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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의 와이너리 구입 경쟁 >> 보르도에선 웃돈 주고도 못 사

부자들의 와이너리 구입 경쟁 >> 보르도에선 웃돈 주고도 못 사


경제 위기로 와인 소비가 주춤하다. 하지만 양조장(winery)은 예외다. 와인 수요나 가격과 상관없이 양조장 인수에 투자자와 애호가들이 몰리고 있다. 명품회사나 금융회사 오너들이 고급 와이너리를 사려고 기다리고 있지만 매물 자체가 없다. 소규모 와이너리에 대한 관심도 높다. 와이너리를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칠리아의 ‘바글리오 디 피아네토’ 양조장.

프랑스 억만장자 프랑수아 피노 회장은 최근 론 지방의 명가 샤토 그리에를 사들였다. 샤토 그리에는 3.5헥타르의 포도밭을 가진 소규모 양조장이다. 1헥타르는 잠실야구장만 한 크기로 3000~5000병 정도의 와인이 생산된다. 샤토 그리에의 경우 1년 생산량은 1만~1만3000병에 불과하다.

한국동아제분이 나파밸리에 소유하고 있는 다나에스테이트 와인.
피노 회장은 이미 보르도 포이악에 샤토 라투르와 부르고뉴에 도멘 뒤제니를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 라투르가 매물로 나왔을 때도 48시간 만에 매입을 결정했을 정도로 와이너리 사냥에 관심이 높다. <관련기사 128쪽> 프랑스 경제지 ‘챌린지’에 따르면 프랑스 500대 부자 중 와이너리를 직·간접적으로 소유한 부자만 50명에 달한다.

와이너리에 프랑스 부자들만 군침을 흘리는 것은 아니다. 최근엔 중국인들도 와이너리 쇼핑에 나섰다. 지난해 9월 중국 투자자들은 미국 와인 본산지 나파밸리의 ‘실레노스 빈트너스’를 600만 달러에 매입했다.

올 들어선 와인 성지로 불리는 보르도 양조장 매입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의 국영 식품 수출입회사인 중량그룹(Cofco)의 경우 지난 2월 프랑스 보르도에 20헥타르 규모의 샤토 비오를 매입했다. 파이낸셜 타임스(FT)에 따르면 최근 중국인 투자자들은 보르도에서만 4건의 와이너리를 추가로 사들였다. 보르도에 있는 컨설팅회사 빈야드 인텔리전스의 알렉산더 홀 이사는 “중국인들은 최고급 브랜드를 사고 싶어 한다”며 “보르도에선 고급 브랜드와 대저택이 있기 때문에 웃돈을 주고라도 구입하려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격도 와이너리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보르도 2등급 와이너리 몽로즈의 경우 2000만 유로에 프랑스 부이그텔레콤에 팔렸다.

와이너리 구입은 사실 ‘수퍼 리치’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금융회사나 대기업을 은퇴한 사람들이 포도밭을 가꾸며 제2의 인생을 사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들은 기업처럼 와이너리를 통해 큰돈을 벌려는 것이 아니다.

이탈리아의 한 디자인 회사에서 CEO까지 지낸 안토니오 알렉산드로는 은퇴 후 시칠리아 남쪽에 있는 시라쿠사 지역의 양조장을 구입했다. 그는 기존 양조장을 개축하는 동안 아내와 함께 양조학을 공부했다. 그가 사들인 포도밭은 3헥타르로 1년에 2만여 병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다. 규모는 작지만 양조 시설은 최신식으로 꾸몄다. 아늑한 시음장소와 함께 양조장 한쪽에 손님들이 잘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까지 지었다.

그가 기존 양조장을 개축하고 오크통을 포함해 최신 시설을 사는 데 들인 비용은 50만 유로(9억원)가량이다. 포도밭은 시칠리아의 경우 헥타르당 평균 5만 유로로 10만 유로 이상인 토스카나나 피에몬테보다 훨씬 저렴한 편. 와이너리로 제2의 인생을 개척하는 데 12억원가량 든 셈이다. 서울 강남의 40평대 아파트 값이다. 그는 “최근 포도밭을 4헥타르 추가 구입했다”며 “포도밭을 더 사고 싶지만 매물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미국계 투자회사 콜로니 개피털이 인수한 후 승승장구하고 있는 보르도의 샤토 라스콤브.

2006년 보르도의 샤토 비악을 구입한 레바논 출신의 윰나 아셀리는 “여름휴가 때마다 가족들이 함께 보르도에 오면서 와이너리에서 사는 꿈을 꿨다”며 “부부가 노년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고, 아이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줄 수 있다는 점에서 결국 매입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와이너리로 돈 벌 생각은 없다. 그는 “보르도 속담 중 ‘보르도에서 백만장자가 되려면 억만장자부터 시작하라’는 말이 있다”며 웃었다.

한국동아제분이 나파밸리에 소유하고 있는 다나에스테이트 포도밭.
와이너리는 은퇴자들에게 새로운 열정을 샘솟게 한다. 파리의 석유회사를 다니다 은퇴한 제라르 카뉘엘은 2005년 생테밀리옹의 샤토 아도귀스타를 구입하고 이곳에 정착했다. 그는 “와이너리를 구입한 후 온 가족이 예전보다 훨씬 더 자주 모인다”고 말했다. 은퇴 전 미리 양조장을 구입하고 현지에서 와인 메이커를 고용해 와인을 만드는 이들도 있다. 샤토 구랑의 오너인 피터 핀드 앤더슨은 덴마크 항공사에서 파일럿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아내도 스튜어디스라 보르도에 머무르는 시간이 부족해 현지 와인 메이커를 고용했다”며 “휴가 때만 오지만 양조장을 가진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해외에 와이너리를 소유한 한국인으로는 이희상 운산그룹 회장과 이건영 대한제분 부회장을 꼽을 수 있다. 이 회장이 나파밸리에 보유하고 있는 다나에스테이트에서 생산된 와인들은 최근 전문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다나에스테이트가 만든 로터스 빈야드 2007년산은 로버트 파커에게 100점을 받았고, 바소 와인 역시 지난해 G20 정상회의 만찬주로 소개되며 화제가 됐다. 대한제분의 이 부회장은 미국 오리건주에 페너 애시(Penner Ash)를 소유하고 있다. 소규모 부티크 와인이지만 남다른 품질로 현지에서 명성이 높다. 시칠리아에서 만난 한 와이너리 오너는 “지금 양조장을 사도 자신의 색깔을 가진 와인을 만들려면 최소 3년을 기다려야 한다”며 “장기적인 계획과 와인에 대한 애정 없이 와이너리를 구입하느니 차라리 그 돈으로 와인 자체를 사는 게 나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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