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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DA 도발적인 도전 美의 관념을 바꾸다

PRADA 도발적인 도전 美의 관념을 바꾸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패션지 편집장의 상징적 유니폼으로 묘사됐던 프라다. 할리우드 스타도, 이름 있는 CEO도 이 옷을 입는다. 프라다는 도도하면서도 도전적이다.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가 만들어가는 색깔이다.
베이징 파인아트뮤지엄 센트럴 아카데미에서 열린 2011 봄·여름 프라다 컬렉션.

부모님의 경영 실패로 어쩔 수 없이 들어선 패션 디자이너의 길. 정치학을 전공한 페미니스트 미우치아 프라다는 그렇게 패션계에 발을 디뎠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어요. 남들과 다른 상품을 세상에 내놓으면 됐으니까요.”

그는 1978년 패션계의 문을 두드렸다. 원동력은 혁신과 창의성이다. 곧바로 나일론 재질의 테스토벨리 백을 선보여 파란을 일으켰다. 럭셔리 백은 고급 가죽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이때 깨졌다. 낙하산을 만들 때나 사용하던 나일론으로 백을 만든 아

이디어는 그 시대의 유행이 됐다.

유명 여배우부터 거리를 지나는 보통여성까지, 나일론으로 만든 실용적인 백 팩을 멨다. 프라다가 만들어낸 경향은 패션 범주에 머물지 않았다. 나일론 백은 당시 여성들의 사회적인 현상이었다. 클리셰를 깼다는 점에서 하나의 예술로 여겨졌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2011년 1월 어느 날. 중국 베이징 거리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파크 하야트 호텔 스위트 룸. 새벽 3시까지 일을 한 미우치아 프라다가 과거를 회상한다. “중국에 처음 왔을 때가 80년대였어요. 그 이후 1년에 한 번꼴로 중국에 왔는데, 올 때마다 놀랍게 변화하고 있죠.”

매년 20%의 성장세를 보이는 중국 럭셔리 시장. 미우치아 프라다는 거대한 대륙에서 거대한 꿈을 꾼다.

베이징 파인아트뮤지엄의 센트럴 아카데미. 2011년 프라다 봄·여름 컬렉션 의상이 고스란히 모였다. 밀라노 런웨이를 통째로 옮겨와 해외 도시에서 전시하는 건 처음이었다. 미우치아 프라다와 피트리치오 베르텔리 회장까지 핵심 인물이 총출동했다. 중국 시장을 타깃으로 새로운 디자인도 추가했다. 면 소재 의상은 실크 소재를 사용해 다시 만들었고, 클러치 백에는 반짝이는 시퀸 장식을 더했다. 캔버스 소재의 백은 실크와 무두질한 염소, 양 가죽으로 대치됐다.

미우치아의 표현에 의하면 ‘럭셔리에 대한 중국인들의 특별한 욕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가뜩이나 원색적이었던 의상들은 번쩍이는 소재까지 덧붙이자 더욱 강렬해졌다. 중국 시장을 겨냥한 의상과 액세서리는 쇼 바로 다음날부터 중국 대륙 14개 매장과 홍콩 9개, 마카오 2개 매장에서 바로 주문할 수 있도록 했다. 곧이어 중국에 9개의 매장을 추가로 오픈할 예정이다. 중국 퍼포먼스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영국 출신의 테크노 그룹 펫샵보이스의 유로댄스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세계적인 셀레브리티들이 고개를 까닥거렸다. 공리, 장만위, 장바이즈, 매기청, 탕웨이 등 중국 여배우들과 한국에서 온 하지원까지.

2011년 봄·여름 프라다 컬렉션을 각자의 개성에 맞춰 입은 이들은 파티를 즐겼다. 미우치아 프라다 역시 “뉴욕, 파리, 런던에서도 볼 수 없는 패셔너블한 사람들이 바로 여기에 있다!”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다음날 월스트리트 저널은 ‘한자리에 모이기 어려운 스타들이 같은 무대에 섰다는 사실만으로 ‘역시 프라다’라는 탄성이 흘러나오기에 충분했다’고 보도했다.

사실 ‘톱 셀레브리티’가 총출동한 ‘화끈한’ ‘파티’…. 이 같은 단어들이 프라다라는 이름과 잘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프라다는 셀레브리티들이 입어도 드러내놓고 홍보하는 브랜드가 아니다. 여느 브랜드들이 홍보를 위해 ‘스타 모시기’에 열심일 때도 프라다는 개의치 않았다. 고객에게조차 과도한 응대는 하지 않는다는, 좌파적 정치 성향을 가진 패션 브랜드에 어울리는 행보였다.

(오른쪽부터) 큐레이터 한스 울리치 오브리스트, 미우치아 프라다, 독일 출신의 아티스트 카센 훌러.
미우치아 프라다는 패션에 관한 많은 어록을 남겼다. 그것은 일관됐다. “아이를 기르며 직장에 다니는 여자라면 복잡한 옷을 좋아하지 않아요. 아침에 일어나면서 ‘오늘은 섹시해야지’라고 생각하는 여자는 거의 없죠. 전 여자를 알아요.”

“샤넬은 옷을 사는 사람이 중요한 인물로 대접 받도록 만들어준다고 하더군요. 프라다는 옷을 사는 사람이 편하고 좋은 느낌을 갖게 만들지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옷을 사게 만드는 것이 프라다입니다.”

그녀는 완벽주의적 미니멀리스트였다. 파티 때 칵테일 잔의 수위까지 계산한다. 그런 그녀가 중국 패션쇼에 어떤 셀레브리티를 모실 것인지 각별히 신경을 썼던 것이다. 왜일까?



팝아트적 관점에서 고민하다표면적으로는 프라다가 ‘스타’ ‘중국’이라는 대세에 굴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우치아의 행보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 것은 이번 중국 컬렉션에서가 아니다. 프라다의 세컨드 브랜드인 ‘미우 미우’의 2011년 봄·여름 컬렉션. 레드 카펫이 깔린 무대를 배경으로 노골적으로 스타 마크를 새긴 옷을 입고 모델들이 등장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활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아메리칸 아이돌’의 테마곡을 편집한 사운드트랙이 배경 음악으로 깔렸다. 다코타 패닝, 리하나, 알렉사 청 등 현재 가장 잘나가는 셀레브리티가 앞 좌석을 차지했다.

기타리스트이자 화가인 로니 우드와 함께 한 미우치아 프라다. 자신이 디자인한 미우 미우 2011 봄·여름 컬렉션을 입고 있다.
쇼가 끝난 후 미우치아는 ‘셀레브리티와 팝 문화 사이의 관계’를 고민했다고 밝혔다. 단순히 의상 설명이라기보다 예술작품에 대한 해석 같다. 수년간 그녀가 예술가들과 다져온 두터운 친분과 교류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결과물로 나타나고 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의 앨리스 로스론 기자는 “예술계는 미우치아를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럴 만하다. 지난 두 세기 동안 미우치아는 기존 관념에서의 아름다움과 섹스 어필에 대해 그 누구보다 대담하게 도전해왔다”고 평가했다.

다른 패션 브랜드가 아티스트와의 콜래보레이션을 통해 브랜드에 생명력을 불어넣으려고 할 때 프라다는 또 다른 길을 걸었다. 미우치아는 말한다. “1996년, 피렌체 비엔날레 이후 패션과 아트의 결합은 하나의 붐이 됐어요. 하지만 나는 상투적인 클리셰는 정말 싫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아트와 패션을 분리하려고 노력해 왔죠. 어떤 아티스트는 함께 백을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거절했어요. 물론 내가 실수하는 것일 수도 있죠. 아트와 패션의 결합은 또 하나의 미래가 될지도 모르거든요. 하지만 전 개의치 않습니다.”

1993년부터는 폰타지오네 프라다(프라다 재단)를 설립,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있다. 이 재단에는 직원이 단 5명뿐이다. 그녀가 직접 나서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 미우치아는 “요즘 내 업무의 반 이상이 폰타지오네 프라다와 관련된 일”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건축가 렘 쿨하스와 프라다의 합작품인 경희궁의 트랜스포머전.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토비아스 레베르거와 은사자상을 받은 나탈리 뒤버그. 둘 다 폰타지오네 프라다가 지원한 작가였다. 자연스레 아티스트들 또한 프라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었다.

미우치아가 UK 보그와 인터뷰할 때는 영국 yBa(young British Artists) 그룹의 대표 작가인 샘 테일러우드가 사진을 찍어준다. 영국의 미술잡지 <아트 리뷰> 가 매년 선정하는 미술계의 파워인사 100명 리스트에서 2009년 1위로 선정된 세계적인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를 비롯해 독일 출신의 작가 카센 훌러, 롤링스톤스의 기타리스트이자 화가인 로니 우드 등 거장들이 그녀의 든든한 친구다.

특히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렘 쿨하스와는 둘도 없는 사이. 미우치아는 렘 쿨하스의 건축 스튜디오인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와 수많은 작업을 했다. 작게는 패션쇼의 런웨이를 디자인하는 것부터 시작해 2001년 뉴욕, 2003년 도쿄, 2004년 LA로 이어진 ‘프라다 에피센터’ 프로젝트까지. 그녀는 일상의 영역에 예술을 접목하는 작업을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2009년 서울 경희궁에서 ‘움직이는 건축물’이라는 독특한 컨셉트로 연 ‘프라다 트랜스포머’ 전시 역시 프라다와 렘 쿨하스의 합작품이었다. 셀레브리티가 총출동한 프라다 베이징 컬렉션은 낯설었다. 그럼에도 프라다는 역시 프라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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