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EO Collection] 박은관 시몬느 회장

1978년 연세대 독어독문학과
1980년 청산 입사
1987년~ 시몬느 대표이사 회장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시몬느 본사. 건물 뒤로는 안양천이 흐른다. 수석으로 높다랗게 쌓아 올린 담장 안으로 들어서면 숲길이 이어진다. 그 중앙에 통유리가 인상적인 3층짜리 건물이 눈에 띈다. 나무와 돌로 지어진 건물은 마치 대형 갤러리처럼 보인다. 2003년 대한민국 건축대상을 수상한 이유를 알 것 같다.
내부는 더 독특하다. 중앙 홀은 천장까지 뚫려 있고 층마다 나무 계단이 멋스럽게 연결돼 있다. 눈길 가는 곳마다 조각상과 그림이 놓여 있다. 박은관(56) 시몬느 회장이 1987년 회사를 세우면서부터 모아온 소장품이다. 모두 100여 점의 미술품과 200여 개의 소품이 있다. 해외에서 구입한 게 많다.
그는 1년이면 5개월 이상을 외국에서 보낸다. 시몬느는 마크제이콥스, 지방시, 코치 등 명품 브랜드 핸드백을 제조자개발생산(ODM)으로 100% 수출하는 기업이다. 시즌마다 현지 업체들을 찾아다니며 제품 디자인을 상의한다. 지난해 매출액은 3500억원.
1940년대 버킨백부터 개구리 모형까지박 회장이 회사 곳곳을 안내하며 수집품을 보여줬다. 그는 “모든 소품과 미술품을 돌아보려면 한 시간 넘게 걸린다”면서 “말 타고 산보하듯이 소개하겠다”며 앞장섰다.
처음 들어선 곳은 3층에 있는 회장실. 방문을 연 순간 영국 유명 디자이너 ‘폴 스미스’의 작업실이 떠올랐다. 지난해 한국에서 열린 전시회 ‘2010 inside Paul Smith’에서 공개된 폴 스미스 작업실은 앤티크 가구와 형형색색의 소품들로 조화를 이룬 독특한 공간이었다.
박 회장 방엔 국적을 알 수 없는 독특한 소품과 미술품이 전시돼 있었다. 우선 바닥에는 몇십 개의 핸드백이 널려 있었다. 먼저 새빨간 사각형 가방이 눈에 띄었다. 작년 12월 영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산 가방 가격은 4만8000달러(약 5300만원)에 달한다. 1940년 만들었다는 프랑스 명품 에르메스의 버킨백이다. 600여 년 전 북아프리카 모르코인이 사용한 핸드백도 있었다. 갈색 헝겊에 동전이 일정한 간격으로 정교하게 박혀 있었다. 박 회장은 가방을 만지고 난 후에는 손을 꼭 닦아야 한다고 들려줬다. 핸드백이 워낙 오래돼 곰팡이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는 내년 4월 신사동 가로수길에 ‘핸드백 박물관’을 세울 예정이다. 국내 최초의 핸드백 박물관이다. “유럽의 핸드백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예요. 평소 보기 힘든 색다른 모양의 백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할 겁니다.”

방 한편에는 통나무로 만들어진 양문형 서랍이 있었다. 인도네시아 욕야카르타의 부족장들이 사용하는 개인 금고라고 한다. 희귀한 것도 많았다. 톨레도에서 산 그릇 모양의 은 공예품, 미국 프리 마켓에서 구입한 2달러짜리 개구리 모형 등이 있었다.
3층 복도에는 프랑스 작가 세자르의 조각품이 놓여 있었다. 그는 폐품, 쓰레기 등을 활용한 ‘정크 아트’라는 독특한 작업을 하기로 유명하다. 박 회장이 소유한 작품은 ‘rayee en ocre’다. 프랑스어로 ‘줄무늬가 있는 황갈색의 반각 쇠’를 뜻한다. 그는 15년 전 청담동의 한 갤러리에서 이 작품을 구입했다.
계단을 내려가니 드로잉 작품이 걸려 있었다. 한국 추상미술의 대가 박서보의 작품이다. 이 작품은 7년 전 패션 브랜드 로에베(Loewe) 30주년 행사에서 1200만원에 구입했다. 요즘 박서보의 회화 작품은 5000만원 이상에 거래된다.
회사 식당 테이블도 수집품이다. 그가 일본 앤티크 가구점에서 2만5000달러에 공수해 왔다. 식탁에 앉아 고개를 들면 주전자, 딸기 등을 세밀하게 묘사한 극사실주의 작품들이 보인다. 박 회장은 이스라엘 출신 유명 조각가 ‘데비이드 걸스테인’의 작품도 3점이나 갖고 있다. 그림 한 점당 800만~1000만원에 구입했다.
박 회장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2층 사무실 문 앞에 지저분한 상자더미로 가려진 회화 작품을 가리키며 “작품이 저렇게 걸려 있어도 어울리지 않아요?”라고 물었다. 그는 고가 작품이라고 해서 보안 장치를 하거나, 눈에 잘 띄는 곳에 두지 않는다. 그저 공간과 잘 어울리는 곳이면 어디든 갖다 놓는다.
그의 컬렉션 특징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은 물론 골동품 시장도 간다. 미국 컬럼버스 애비뉴, 식스 애비뉴의 프리 마켓과 중국 광저우의 골동품 시장이 그가 자주 찾는 곳이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들이 골동품 시장에 모이죠.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에요. 가벼운 것은 직접 들고 오고 무거운 것은 택배로 부쳐요. 가끔 운송비가 더 나갈 때도 있죠.”
예술품으로 직원 창의력 자극그가 가장 아끼는 미술품은 1층 로비에 있는 조각품 ‘두 사람’이다. 최의순 서울대 조소과 교수의 작품이다. 최 교수는 시몬느 중국 공장 사장인 최예순씨의 형으로 2003년 신사옥 오픈 기념으로 선물했다. 두 사람이 한 몸으로 형상화된 작품에는 ‘여러 사람이 한마음으로 핸드백을 제작한다’는 시몬느의 경영 철학이 담겨 있다.
회사 정원에 있는 길이 1m 정도의 대리석 욕조도 박 회장이 아끼는 소품이다. 얼핏 보면 가정집 욕조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이탈리아 볼테라 지방에서 만들어진 1500년 된 욕조다. 그와 20년 넘게 가죽을 거래하고 있는 이탈리아의 가죽구매 대행업체 사장인 피에르 진곤이 선물로 준 것이다. 욕조에 심은 꽃나무는 추운 날씨에 말라 있었다. “일부러 눈도 맞고 비바람도 맞게 내놨습니다. 1500년도 버텼는데, 이 정도 날씨는 아무것도 아니죠.”

그는 이 욕조를 되판다면 3만~4만 달러 이상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소장품을 되팔아 본 적은 없다. 20년 넘게 하나씩 사 모아 누군가의 손에 넘긴다는 게 쉽지 않다.
박 회장이 소중히 여기는 소장품은 대부분 지인들에게 선물 받은 것이다. 1978년 연세대 독문과를 졸업한 후 핸드백 수출업체 청산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입사한 지 1년6개월 만에 대리를 달더니 4년 후 부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87년 청산에서 독립해 창업할 당시 7명이 그를 따라 회사를 나왔다. 현재 본사 직원 240명 중 절반 이상이 10년 넘게 근무했다.
“제 삶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은 사람이에요. 건물 사옥을 컬렉션 공간으로 꾸민 것도 직원들과 공유하기 위해서죠.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다양한 예술품을 보면서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도록 한 거죠.”
이민수 전략기획실 부장은 “회장님이 출장 갔다 오실 때마다 작품이 늘어난다”며 “여러 해 동안 다양한 작품을 보다 보니 미술에 대한 안목이 생긴 거 같다”고 자랑한다. 박 회장은 자신을 행복한 컬렉터라고 강조한다. “제 컬렉션은 심각하지 않아요. 20년 전부터 언젠가 세워질 시몬느 사옥을 꿈꾸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하나씩 모아 왔어요. 앞으로도 제가 재미있고, 직원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작품들을 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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