이 되지 않아 뒤집었다. 고급 휘발유 중심으로 당시 시장을 재편한 것으로, 정유업계의 전설이 됐다.

신 부회장이 1995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전무로 자리를 옮겼을 때도 유명한 일화가 있다. 입사 때부터 줄곧 영업 쪽에 몸담은 그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장돌뱅이’다. 당시 그는 낯선 사업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사무실에 아예 야전침대를 갖다 놓고 한 달 동안 숙식을 해결하며 일을 봤다. ‘기름이나 팔던 사람이 첨단통신을 알겠어’라는 주위의 냉소를 물리친 장돌뱅이 근성이었다. 그는 아날로그 전화를 CDMA(부호분할다중접속방식)로 바꾸는 과정에서 필요한 서비스 방법과 마케팅 전략 등을 마련했다. 야전침대 효과는 눈부셨다. 1996년 시작한 CDMA 서비스 가입자 수는 1998년 700만 명으로 늘었다. 1995년 6500억원이던 회사의 매출액은 1996년 1조2000억원, 1997년 2조2000억원으로 증가했다.

2008년 SK에너지 울산콤플렉스 본관 앞에서 열린 SK 국토종단 이어달리기 대회 도착 행사에서 신헌철 부회장이 박수를 치고 있다.

2004년 SK에너지를 맡고 나서는 회사를 확 바꿔놨다. 취임 첫해 영업이익 1조원 돌파라는 기록을 세웠다. 주유소라는 ‘안방 장사’에 의존하던 SK에너지를 수출기업으로도 돌려놨다. 안팎으로 윤리경영에 대한 요구가 커지던 당시 그는 주주총회에서 조순 전 부총리를 비롯한 명망 있는 사외이사를 영입해 이사회의 사외이사 비율을 국내 민간기업 중에서는 최고 수준인 70%대로 끌어올렸다. 이어 민간기업으론 가장 먼저 사외이사 윤리강령을 제정해 이사회 중심 경영철학을 대내외에 알렸다. 회사의 전략과 경영 현안을 사외이사에게 직접 설명하고 토론하는 문화도 만들었다.

일에서는 독종이지만 따뜻함도 겸비했다. 신 부회장은 기업을 경영할 때 ‘사람을 어떻게 잘 관리하는가’를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여긴다. 꾸준히 일관성 있게 직원의 감성을 헤아려주고 신뢰로 대하면 스스로 움직인다고 믿는다. 그는 그래서 줄곧 ‘입의 방문’ ‘손의 방문’ ‘발의 방문’을 실천했다. 맡은 일을 충실히 하며 모범이 되는 사원을 찾아 칭찬하고 격려하는 게 입의 방문이다. 편지를 써 진솔한 마음을 전달하는 건 손의 방문이고, 구성원이 어려울 때 달려가 힘이 돼주는 게 발의 방문이다.

그의 지론처럼 인간적 매력을 갖춘 리더십이다. 그에 따르면 리더십의 기본인 인간적 매력은 결코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역량, 승자의 미덕, 긍정적 사고방식 등이 한데 어우러져야 비로소 인간적 매력을 풍길 수 있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건 꾸준한 실천이다. 신 부회장은 자신만의 방법인 입·손·발의 방문으로 리더십을 보여줬다. 인간 중심의 SK 경영철학인 SKMS(SK경영관리시스템)를 스스로 실천한 것이다. 그는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말한다. 상대는 회사일 수도, 상사일 수도, 고객일 수도 있다. 그렇게 살아도 실패와 좌절이 끊임없이 찾아든다고 한다.

그는 그래서 “인생이든 직장생활이든 마라톤과 같아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다”고 강조한다. 사실 그의 굴곡 많은 인생은 마라톤과 딱 어울린다. 달리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은 삶이었지만 꾹 참고 지금껏 뛰어왔다. 그가 마라톤과 인연을 맺은 건 환갑을 앞둔 2001년이다. 1998년 갑작스레 찾아온 퇴행성 관절염을 치료하느라 유명 병원을 다니고 온갖 민간요법을 동원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고생할 때였다. 그러다 유니세프 주최 국제 아동 돕기 행사에서 마라톤이 퇴행성 관절염을 극복하는 데 효험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틀에 한 번씩 2개월 동안 7.6㎞의 남산 순환도로를 왕복하는 끈질긴 노력 끝에 무릎 통증이 사라졌다. 자연히 몸에 새로운 활력이 넘쳤다. 내친김에 2001년 춘천 마라톤대회 풀코스에 도전해 성공했다. 지금까지 풀코스를 27번 뛴 마라톤 인생이 열린 순간이다.



마라톤 레이스처럼 꾸준한 나눔SK에너지를 맡은 2004년부터는 노조와 국토종단 이어달리기 행사로 불신의 벽을 허물고 있다. 50대에도 4시간 벽을 넘지 못하던 그는 62세 때인 2007년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3시간58분23초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끈질긴 도전 끝에 보스턴마라톤 출전 자격을 얻은 것이다.

2008년 4월 옛 SK에너지 마라톤 동호회원 26명과 아마추어 마라토너 세계에서 꿈의 레이스로 불리는 미국 보스턴마라톤에 참가했다. 달리는 내내 자신은 물론 동료를 격려하기 위해 호루라기를 부는 까닭에 ‘우면동의 호루라기’로 불리던 그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호루라기를 물었다. 결승점까지 호루라기를 불고 들어오자 시민들이 기립 박수를 보냈다.

신 부회장은 요즘도 집 부근의 서울교대에서 한 달에 100㎞ 정도 뛴다. 올해 첫 대회인 경남 고성 이봉주 기념 마라톤은 구제역 탓에 열리지 않았다. 3월에 정유공장이 있는 울산에서 열리는 울산마라톤에 참가할 예정이다.

일처럼 이를 악물고 끝까지 뛰는 그는 곧잘 마라톤을 경영에 비유하곤 한다. 특히 마라톤에서 얻은 성실 경영론을 펼친다.

“너무 욕심을 내고 달리면 절대 결승점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철저한 경영계획을 세우고 투자해야 성공할 수 있어요. 마라톤 결승점의 환희와 좋은 경영실적은 모두 고난의 여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겁니다. 남들이 뛰는 과정을 지켜보기 때문에 기록을 속일 수 없는 것처럼 경영이나 일도 속임수나 허세를 부려서는 곤란합니다.”

그에게 마라톤이 특별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그는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교회 가는 일요일과 후원자 이름이 적힌 등번호판을 달고 마라톤 뛰는 날을 꼽는다. 그는 풀코스에 도전할 때마다 기부 의사를 전달한 임직원의 이름을 번호판에 적고 뛰었다. 2001년 10월부터 지금까지 27번을 완주하면서 17억5000만원을 모아 불우이웃을 도왔다. 완주하면 임직원의 성금에 회사의 기부금을 더해 납부하는 방식으로, 벌써 10년이 넘었다. 마라톤 레이스처럼 꾸준히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2009년 경영 일선을 떠난 신 부회장은 남은 삶을 나눔 활동으로 채울 계획이다. 현재 SK에너지의 경영 멘토 역할을 하는 동시에 SK미소금융재단 이사장과 SK사회적기업단의 초대 단장을 맡는 등 그룹의 사회공헌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3년 열릴 대구 세계에너지총회 조직위원장도 맡았다. 그는 어렸을 적 “동지 지나 열흘이면 팔십 노인이 10리를 간다”는 어머니의 채근이 몸에 배어 지금도 새벽 4시면 일어난다. CEO를 맡고 있을 때보다 더 바쁘다.

특히 제도권 금융회사를 이용하기 어려운 금융 소외계층에 창업·운영자금을 무담보·무보증으로 빌려주는 미소금융 사업을 각별하게 여긴다. 미소금융 사업은 은행 문턱을 넘기 어려운 서민을 대상으로 새로운 금융의 꽃을 피우는 일이다. 미소금융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자립의지가 강한 서민을 가려내 지원하고, 이들이 5년 동안 대출금을 잘 갚고, 이들이 갚은 돈을 또 그런 서민이 빌려가고…. 이렇게 선순환의 바통을 주고받는 끝없는 장거리 레이스다. 신 부회장은 SK미소금융재단의 특화상품인 용달사업자 자립지원 대출 상품 아이디어를 내는 등 활발하게 뛰고 있다.

인생 2막을 나눔으로 채우고 있는 그는 “어느 때보다 바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한다. SK에너지의 OB 모임인 유풍회에선 이름 대신 호를 부른다. 신 부회장의 호는 만석(晩石)이다. 발동이 늦게 걸리지만 끝이 좋다는 뜻에서 그렇게 지었다. 청년 시절까지는 고단한 삶을 살았지만 그 후에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바꾼 그의 인생을 잘 대변하는 듯하다.

남승률 기자 namo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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