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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지갑을 열다 >> 40·50 ‘아저씨’들 명품 걸치고 성형외과 찾다

남자, 지갑을 열다 >> 40·50 ‘아저씨’들 명품 걸치고 성형외과 찾다


백화점마다 남성 겨냥 명품매장…신사복 매출 1년 새 27% 는 곳도 베이비붐 세대 ‘가족’ 아닌 ‘나’ 위한 소비 늘어
갤러리아의 남성복 편집매장 `지스트리트494옴므`에서 중년 남성 고객이 슈트를 보고 있다.

#사업체를 운영하는 김모 사장은 신세계백화점 본점을 자주 찾는다. 이곳에 입점된 이탈리아 수입 캐주얼 의류점 옷을 자주 사 입는다. 그의 아들도 가끔 같은 곳에서 옷을 구매한다. 김 사장의 취향이 젊은 층과 겹친다는 얘기다. 물론 쇼핑은 부인의 도움 없이 대부분 혼자 한다.

김 사장은 액세서리에도 관심이 많다. 해외출장을 갈 때마다 현지 백화점에서 목걸이를 기념 삼아 하나씩 꼭 사온다. 그가 끼는 반지는 불가리(Bvlgari), 시계는 피아제(Piaget) 제품이다.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을 즐기는 그의 나이는 올해 환갑이다.

#5월 4일 롯데백화점 애비뉴엘에서 열린 ‘명품 시계 컬렉션’에 고급 정장 차림의 장년층 남성이 모여들어 눈을 빛내고 있다. 여성 고객이 대부분인 백화점 명품관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 무역업체를 운영하는 주모(57) 사장은 “해외출장을 갈 때마다 백화점에서 마음에 드는 제품을 보고 온다”며 “멋진 시계는 기계에 대한 로망이 있는 남자에게 가장 좋은 액세서리”라고 말했다.

남자들이 지갑을 열고 있다. 그것도 쇼핑과는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중장년층의 이야기다. 부인에게 경제권을 넘기거나 가족을 위한 지출이 대부분이었던 예전과 달리 자신이 직접 옷을 고르고 취미생활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커피체인점, 고급 레스토랑에도 ‘아저씨’들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가장 뚜렷하게 변화가 감지되는 곳은 백화점과 명품시장이다. 롯데백화점이 밝힌 본점 구매 고객 중 40, 50대 남성의 구매액이 2008년 16.3%에서 2010년 22.2%로 늘었다. 갤러리아 명품관의 ‘하이주얼리&워치’ 매장은 세계 4대 명품 시계로 꼽히는 오데마 피게, 브레게 등 초특급으로 구분되는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다. 특히 이곳은 명품시장의 새로운 소비자로 떠오른 남성 수요에 주목해 남성 대상 코너를 대폭 확대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갤러리아 관계자는 “남성 소비자에게 주목한 덕분에 오픈 2년 만에 전년 동기 대비 21%나 매출이 신장됐다”고 밝혔다. 이 백화점의 명품 신사복 매출 역시 2년 전 동기 대비 22%가량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그루밍’은 중년도 한다백화점과 명품 매장 관계자들은 “혼자 쇼핑을 오는 멋쟁이 신사가 늘었다”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신세계백화점에서 VIP 고객을 담당하는 박송이 컨시어지는 “예전에 비해 부인과 동행하지 않고 직접 제품을 고르는 50대 남성 고객이 확연히 많아졌다”며 “하이엔드 제품 중에서도 구두 등 남성 패션 쪽과 골프 관련 품목 매출이 늘어 남성 소비자의 구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백화점 남성 고객은 연령대가 높을수록 인지도가 높고 역사가 깊은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최근에는 50대 이상 고객도 과감한 선택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탈리아 신사복 브랜드 스테파노 리치의 이재용 대리는 “주 고객인 40~60대 남성이 화려한 스타일과 개성 있는 디자인을 고르는 경우가 늘었다”며 “부유층 남성이 전보다 패션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광화문 KT사옥에서 아이패드를 작동해 보고 있는 남성들. 중년 이상 연령의 남성 사이에서 IT기기에 대한 관심이 높다.

구매력이 강한 중장년 남성 고객의 높아진 안목을 따라잡기 위해 백화점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2010년부터 백화점들은 경쟁적으로 남성 고객을 위한 패션 편집매장을 열었다. 신세계는 40~50대 중년 남성을 타깃으로 한 ‘신세계 멘즈 컬렉션’을 지난해 10월 열었다. 이 백화점의 신사복 매출은 2010년 전년 대비 27.2%나 늘었다. 현대백화점과 갤러리아백화점 역시 압구정동에 남성복 편집매장을 각각 열었다. 의류업계 관계자는 “이런 변화는 기업이 앞서 나갔다기보다 안목이 높아진 남성 소비자가 이끌어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형외과 남성 고객 30%가 40대 이상남성 소비 파워는 명품 업계에만 그치지 않는다. 취미와 여가활동에도 아낌없이 돈을 투자하고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이들 덕을 가장 많이 봤다. 현대백화점이 지난해 상반기 40대 이상 남성의 브랜드별 매출을 조사한 결과 2005년 39위였던 노스페이스가 9위로 뛰어올랐다. 아웃도어 브랜드 시장은 2010년 3조원 규모로 성장했는데 이는 등산을 좋아하는 중년 이상 남성이 소비를 늘린 것과 큰 연관성을 지닌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MTB와 모터사이클을 즐기는 40대 이상 남성이 늘어나고 있으며 여가활동에서 하이테크 제품 사용도 늘었다”고 분석했다.

패션 관련 상품에서 40대 이상 남성의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이들이 외모를 가꾸는 것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뜻한다. ‘그루밍족’은 피부 관리, 화장품 구입에 돈을 쓰며 스스로를 꾸미는 일에 적극적인 요즘 젊은 남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꽃중년’을 꿈꾸는 남성에게도 해당한다.

대기업 임원인 이모(49) 전무는 몇 년 전부터 청담동의 헤어숍을 다니고 있다. 그가 아파트 상가 미용실을 벗어난 것은 딸의 권유 덕분이다. “가격이 네 배는 비싸지만 확실히 스타일이 좋아진 것 같다”며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알고 보니 주변 친구들도 다 이런 곳에 다니더라”는 말을 덧붙였다. 남성 화장품 시장 규모는 2006년 4700억원에서 2009년 6800억원으로 증가하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중년 남성의 외모 가꾸기 열풍은 성형외과에서 더 절실하게 느껴진다. 모발이식처럼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한 시술은 물론 자신감을 갖기 위한 미용성형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승주 루&코 성형외과 원장은 “요즘 성형외과 업계에서는 남성 고객의 30%가 40대 이상 중장년층이라고 보고 있다”며 “40대는 남자답고 강인한 이미지를 위해 코 성형을 선호하고, 50대 이상은 눈 주변 지방이 처지는 현상을 교정하는 눈꺼풀 성형을 많이 한다”고 밝혔다. 노화로 인해 생기는 기미와 검버섯을 제거하기 위한 시술 문의도 많다. 동안을 위해 성형외과 방문을 주저하지 않는 것이 요즘 중장년 남성의 세태다.

새롭게 부상한 남성 소비자. 그러나 이들의 관심사가 비단 외모 꾸미기와 패션에만 집중된 것은 아니다. 생활 전반에 여유를 찾기 원하는 이들은 여가와 취미생활, 사교를 위해서도 기꺼이 지갑을 연다. 김모(52) 변호사는 지인과 함께 와인을 마시는 것이 삶의 낙이다. 서울대 동문 후배들과 함께 고가 와인을 들고 부티크 레스토랑을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찾는다. 그는 “젊은 친구들과 웃고 떠들다 보면 젊어지는 기분이 든다”며 “나이 들수록 후배들에게 선심을 많이 쓰게 된다”고 말한다.

블루밍가든 등 파인다이닝 외식업체를 운영하는 박영식 SG다인힐 부사장은 “레스토랑 고객층은 젊은 여성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고급 식당에서 중년 남성이 사교·와인 모임을 자주 열어 이 고객층이 확연히 늘어났다”고 말했다. 박 부사장은 “40대 이상 남성 고객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어 비싼 코스도 주저 없이 선택하는 편”이라고 밝혔다.

중년 이상 남성에게 최근 새롭게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 IT기기다. 거리나 지하철에서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성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아이패드로 신문을 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대기업에서 임직원에게 일괄 보급하며 스마트폰 사용자가 급격히 늘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해 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6개월 사이 40대 이상 스마트폰 사용자는 13.4%에서 36.6%로 급증했다.

박용후 카카오톡 이사는 “20대는 스마트폰의 통신비를 감당할 수 없어 구입을 망설이는 반면 회사에서 일괄적으로 지급된 스마트폰을 받아 든 중년 남성이 먼저 이 기기에 열광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KB카드 박경연 브랜드팀장은 “IT기기의 보급은 젊은 층에서 중장년층으로 확산되는데 스마트폰은 그 반대였다”며 “중년 남성의 구매 패턴을 보면 이제는 세대를 넘나드는 소비 행태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 쓰다 보니 “IT기기 욕심 나네”소비자 트렌드 분석 전문가들은 이들의 소비 행태가 달라진 것에 주목했다. ‘가족을 위한 소비’에서 ‘나를 위한 소비’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특히 40대 이상 남성이 돈을 쓰기 시작한 것은 자신에게 투자하기 원하는 요즘 남성의 세태와 시니어 소비자가 소비시장의 큰손으로 등극한 현상이 맞물린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이들을 자극하는 것은 젊어지고 싶다는 욕망이다. LG경제연구원이 지난해 8월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60세 이상 응답자 중 71.2%가 자신을 실제 나이보다 젊게 생각하고 있었고 젊어 보이기 위해 투자할 의지가 많다고 답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뉴시니어 세대의 3대 키워드’라는 보고서에서 50대 이상을 ‘뉴시니어’로 지칭하며 이들의 소비활동 동기를 젊음, 향수, 자아 세 가지로 요약했다. 2010년 롯데백화점의 영캐주얼 매출 중 50대 구매액이 1년 새 22% 증가했다는 수치도 내놓았다.

그렇다면 왜 남자일까? 본래 트렌드에 민감한 소비 영역은 여성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 마케팅계의 통설과도 같았다. 인색한 이미지의 ‘아저씨’들이 돈을 쓰기 시작한 것에 대해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삶의 질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으로 설명한다. 베이비붐 세대 전후의 남성은 퇴임이 빨라 시간적 여유가 늘고 일 이외의 삶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쇼핑을 위해 돌아다니는 것을 싫어하는 남자 사이에서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이 인기를 끈 것도 한 원인이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가 2010년 상반기 인터넷 쇼핑몰 방문객 수를 조사한 결과 남성이 64%로 여성(36%)을 압도했다. 40대와 50대 방문객은 2006년 상반기 14.4%, 4.8%에서 18.4%, 6.6%로 각각 증가했다.

베이비붐 세대 은퇴자가 늘어날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허 교수는 “기업은 이들의 가장 큰 열망인 ‘젊음’을 파는 마케팅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50대 이상 고객을 잡기 위해 ‘실버’를 부각하기보다 오히려 더 젊은 이미지로 포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시세이도 화장품이 안티에이징 제품에 ‘아름다운 50대가 늘어나면 일본이 변한다’는 광고를 한 후 매출이 되레 떨어진 사례가 있었다.

명품에서 인터넷 쇼핑몰에 이르기까지 남성, 특히 중장년 소비자 파워가 전에 없이 세지고 있다. 자신을 꾸미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한 남성의 지출이 늘어나면서 기업의 ‘아저씨’ 대상 마케팅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 ‘꽃중년’의 새 이름은?



루비족(RUBY) ‘Refresh, Uncommon, Beautiful, Youthful’의 머리글자로 만들어진 신조어. 단어 뜻 그대로 나이와 상관없이 신선한 삶을 추구하며, 평범하게 늙어가는 것을 거부하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꾸며, 젊게 살아가는 중년층을 가리킨다.



노무족(NOMU) ‘No more uncle’의 줄임말. 아저씨라 불리기를 거부하는, 나이와 상관없이 자유로운 사고와 생활을 추구하는 40, 50대 남성을 뜻한다.



신레옹족 가정에서는 자상하고 편안한 아버지의 이미지를, 사회에서는 멋진 패션의 신사로 나타나는 중년 남성을 표현하는 말. 일본 중년 남성을 대상으로 한 패션잡지 레옹에서 이름을 따왔다.



■ 삼성경제연구소가 꼽은 ‘뉴시니어(50대) 세대 3대 키워드’



젊음 : ‘100세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오랫동안 청년으로 살고 싶은 욕구가 뉴시니어의 소비, 여가활동의 주요 동기가 됨.



향수 : 경제성장기 동안 억제되었던 문화 향유 욕구가 은퇴 이후 촉발되면서 과거의 문화와 가치, 감성을 담은 콘텐트를 구매.



자아 : 강좌 학습, 여가활동이 확산되고, 삶의 단계 변화에 따른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교류의 장으로 동호회를 비롯한 커뮤니티가 활성화됨.

박미소 기자 smile8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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