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진 교수의 동양화 읽기 ③

3월은 과거가 있는 달이니 3년마다 과거를 준비하고 기다려온 선비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달이다. 2월은 너무 추우니 들어앉아 그동안 모자란 공부를 보충하고 먼 곳의 스승을 찾아가 공부를 최종 정리하며 과거 준비에 만전을 기한다. 임금 입장에서도 3월에 과거를 보는 편이 좋다. 농사일을 시작하기에 이른 3월에 과거를 치러야 낙방하면 지체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에 힘쓸 수 있기 때문이다.
임금은 과거 급제자 관에 살구꽃 가지를 꽂아준다. 그래서 살구꽃은 과거 급제를 뜻한다. 급제자는 이 어사화(御賜花)를 꽂고 백마 타고 고향 동네로 내려와 3일 동안 유가(遊街), 즉 퍼레이드를 하면서 잔치를 벌인다. 과거에 급제해 여는 이 잔치를 춘연(春宴)이라 한다. 3월은 또한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달이다. 3월 3일 삼짇날에 돌아오니 봄 제비, 가을 제비 따로 없건만 아예 이름도 춘연(春燕)이라고 부른다. 봄 잔치 춘연(春宴)과 봄 제비 춘연(春燕)의 독음이 같고 제비의 나는 모습이 마치 잔치 연(宴)자와 닮은 점을 이용한다.
덕담을 좋아하는 우리 선조가 이를 놓칠 리 없다. 새봄에 새잎이 돋아 나온 버들가지가 휘늘어지고 그 사이 제비가 날아드는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주고받는다. 여기에 과거 급제를 뜻하는 살구꽃 가지를 곁들이면 ‘급제춘연(及第春宴)’이란 의미를 나타내 더욱 좋다.
살구꽃이 과거 급제를 뜻하므로 신부는 살구씨를 몇 알 넣어 덜그럭거리는 퇴침을 필수 혼수품으로 마련한다. 예전엔 15~16세쯤 조혼했다. 시집가 봤자 평생 믿고 살 신랑은 아직 글방에서 공부하는 처지다. 신부로서는 신랑이 하루빨리 과거에 급제하기를 고대하지만, 사랑채에 나가 있는 신랑이 공부를 게을리하지는 않는지 어른 눈치가 보여 자주 들여다볼 수도 없어 궁금하다.
물고기 세 마리로 면학의 기본자세 일깨워신랑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공자 왈, 맹자 왈’ 암송해 보아도 어제나 오늘이나 별다른 깨우침이 없자 “에이! 누워 잠이나 한숨 자자!” 하고 퇴침을 들어 머리맡으로 옮길라치면 ‘달그락’ 베갯속에 넣어둔 살구씨 구르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살구’ 하면 자동적으로 ‘급제’가 생각나는 신랑에게는 “서방님 잠들면 아니되옵니다. 촌음을 아껴 하루빨리 과거시험에 붙으셔야죠!” 하는 신부의 절실한 간청이 귓전을 울린다.
과거 급제가 중요하지만 밤새워 공부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능력과 수준에 맞는 면학 기준이 필요하다. 송사리 세 마리를 그리는 삼여도(三餘圖)에 그런 기준이 담겨 있다. 삼여란 ‘공부하기에 족한 세 가지 여가’를 뜻한다.’ 야자일지여(夜者日之餘), 음우자시지여(陰雨者時之餘), 동자세지여(冬者歲之餘)’가 그것이다. 여기 여(餘)자 세 개가 있으므로 ‘삼여(三餘)’와 물고기 세 마리인 ‘삼어(三魚)’의 독음이 닮은 점을 화가들이 이용했다. “공부에는 세 가지 여유 시간만 있으면 족하다.

먼저, 밤은 하루 중 일할 수 없는 여유 시간이다. 다음, 흐리고 비 오는 날엔 일할 수 없으니 그 시간을 이용해 공부하면 된다. 셋째, 겨울이다. 겨울은 농사 다 지어 놓고 할 일이 없는 여유 시간이니 이때 공부하면 좋다. 학문하는 데는 이 세 가지 여가만 잘 활용해도 충분하다”는 학문의 기본자세를 일깨우는 이 말은 동우(董遇)라는 학자가 한 말이다.
화가 제백석은 물고기 세 마리를 그려 놓고 거기에 자기가 생각하는 삼여를 적어 놓았다. ‘화자공지여 시자수지여 수자겁지여 차백석지삼여야(畵者工之餘 詩者壽之餘 壽者劫之餘 此白石之三餘也)’. 이 문장의 뜻은 다음과 같다. ‘내가 화가로서 이름 높지만 하늘이 내려준 작은 솜씨에 불과하고, 나를 시인으로 알아주지만 시란 졸음 끝에 얻어지는 하찮은 일이며, 내가 비록 90세 넘어 장수하고 있지만 사람의 수명이라 봐야 영겁이라는 긴 시간에 비하면 작은 자투리에 불과하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삼여다.’
까치 네 마리는 인생의 네 가지 기쁨물고기 세 마리 그림이 가진 본래 뜻은 누구나 알고 있으므로 여기에 자기의 삼여를 피력해 감상을 더 풍부하게 하는 효과를 줬다. 공부하는 첫째 목적은 인격수양이고, 그 다음은 벼슬길에 나가 민생을 이롭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과거에 드는 일은 인생의 네 가지 기쁨 중 하나에 속한다.

이 네 가지 기쁨은 내용은 다르지만 이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얻은 기쁨이라는 사실이다. 어제 온 비가 오늘 또 온다면, 어제 만난 친구를 오늘 또 만난다면, 그렇게 기쁘지 않을 것이다. 갈고닦아 노력하면서 간절한 기다림 끝에 얻으면 더욱 기쁠 것이다. 사희도를 보고 인생의 네 가지 기쁨을 생각하되 기다리고 노력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함까지 깨닫게 하니 이 얼마나 지혜로운 그림 감상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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