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고대 과학의 1번지?

조 우 석지난해 말 ‘타임’이 뽑은 20세기 최고의 책 100권에 과학사가 조지프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1954년 출간)은 당연히 꼽혀야 했다. 100권 중 과학서는 10권인데, 니덤의 책은 함께 선정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1918년)나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1962년) 혹은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1988년) 등에 뒤지지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그 책이 중국을 포함한 동양의 과학을 다룬 점이다. 사이사이에 동양의 철학·종교를 훌륭하게 이해한 설명도 섞여 있다. 동양 철학을 언급한 대목은 웬만한 철학서보다도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짚어내 챙겨 읽어볼 가치가 높다.
단 ‘중국의 과학과 문명’은 방대한 양이라서, 몇 개월 고역을 치를 각오부터 해야 한다. 어쨌거나 니덤이 거둔 성취란 과학 따로, 인문학 따로라는 현재의 칸막이 구조에선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서 ‘20세기의 르네상스인’으로 평가 받기도 하지만, 놀랍게도 그 책 출간은 반세기 이전이었다. 당시 중국은 건국 이후 힘을 못 쓸 때고, 최악의 참화였던 대약진 운동이 채 펼쳐지기도 전이었다.
생각지도 않았던 보너스를 챙긴 쪽은 한국이다.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은 한국의 근대 이전 과학도 곳곳에 소개한다. 그런 니덤이 1986년 ‘조선의 서운관(書雲觀) - 한국의 천문기구와 시계’라는 공동저술을 펴냈다. 지난해 번역 소개된 이 책은 1392년부터 1776년까지 한국의 천문의기와 성도(星圖)의 연구 성과를 제시했다. 그런데 서운관이 뭐라더라? 조선시대의 왕립 천문기상대 겸 천문관서를 말한다. 니덤은 서운관 연구에 집중하며 천문의기, 계시의기, 평면천체도와 그 밖의 물리적 도구류의 작동 원리를 세밀하게 고증해 낸다.
중국 천문학과 한국 천문학의 이론적 배경을 제시한 뒤 1430년대에 세종이 일으킨 과학기자재를 서술한다. 여기에는 곽수경의 간의(簡儀)를 복사한 혼천의, 다양한 종류의 해시계와 복잡하고 정교한 물시계가 포함돼 있다. 저자들은 이런 의기들의 작동 원리를 논하고, 의기들의 사진과 복원도까지 제시한다. 근대 이전 한국의 과학기술은 우리가 채 발견하고 소개하지 못했을 뿐 의외로 풍부하며, 그 수준은 동서양을 통틀어 동시대 최고 수준이라는 얘기였다.

이종호 박사는 한국 정부가 모셔온 해외유치과학자 출신. 프랑스 국가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과학과 인문학의 간격을 좁히려고 이 책을 썼다고 밝혔는데,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다. 역사서와 과학서의 통섭(統攝)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이제 버릴 게 하나 있다. “우리 선조들은 비과학적”이라는 통념은 미련 없이 폐기처분해도 좋다. 구체적으로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문제를 폭넓은 관점에서 연구하는 저자가 과학과 기술, 인문학을 한 틀에서 이해하려고 선택한 전략이 바로 ‘우리 역사 속에서 과학 찾아보기’다.
저자는 “간혹 우리의 유산이 외국의 유산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유산을 알려주는 정보가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서문에서 밝혔다. 두 책을 읽어보니 우리 유산에 과학성이 부족하기는커녕 고대에 너무도 풍부한 과학의 지문이 묻어있었으나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나란히 나온 신간 ‘과학 삼국사기’ ‘과학 삼국유사’는 생각 이상으로 즐겁다. 우선 책의 설명대로 잠시 주머니를 뒤져 옛 1만 원짜리 지폐를 들여다봤다.
앞면의 세종대왕과, 뒷면의 자동 물시계 자격루가 보이는데, 그건 세종과 장영실이 만든 15세기 조선과학의 꽃이었다. 자격루는 “삼국시대 이래 고유기술에 역대 중국 물시계와 이슬람의 자동 시보장치 원리를 가미한 혁신”(‘과학 삼국사기’ 147쪽)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인쇄술·화약과 함께 인류 3대 발명품으로 나침반을 꼽았지만, 그건 중국이 아닌 고대 한국의 발명품이었다. 세계 최초이니 자부해도 좋을 듯하다. ‘삼국사기’에는 문무왕 9년(669년) 중국에 자석 두 상자를 보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당시 자석이란 나침반이었는데, 이름도 ‘신라침반’이었으나 중국은 ‘신’자를 빼고 나침반으로 불렀다. 저자는 이걸 “아직 일부 과학사가의 주장”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설득력 있는 뒷받침도 내놓는다. 즉 중국도 나침반 원리를 알았고, 자석을 활용하긴 했지만 나침반을 항해 등의 용도로 활용했다는 문헌자료가 11세기 이후에야 등장한다. 반면 우리는 9세기 장보고가 원거리 항로 때 나침반을 썼다. 초보적인 천문항법에 의존하지 않고 악천후에도 배를 띄웠는데, 모두 나침반을 활용했으리라고 이 책은 주장한다.
두 책은 삼국시대의 과학적 소재를 실마리로 하여 현대 과학의 이야깃거리까지 내놓는데, 때문에 내용이 한국의 고대 과학에 그치지 않고 한민족의 DNA 추적으로부터 시작한다. 단일민족이라고 생각해 온 우리의 유전학적 계통과 이에 따른 발달 성향, 변화의 양상을 살핀다. 이어 중국보다 앞섰던 철기 문명, 로마 기법으로 만든 황금보검, 지조와 절개, 생명력을 상징하며 민족적 정서로 승화된 소나무의 활용과 분류까지 두루 다룬다.
세계 최고의 목판과 금속 인쇄물에 비견하여 중요성이 떨어지지 않는 우리의 한지 등에 과학이라는 현미경을 들이댄다. 이 책은 지금껏 우리가 우리 유산에의 과학적 우수성을 발굴하는 데 게을렀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문제는 남는다. 우리과학 유산의 자부심을 재확인해 준 두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의문이 하나 든다. “왜 그런데도 우리는 근대과학을 이루는 데 실패하고 말았을까?” “우리 유산에도 과학이 있었다는 식의 증명이란 자화자찬에 그치는 게 아닐까?”
그건 조지프 니덤이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서도 내내 던졌던 의문이다. 아니다. 실은 그걸 풀고자 그 책을 썼다. 근대 이전 압도적 우위를 점하던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과학, 이슬람권 등지의 과학적 유산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왜 그들은 근대의 핵심요소인 과학을 창출해내지 못했을까? 니덤도 그 질문에 효과적인 답을 못했는데, 이 글에 이어지는 다음의 박스 기사는 그 의구심을 푸는 약간의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필자는 문화평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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